성지훈 기자
“비장애인들의 발걸음은 너무 빨라요. 그 빠른 발걸음이 아마 자본의 속도일 거예요. 바쁜 아침 출근길 그 발걸음을 휠체어의 느린 속도가 막아서면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속도에 화를 내요.”
광화문 지하도에는 농성장이 있다. 2012년 8월에 자리 잡았으니 같은 곳에서만 햇수로 5년째다.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농성장이다. 그들은 5년째 아침마다 광화문역을 지나 출근하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을 본다. 출근 시간에 광화문 농성장 앞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농성장에선 ‘기차’라고 부른다.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내는 구두굽 소리,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 무표정. 좀체 멈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기차는 광화문 농성장을 지키는 장애인들이 봐 온 풍경이다.
낙인의 사슬, 빈곤의 사슬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가난, 가족의 가난을 증명하고 장애를 인정받아야 비로소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부양의무제, 장애등급제죠”
장애인들이 광화문 지하도에 농성장을 차린 건 2012년 8월 21일이다.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며 광화문 일대 동화면세점 앞에서 집회를 연 후, 폐지까지 무기한 농성을 하겠다며 자리 잡았다. 대통령 선거가 100일 남짓 남은 시점이었다. 농성장을 차린 후 장애인들은 대선 후보들에게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광화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의 필요성을 알리는 활동도 이어 나갔다. 대선 후보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에 대한 설명을 들은 시민들도 대부분 이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지금껏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는 남아 있다. 5년 동안 장애와 빈곤의 사슬에 희생된 11개의 영정이 농성장에 놓였다.
장애등급제는 장애 정도에 따라 장애인에게 등급을 매기는 제도다. 의학적 기준으로 장애 정도를 평가해 그 등급에 따라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의학적 기준만으로 장애를 정의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를 은폐한다고 주장한다. 장애는 개인의 특질뿐 아니라 사회와 환경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발생하는데 일괄적인 등급제는 이 모든 관계망을 무시한 채 강요된 등급으로 적절하지 않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장애인들과 관련 단체 활동가들은 장애등급제를 ‘낙인의 사슬’이라고 부른다.
부양의무제는 본인이 가난해 기초 생활 보장이 필요한 경우에도 배우자나 직계 혈족 등 부양 의무가 있는 이들이 경제 생활을 하고 있다면 기초 생활 보장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다. 부양의무제로 기초 생활 수급 신청을 한 노인의 60%가량이 대상자에서 탈락하고 있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실제로 부양을 받지 못한다. 소득 보장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들은 가족을 부양할 경제력이 없음에도 부양의무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빈곤의 문제, 복지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제도라는 것이 장애인 단체를 비롯한 빈민운동 단체들의 주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부양의무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임기 3년이 지나도록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특히 장애등급제 폐지는 새로운 장애 종합 판정 체계를 도입하기 위한 민관 협의 기구까지 꾸려 논의해 왔지만, 2015년 발표한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 사업 계획’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공약은 사실상 파기됐다. 게다가 이 계획은 지난 2013년 장애등급제 개편 과정에서 ‘중증-경증 단순화’ 과정을 거치지 않겠다고 합의한 내용마저 깼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국무총리 면담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은 없었다.
그린라이트 투쟁 – 직진 신호
“이렇게 오래 농성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100만 명 서명을 받는 게 목표였는데 지금 10만 명 정도 받았어요. 앞으로 몇 년을 더 해야 하는 거냐는 농담도 하고 그랬죠. 농성이 길어지니까 투쟁이 일상으로 변했고 그러다 보니 권태나 관성이 오기도 했죠.”
‘그린라이트를 켜 줘’는 농성장을 차린 지 1000일째 되던 날 시작됐다. 길어지는 농성 투쟁에 지치고 대답도 없는 정부에 답답해질 즈음이다. ‘그린라이트’는 정체되는 투쟁에 내린 직진 신호란 의미다. 이들은 휠체어를 끌고 서울 도심 곳곳을 누볐다. 고작 30초쯤 주어지는 횡단보도의 파란불이 켜진 동안 휠체어는 길을 건너기 시작했고 빨간불이 켜지면 그 자리에 멈췄다. 그건 사회가 강요한 ‘속도’로 살아야 하고 그 속도에 맞추지 못하면 위험한 곳 한가운데에 홀로 남겨져야 하는 장애인들의 삶과 같았다. 분주한 도심 한복판은 장애인들의 속도만큼 느려졌다.
장애인들은 서울 도심뿐 아니라 각자의 ‘동네’에서 자기 속도로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린라이트 투쟁은 광주, 부산 등 지역에서도 진행됐다. 그린라이트를 켜 달라고 요구하는 장애인들이 찾는 곳마다 도로는 느려졌다. 사람들은 화를 내고 욕을 했지만 그들의 속도에 맞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린라이트 투쟁은 예상치 못한 성과를 낳기 시작했다. 농성장에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그린라이터 (그린라이트 투쟁을 진행했던 장애인들을 농성장 사람들은 ‘그린라이터’라고 부른다)들이 다녀간 ‘동네’의 활동가들이 농성장 지킴이로, 연대 활동가로 농성장을 찾기 시작했다. 농성장 천막에 걸린 일정표에 동네 이름이 빼곡히 차기 시작했다. 전국 팔도 ‘동네 이름’이 가득 찬 농성장 일정표는 그린라이터들의 느린 걸음이 다녀간 곳들이고, 그 느린 걸음에 속도를 맞추겠다며 농성장을 다시 찾은 이들이 사는 곳이다.
우리는 느리게 걷자
복지 개념의 기본은 ‘정상화’에 있다. 정상화란 ‘모든 장애인의 일상생활 양식과 조건을 사회의 보통 환경과 생활 양식에 가능한 일치시키는 것’이다. 장애인들을 특별히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 자체를 느끼지 않도록 사회 관계망을 조정하는 일이다. 장애인이 버스에 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버스를 저상 버스로 교체하는 일이 정상화 이념에 입각한 복지 서비스다.
그린라이트 투쟁으로 느려진 도로에 비장애인들은 불편해하고 불쾌해했다. 익숙하지 않은 느린 속도. 그러나 장애인들은 그 익숙하지 않은 속도를 평생 겪으며 살아야 한다. 뒤처지면 도로 위에 홀로 남아 위험을 감내했다.
매일 아침 광화문 지하 차도를 지나는 ‘기차’의 속도는 장애인들은 함께할 수 없는 속도다. 말을 걸 수도 없고, 쳐다봐 달라고도 할 수 없는 너무 빠른 속도. 그러니 조금 느리게 걷자. 걸음이 느려서 생존마저 흔들리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이 사회의 속도가 제시한 초록불은 장애인들에게는 어쩌면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러니 그냥 우리 모두 속도를 조금 줄이자. 장애인들도 충분히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세상의 속도와 기준을 바꾸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그린라이트가 같아지는 것, 그게 ‘정상화’다.
4월 17일은 장애등급제 때문에 활동 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한 장애 인권 활동가 송국현 씨가 사망한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송국현 씨의 추모제는 얼마 전 사측의 괴롭힘으로 사망한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 씨의 추모제와 함께 진행됐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던 육우당 씨의 추모제는 광화문 지하 차도 농성장에서 열린다. 거리의 싸우는 사람들끼리는 조금씩, 천천히 걷는 속도를 맞춰 가고 있다.
(워커스 6호. 2016.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