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힘, 감옥에서 출소했다
윤지연 기자
출소 환영식은 화끈했다. 길게는 9개월여 만에 사람들과 재회한 자리. 기쁨을 채 나누기도 전에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갑자기 경찰 병력이 몰려들어 그 자리에 연대하고 있던 활동가 한 명을 기습적으로 체포했다. 4월 26일 저녁 삼표 본사 앞. 동양시멘트 위장 도급 문제로 투쟁하다 구속된 하청 노동자의 출소를 환영하기 위해 열린 투쟁 문화제의 풍경이었다.
위장 도급이라는 범법 행위를 저지른 것도 원청인 동양시멘트였고, 부당 해고와 부당 노동 행위를 저지른 것도 원청이었다. 하지만 죄를 지은 동양시멘트는 처벌받지 않았다. 감옥에 간 것은 오히려 동양시멘트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회사도, 법원도, 경찰도 하청 노동자들을 만만하게 대했다. 회사는 이들을 해고했고, 법원은 이들을 구속했으며, 경찰은 이들의 집회의 자유마저 가로막았다. 출소 후,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선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은 웃을 수가 없었다. 그날 체포된 연대 단위 활동가는 결국 공무 집행 방해로 구속됐다.
판사도 가끔은 소설을 쓴다
지난 4월 15일, 길게는 9개월, 짧게는 3개월 간 감옥살이를 했던 동양시멘트 노동자 7명이 석방됐다. 1심에서 징역 6월~1년 6월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집행 유예가 나왔다. 춘천지법 강릉지원의 1심 판결문을 봤다고 하니, 최창동 동양시멘트지부장(강원영동지역노조)이 웃음을 터뜨렸다. “완전히 소설을 써 놨지요?”
판결문만 보면 노동자들은 최홍만급 파이터였다. 10명이 넘는 관리자는 노동자들의 폭력에 속수무책이었다. 얼굴을 수차례 가격당하고, 발로 걷어차이고, 배수로에 빠질 뻔하고, 전신을 밟히고, 양동이로 물세례를 받아도 꼼짝도 못 하는. 김경래 수석부지부장은 지금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관리자들이 노조 현수막을 제거하려고 해 이를 막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졌어요. 서로 밀고 밀치는 상황이 발생했고, 우리 조합원들도 다쳤어요. 진단서도 끊었고. 그런데 우리 쪽 진단서는 전혀 안 받아 주더라고요.” 최 위원장도 다리를 다쳤다. 하지만 바빠 죽겠는데 뭘 진단서까지 끊느냐며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는 그때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된다고 했다.
공장 인수를 위해 내려온 삼표산업 실사단의 차량을 처음 막아선 사람들은 한국노총 소속 정규직 노조였다. 하지만 뒤늦게 그 자리에 도착한 민주노총 동양시멘트지부 소속 하청 노동자들만 처벌을 받았다. 판사가 13명의 노동자에게 적용한 죄목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업무 방해, 모욕, 재물 손괴, 상해죄. 판사가 선고한 형량은 검사의 구형과 같았다. 징역 6월~1년 6월. 다만 5명은 징역형에서 제외. 같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노조를 탈퇴하고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같은 혐의에도 불구하고 노조 탈퇴 여부로 형량을 결정하고, 벌금 한번 문 적 없는 초범에게 검사 측 구형을 그대로 적용한 것은 듣도 보도 못한 판결이었다. 이미 구속된 노동자들에 대한 1심 선고 공판 자리에서, 불구속 기소된 5명의 노동자를 무더기 법정 구속 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그날 법정 구속된 김경래 수석부지부장은 지난해 3월 최창동 지부장 등과 함께 업무 방해를 ‘공모’했다는 이유만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김 수석은 제가 8월에 구속될 때까지만 해도 업무 방해 관련해서 조사도 한번 안 받았습니다. 판결문만 봐도 김 수석에 대한 업무 방해 동기가 전혀 없어요. 법이 완전 개판이에요.” 최창동 지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귀하디귀한 ‘위장 도급’ 판결, 모른 척하는 회사
법원까지 나서 무리하게 노조 간부들의 발을 묶으려 한 이유는 뭘까. 최 지부장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포기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했다. 그동안 동양시멘트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의 지시로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했다. 하지만 임금은 정규직의 38%밖에 받지 못했다. 원청은 하청 노동자들이 쓰는 작업장 부품 하나까지도 꼼꼼하게 관리했다. 30만 원 이상의 예산을 사용하려면 원청의 결제가 필요했다. 하청 노동자는 결제 서류를 들고 원청사를 쫒아 다녔다. 하청 업체 사장은 바지 사장이었다.
결국 노조는 지난해 2월 노동청을 통해 위장 도급 판정을 이끌어냈다. 하청 업체가 동양시멘트 사무실 및 장비를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고, 업체 대표 이사가 원청의 결정에 의해 취임했으며, 원청이 하청 업체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지시하는 등 원-하청 간의 관계가 위장 도급에 해당한다는 판정이었다. 고용노동부가 ‘불법 파견’ 판정을 넘어 ‘위장 도급’으로 판정한 첫 사례였다.
하지만 위장 도급 판정에 대한 회사 측 처벌 조항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보름 뒤, 101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집단 해고를 당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모두 부당 해고, 부당 노동 행위 판정을 내렸다. 그 사이 삼표그룹이 동양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원청사가 바뀌었다. 하지만 부당 해고에 대한 복직도, 위장 도급에 대한 정규직 전환도 이뤄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동양시멘트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사의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했다. 하지만 회사는 교섭에서 원청 정규직으로의 복직은 불가하다고 했다. 김경래 수석부지부장은 말 같지도 않은 교섭이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회사를 만들어 줄 테니 거기로 들어가래요. 정규직으로의 원직 복직 이야기는 다 빼 버렸어요. 단체 협약도 옛날 하청 업체 단협 그대로 가자는 거고요. 말도 안 되죠.” 회사와의 교섭은 지난해 11월 이후로 중단된 상태다.
간간이 회사로부터 전화도 걸려 온다. ‘정규직 전환’이 아닌 ‘신규 채용’ 형식으로 들어오는 게 어떻겠느냐며 간 보기를 한다. 사돈 기업인 현대차가 불법 파견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흔히 썼던 수법이다. “삼표 회장이 직접 교섭에 나와 정규직 원직 복직 얘기할 거 아니면 전화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노동부 판단을 따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다. 노동자들은 지난해 8월 19일부터 서울 종로에 위치한 삼표 본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길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미 400일을 넘어섰다. 그동안 회사는 16억 원의 손해 배상 가압류를 청구했고, 노조 간부들은 감옥살이를 했고, 일부 조합원들은 회사 측의 회유로 노조를 떠나갔다. 자본과 사법부의 협공은 노동자들의 생존을 옥죄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유서를 가슴에 품고 시작한 노조 활동이었다. 나이 쉰둘에 그 노조 가입서를 받아 들고 노조 간부를 결의하던 사람도 있다. 이들은 점점 더 투쟁 조끼가 자랑스러워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