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월급도 안 주고 공장 문 닫은 (주)피엘에이
윤지연 기자
무려 1년간 월급이 안 나왔다. 임금 지급 약속을 해 놓고도 회사는 매번 약속을 어겼다. 그럴 때마다 체불 임금은 쌓여 갔고, 노동자들의 가계에도 빚이 쌓였다. 회사가 1년간 체불한 임금은 무려 8억. 뭐 그리 어마어마한 임금도 아니었다. 잔업까지 꽉 채워도 월급은 세후 200만 원도 안 됐다. 하지만 회사는 그 쥐꼬리만 한 월급도 챙겨 주질 않았다. 노동자들은 무임금으로 사계절을 버텼다. 잘 돌아가던 공장도 가동을 멈췄다. 결국 노동자들은 서울로 몰려와 회사 사무실을 점거했다. 그리고 단식을 진행했다. 체불 임금과 공장 정상화,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참을 수 없는 약속의 가벼움
대전 대덕구에 있는 ㈜피엘에이는 LCD 패널 재생산 업체다. 폐기 혹은 매립되는 불량 제품을 재생해, 삼성이나 엘지 같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곳이다. 지난 1년간 이 회사 노동자들은 도인이 다 됐다. 이만큼 참았으면 최선을 다해 참은 거였다. 5월 9일, 결국 대전 공장 노동자들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피엘에이 사무실을 점거했다. 이곳에서 피엘에이 노조 위원장은 1년간 체불한 임금을 달라며 9일간 단식을 진행했다. 이들이 서울로 상경해 곡기를 끊기까지의 과정은 말 못 할 정도로 지난했다.
적은 월급이지만 입에 풀칠은 하고 살았던 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지난해, 경영이 어렵다며 희망퇴직과 정리 해고를 단행했다.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회사를 나갔다. 갈등 끝에 2015년 3월 8일. 정리 해고자 14명 원직 복직을 골자로 하는 노사 합의가 이뤄졌다. 복직의 기쁨도 잠시. 당황스럽게도 회사는 4월부터 임금을 체불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4월, 5월, 6월, 반 토막 난 임금을 받았고, 7월부터는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반발했고, 회사는 8월에 대전 고용노동청 청장에게 체불 임금 해소 확약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돈은 나오지 않았다. 11월 3일에는 한 달 안에 체불 임금 전액 청산을 골자로 하는 노사 간 특별 교섭 합의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회사는 확약서든 합의서든 개의치 않고 임금을 안 줬다.
12월에는 대표 이사가 유 모 씨로 바뀌었다. 그는 회사를 흑자 전환시키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현재 단식 중인 김국배 지회장도 그의 말을 믿었다.
“노동조합과의 면담 자리에서, 유 모 대표 이사가 말했어요. LCD 패널 재생산이 사양 산업이라는 건 잘못 알고 있는 거다, 신규 투자를 통해 흑자 전환을 하겠다면서요. 대표 이사 선임을 위한 주주 총회가 끝나면 체불 임금도 해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노사는 또 한 번 특별 교섭 합의서를 작성했다. 금속노조 위원장과 유 대표 이사의 도장이 찍힌 합의서였다. 하지만 웬걸. 회사가 체불 임금을 전액 청산하기로 약속한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노동자들 통장에는 땡전 한 푼 들어오지 않았다. 그 후 회사는 조합원과의 간담회에서 사과했다. 12월 29일까지는 꼭 지급하겠다며. 하지만 여전히 임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회사는 ‘약속 브레이커’였다. 그 후로도 회사는 체불 임금 청산 합의서를 쓰기도 하고, 노동청에 공문을 보내며 읍소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1월에는 노조가 전면 파업도 했다. 결국 노동부 중재 아래 노조가 회사 가압류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지급한다는 합의서도 썼다. 하지만 합의 이후 받은 체불 임금은 지난해 4월 미지급된 임금 50%가 전부였다. 회사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8억 원에 달하는 1년 치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 지난 3월 주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체불 임금 청산 관련 긴급 안건이 통과됐음에도, 4월 23일까지 임금 체불을 전액 청산한다는 공증까지 받았음에도. 5월 9일 월요일, 노동자들이 서울 피엘에이 사무실에 들이닥친 사연은 이러했다.
임금도 못 받고 일자리도 잃게 생겼다
5월 18일. 단식 8일 차를 맞은 김국배 지회장과 인터뷰를 했다. 이날은 회사가 또 한 번 체불 임금 지급을 약속한 날이다. 18일까지 체불 임금의 10%를 지급하고, 20일까지 나머지 전액을 지급한다는 약속이었다. “임금 들어왔어요?” “안 들어왔는데요.” 노동자가 단식을 해도, 회사는 약속을 어겼다.
도대체 체불 임금은 언제쯤 받을 수 있는 걸까? 회사 측 변 모 상무는 “당장에라도 (체불 임금) 집행을 하려 하지만 시간을 특정하기는 어렵다”며 모순적인 말을 했다. ‘약속의 왕’인 유 모 대표 이사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노조 측은 회사가 재정 여유가 있는데도 악의적으로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지회장은 “회사가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120억 원과 30억 원을 유상 증자 했다”며 “30억 원과 관련해서 회사 관계자는 ‘임금도 포함된 운영 자금이기 때문에 체불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회사 관계자에게 선일자 수표를 발행해 체불을 청산하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확인해 보고 연락 주겠다’며 돌아간 회사 관계자와는 한 달째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피엘에이 노동자들의 투쟁은 단지 ‘체불 임금 해결’에만 그치지 않는다. 회사를 흑자 전환 하겠다던 유 대표 이사는, 올해 초 공장 매각을 추진했다. 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난 2월, 기업은행에서 내용 증명이 발송되기 전까지는. 그리고 기업은행 담당자가 ‘매각과 관련해 대표 이사 동의가 있었다’고 알려 주기 전까지는. 대표 이사는 노동자들이 현장에 복귀해도 작업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허언이 아니었다. 2월 19일 오전 10시부터 공장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사양 산업’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경영진이 회사를 ‘사양 산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2009년부터 느닷없이 카자흐스탄 해외 유전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피엘에이 공장의 막대한 자본이 유전 사업으로 흘러들어 갔고, 회사의 손실은 점점 커졌다.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LCD 재생 산업은 점점 사양 산업이 돼 갔다. 결국 2000년 설립된 이 회사는 16년 만에 문 닫을 위기에 놓였다.
현재 남은 노동자는 39명. 대다수가 30대 중후반의 젊은 노동자들이다. 장시간 임금 체불로 마이너스 통장을 안고 사는 것도 모자라, 이제 일자리까지 빼앗기게 생겼다. 회사 측 변 모 상무에게 공장 폐쇄 계획을 물었다. “정확하게 정해진 바가 없다”고 답했다. 고용 보장 계획 역시 특별한 것이 없다고 했다. 공장 매각을 앞두고도, 회사는 여전히 무책임하기만 했다.
(워커스 11호 2016.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