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솔, 윤지연 기자
칼로 찔러 살해했다. 경찰에 자진 신고해 체포된 A 씨는 “간병에 지쳤다”고 범행 동기를 털어놨다. 체포 당시 A 씨의 손목과 목에도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범행 후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했다고 추정했다. A 씨는 거의 식사를 하지 않다 3개월 뒤 유치장에서 사망했다. 지자체는 A 씨에게 ‘가사 도우미 서비스’ 등을 권유했지만 직접 돌봐야 한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병 살인’은 간병 중인 가족이 어려움을 겪다가 환자를 살해하는 일을 뜻한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간병 살인이 발생했다. 2005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이후 간병 살인이 점차 증가했지만, 지자체나 경찰은 관련 통계를 집계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본 공영 방송 NHK가 최근 일본 내 간병 살인에 대한 통계를 발표했다.
NHK가 2010년 이후 6년간 일어난 가족 간 살인 사건을 재조사한 결과, 미수를 포함한 간병 살인은 138건이었다. 약 2주일에 1건꼴로 간병 살인이 발생한 셈이다. 또한, 간병 살인은 절반 이상(53%)이 간병 시작 후 3년 이내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간병 시작 1년 이내에 발생하는 비율은 26%로 4분의 1을 차지했다. 또 간병 살인의 75%는 복지 서비스를 일정 부분 이용하고 있었다. 복지 서비스가 간병 살인을 막을 만큼 충분하지 못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간병을 하던 중 살인에 이르게 된 사건들이 종종 생긴다. 지난주 경기도 안양에서 부양이 힘들다며 치매 노모를 폭행해 살인에 이르게 한 50대가 구속됐다. 범행을 부인하던 그는 국과수의 부검 결과 등이 나오자 “평소 어머니를 모시며 힘든 점이 많았는데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간병이 가족 개인에게 전가될 때 살인 위험성은 커진다. 특히 시설에 입소하지 않고 집에서 돌보는 경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보장하는 3~4시간의 방문 서비스 시간을 빼고 오롯이 간병에 매달려야 한다. 직업 간병인의 경우 정해진 노동 시간이 있지만, 가족 간병인은 일상과 간병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노인은 각종 질병에 취약하지만 그만큼 보호받긴 어려운 상황이다. 국가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바탕으로 노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보장성 수준이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6년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까?
간병 세대는 우리가 마지막이길
가족 간 살인을 반인륜적 범죄라 부른다. 하지만 사건의 맥락에 ‘간병’이 껴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치매에 걸린 70대 노모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질식시킨 50대 아들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범행 직후 경찰에 자수했다. 그가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편히 자라’였다. 풍족한 노년을 보내고 있던 70대 노인은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내를 간호하다 목 졸라 살해했다. 간병 2년 만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노인은 죽을 심산으로 제초제를 마셨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들은 모두 지난해 일어난 일이다. 간병 살인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사건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간병 일기
“이사를 해서 가장 좋은 점은 집과 직장이 멀어졌다는 것이다. 이사 오기 전 집과 직장은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옷만 갈아입으면 간병이 시작됐다. 이사 후엔 집까지 꼬박 1시간을 서서 와야 하지만 음악도 듣고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그저 즐겁다. 시어머니는 12년 전 파킨슨병 판정을 받았다. 두 시누이는 멀리 떨어져 살아 우리 가족이 온전히 모시게 됐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증세가 심해지셨다. 거동이 힘들어 외출할 땐 휠체어를 타야 한다. 냉정한 아들보다 며느리가 더 편한 어머니는 나를 통해 의사소통한다. 어머님과 막역한 사이다 보니 모든 불만도 내게 쏟아 낸다. 주변에선 나보고 대단하다며 칭찬한다. 집 안팎으로 활약하는 슈퍼우먼이란다. 슈퍼우먼이 차린 밥상을 보고 남편이 인상을 찡그린다. 밥상은 고기를 좋아하는 어머니 중심이다. 모자지간이면서 어쩜 그렇게 입맛이 다른지. 나는 맘에 안 들어도 좋으니 누가 차려 주는 밥상을 받아 보고 싶다. 복지 제도를 이용하라 하지만 어머니가 완강히 거부하신다. 집에 찾아와 등급 검사를 해 본 적이 있는데 자존심 센 노인이 어지간히 불쾌했는지 그런 거 필요 없다 하셨다. 밀어붙일 수도 있었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 같아 나도 포기했다. 간병은 우리 세대에서 끝날 것 같다. 하나 있는 딸이 책임지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다.” – A 씨, 57세
“지난해 말 요양 시설에 보낸 시부모님을 다시 모셔왔다. 입소 3개월 만이었다. 자유롭게 살아오다 단체 생활을 해야 하니 많이 힘드셨을 거다. 말라 가는 몸을 보니 내 죄다 싶었다. 함께 살며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드리자 결심했다. 아버님은 6년 전 치매에 걸리셨고, 어머니는 5년 전 파킨슨병에 걸리셨다. 아버님 상태는 빠르게 나빠진다. 치매 약도 안 맞아 패치를 붙여 드리지만, 효과는 잘 모르겠다. 두 분이 한 달에 쓰는 기저귀가 200여 개다. 아버님은 대소변을 못 가리시고, 어머니는 소변만 가리신다. 집에 환자가 2명이나 있지만 나는 여전히 직장에 다닌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있는 재가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각각 2급, 3급을 받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방문 요양사 선생님이 하루 4시간씩 함께 계셔 주신다. 우리 집은 두 분이니 선생님 한 분이 오셔서 8시간 동안 계신다. 덕분에 나도 직장에 계속 다닐 수 있다. 두 분은 오후 시간 대부분 주무시지만, 선생님에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가족 간병은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것 같다. 심하게 움직이는 노인들을 침상에 묶어 놓기도 하고 수면제를 투약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 B 씨, 53세
요양 시설이 늘고 있지만 아직 가족이 직접 돌보는 비중이 높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 대상자 46만 7,752명 중 30만이 넘는 노인이 자택에 머물렀다. 노인 요양 시설에 입소한 노인은 9만 5,398명으로 10만이 채 되지 않았다.
직접 가족을 돌봐야 하는 가족의 경우 간병으로 인한 우울증 등에 취약하다. 2013년 국립암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암 환자 보호자의 67%가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 중 조치가 필요가 비율이 3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을 맡고 있던 A 씨와 B 씨 역시 피로를 호소했다. 그들에게 간병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의 사회 진출, 저출산, 핵가족화 등에 의해 돌봄에 공백이 생겼다. 신 사회적 위험이라 일컫는데 국가가 적절히 지원을 안 해 주면 가족 내 누군가가 독박을 쓰게 된다. 소위 간병 살인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관건은 가족 내 돌봄 공백을 전제로 시설이나 재가 서비스 등을 확대하는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따르면 수급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시설 급여, 재가 급여, 특별 현금 급여 등이 있다. 시설 급여는 요양 시설을 이용하는 수급자에게 국고 지원을 해 주는 것이다. 1~3등급의 중증 판정을 받은 노인은 20~30만 원의 본인 부담금을 내고 시설에 입소한다. 식대, 간식비, 물리 치료 및 재활 치료, 약값은 추가 부담 해야 한다. 재가 급여는 요양보호사의 가정 방문 등을 통해 간병과 가사를 돕는 서비스다. 단기보호센터 등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간병 가족이 단기간 간병할 수 없게 될 때 맡기면 된다. 본인 부담금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일정 정도 존재한다. 재가 급여 4종(방문 요양, 주간 보호, 방문 목욕, 방문 간호)을 이용하기 위해 장기 요양 등급에 따라 월 10~2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본인 부담금을 내면 하루 4시간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언뜻 충분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의 간병 살인 사례들은 그런 추측이 섣부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일본에서 2010년부터 일어난 간병 살인 138건 중 67건은 방문 요양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NHK 인터뷰에 따르면 치매 남편을 죽인 한 부인은 수면 부족을 호소했고 데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3시간 남짓한 시간엔 가사와 장보기 등을 해야 해서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은 공원에서 보내는 10분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간병은 경제적 어려움도 수반한다. 치매나 파킨슨병 등 중증 질환에 걸리면 약값, 성인용 기저귀, 매트 등 소모품 등도 사야 한다. 국가에서 일정 정도 지원이 나오지만, 소모품에 노인 1명당 20~30만 원이 들어간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보장 수준이 높지 않다 보니 사설 보험에 기대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하지만 정재훈 교수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는 사회 보험에서 걷는 돈이 적으니 서비스 질도 좋지 않다. 그래서 사설 보험 등에 많이 가입하지만, 도끼로 자기 발을 찍는 격”이라며 “국가가 관리하는 보험에 더 많은 돈을 내면 보호자 없는 병실 같은 좋은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데, 사설 보험에 몰리게 되면서 보장성 수준을 높이는 정책은 펴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워커스20호 201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