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노인전문병원은 명색이 시립 병원이었다. 개원 초기만 해도 생활 보호 대상자 및 차상위 계층 노인을 위한 병원이라는 취지가 있었다. 하지만 시는 병원을 민간에 위탁했다. 그때부터 병원의 영리 사업이 시작됐다. 지난해 청주노인전문병원노조의 조합원 설문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병원에서 비용이 발생하는 의료 행위에 대해 적극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70%에 달했다. 권옥자 분회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끔찍하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은 재활 치료입니다. 병원에서 재활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면 보호자는 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입원하신 환자 대부분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십니다. 대부분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는 인지 능력이 떨어지지 않게 대화하고 돌보는 거예요.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극히 드문데도, 병원은 수익을 위해 하루에 몇 번씩 재활 치료를 시켜요. 안 가겠다고 몸부림을 치는데도요. 그걸 우리가 지켜보는데, 정말 말도 못 했습니다.” 병원은 식자재 등을 고가로 부풀려 구입하는 등 배임 혐의로 수사도 받았다. 지역 시민 사회는 병원의 각종 불법 운영과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병원 민간 위탁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포화 상태의 민간 시설, 손 놓은 정부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13.1%. 2026년이 되면 노인 인구가 20%까지 급증해 초고령 사회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노인 간병, 요양 사업의 필요성도 함께 높아진다. 이미 정부는 지난 2008년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했다. 건강 보험을 통해 노인성 질환에 대한 요양 급여를 지급하는 사회 복지 서비스였다. 하지만 정부의 노인 요양 사회 보장 제도는 공공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는 방식이 아니었다. 민간 기관을 양산해 경쟁을 시켜 시장을 확장했다. 그 결과 정부 정책 이후 각종 민간 요양 병원과 요양원, 재가 요양 시설 등의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했다. 정부는 의료 서비스를 민간에 맡긴 채, 민간 기관에 의료 급여 비용을 지급하는 일을 했다. 노인 요양 서비스는 민간의 ‘요양 장사’가 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 전인 2007년 6월 기준 전국의 노인 요양 시설은 총 944개였다. 하지만 2008년 민간 자본이 투입되면서 급증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5,000개를 넘었다. 재가 기관의 경우, 2007년 6월 1,123개에서 2015년 7월 기준 1만 2,355개로 늘었다. 그중 공립 시설은 119개(1%)에 불과하며, 개인 시설(9,970개, 80.7%)과 법인 시설(2,266개, 18.3%)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요양 병원 역시 2005년 이후로 급증했다. 정부가 민간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며 민간 요양 병원을 확대해 나간 결과였다. 2005년 1월 기준 120개였던 요양 병원은 2008년에는 599개로 늘었고, 2012년 초에는 1,006개로 급증했다. 올해 초에는 총 1,383개로 늘었다.
민간 요양 병원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지만, 국공립 요양 병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72개(5.5%)였던 공공 요양 병원은 올해 들어 46개(3.3%)로 줄었다. 현재 92.6%(1,281개)가 법인 또는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 요양 병원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공공 요양 병원마저도 청주노인전문병원처럼 민간에 위탁되기 일쑤다.
시설의 포화와 경쟁의 심화는 서비스 질 하락과 노동 시장의 왜곡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지난해 9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시설 급여 기관은 한 해 평균 785개가 신설되고 537개가 폐업하는 등 잦은 신설 및 폐업이 반복되고 있다. 휴·폐업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서비스 공급이 불안정해진다. 실제로 경쟁 심화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소규모 기관이 폐업을 결정하는 사례뿐 아니라, 각종 법 위반이 드러나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지자체, 보건복지부의 부실 관리 감독도 서비스 질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현재 법에는 정부가 평가 결과에 따라 기관의 장기 요양 급여를 가산 또는 감액할 수 있다. 하지만 평가 상위 등급 기관에는 급여를 가산하지만, 하위 기관은 감액이 아닌 방문 상담 정도만 실시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공단이 법정 기준에 미달한 기관을 단속 권한이 있는 해당 지자체에 통보하고 있지만, 복지부와 공단은 지자체의 조치 결과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최하위 등급을 받은 기관 중 20%는 2년 후에도 계속 최하위 등급에 머물러 있다.
올해 4월 발표한 요양 기관 평가 결과에 따르면, 개인이나 법인이 운영하는 민간 기관보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기관의 평가 등급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기관의 55.2%가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반면, 개인은 6.8%, 법인은 29.1%만이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
부실 기관 증가의 피해는 노동자와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인건비를 삭감하고, 부실한 서비스와 과잉 진료 등으로 부담을 떠넘기는 식이다. 박대진 공공운수노조 돌봄지부 사무국장은 “민간 기관의 경우 대부분 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동청에 진정을 넣으면 우선 폐업을 하고 얼마 뒤 다시 개업하는 사례도 많다”고 설명했다.
부실한 서비스와 낮은 보장성으로 이익을 보는 쪽은 민간 보험사들이다. 보험 회사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은 1인 가구일수록 노후에 대비해야 한다’며 월 15만 원 안팎의 간병 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은 노인과 독거노인이 늘면서 가입자가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손해보험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손해 보험사 10개사의 간병 보험 원수 보험료는 2013년 3420억 3200만 원이었다. 2014년엔 7569억 1500만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고 2015년엔 8553억 1600만 원으로 증가 추세를 이어 갔다.
노동 시민 사회 진영에서는 민간 중심의 간병, 요양 서비스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 투입과 부실 민간 시설 인수, 공공 병원 건립 등의 방법으로 전체적인 공공 서비스를 높여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갈현숙 민주노총 연구원장은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으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민간이 90% 이상 점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시장의 균형과 질서 회복을 위해서는 공단과 복지부가 거점별로 공공 요양 병원 등의 시설을 건립해 민간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