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6,470원으로 결정됐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35만 원(주 40시간 노동 기준)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이 액수를 의결한 최저임금위원회는 2015년도 미혼 단신 노동자의 실태 생계비를 월 167만 원으로 발표한 바 있다. 생계비와 최저임금 사이가 32만 원만큼 멀다. 이 32만 원의 괴리는 노동력 가치 하락이라는 최근 한국 경제의 기조를 반영한다. 애써 낮게 발표되는 소비자 물가를 반영하고도 실질 임금 상승률은 수 년째 정체 중이고 임시직 노동자만 보면 아예 마이너스다. 이 와중에 임금 불평등은 OECD 최고 수준이니 저임금 층의 고충은 더하단 뜻이다. 이런 사회에선 더 나은 삶에 대한 인식과 욕구도 증진하질 못한다.
그러니 생계와 임금의 분리를 정당화하는 이야기들만 기승을 부린다. 전통적인 건 역시 특정 집단의 노동 값을 은근하게 깎아내리는 이야기다. 가정주부만큼 쉬운 가사 도우미, 일 배우러 온 ‘수습’, 노후 대비에 실패해 폐지 줍는 노인, 남들이 스펙 쌓을 때 인생을 낭비한 계약직…. 모두 적은 벌이와 값싼 생활을 받아들이도록 우리 사회가 주조한 가상의 노동자다.
요즘 자주 대서특필되는 이야기는 월급쟁이가 아니어도 세상엔 일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주로 IT 자본가들이 젊은이들 들으라고 그런 말을 한다. 하나같이 창업과 도전 정신을 주문하면서 미래엔 정규직 임금이 삶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을 거란 믿음을 부추긴다.
사실 그 미래는 생계 부양이 어려워진 남성들에게 고단한 현재로 닥친 지 오래다. 해고와 사업 실패로 내몰린 남성 가장들을 다시 도로 위로 내몰며 굴러 온 대리운전, 퀵서비스, 택배 업계가 대표적이다. ‘세월호 의인’ 고(故) 김관홍 잠수사도, 쌍용차 해고자 아무개 씨도 급한 대로 대리 운전대를 잡았다. 비슷한 사연의 홍수 속에서 대리운전은 가정 파탄을 모면하기 위한 일자리, 얼마간은 패자들의 일자리란 인식을 굳혔다.
반면 업주들은 최저임금제가 적용되지 않는 노동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돈을 벌었다. 여기엔 정부 역할이 컸다. 가령 대리운전업은 허가와 승인 없이 사업을 할 수 있는 ‘자유 업종’으로 지정됐다. 그렇게 설립된 업체에 등록해 실제 대리운전을 하는 기사는 ‘특수 고용’된 자영업자로, 법적으론 노동자가 아니게 됐다. 즉 대리 기사에겐 임금 계약만이 아니라 노동 3권 보장과 4대 보험도 없다. 그에 따른 적폐가 쌓이고 터져 나왔지만, 정부는 최근에야 신고 센터와 부분적 산재 인정 조처만을 내줬을 뿐 대대적인 법제화는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책임을 업계 생리에 맡기겠다고 한다. 1년 전 ‘카카오’가 대리운전업을 준비한단 소문이 돌았을 때 국토해양부가 밝힌 입장은 “대리운전 업계의 여러 갈등을 해소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대리운전 관련 법안은 모두 폐기되었다.
그리고 지난 5월 30일, 대리운전 중개 서비스 ‘카카오 드라이버(카카오)’가 출시됐다. 그 즈음해 대리운전 업계의 부조리를 재조명하고 카카오가 대리 기사들과의 소통에 큰 공을 들였음을 알리는 언론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대리 기사들도 환영과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언론 인터뷰에 직접 나서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도 가져야 한다”는 사업 신조를 밝히기도 했다. 윤리적 우위를 확보한 카카오는 기존 대리 기사의 40%(카카오 측 주장)를 자사에 끌어오면서도 ‘골목 상권 침탈’이란 비난은커녕 박수와 지지를 받았다.
그럼 대리 기사에게 카카오는 뭐가 어떻게 다를까? 역시 수입 문제가 관건이겠다. 안 그래도 기존 업체의 횡포는 ‘플비(배차 프로그램 사용료)’, 벌과금, 보험비라는 각종 돈 문제로 불거져 온 터다. 카카오의 운영 정책에선 소속 기사들이 ① 플비 + 관리비 + 벌과금과 ② 단체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모두 운임 수수료와 별개로 대리 기사들이 소속 업체에 내도록 강제되어 온 돈으로, 그 총 부담액은 대략 월 10~15만 원으로 이야기가 된다. 대리 기사 단체인 전국대리기사협회는 ①에 해당하는 플비 + 관리비 + 벌과금이 기존 업체들이 취해 온 ‘부당 이득’이라고 잘라 말한다. 당연히 없어져야 할 부담이고 그래서 카카오의 정책을 환영한단 입장이다.
하지만 단체 보험료는 조금 다른 문제다. 현재 대리운전 업계의 보험은 업주가 계약자이자 납부, 수령 주체인 단체 보험의 형태만으로 운영이 된다. 그래서 대리 기사는 사고, 보상 발생 시 신분이 모호할 뿐 아니라 평소엔 본인의 가입 여부, 보험료, 보상 한도 확인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도 업주가 소속 기사들에게 일괄적으로 보험료 명목의 돈을 걷는 것이 지금의 업계 관행이다. 이런 문제로 대리운전 단체 보험은 금융소비자원이 공기관들에 조사를 촉구할 정도로 심각한 착복 의혹을 사고 있다. 그러던 중 카카오가 단체 보험료 ‘대납’을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전국대리기사협회의 반응이 인상적이다. 대리 기사들은 이미 다른 업체들에 보험료를 내고 있으므로 신규 업체의 ‘대납’은 실익이 아니라고 한다. 보험 회사에 ‘대납’한 돈이 카카오 입장에선 비용이겠지만 소속 기사 입장에선 애초 부담할 필요가 없던 거란 논리다. ‘콜’ 수를 확보하려면 복수 업체 등록이 불가피하고 등록 업체마다 보험 가입을 해야 하는 지금의 업계 구조가 개혁되지 않는 한, 일개 업체의 ‘대납’ 정도에 반색하진 않겠단 뜻으로 읽힌다. 사실 이런 입장은 중복 가입이 없고 업주에게 기여 의무가 주어지는 4대 보험의 상식과도 통하는 것이다.
보험료보다 주목할 것이 바로 운임 수수료율 정책이다. 대리운전업의 실질적 수입원은 운임이므로 그 수수료율은 대리 기사와 업체의 몫을 정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카카오의 운임제는 ‘기본료(서울 수도권 1만 5천 원) + 거리 비례’로 설계됐다. 카카오는 20%의 수수료를 챙긴다(소득세 3.3% 별도). 카카오는 20%가 “업계 최저 수준”이고 기존 관행은 최고 40%에 달한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대리 기사들은 서울 수도권 수수료율이 통상 20~25%라고 증언하며, 전국대리기사협회는 카카오가 수수료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카오가 수수료율에선 업계 관행을 그대로 따랐단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적절한 수수료율이 따로 있지는 않다. 업주와 종사자의 이해관계는 충돌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래도 기본적인 자료는 놓고 이야기가 돼야 하는데 그간 정부와 업체들은 제대로 된 전수 조사나 데이터 공개를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에선 대리 기사가 자영업자에 가까우니 영업 시간이나 노하우에 따라 수입이 천차만별이지 않겠냐는 뉘앙스가 풍긴다.
반면 대리 기사들은 서로 경험을 축적하고 나누며 모종의 표준을 계산해 왔다. ‘투잡’이든 궁여지책이든 자신의 평균 수입과 노동 시간을 따져 보는 게 일하는 자의 상식이다. 대리 기사들의 인터넷 게시판들은 ‘전업’에겐 하루 6~7건의 콜이 마지노선이고 저녁부터 동트기까지 매일 꾸준히 타야 한다는 등 여러 생계용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간혹 아침 ‘출근 콜’까지 받거나 좋은 콜이 몰리는 날이 있긴 해도 평균적으로 대리운전이 어떤 삶으로 수렴되는지를 가장 잘 아는 건 역시 대리 기사 본인들이다. 이들의 계산은 업체들이 만든 룰 안에서 체득된 상식이다. 그렇다면 이 상식에 따른 요구들 역시 상식적인 것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카카오도 마찬가지로 상식에 맞게 사업을 하고 있다. 수수료율 20%가 그랬듯 초반 홍보와 할인 행사에 물량을 쏟은 것 역시 전적으로 비즈니스 차원의 결단이었을 테다. 대리운전에 이어 앞으로 다양한 중개 서비스를 출시하겠다는 카카오는 무엇보다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을 약속하는 가운데, 실질적인 협약은 단체 보험 계약(동부화재, KB손해보험)이나 인력 확보(여성인력개발센터)에 실익이 될 기업, 기관과 맺고 있다. 이처럼 재무제표 내용에 집중하는 게 자본의 상식이다.
결국, 카카오의 대리운전업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두 상식을 마주 세우고 있다. 다만 그 판세는 한쪽의 상식이 훨씬 쉽게 관철될 수 있는 구조를 깔고 있다. 우리는 카카오나 정부가 대리 기사 쪽의 요구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리란 걸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대리 기사들은 자신의 상식에 기초해 투쟁을 만들 것이다. 민주노총 전국대리운전노조는 “대리 기사들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대리운전업법 입법뿐”이라며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전국대리기사협회는 “수익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카카오의 권리지만 이를 거부하고 개선하는 것은 대리 기사들의 권리”임을 선포했다. 이 최소한의 상식이 최소한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