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재단의 탄생
지난해 7월 24일,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총수 7명의 은밀한 독대가 이뤄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이틀에 걸쳐 박근혜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언론은 7월 24일에 주목했다. 박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에게 미르 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기금을 요구했을 것이란 분석이었다. 하지만 독대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아직 공개된 바 없다.
그날, 박 대통령과 재벌총수들 간에 어떤 ‘딜’이 오고 갔을까. 시기와 정황을 놓고 퍼즐을 맞추다 보면 ‘미르재단’보다 앞선 곳에 수상한 재단이 또 하나 존재한다. 미르-K스포츠재단보다 먼저 재벌들이 수백억 원의 기금을 모아 설립한 곳. 바로 ‘청년희망재단’이라는 곳이다. 박 대통령이 재벌 총수와의 독대에서 직접 설립 모금을 요청했다면, 이는 ‘미르재단’보다는 ‘청년희망재단’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독대 후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9월 16일. 사비 2천만 원을 쾌척하며 ‘청년희망펀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기다렸다는 듯,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수백 억 대의 현금다발을 내놨다. 박 대통령의 제안 후 두 달 만에 881억 원이 모였다. 박 대통령과 독대했던 기업 총수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 이름으로 200억 원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자신의 이름으로 150억 원을,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70억 원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50억 원을 ‘현금’으로 내놨다. 막대한 기금을 등에 업고, 10월 14일 청년희망재단 발기인 총회가 열렸다. 그리고 이튿날, 고용노동부는 초고속으로 청년희망재단 설립 허가증을 발급했다.
반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출발점으로 알려진 ‘미르재단’은 10월 27일 설립됐다. 청년희망재단 설립보다 일주일가량이 늦다. 재단 기금은 설립 직전인 10월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전경련을 통해 일사불란하게 모였다. 기금 모금 방식은 유사한 듯 다르다. 정부는 청년희망펀드 기부금은 ‘법인’ 명의가 아닌 ‘개인’ 명의로만 받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좀 더 사적인 기금모금 방식이었다. ‘법인’ 명의의 기금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몫이었다. 달리 본다면, 박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와의 독대에서 ‘개인’ 명의로는 청년희망재단 기금을, ‘법인’ 명의로는 미르재단의 기금을 요구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차은택-박근혜-청년재단, 그들의 연결고리
재단 설립 목적은 명확하다. 자발적 기부를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 하지만 재단의 사업 방향과 내용은 탄생 과정만큼이나 수상쩍다. 재단의 행보는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해온 비선실세 차은택의 동선과 복잡하게 얽혀있다. 차은택 감독이 추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핵심적으로 실행한 흔적도 보인다. 그리고 그 모든 의혹의 중심에는 언제나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다.
2014년 8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차은택 감독을 임명했다. 그리고 차 감독은 국고 7,000억 원이 투입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주도해 나갔다. 문화창조융합벨트는 ‘문화창조융합센터’와 ‘문화창조벤처단지’, ‘문화창조아카데미’ 등 총 4가지 대규모 프로젝트를 골간으로 하고 있다. 1년 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문화창조융합벨트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두 달 뒤 청년희망재단이 설립됐다. 청년희망재단 1차 이사회에서는 시범사업으로 ‘문화창조융합센터와 협업해 문화콘텐츠 강좌를 개설’한다는 내용이 공유됐다.
지난해 12월 29일 열린 ‘문화창조벤처단지’ 개소식에는 문제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차은택 문화창조융합본부장, 황철주 당시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그리고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김종덕 장관은 차은택 감독의 홍익대 대학원 은사로 ‘차은택 라인’ 중 한 명이다. 차 감독이 문화융성위원으로 임명되기 며칠 전 문체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20일 뒤인 올해 1월 18일, 문체부는 청년희망재단과 문화창조벤처단지 간의 연계를 강화하는 업무보고서를 발표했다. 문체부의 ‘2016년 업무보고’ 자료에는 ‘청년희망재단과 연계를 강화해 문화창조벤처단지가 청년 일자리 창출의 전진기지가 되도록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위해 청년희망아카데미 배출 인력과 문화창조벤처단지 기업 간 인재 연계(매칭) 등을 추진한다는 세부계획을 내놨다.
올해 2월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한콘진)과 청년희망재단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문체부 산하 기관인 한콘진의 원장은 차은택의 광고계 은사이자 선배인 송성각 씨였다. 송성각 전 원장과 황철주 전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은 업무협약을 통해 △인재양성 프로그램 정보공유 및 연계운영, 인재양성 프로그램, 온오프라인 공동 홍보 추진 등의 연계 사업을 약속했다.
2월 24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청년희망재단’의 협업을 제안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역시 차은택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곳이다. 차은택 감독은 문화창조융합본부장 직함과 함께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장’으로도 활동했다.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은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문화창조융합벨트’를 전담하는 기구다.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 홈페이지 구축 사업도 차 감독과 관련된 회사가 맡았다. 차 감독을 단장으로 추천한 곳은 문체부다. 박근혜-최순실-차은택 게이트는 대부분 문체부를 통해 이뤄졌다.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역시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6월 15일 열린 ‘제7차 창조경제 민관협의회’에서도 창조경제혁신센터 고용 존과 청년희망재단의 협업을 확대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세웠다. 이 자리에는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양희 미래부 장관,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 및 경제, 미래전략, 교육문화 수석 등이 참석했다.
청년희망재단 관계자는 “문화창조융합센터 주최 측에서 (문화창조벤처단지 개소식 참석) 초대장을 보내 참석한 것”이라며 “차은택과의 사업적 연계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년희망재단은 차은택 라인 인사들이 추진한 ‘문화융성’ 프로젝트의 내용을 그대로 사업화했다. 현재 청년희망재단은 일자리 정보 및 멘토링 서비스와 함께 ‘일자리, 창업 능력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의 세부 내용은 모두 문체부가 내놓은 올해 ‘문화융성’, ‘창조경제’ 세부 계획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문체부의 문화융성 사업계획에는 ‘융합형 웹툰제작 지원(5억 원), VR게임 등 융복합 기능성 게임 제작(190억 원), 글로벌 게임산업 혁신벨트 조성’ 등이 상정돼 있다. 이에 발맞춰 청년희망재단도 VR게임 기획자 양성 및 취업 지원, 모바일 게임과 웹드라마 교육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문체부의 ‘외래 관광객 유치체계 개선’(청년희망펀드를 이용한 청년 고품격 문화역사 관광통역 안내사 양성)도 청년희망재단의 ‘청년관광통역 안내사 양성’ 사업과 맥을 같이 한다.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청년희망재단 간의 인재 매칭도 주요 사업 중 하나다. 청년희망재단의 일자리 사업은 사실상 차은택-문체부-창조경제추진단의 사업을 위한 ‘인력양성’의 성격이 짙다.
차은택 ‘문화융성’의 행동대원 ‘청년희망재단’… 1명 취업하는데 3억?
정부와 재벌 총수가 의기투합해 재단을 설립한 목적은 ‘청년 일자리 창출’이다. 하지만 수천억의 현금 보따리에서 빠져나가는 돈의 사용 목적은 분명하지 않다. 사업내용과 예산 집행 내역도 부실하고, 일자리 창출 성적도 초라하기만 하다. 청년 일자리 기금인지, 특정 업체 후원 기금인지도 헷갈릴 정도다.
10월 현재, 청년희망재단의 누적 기부금액은 1,450억 원이 넘는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까지, 2천만 원 이상을 출연한 고액 기부자만 84명이다. 청년희망재단이 본격적으로 돈을 풀기 시작한 것은 올해부터다. 운영비를 제외한 올해 청년사업비용은 172억 8,400만 원 정도다. 재단 설립 이후인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사용한 청년사업비용(2억 6,100만 원)과 비교해 60배가 넘는다. 하지만 10월 말 전체 사업예산 중 집행률은 35.9%(56억)에 불과하다. 116억 원에 달하는 예산이 ‘불용 예산’으로 남아도는 셈이다. 청년희망재단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과 삼일회계법인에 예산 관련 자문 및 감사를 맡기고 있다. 재단 감사로는 이홍섭 안진회계법인 부대표를 선임했다. 안진회계법인과 삼일회계법인은 회계 조작으로 쌍용차 대량 정리해고를 공모한 곳들이다.
올해 가장 큰 사업 중 하나는 ‘신생벤처기업 청년 인재 매칭 지원’이다. 차은택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공동 사업이다. 올해 책정된 예산만 22억 원이다.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벤처기업(스타트업)과 구직 청년을 매칭 해 취업을 알선하는 프로그램이다. 매칭 성공 시 청년 1인당 300만 원을 지원한다. 물론 ‘인건비’로 기업에 지원하는 명목이다. 10월까지 388명(목표치의 77%)이 채용됐지만, 예산은 24.6%(5억 4,200만 원)가 집행됐다.
올해 가장 많은 예산이 책정된 사업은 ‘청년 글로벌 보부상 사업’이다. 올해 예산만 42억 원이다. 대상자를 국내기업 해외법인에 인턴십으로 파견하는 사업이다. 올해 대상 인원은 50명이며, 10월 19일 기준 41명이 취업했다. 10월 말 재단 예산집행 현황을 보면, 이 사업을 위해 17억 1,400만 원(집행률 40.8%)을 썼다. 1인당 4천만 원이 넘는 지원이 이뤄진 셈이다. 그럼에도 책정된 예산 60%가량이 남아 있다. 대상 인원을 채운다고 해도 20억 원이 불용 예산으로 남는다.
두 번째로 사업 규모가 큰 ‘청년희망채움사업’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 사업은 2인 이상의 청년 단체가 재단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업이다. 올해 32억 9천 2백만 원이 책정돼 있지만, 10월 말 집행된 예산은 고작 2.5%(8,300만 원)다.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 기획자 양성’ 사업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4억 8천여 만 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고, 그중 3억 1,700만 원(65.9%)을 사용했다. 하지만 10월 기준, 취업한 청년은 교육생 30명 중 고작 1명뿐이다. 1명 취업하는데 3억 원 넘는 예산을 썼냐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모바일 VR게임 기획자 양성 교육도 10명이 취업했다. 1억 5,500만 원의 예산을 사용한 결과다.
청년희망재단은 현재까지 재단 프로그램을 통해 1,100여 명의 청년이 취업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다수는 채용박람회나 전문 컨설턴트 상담을 통해 취업이 이뤄졌다. 재단 자체적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한 인력은 140여 명에 불과하고, 그중에서도 60여 명은 해외 인턴 혹은 교육으로 파견된 인력이다.
무엇보다 가장 잡음이 많았던 사업은 ‘청년면접비용 지원사업’이다.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와 청년희망재단은 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 3단계에 참가하는 취준생들에게 정장대여료, 사진촬영료, 교통비 등의 면접비(1인당 60만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청년수당 베끼기 논란이 일었다. 재단 이사회 의결도 거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하지만 재단은 ‘정장대여업체’와 ‘사진촬영업체’를 지정해 면접비용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사진촬영업체는 42곳이, 정장대여업체로는 3곳이 선정됐다. 노동부와 재단의 계획에 따라 연간 1만 2천 명의 청년에게 4만 원의 정장대여료를 지급할 경우, 3개 정장 대여업체가 1년간 벌어들이는 수익은 4억 8천만 원에 달한다. 재단 관계자는 “굳이 지정업체가 아니더라도 증빙자료만 첨부하면 실비로 지원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참고로 서울시는 이미 자체적으로 무료 정장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재단의 진짜 목적
청년희망재단을 매개로 한 박근혜 정부와 재벌의 ‘딜’은 확실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재단 설립에 군불을 지피자마자 정부 주도의 ‘노동개악’ 칼바람이 불어 닥쳤다.
박 대통령이 청년희망펀드에 사비 2천만 원을 기부한 직후인 지난해 9월 19일. 새누리당은 노동개혁 ‘5대 법안’을 발의했다. 기간제, 파견근로자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현재 32개로 제한 돼 있는 파견 허용 업종을 뿌리산업 등으로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노동개악’ 안이었다. 그리고 12월 20일에는 고용노동부가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일반해고(저성과자 해고) 및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 양대 지침을 발표했다. 재벌 대기업 및 전경련에서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친기업 정책들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28일, 청년희망재단을 방문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청년 일자리’를 빌미로 재벌은 돈을 내놓고, 정부는 쉬운 해고, 비정규직 확대, 임금피크제 도입 등의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식이다. 만약 기업의 기금 출연이 대가성 자금이거나 정권에 대한 투자 차원이라는 정황 증거가 나오면 뇌물죄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기업에 압력을 넣어 불법적으로 기금을 모으거나, 대가성 금품수수 정황이 포착되면 포괄적 뇌물죄, 제3자 뇌물공여죄 적용이 가능하다. 이미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미르재단 불법 기금 모금 혐의로 박 대통령을 포괄적 뇌물죄, 제3자 뇌물공여죄 등으로 고발한 상태다.
청년희망재단은 정부의 조선업종 구조조정에도 이용됐다. 정부는 지난 6월 3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조선업 구조조정 대응 고용지원 및 지역경계 대책’을 발표했다. 이들은 고용지원 대책을 위해 울산에 청년희망재단 지역사무소를 설치하고, 실직자의 청년 자녀 및 실직 청년 등을 대상으로 채용박람회, 면접 및 서류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리고 실제로 두 달 뒤인 9월 8일, 울산에 청년희망재단 동남본부가 개소했다. 개소식에는 박희재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 4명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권영해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장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