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난민이 된 난민들
[워커스 27호]시리아 내전을 피해, 다시 가자 점령을 피해
뎡야핑(팔레스타인평화연대)
“팔레스타인에 돌아오길 꿈꿨지만, 이제는 야르무크로 돌아가길 꿈꾼다.”
팔레스타인 가자(Gaza)지구에서 열린 시리아 난민 시위에서 한 팔레스타인 난민은 이런 피켓을 들고 있었다. 야르무크는 시리아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이다. 2011년 시리아 내전 시작 후 국경을 넘어 피난길에 오른 500만여 명의 난민에는 팔레스타인 난민 11만 명이 포함돼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돼 시리아의 난민 캠프에서 살아온 이들과 그 후손들은 다시 난민이 된 것이다. 대부분은 다른 시리아 난민들과 함께 인접한 터키나 요르단, 레바논 등지로 갔지만 일부는 피난처를 찾아 가자지구로 향했다. 안전을 찾아서만은 아니었다. 가자에 가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자로 간다는 것은 팔레스타인 난민 누구나 바라온,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자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내전 중인 시리아로 돌아가길 다시 꿈꿀 만큼 참혹했다.
시리아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처한 상황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팔레스타인인 보다 더 많은 수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이스라엘 건국 후 70년 가까이 난민으로 살고 있다. 이스라엘은 어떤 협상의 여지도 없다며 난민의 귀환권 및 재산보상권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처한 환경은 가혹하다. 팔레스타인 국내를 포함해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UN 팔레스타인 난민구제사업기관 ‘운르와(UNRWA)’는 기본 서비스를 제공할 뿐, 난민은 각 난민촌이 위치한 국가 정책에 따라 직업, 의료,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으며 살고 있다. 시리아는 그 중 비교적 차별 없는 정책 덕에 난민이 살기 나쁘지 않았지만, 내전이 심화해 정부군이 난민촌을 폭격하고 정부군, 자유시리아군, 다에쉬(IS)의 대치 상황이 지속하며 많은 이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일례로 야르무크의 경우 팔레스타인 난민 1만 6,000여 명의 삶의 터전이었으나 정부군에 의해 봉쇄되면서 주민 90% 이상이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남은 주민은 운르와 등에서 지급하는 구호물자도 적절히 공급받지 못한 채 아사 위기에 처하곤 한다.
국적 없는 난민들은 피난처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내전 초반에 시리아 난민을 대거 수용한 요르단과 레바논은 곧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시리아로 돌려보냈다(이후 시리아 난민도 거부). 요르단 수상은 “요르단은 이스라엘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가 아니”라며 팔레스타인 난민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테러를 이유로 시리아 난민 수용을 일체 거부한 데 더해, 팔레스타인이 난민을 수용하는 것도 안 된다며 막고 있다. 터키는 특별히 팔레스타인 난민을 거부하진 않지만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지원은 없으며, 게다가 터키는 운르와의 활동 지역이 아니라서 팔레스타인 난민은 유엔 난민기구의 지원조차 받지 못한다.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도 거부하고, 운르와의 활동 지역도 아니다. 조직적인 지원이 부재한 상태에서 각자 살아나갈 방법을 꾀해야 하는 팔레스타인 난민 일부가 가자를 향하게 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
가자로 가는 길은 멀고, 비싸다. 비행기를 타고 이집트 카이로로 이동해서, 다시 버스로 시나이 반도를 한참 거쳐 이집트와 가자의 접경지역인 라파로 가야 한다. 물론 이스라엘을 통과할 수 있다면 거리와 비용은 훨씬 단축됐을 것이다. 라파에 도착해도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통제하는 국경 검문소를 통과해 가자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스라엘이 결코 허가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터널’을 이용했다. 2007년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한 뒤 가자 사람들은 물자반입을 위해 이집트 사이에 지하 터널을 뚫었다. 가자에 들어갈 방법을 문의한 사람에게 이집트 공무원은 터널을 통과하라 답하기도 했다. 대부분 가족 단위인 난민들은 터널을 지나기도 쉽지 않았다. 무덤같이 어둡고 습한 터널을 지나며 이집트군이 언제 터널을 파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2012년 이래 터널을 통해 1,800여 명의 난민이 가자로 들어갔다. 터널 바깥으로 나왔다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난민으로서 고단한 삶을 살며 오랫동안 꿈꿔온 팔레스타인 땅에 발을 디뎠지만 그 순간부터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다.
알레포의 지옥보다 더한 가자
가자에 온 난민들 모두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가자의 상황에 충격받았다. 2007년 부터 이어진 봉쇄로 실업률은 40% 이상이고 대학졸업장이나 자격증이 있어도 3개월짜리 단기계약직조차 구하기 어렵다. 피난 온 난민 중엔 소문대로 식당 등의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가자 자체가 고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극히 드문 예에 불과했다. 사회기반시설은 붕괴했고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공공 지원 시스템도 없다. 운르와는 첫 두 달간 현금을 지원해주고 교육이나 식사, 기본적 의료는 제공하지만 생활비도, 집세도, 병원비도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직업을 구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모든 비용은 빚으로 쌓인다.
가자의 하마스 정부는 간혹 일시적으로 현금을 지원하곤 하지만 모두에게 지급되는 것도 아니다. 또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지만 난민에 대한 기본적 책임이 운르와에 있다며 지금까지도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책임을 운르와에 떠넘기는 태도에 팔레스타인 난민은 정부가 자신을 팔레스타인 시민이 아닌 외국인으로 다룬다며 분노한다.
운르와는 설립 이래 최대 재정난을 호소하며 2014년 4월부턴 집세 보조금을 끊는 등 지원금도 축소하고 있다. 사업 기금은 프로젝트별로 용도가 정해져 있어 생활비는 지원해 주지 않는다. 가자를 떠나고자 하는 이들이 운르와에 도움을 호소해도 사업 영역이 인도주의적 지원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유엔난민기구와 달리 팔레스타인 난민이 가자를 떠나도록 지원할 수 없다.
더군다나 2012년 이후 가자는 이스라엘로부터 2번이나 대규모의 침공을 당했으며 특히 2,200여 명의 가자 주민을 학살한 2014년 7~8월의 폭격은 알레포의 지옥보다 나을 게 없다는 절망을 안겼다. 꿈꾸던 고향에 왔지만 생활비를 위해 빚을 져야 하고, 머리 위의 전투기를 피해 다녀야 하는 상황에 많은 이들이 다시 또 피난길에 오르려 한다.
가자지구에 갇힌 채
그러나 가자지구에서 다시 나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집트군이 터널을 대부분 붕괴·매립해 출구가 없다. 대부분 난민이 터널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입국 기록이 없어 이스라엘 검문소를 통해 나갈 수도 없다. 만에 하나 이스라엘 측 검문소를 통과해도 이집트에 도착한 순간 이집트 정부가 시리아로 강제 송환해 버린다. 시리아 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에 점령당하는 한 난민의 팔레스타인 귀환은 금지된다. 시리아로 돌려보내지면 시리아 정보기관에 심문받게 된다. 정부군의 폭격을 피해, 시리아 법률을 위배하며 가자로 떠난 난민을 시리아 정보기관이 어떻게 대하는지 알려진 바 없으나 모든 난민이 이 심문을 두려워한다. 이집트 당국이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카이로에 온 사람들을 억류하고 추방한 사례가 몇 건 보도됐으나 관련한 기록을 남기지 않을 때가 많아, 얼마나 많은 이가 추방됐는지 알 수 없다. 가자를 떠나 카이로 공항에 억류됐던 한 사람은 “시리아에 계신 아버지는 시리아 상황이 끔찍하다고 하지만 가자 상황은 더 끔찍하다. 내겐 정말 선택이란 게 없다”고 말한다.
귀환권이 공허한 약속이었다는 데에 배신감을 느끼고 가자를 떠나려는 난민 중에는 유럽, 캐나다, 미국 등 어디로든 가고 싶다며 돈을 모아 보트에 몸을 싣는 사람들도 있다. 2012년 후 가자에 온 난민 중 이미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떠났다. 2014년 가자 침공 이후 안전한 곳을 찾아 가자를 떠나려는 가자의 주민들과 난민 중 2015년 이탈리아에 도착한 사람은 2,200명이었다. 난민을 실은 보트에 타는 것이 목숨을 건 여정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