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희 기자
사이다 한 잔. 톡 쏘며 튀는 기포에 목 안까지 알싸하다. “햐아” 더부룩할 때 이것만큼 시원한 게 또 있을까? 속이 다 후련하게 내지르는 정치인에 ‘사이다’라는 별명이 붙을 만도 하다. 그런데 매년 사이다 수억 개를 파는 기업은 어떨까? 롯데그룹은 지난해 사이다만 3800억 원어치를 팔았다. 3% 성장한 수치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사드 부지를 내준 뒤에는 앓는 소리를 한다. 중국정부의 보복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는 보도도 풍년이다. <조선일보>만 최근 1개월간 다섯 번의 관련 뉴스를 실었다. ‘신동빈 사드 애국헌신, 5000만 국민 롯데에 큰 빚 졌다’는 기사도 보인다. 사드 부지 제공에 대한 책임은 간 데 없고 피해 기업이라는 이미지만 남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사드 부지 제공은 어쩔 수가 없었다고 읍소한다. 그는 지난 3월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만약 정부가 우리와 같은 민간 기업에 땅(사드 부지)을 포기하라고 요청했다면, 우리에게 정부의 요청을 거절할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동빈 회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중국 시장은 괘념치 않는 눈치다. 그는 비자금 수사로 출국 금지가 풀린 뒤 바로 일본과 미국을 방문한 반면 중국은 찾지 않았다. 중국에서 수천억 원의 손실이 발생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데 ‘강 건너 불구경’하는 꼴. 롯데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이, 보수언론은 사드 문제가 한미간이 아닌 한중 간 외교 문제인 것처럼 선동한다. 그러면 과연 롯데는 왜 이 같은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사드 부지를 제공하고 뒷짐을 지고 있을까?
롯데의 사드 부지 제공은 신동빈 회장 구속을 피하기 위한 대가성 공여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지난해 9월 26일 서울중앙지검은 신동빈에 대한 구속영장(1,750억 원 규모 횡령, 배임 혐의)을 청구했으나 9월 29일 기각됐는데, 국방부가 롯데 측에 성주CC골프장 부지를 사드 배치 부지로 결정한 사실을 통보한 것이 바로 그 다음날이었기 때문이다. 롯데가(家) ‘형제의 난’ 와중에 신동빈은 사드 부지를 제공하고 자신에 대적한 형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회장을 따돌렸다.
신격호가 사랑한 이는 샤롯데 보다 일본 우파
하지만 롯데가 사드 부지를 제공한 이유가 이게 다일까? 롯데가 사드 부지를 내준 데에는 일본 우파의 의지가 개입된 것이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사드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 우파도 긴밀히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우선 롯데그룹이 일본 기업이라는 점은 비자금 수사로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주사는 일본 롯데홀딩스로 이는 한일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은 광윤사(28.1%), 종업원지주회(27.8%), 공영회(13.9%), 임원지주회(6.0%) 등 일본 주주의 지분율이 76%에 이른다. 신동빈 회장의 지분율은 1.4%에 불과하다.
롯데가는 일본 우파와 게다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가 중혼한 일본인 부인의 외삼촌은 조선에 파견됐던 A급 전범 시게미쓰 마모루라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윤봉길 독립투사에 도시락 폭탄을 맞고 한 쪽 다리를 잃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동빈 회장도 일본 우익을 대표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각별하다. 2015년 11월 28일, 롯데가의 ‘형제의 난’이 한창일 당시에도, 일본 도쿄에서 치러진 신동빈 회장 장남의 결혼 피로연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석했다. 1985년 신동빈 결혼 때는 나카소네 당시 총리가 참석했다. 모두 일본 우파 자민당 출신이다. 신동빈 장남의 결혼 피로연에 신동빈과 형제의 난을 벌이던 큰아버지 신동주나 할아버지 신격호는 불참했지만 이 예민한 시기에 아베는 이 자리에 참석해 노골적으로 신동빈의 편을 든 것이었다. 신격호는 아베 총리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이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도 친분이 있었다.
2014년 롯데호텔은 자위대 창립 60주년 기념행사를 예치했다가 논란이 되자 취소하기도 했다. 당시 이 사건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부활을 위한 헌법 해석 변경안 각의 결정과 아베 총리의 고노 담화 검증 등의 문제로 한일 간 민감한 시기여서 논란이 더 컸다.
사드 배치는 애초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성하기 위한 필수 기반이다. 이미 한일 양국 정부는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했다. 특히 사드가 배치되면 일본으로서는 미군 자산인 사드 레이더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을 수 있어 대북, 대중 감시 체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국방부도 사드 레이더를 통해 탐지한 정보를 일본과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평화운동계는 한미일 3국간 미사일 경보훈련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사드 운용 절차 연습에 어떤 형태로든 일본 자위대가 참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앞바다에는 미군뿐 아니라 자위대까지 더욱 자주 출몰하게 된다. 일본 정계도 한국정부가 기존 한미 동맹에서 나아가 한미일 3각 동맹을 중시하는 쪽으로 대담한 정책 전환에 나섰다고 평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헌법을 폐지하고 자위대 부활을 꿈꿨던 일본 우파로서는, 롯데의 사드 부지 제공은 대마를 얻은 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롯데는 일본 우익의 이익에 철저한 선택을 한 것이다. 결국 일본 우파에게 더부룩해 했던 사드 배치 문제를 사이다처럼 풀어주고는 중국에서의 사업만 잘되게 해달라고 하는 꼴이다.
문재인정부가 우리의 사이다 돼라
신동빈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대선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롯데가 사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새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새 대통령이 우선할 일은 롯데의 장삿속에 놀아나는 것이 아닌 성주군민과 한반도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사드 배치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그러면 롯데에 필요한 일은 무얼까? 대대로 한국 정부의 특혜를 통해 5대 재벌로 성장한 롯데. 이에 필요한 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수사, 비자금 수사를 제대로 매듭 짓는 일이다. 문재인 새 대통령은 재벌의 불법 경영승계, 황제경영 근절을 주요 공약으로 냈는데 여기에서 개혁 의지가 판가름 날 수 있다.
한편, 롯데는 비자금 수사 한 쪽에서 신동빈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해왔다. 2016년 집단별 순환출자 고리 변동 내역을 보면, 롯데건설이 롯데제과 지분(1.34%)을 신동빈 회장에게 매각(140개), 롯데쇼핑이 롯데알미늄 지분(12.05%)을 신동빈이 회장으로 있는 호텔롯데에 매각(139개), 한국후지필름이 대홍기획 지분(3.50%)을 호텔롯데에 매각(67개), 롯데제과가 한국후지필름 지분(0.89%)을 호텔롯데에 매각(3개)했다. 오는 8월 말에는 지주회사 설립을 핵심으로 회사 분할합병에 대한 승인여부를 주주총회에 제출해 신동빈 체제를 완성할 예정이다.
사드로 우는 소리를 해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배당 111억 원에 보수 63억 원을 챙겼다. 롯데칠성은 5월초 사이다 가격을 7.5% 올렸다. 지난해만큼만 팔아도 285억 원을 더 번다.[워커스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