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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약속 오지고요, 광탈 속도 지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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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최근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 정책’ 추진 과정은 이 한마디로 요약될 듯싶다.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와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민주노총이 집계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832개 기관, 52만 명(2016년 말 기준). 전체 공공부문 노동자의 1/3에 가까운 수치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꾀하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나랏밥을 먹으면서도 배고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안전은 외주화됐고, 20년을 일해도 기본급은 최저임금을 맴돌았으며, 계속된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처우로 노동자는 쪼개졌다. 역대 정부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대책을 내놨으나 오히려 비정규직을 고착시키는 정책이 태반이었다.
《워커스》는 그동안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필요성과 열망에 대해 취재했다. 인천공항, 우체국, 학교, 지하철, 병원 등 비정규직 문제가 곪아 터진 곳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정부는 이들의 열망에 화답 하듯 정규직화 정책을 대대적으로 쏟아 냈다. 그때 정규직 전환에 희망을 걸었던 노동자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을까? 그들을 다시 한 번 찾았다.
정부의 종은 2%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울렸다
교육부의 정규직전환 심의위원회는 심의대상 4만여 명 중 2%에 불과한 1천여 명에 대해서만 전환 결정을 했다. 시도교육청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는 정부 가이드라인과 교육부 전환심의위 결과를 방패막이 삼아 정규직 전환 대상을 축소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까지 조장하는 이번 전환심의위를 두고 ‘기만적’이라 이야기한다.
부천의 학교 육상부에서 18년간 학생들을 지도한 A씨는 무기계약 전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번만큼은 1년마다 맺는 재계약과, 예산을 이유로 줄여놓은 초단시간 노동에서 벗어날 줄 알았다. A씨는 “가족을 거의 버리다시피 하면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학교와 맺은 계약 시간으로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연구할 수 없어 정해진 시간 외의 시간을 투자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아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무기계약 전환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A씨와 같은 운동부 지도자는 전국적으로 6천여 명이 있다. 대다수 교육청이 이들을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시행령이 이들을 법 적용 제외 직종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노총은 “정부 가이드 라인은 기간제법 적용 예외라 하더라도 상시ᄋ지속 업무라면 원칙적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무기계약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전환심의위는 어떤 응답도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머물다간 자리…인천공항은 쑥대밭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5월 12일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1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신용쾌 씨는 ‘멘붕’이란 말을 그때 절실히 경험했다고 말했다.
“전날 저녁 10시쯤 분위기가 이상하더라고요. 기관에 있는 사람들한테 전화가 오는데 국토부 장관이 온다더라, 행자부 장관이 온다더라 말을 해줘요. 11시쯤엔 BH가 움직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역시나 알아보니 공사에서 간담회에 들어갈 사람 명단을 추리고 있더라고요. 피켓팅하고, 직접 찾아가서 우리 노조도 들어가야 한다고 했죠. 진짜 대통령이 와서 직접 정규직화를 약속했잖아요. 중국집 가서 볶음밥을 먹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가슴이 부푼다는 게 이런 걸까 싶었어요.”
그날로부터 7개월이 넘게 흘렀다. 신용쾌 씨는 그날 이후, “희망을 으깨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정규직 전환논의는 우여곡절을 거듭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있는 공공운수 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비정규직 전원의 직접고용을 주장했지만, 공사 측에선 생명ᄋ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500~800여 명만 직접고용하고, 나머지는 자회사를 만들어 고용하겠다고 했다. 지부는 논의 중단을 선언했다가 다시 대화를 재개했다. 현재는 조건적으로 자회사 안을 받을 수 있다고 밝힌 상태다.
이 안대로라면 보안검색요원인 신용쾌 씨의 경우 직접고용은 어렵다. 신 씨는 “선두에 서서 교본이 돼야 할 인천공항의 정규직화는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기를 꺾어놨다”라며 “맹점이 분명한 자회사 논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대로 인한 노노갈등 부각 등으로 후배들 얼굴을 보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정규직 전환, 내 차례는 안 올 것 같아요
정부의 정규직 추진 방안 중 3단계에 속하는 재택집배원들은 현재의 정규직 전환 과정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인 재택집배원들은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해 2심까지 승소했다. 13개월째 대법원에 계류 중인데 판결이 지연될수록 손해는 막심하다. 이들은 현재 정규직 전환 심의 대상에도 끼지 못했다.
유아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 재택집배원지회장은 “1단계에서도 다 탈락하고 있는데 과연 3단계에선 얼마나 전환이 될까 우려스럽다”라며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분류하고, 특수고용노동자도 빼버리면 남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유아 지회장은 “상시집배원을 1천 명 증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정규직 전환 성과라고 추켜세우지만 사실 이 정책이 아니어도 어차피 3, 5년 후엔 정규직 되는 분들”이라며 “정부의 정규직화 실적 중 실질적으로 몇 명 정도가 진짜 정규직화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거 진짜 정규직 맞습니까?
정부는 11월 1일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우수사례 10선’을 발표했다. 정규직 전환 심의기구가 80%까지 설치됐고, 기관별 전환 결정도 이어지고 있어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추진이 속도를 내고 있다고도 보고했다.
성공 사례 중 하나가 광주도시철도 공사다. 광주도시철도공사는 역무원, 미화원, 시설관리원 등 5개 직종 330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고용노동부는 “공사는 정부와 광주시 가이드라인에 따라 임금ᄋ처우 개선에 따른 소요예산을 반영해 전원을 정원에 편입시켰다”며 “광주시는 2015년부터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단계적 전환해왔는데 기존의 효과적 노무관리로 추가부담을 최소화했다”고 우수 사례로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정규직이라 밝혔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소위 ‘중규직’이라고 불리는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이었다. 당사자 들은 ‘고용안정만 된 상태’라며 반발하고 있다. 심병국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광주도시철도공사지회장은 “정규직처럼 호봉제도 적용받지 못하고 승진승급제도 없다. 가족수당이나 학비보조수당 같은 기본적인 후생복지도 적용되지 않고 복지포인트도 정규직이 받는 것과 차별이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최근엔 직접고용으로 전환되면서 근무 인원이 줄어 안전운행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는 11월 24일 낸 보도자료에서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고 정규직 직원 일부가 다른 직무로 배치돼 역무원이 179명에서 160명으로 줄어들었다. 광주 19개 역 가운데 10개역은 3인 1개 조 근무조가 2인 1개 조로 변경돼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고 사고 발생 시에도 대처가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예외적 인물’이 된 이유
지난 12월 20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여 정규직 전환 약속을 지키라며 울분을 토했다. 짧게는 7년, 길게는 18년까지 교육현장에 몸담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시도교육청 전환심의위원회가 정규직 전환은커녕 오히려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한 것을 규탄하기 위해 열린 자리였다. 하지만 이제 약속 이행의 기회는 사라져 버렸다. 다음날 대구교육청은 최종 정규직 대상을 발표했는데 심의 대상 1,451명 중 절반 넘게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됐다.
대구의 학교에서 도서관 사서로 재직 중인 최윤라 씨는 이번 정규직 전환에서 탈락했다. 대구시교육청 정규직전환 심의 위원회는 주 15시간미만 초단시간 근로자 중 ‘도서관업무보조원’을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하며 “사업 기간이 정해진 한시적 업무 종사자는 제외했다”고 밝혔다. 도서관업무보조원의 자리엔 단시간 근로자나 기간제 교원을 활용하겠다고 했다. 최 씨는 “무기계약직 전환을 시켜주지 않기 위해 학교에선
주 15시간 미만 사서를 채용했다”며 “계약직을 자르고 또 다른 계약직을 쓴다는 것은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단시간 사서를 쓸 수 없게 돼 최 씨는 올해 말 계약 종료 후 사실상 해고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한국가스공사에서 발주를 받아 화재 교육 업무를 하는 가스화재 훈련센터 노동자들도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됐다. 이들의 발목을 잡은 건 정부의 가이드 라인이다. 정부는 중소기업 육성과 진흥을 위해 정부 업무의 민간 위탁을 장려해왔는데, 정부 업무를 직접 고용 하게 되면 기존 중소기업 진흥책이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에 간접고용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공공운수노조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부당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가스화재 훈련센터의 노동자의 경우 핵심업무이자, 상시 지속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운수 노조는 “중소기업 진흥을 위해 예시로 든 법령들은 외부 위탁을 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이 아니고, 외부 위탁을 한다면 중소기업을 낙찰자로 우선하라는 것에 불과하다”라며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항변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담긴 또 다른 내용은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용역업체 소속이면서 공공기관으로부터 수탁 받은 업무를 수행하고, 용역업체의 지휘ᄋ명령을 받는 자’는 전환 대상이다. ‘용역계약 시 공공기관에서 인건비를 구체적으로 산정하고, 채용해야 할 근로자 수 등을 정하는 경우’라는 전환 기준도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투입인력은 훈련교관 (고급숙련기술자), 부교관(중급숙련 기술자) 2명으로 한다’고 명확히 정리하고 있다. 분명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돼야 하는 업무다.
‘예외적 인물’을 선별하는 가이드라인은 공정할까?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업무 특성에 따른 전환 예외 사유’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반 년을 싸운 불씨가 됐다. 정부는 ‘다른 법령에서 기간을 달리 정하는 교사ᄋ강사 중 특성상 전환이 어려운 경우’를 제시하며 정확히 기간제교사, 영어회화전문강사를 집어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해버렸다. 이밖에 교육기관의 교사와 강사 등은 수행업무내용, 근로조건, 채용절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이해당사자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 정규직전환 심의위원회에서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배동산 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이해당사자의 다양한 의견’이 노노 갈등을 조장하는 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배 정책국장은 “교총, 학부모 단체들까지 나서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모든 이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것은 정규직 전환을 무력화시키려는 꼼수다. 지난해 말 교육공무직법안 철회사태나 기간제교원 및 강사직종 정규직전환심의 과정에서 벌어졌던 교육노동자 및 예비노동자 간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이드라인은 노동계에서 ‘가짜 정규직’으로 통하는 무기계약직과, 자회사 설립도 정규직화 방안으로 정의 하고 있다.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하지만 파견 용역 노동자에 대해선 “조직 규모, 업무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노사협의,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기관 별로 직접고용, 자회사, 사회적 기업 등 전환방식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무기계약직과 자회사는 승진, 임금 등 노동조건의 새로운 차별을 야기해왔다. 또 고용기관과 사용기관의 불일치로 인해 사용자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하지만 정부는 예산의 한계를 들며, 무기계약직과 자회사를 조장했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은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노동실태 및 정책대안’ 토론회에서 “가이드라인을 보면서 정규직 전환 정책이 아니라 무기계약직 정책 처럼 보였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규직 전환은 안 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도 같은 토론회에서 “자회사의 정규직 방식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고용형태의 하위 범주에 불과하여 정규직 전환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또 무기계약직과 자회사 방식은 ‘신카스트 제도’로 “기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구조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