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후(사회운동에 관심이 많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급진전하는 듯 보이면서 비핵화-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남북교류, 특히 경제사업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보도만 보면 북한이 마치 새로운 노다지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한에는 없는 수천조(!) 원어치의 광물자원이 묻혀있다더라’는 얘기가 대표적이죠. 당장 판문점 선언에서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겠다는 목표를 명시하고 있는데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한반도 신(新)경제지도 구상’에 따르면 경의선은 중국까지, 동해선은 러시아까지 연결해 동서로 철도망을 확장하겠다는 것이죠. 북한의 철도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에 철도를 연결하려면 레일부터 다시 깔아야 한다고 하는데요. 그러자 아직 사업 시작은커녕 확정적인 계획조차 나온 것이 없는데도 철도시설과 관련한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습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그간 중단됐던 경제사업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과거 남북경제사업을 주도했던 현대그룹은 아예 현정은 회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아 남북경제협력사업TF를 발족했죠.
#1. 노조 없는 사회주의
남북경제사업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경제신문들이 유독 이 부분에 대해 호의적이거나 기대 섞인 보도를 내보내는 걸 보면 남한 자본에게 북한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형성은 꽤나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현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남북관계 개선을 지지하는 쪽에서도 남북경제사업을 통해 남한 자본의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죠. 그런데 정상회담 직전에 방영된 한 종편 시사프로그램에서 아주 흥미로운 발언을 목격했습니다(물론 내용을 보면 흥미롭다고만 할 수는 없겠군요).
“북한은 우수한 산업노동력을 갖고 있어요. 이미 개성공단에서 우리가 보지 않았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 우리와 같은 우수한 근면성. 사실 우리 기업 입장에서 보면, 노동조합 없는 대한민국 노동력이 북한 노동력입니다.” – JTBC <썰전> 267회(2018년 4월 26일) 중
이 발언의 주인공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지낸 이종석 씨입니다. 이종석 전 장관은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청와대가 구성한 ‘원로자문단’의 일원이기도 했죠. 해당 발언에는 ‘북한 노동자는 노동조합이 없으니 값싸게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다’는 관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사실 돌출적인 발언은 아닙니다. 학교 교과서만 해도 통일이 된다면 ‘남한의 풍부한 자본과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 결합할 수 있다’는 식의 얘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죠. 광물뿐만 아니라, 무권리 상태의 북한 노동자 역시 남한 자본에게는 이윤을 뽑아낼 ‘노다지’라는 건데요. 이종석 전 장관의 발언 직후 해당 프로그램 진행자인 김구라 씨는 “삼성인데”라고 되물었습니다. 화면자막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친절하게 “無노조+우수인력”이라는 문구가 나갔죠. 남한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삼성과,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하겠다는 북한의 노동체제가 똑같다는 역설적인 현실인데요.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북한은 스스로 사회주의 국가라고 천명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라면 곧 북한을 떠올리죠(혹은 떠올리도록 만들죠). 집권당의 명칭도 ‘로동당’이고요. 그런데 노동자권력을 표방해야 할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당이어야 할 로동당이 통치한다는 곳에서 정작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조차 만들 수 없다니 이상하지 않은가요? 물론 북한에도 남한의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처럼 노총과 유사한 조직은 있습니다. 바로 “조선직업총동맹(직총)”이죠. 로동당 당원이 아닌 30세 이상의 모든 노동자들이 가입하도록 되어 있는데, 사실상 당의 통제를 받는 외곽조직으로 기능합니다. 통일부장관을 지낸 이종석 씨가 직총의 존재를 몰라서 ‘북한에 노조가 없다’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직총이 노동조합의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겠죠. 노동자의 천부인권이라는 노동3권, 그러나 자주적으로 단결해 저항할 권리를 갖지 못한 노동자들. 그리하여 삼성의 무노조경영에 비견될 정도로 노동자들이 통제당하는 국가. 우리는 이 사회를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2. 주체조선에서 주체가 되지 못한 노동자
대개 북한을 사회주의라고 규정하는 핵심 근거가 바로 기업들이 국유화돼 있다는 것인데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유화가 곧 사회주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국유화가 사회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은 사실이죠. 사적 자본이 각자의 이윤을 위해 생산하는 체제(우리는 이것을 자본주의라고 부르죠)에서 벗어나 사회 구성원들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체제(사회주의)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을 더 이상 개별 자본가들의 손에 맡겨두지 않고 사회적으로 통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국유화는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문제는 ‘누구의, 무엇을 위한 국유화인가’입니다. 국유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직접 일하는 노동자들과 사회 전체가 생산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죠. 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국유화는 오히려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이전 글에서 2008년 미국 오바마정부가 당시 경제위기로 파산한 GM을 국유화해서 직접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사례를 언급했었는데요. 이런 ‘자본을 위한 국유화’는 사실 비일비재합니다. 가령 2002년 GM에 매각하기 전의 대우자동차나 현재의 대우조선해양은 어쨌든 국가가 지배지분을 확보한 형식상 국유기업이(었)죠. 기업이 아예 도산해버리면 경제 자체가 연쇄적으로 붕괴할 수 있으니 국가가 인수하되, 철저히 자본회생의 관점에서 구조조정을 실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 대우자동차와 오늘날 대우조선해양에서 사회주의 기업의 모습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정리해고, 구조조정, 쟁의권 박탈, 매각 등 정부가 자본의 전위대로 나서서 노동자 학살을 직접 주도하는 모습을 보았죠.
이전에도 썼지만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국유화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지만, 노동자들의 사회적 통제가 빠진 국유화는 앞서 거론한 사례들에서 보듯 거꾸로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자본의 칼날로 기능하기도 하죠. 법적인 소유형태만 바뀔 뿐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통제권을 박탈당하고 노동의 대가를 온전히 누리지도 못한
채 착취당하는 겁니다. 그리고 개별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자본축적을 직접 수행하는 거죠. 맑스는 자본을 가리켜 “자기증식하는 가치”라고 불렀습니다. 축적 자체가 목적인 생산, 축적을 위한 축적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건데요. 사회주의는 경제적 잉여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경제적 잉여를 생산한 노동자들과 사회구성원들이 누리지 못한다는 데 있는 거죠. 주체조선을 자랑하는 북한의 국유화에서 노동자들은 배제돼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주체가 아니라 관리와 통제, 동원의 대상이죠. 생산도, 생산된 잉여도 노동자들이 아니라 당 관료들이 통제합니다. 당이 명령하는 생산성을 초과달성한 노동자들에게 영웅 칭호를 수여하는 것과, 민간기업에서 성과에 따라 연봉을 차등지급하고 우수사원을 선발해 성과경쟁을 시키는 것은 무엇이 다른 걸까요.
#3. 대를 이어 충성하는 사회주의
이 정도까지라면 소련이나 여타 ‘현실사회주의’ 국가들과 큰 차이는 없겠지만, 북한은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국가권력 3대 세습까지 단행했죠. 언젠가 제 친구는 북한 선전가요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라는 노래가 북한 정치권력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한 적이 있는데요. 맛보기로 가사를 한 번 볼까요.
“수령님 쓰시던 축지법 오늘은 장군님 쓰신다.”
이 노래는 지배자에 대한 개인숭배는 물론, 축지법을 물려받아 쓴다면서 권력세습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일각에서는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해 ‘북한 나름대로의 지도자 선출방식이 있으며, 북한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세습이라고 무작정 비난해서는 곤란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정보가 제한적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에서 만드는 선전가요나 언론매체가 김씨 일가에 대해 찬양일색이라는 점이고 이는 결코 합리화할 수 없다는 겁니다. 물론 민주적 절차를 거쳐 우연히 특정 일가가 요직에 두루 앉을 가능성도 있을 수야 있겠죠. 하지만 북한은 이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백두의 혈통’ ‘최고존엄’이라고 치켜세우며 애초부터 특수신분처럼
만들어놓고 당과 국가 최고위직에 추대하는데 어디에서 민주주의를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라면 노동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대표자들은 노동자의 평균임금 외에 어떤 특혜도 받지 않으며, 언제든 자신들을 선출한 노동자들에 의해 소환될 수 있죠. 1871년 최초의 노동자정부로 알려진 파리꼬뮌에서 이러한 정부형태가 나타났고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 노동자·농민·병사들이 구성한 소비에트 역시 이런 전례를 따랐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형식상 최고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는 1년에 불과 1번 정도 모여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죠. 반면 2009년 공식직책도 없이 ‘청년대장’이라는 칭호로 북한 선전매체의 찬양을 받기 시작한 김정은은 2010년 무려 44년 만에 열린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 아버지 김정일이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해 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앉으며 후계구도를 공식화한 이후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자 당과 군, 정부 최고권력을 모두 장악했죠.
사실 권력세습이 북한에 고유한 건 아닙니다. 당장 이 나라 재벌가문들은 이제 3세를 넘어 4세 승계까지 앞두고 있죠. 심지어 자본주의에서도 불법, 탈법이라 부르는 방법까지 동원해서 말입니다. 재벌 3세들은 입사 후 불과 몇 년 만에 일반 직원들은 절대 불가능한 속도로 고위임원으로 승진하고,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뒤 그룹 전체가 해당 주식가치를 부풀리는 데 동원돼 세습자금을 마련해주죠. 물론 이들은 항변할지도 모릅니다. ‘북한과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선대가 소유한 것을 상속받았을 뿐’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북한 김씨 일가도 선대가 소유한 것을 물려받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는 게 문제인 것이죠.
#4. 이게 다 김씨 일가 때문이다
혈통을 물려받았다는 지배자는 벤츠를 타고 다니는데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조차 없는 사회를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북한이 정권수립 당시 노동자들의 혁명적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가 아니라 2차 대전 후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체제를 이식한 국가라는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3대 세습이 가능한 수준의 사회는 아니었습니다. 로동당 내부에서 김일성을 견제하는 세력도 있었죠. 하지만 미국의 봉쇄와 군사위협이 가중되는 가운데 미국의 체제대결 쇼윈도 역할을 하던 남한이 미국으로부터 대대적인 지원을 받았던 것과 달리 북한은 50년대 이후 중국과 소련의 갈등과 분쟁, 중국의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등을 거치며 전폭적 지지를 얻기 어려워지자 점점 체제유지를 위한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게 됩니다.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면 북한체제를 옹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현재를 전적으로 몇몇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북한을 악마화해 지역패권을 유지할 근거로 삼았던 세력, 그 악마화에 조응해 더욱 자신의 권력을 움켜쥐고 공고히 하려고 했던 세력. 이 결합이 주체와 사회주의를 외치면서도 정작 주체로서의 노동자들은 사라진 기괴한 체제를 만든 것이 아닐까요.[워커스 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