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말 많고 탈 많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출범했다. 하루 전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 등을 내걸고 총파업을 진행했던 민주노총이 불참한 채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열린 경사노위 출범식에서 민주노총을 향해 “오늘 민주노총의 빈자리가 아쉽다”면서도 “투쟁이 아닌 대화, 타협, 양보, 고통 분담으로 합리적인 대화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 또 다시 표적은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을 향한 비난의 화살은 여야를 막론한다. 민주노총을 놓고 ‘대동단결’ 하듯, 협공의 수위는 점점 높아만 간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1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노총의 투쟁방식을 놓고 “미국이면 테러 감”이라는 격한 용어를 동원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늘 그렇듯 “대한민국 사회가 민주노총 공화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는 민주노총과의 결별을 각오하라”고 엄포를 놨다.
이 같은 비난에 대해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자유한국당의 노조를 향한 막말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며 “물 만난 고기떼 같은 한국당에 물을 댄 것은 바로 정부와 여당”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의당 내부에서도 민주노총의 ‘투쟁’을 나무라는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전직 위원장이자, 정의당 ‘노동이당당한나라’ 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영훈 전 위원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동계가 현안 저지 투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대로 가면 호구 잡히는 길 밖에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교섭 방침 없는 투쟁은 공허할 따름”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내가 위원장을 지냈던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와 같은 ‘민주노총의 고립’은 그리 희귀한 광경이 아니다.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도 민주노총은 ‘고립과 배제’의 대상이었다. 당시 정권은 쉬운 해고 등을 포함한 ‘노동개악 행정지침’을 밀어붙이면서도 민주노총에 노사정위 참여를 요구했다. 역대 정권들이 민주노총에 ‘사회적 대화’를 요구하는 경우는 대부분 노동계의 ‘양보’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를 거부할 경우, 정치권은 민주노총을 향해 거친 비난을 쏟아내며 고립을 주도했다. 과연 현재 민주노총 때리기는 과거와 크게 다를까. 진짜 84만 명의 조합원들이 ‘테러’를 당할 만큼 일방적인 생떼를 쓰고 있는 걸까. 올해 쟁점이 됐던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 향방을 짚어봤다.
공공부문 수난사
문재인 정권이 취임 전 유행어처럼 퍼뜨리고 다녔던 주요 공약은 바로 ‘일자리’다. 취임 후에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었다는 보도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들 중 다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만들어질 일자리였다. 하지만 집권 2년차가 끝나가는 현재. 공공기관 기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은 정부 목표의 75.5%에 그치고 있다. 파견 및 용역 비정규직의 전환비율은 고작 36.9%에 불과하다. 그나마 전환이 이뤄진 일자리들 역시 ‘가짜 정규직’이거나 ‘질 낮은 일자리’가 다수다. 실제로 정규직으로 전환된 파견 및 용역 비정규직 2명 중 1명은 ‘자회사’로 또 다시 간접고용 됐다. 동종 유사업무 정규직과 임금도, 노동조건도 여전히 차별받는 일자리다. 심지어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인 ‘잡월드’에서는 노동자와 합의도 없이 자회사 전환 결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아직 정규직 전환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지 못한 곳들도 많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지자체의 경우 광주시와 세종시 외에는 파견 및 용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는 협의체 구성이 완료된 곳이 없다. 노사전협의체가 구성되더라도 당사자인 비정규직들이 배제되거나, 졸속 심의로 정규직 전환에서 대거 ‘광탈’하는 현상도 이어졌다.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지난 9월 7일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중간 평가와 개선 과제 토론회’에서 “전체 비정규직을 기준으로 할 경우 올해 7월 현재 33.8%만이 전환돼 2/3이상이 전환에서 제외되거나 아직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중 또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이 바로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을 통한 일자리였다. 보육, 요양 등 사회서비스를 공단이 직영하면서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또한 축소와 후퇴를 거듭하면서, ‘사회서비스원’이라는 소규모 정부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수난사는 이게 다가 아니다. 김성태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번 국정감사를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고용세습’ 이슈로 끌고 갔다. 기다렸다는 듯이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이 관련 기사들을 쏟아냈다. 노조는 김성태 원내대표 등 4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며, 채용 비리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적의 적은 동지라 했던가. 정부는 슬그머니 자유한국당의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1월 13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1당 원내대표가 고용세습, 채용비리 문제를 제기했다고 공기업 노조가 제1야당 원내대표를 고발했다”며 “이런 현상들이 제대로 된 사회현상인가”라고 비판했다. 사실 정부여당으로서는 보수 세력의 공기업 노조 때리기가 ‘적시적소의 공격’이라 할만 했다. 현재 정부는 올 하반기, 공공기관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직무급제’로 개편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그간 노동계가 반대해 왔던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에 앞서, 여론에서의 승기를 잡고 가는 격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줬다 뺏는 ‘최저임금법 개악안’ 의결
올 초에도 정부는 노동계와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다른 것도 아닌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대선 기간, ‘일자리’와 함께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 바로 ‘최저임금 1만원’이었다. 하지만 공약은 이행되지 않았고,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원 대선공약을 지키지 못했다”며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문제는 공약 후퇴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부여당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해 임금인상을 무력화하는 법 개악을 밀어붙였다. 홍영표 민주당 원대대표가 중심이 돼 법안 통과를 이끌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기상여금 월 25% 초과분과 복리후생비 7% 초과분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법안이었다.
정부여당은 이를 연봉 2500만원 미만의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노동계는 이를 임금삭감 시도라고 비판하며 최저임금위원회 불참 선언 및 총력투쟁에 나섰다. 실제로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에 산입되면, 연 소득 2500만원 미만의 노동자들은 향후 6년간 약 928만원의 임금 손실을 입게 된다. 고용노동부 역시 연 소득 2500만 원 이하의 저소득 노동자 21만6천명이 향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대수익이 줄어들 것이라 추정했다. 하지만 국회는 5월 28일 열린 본회의에서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재적 인원 198인 중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24명에 그쳤다. 그리고 다음달 5일, 정부는 이낙연 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법 개정법률안 공포안을 의결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없었다.
ILO협약 비준과 노조할 권리
지난여름, 조창익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이 단식 27일 만에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그보다 한 달여 앞선 7월 6일에는 전교조 조합원 2천여 명이 청와대 앞에서 연가 투쟁을 벌였고, 지난해 겨울에는 해직 교사들이 삭발을 하고 오체투지에 나섰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로부터 ‘노조 아님’ 통보를 받고 온갖 노동 탄압에 시달렸던 전교조의 시간은 여전히 5년 전에 멈춰서 있다. 물론 이번에도 문재인 정부의 ‘공약 불이행’이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시절,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를 약속했다. ILO(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을 비준하고 이와 관련한 국내법을 개정한다는 약속이었다.
대선 시기였던 지난해 1월,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는 전교조 위원장과 만나 “신정부 들어서면 우선적으로 전교조 법외노조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3월에는 홍영표 원내대표가 전교조 측에 ‘박근혜 정권의 법외노조 통보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행정처분으로 원상회복 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선 후에는 청와대가 전교조 측에 ‘내년 지방선거 이후’라는 구체적 시기까지 언급했다. 그리고 지방선거 직후인 6월 19일, 김영주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교조와의 면담에서 “법외노조 통보에 대한 직권 취소 문제를 법률적으로 검토한 뒤 청와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영주 장관과의 면담 이튿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를 정부가 직권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을 바꿨다. 심지어 지난 8월 초, 고용노동개혁위가 문재인 정부에 “전교조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라”고 권고했지만 이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ILO핵심 협약 비준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도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에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국가위상에 걸맞는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습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한국 정부는 1991년 ILO에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핵심협약인 87호, 89호(결사의 자유 보장), 29호, 105호(강제노동 철폐)의 비준을 약속했다. 하지만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ILO도 그간 수차례 한국정부에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교사 공무원의 노조 할 권리, 해고자 등 노조가입 금지 법조항 폐지 등 결사의 자유 보장을 권고한 바 있다. 현재 한국이 비준한 ILO협약은 187개 중 29개로, 191개 회원국 가운데 118위에 머물러 있다. 핵심협약의 비준 순위는 117위다. 한편, 일각에서는 정부가 연내에 ILO핵심 협약 비준을 처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내년 6월 초, 스위스 제네바에 열리는 ILO 100주년 총회에서 문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맡는 방안을 추진 중인 까닭이다. 지난 11월 20일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을 권고하기도 했다.
임금 ‘반값’으로 후려치는 ‘광주형 일자리’
일명 ‘반값 일자리’로 알려진 ‘광주형 일자리’ 추진 과정에서도 노정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일자리’와 ‘고용안정’을 대가로 기존의 임금을 양보하는 고용모델이다. 대공장 완성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비정상적’인 고임금으로 전제하고, 노사민정이 사회적 협약으로 ‘적정임금’을 논의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현재 완성차-정규직 노조의 단체협약이 적용될 수 없도록, ‘독립법인’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노동계가 ‘광주형 일자리’를 현대차 하청업체인 ‘동희오토’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청이 외주화 한 공장에서 정규직 대비 현저히 낮은 임금조건을 강요받지만, 원청에 사용자성을 묻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임금 및 노동시간 등 노동조건을 ‘노사민정’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적 권리인 노동3권을 침해당할 우려가 상당하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우려를 밝혀 왔다. 지난 11월 14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현재의 원하청 문제의 개선 없이 광주형 일자리를 운운하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형 일자리는 2014년부터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추진해 온 사업이다. 준비기간 5년차 까지도 지지부진 했지만, 지난 6월 현대차가 투자의향서를 제출하며 다시 논란의 중심이 됐다. 10월 31일에는 광주시와 광주지역 한국노총 등이 ‘투자유치 성공을 위한 원탁회의 합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광주형 일자리 추진 과정에서도 민주노총의 반대 목소리는 줄곧 배제돼 왔다. 11월 초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초당적 지원에 합의했다. 정부 여당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사업이지만, 광주시와 현대차는 임금 수준과 생산 차종, 법인 운영 방식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회 예산 심의 법정 기한인 12월 2일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사실상 물 건너 갈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간 줄인다면서…‘탄력근로제’ 확대
올 하반기에는 ‘탄력근로제 확대’라는 폭탄이 떨어졌다. 지난 11월 5일, 여야정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법안을 연내 추진키로 합의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경영계의 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 조치란다. 현행 탄력근로제는 단위기간은 최장 3개월이다. 하지만 그간 경영계는 정부에 탄력근로제를 1년까지 확대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현재 여야정은 노동계의 반발을 우려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탄력근로제는 일정 기간마다 주당 64시간, 주당 40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해 평균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맞추는 제도다. 노사 합의에 따라 3개월간 운영이 가능하다. 만약 정부 계획대로 이를 6개월로 늘릴 경우, 총 26주 중 13주 동안 62시간의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 재계의 요구대로 이를 1년으로 늘리게 되면 어떨까. 무려 1년 중 6개월간 62시간의 초장시간 노동이 합법화 된다.
그간 ‘1일 8시간, 주 40시간’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해 왔던 노동계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쟁점인 셈이다. 특히 탄력근로제가 확대되면 특히 노조가 없는 다수의 사업장 노동자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는 “노조 조직률이 10% 미만이고, 노사협의회의 경우 사용자가 지정하는 근로자 대표가 횡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근로자 대표의 합의는 노동조합 없는 노동자들에게 일방적 탄력근로제 강요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민주노총은 지난 21일, ‘탄력근로 기간확대 저지’ 등을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