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호치민에 위치한 ‘뮤즈클리닉’ [출처: 서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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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이란, 단순히 말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 내지는 ‘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병원’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국내에서 ‘영리병원’이라 함은, 아직 개원하지 않은 제주 국제녹지병원 정도를 말한다. 정부와 언론도 국제녹지병원을 국내 1호 영리병원이라 부르니까. 하지만 정말 한국 땅에 ‘영리를 목적으로’, ‘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영리병원의 마중물’, 혹은 ‘영리병원의 우회로’라 불리는 영리병원은 우리 주변에 수두룩하게 존재한다. 병원의 편의점화, 기업화, 프랜차이즈화를 추구하며 몸을 키워가고 있는 병원들. 점잖은 말로 MSO(병원경영지원회사)라 불리는 기업들이 그 주인공이다.
MSO말고 영리병원
우선 ‘의료법’에 명시된 원칙부터 살펴보자. 의료법에 따르면, 한국에서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는 주체는 의료인이나 비영리법인 뿐이다. 그리고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의 병원 수익은 무조건 병원에 재투자해야 한다. 병원 수익을 밖으로 빼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의료법에는 ‘1인 1개소’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의사가 두 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 또는 운영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길을 가다보면, 마치 프랜차이즈 같은 동일한 브랜드 병원들이 쉽게 눈에 띈다. 의사 한 명당 한 개소의 병원만 차릴 수 있고, 비영리의료법인의 수익 투자도 제한돼 있는데 어떻게 ‘프랜차이즈’가 생길 수 있는 것일까. 이 비밀은 바로 MSO(Management Service Organization), 즉 병원경영지원회사라는 우회로에 있다.
BK성형외과 대표원장이자, ㈜휴젤의 창업주, 제주 영리병원 우회 투자 의혹을 받고 있는 홍성범 원장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중국까지 진출해 ‘상해서울리거 병원’ 대표원장까지 맡고 있는 그가, 과연 국내에서는 놀고만 있을까. 이 또한 천만의 말씀이다. 홍 원장은 2016년 한 모바일게임 전문기업을 인수한 후 ‘서울리거’라는 상호로 변경했다. ㈜서울리거는 병원경영지원회사(MSO)다. MSO란, 의료행위만 제외하고 병원 경영과 관련한 온갖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말한다. 홍보마케팅, 인력관리, 구매, 회계 등 병원 운영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지주회사다.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서비스 비용과 수수료, 브랜드 사용료 등을 챙겨 이윤을 쌓는다. 의료와 경영을 분리하고, 경영 회사를 통해 영리 추구를 가능케하는 방식이다.
㈜서울리거는 ‘뮤즈클리닉’이라는 병원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뮤즈클리닉은 전국 23개 지점이 있다. 3개 지점을 갖고 있는 ‘필라인클리닉’과 5개의 지점이 있는 ‘스킨앤빔’, 서울리거피부과, 코코넛 치과까지 합하면 전국 30개의 제휴병원을 상대로 브랜드 홍보, 직원관리, 행정업무 등의 경영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리거의 최대주주는 ㈜휴젤의 전 대표이자 홍 원장의 최측근인 S변호사다. 2017년 기업 공시에 따르면, 서울리거는 홍원장 개인이 2.36%의 지분을, 홍 원장이 100% 지분을 소유한 ㈜HSB컴퍼니가 4.06%를, 홍 원장이 대표로 있는 ㈜서울리거코스메틱스가 2.36%를 소유하고 있다. 서울리거의 매출 비중은 MSO사업이 92.86%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7년 기준 매출액은 143억7200만 원이다.
“영리병원 안된다고 MSO하지 말란 법 있나”
MSO회사는 의사가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특정인이 2개 이상의 병원을 개설해 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운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후자의 행위로 논란이 됐던 곳이 바로 ‘유디치과’다. 유디치과는 전국 120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MSO계의 전설 같은 프랜차이즈다. 과거 이곳은 ‘유디메디’라는 경영 지원회사가 전 지점의 부동산을 소유하며 경영 및 직원관리, 회계를 진두지휘했다. 의사는 지점에 고용돼, 기본급 없이 매출에 따른 인센티브를 임금으로 받았다. 이 같은 구조 때문에, 과잉 진료와 불법 시술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무분별한 MSO회사 경영을 규제하기 위해 2011년 제정된 의료법이 바로 ‘1인 1개소’ 원칙이다.
2012년 8월 1인 1개소 법안이 시행된 후, 병원 여러 곳의 실질적 운영권을 갖고 있던 MSO병원들은 지분을 매각하며 자본 구조를 바꿔 나갔다. 원장 1인 직영 체계에서 협력치과 체제 등의 구조로 탈바꿈하는 식이었다. 이를 통해 병원 운영권은 각 지점으로 분산됐지만, 경영 서비스 제공에 대한 이윤을 축적하고 이를 또 다른 이윤 추구 사업에 투자하는 MSO는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병원은 MSO를 통해 지점을 확대하고 수익을 창출하며 수백억의 자본을 쌓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의 엇박자도 있었다. 1인 1개소 법안이 시행된 지 9개월 만인 2013년 4월, 서영교 민주당 의우너이 해당 법안에 7년간 유예기간을 두는 법안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까닭이다. MSO회사를 민주당 정권이 도입했다는 책임론도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MSO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다. 2006년 12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에서 MSO를 처음 언급했다. 특히 보도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그 해 의료기관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리병원은 어렵지만 의료법에 의하면 MSO를 하지 말란 법은 없다”고 언질을 줬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인물 중에는 노 전 대통령의 허리수술을 맡았던 이상호 우리들병원 이사장이 있었다. 그는 ㈜우리들에이치엠이라는 MSO회사를 설립, 국내 12개의 지점을 비롯해 인도, 두바이, 터키, 싱가포르 등에도 해외 네트워크 병원을 넓히고 있다. 우리들에이치엠의 최대주주는 이상호 이사장으로, 2017년 기준 87.37%를 보유하고 있다. 매출액은 155억8411만 원이며, 영업이익은 36억4622만 원이다.
▲ 베트남 호치민에 위치한 ‘뮤즈클리닉’ [출처: 서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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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대 자산 쌓는 의료기업, MSO는 정말 ‘영리화’가 아닐까
노무현 정부 시기 한국에 도입된 MSO 회사는 2006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06년 11월에는 MSO 병원을 중심으로 ‘대한병의원네트워크협회’가 출범했다. 현재는 ‘대한브랜드병원협회’로 이름ㅇ르 바꿨다. 이곳에는 영리병원 도입을 적극적으로 요구해 온 의료계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협회 회장 출신인 박인출 예치과 원장과, 안건영 고운세상피부과원장(현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 등은 영리병원을 비롯한 의료산업의 시장 경쟁 도입을 주장해 왔다. 예치과는 2017년 기준 전국 90개의 지점을 거느리고 있는 최대 규모 MSO병원이며, 고운세상피부과도 전국 14개의 지점을 갖고 있다. 특히 안건영 원장은 홍성범 원장과 꽤 긴밀한 사업 파트너 관계다. 그는 홍 원장이 2014년 중국에 개원한 상해서울리거병원 의료진으로 참여해 직접 현지 진료에 나섰다. 또한 그는 홍 원장의 MSO회사인 로켓모바일(현 서울리거)의 사내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브랜드병원협회 부회장은 윤여동 ㈜폴스타헬스케어 대표이사다. 폴스타헬스케어는 병원의 MSO사업을 비롯해 원격의료 연구개발, 의료관광, 의료시스템 및 의료기관 해외 진출 등의 사업을 벌이는 회사다. 윤여동 대표이사는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헬스케어특별위원회 1기 위우너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대한브랜드병원협회에 따르면, 현재 병원경영지원회사 형태의 병의원 76개사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이들 중 덩치가 큰 회사들은 수백억 대의 자산을 쌓는다.
유명 척추관절전문 한방병원인 ‘자생한방병원’은 국내에 21개 지점과 미국에 5개 지점을 갖고 있는 대형 체인병원이다. 자생한방병원 신준식 이사장은 ㈜제이에스디원(구 자생)이라는 병원경영지원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신 이사장의 아들이 지분 40%를, 신 씨가 30%, 장녀와 차녀가 각각 10%, 대표이사이자 신 씨의 아내가 10%를 소유하고 있는 가족기업이다. 2017년 기준 제이에스디원의 영업이익은 212억6093만 원이며, 당기순이익은 161억9870만 원을 기록했다. 쌓아둔 이익잉여금은 673억460만 원에 이른다. 전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등 61개 지점을 거느리고 있는 함소아 한의원도 대표적인 MSO회사로 꼽힌다. 함소아 한의원의 설립자인 최혁용 대표는 2005년 ㈜함소아제약까지 설립해 건강기능식품 판매에도 나섰다. 그는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정책특보를 지냈고, 2017년 말 복지부장관 정책자문관에 위촉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정책자문관 직을 반려하고, 지난해 1월 한의사협회장에 취임했다.
기사 잘 읽었습니다. 훌륭한 기사이구요. 기사를 쓰신 박다솔, 윤기연 기사님과 통화좀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