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김민]
[인터뷰] 박정훈 알바노조 위원장
윤지연 기자
혜리가 ‘알바당’ 당수로 등장하기 전부터, 알바들의 권리 쟁취를 위해 만들어진 노동조합이 있다. ‘민주’니 ‘한국’이니 다 떼어 버리고 명쾌하게 ‘알바노조’라고만 이름 지었다. 2013년 8월에 탄생했으니, 벌써 4년 차 노조다. 명쾌한 이름만큼, 사이다 같은 투쟁을 한다. 점거는 기본, 연행은 필수다. 그래도 병아리 같은 노란 노조 조끼 덕에 ‘과격 단체’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떼인 돈도 받아 내고 승률도 높다. 올 초, 2기 알바노조 위원장으로 취임한 박정훈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혜리도 말 못한 ‘최저임금 1만 원’, 알바노조는 한다”
알바노조의 대중적 인지도는 어느 정도인가
청년층에서 꽤 인지도가 높다고 본다. 다만 과거 민주화운동 세대에서 좀 더 인지도가 있다고 느낀다. 실제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알바노조 인지도는 기대만큼 높진 않다. 최근 혜리 패러디 영상을 찍었는데, “알바노조도 있네”라는 댓글을 보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민주화운동 세대에서 인지도가 높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봐야 하나
민감한 질문이다. 사실 재정적으로는 큰 도움이 된다. 지지 세력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활동을 단지 기특한 일이라고만 바라보는 것은 우리 운동이 발전하는 데 있어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알바노조에 가입하면 뭐가 좋나
떼인 돈을 받을 수 있다. 노동청에 진정해도 보통 반 년 이상은 걸린다. 감독관 인력도 부족하고 자질이 부족한 사람도 많다. 합의를 종용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로 대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우리랑 같이 해결하면 빠르고 승률도 높다. 조합원들에게 노동법이나 노동 인권 교육 등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혜리가 알바당 당수로 칭송을 받고 있다. 감흥이 어떤가
저항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 시위나 집회가 상품으로 소비될 수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자본과 권력이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 믿을 때 이를 상품으로 만들어 팔 수 있는 거다. 그런 광고를 해도 실제 대규모 집회, 행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본다.
총선 때 알바 후보를 낼 계획은 없나
있다. 일단은 ‘알바당’이라는 명칭을 활용할 생각이다. 조합원과 외부 인사를 대상으로 공천 심사위원을 모집하고, 후보 등록을 받을 예정이다. 3개의 진보 정당(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후보들이 대상이 될 거다. 심사를 통해 알바당 후보로 지정해 선거운동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알바 5적을 선정해 부적격 후보들에 대한 낙선 운동도 할 거다.
최저임금 1만 원을 처음 내건 곳이 알바노조다. 처음에는 비웃음을 많이 받았다
“1만 원은 근본적 해결이 아니다”, “현실적이지 않다”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민주노총은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를 주요 요구로 내세우고 있었다. 최저임금이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것인데 왜 운동권이 평균 임금 50%로 설정해 버리나. 우리는 ‘임금=생계비’라는 것 이외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최저임금 1만 원이 결국 보편적 요구가 됐다. 속 시원하지 않나
이런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는 않는다. 운동은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보편적 주장이 된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다만 최저임금 1만 원이 상징적인 슬로건, 혹은 협상의 슬로건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알바들은 이미 쉬운 해고를 당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잘 싸운다. 노동청 시위에서 49명이 떼로 연행됐다. 원래 성격들이 드세나
그렇다기보다는 제도적 수단이 없어서다. 이것이 투쟁을 자극적으로 만든다. 우리도 단체 교섭권을 갖게 되면 성향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제도가 없으니 뭘 해도 불법이 된다. 우리 요구 수준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조합 내부의 동의 지반도 있고 설득이 가능하다. 사실 우리의 행위는 맥도날드나 노동청에 가서 항의하는 정도다. 그런데 이런 방식을 국가나 기업이 엄청난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다 과격 단체라고 소문날까 봐 불안하지 않나
그런 불안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 이미지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노란 조끼를 입은 청년들이 자기주장을 하는 모습이 과격 단체 느낌은 아니지 않나. 다만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민주노총의 청년 단체로 규정되는 거다. 우리가 노동청을 점거하자마자 언론에서 ‘민주노총의 연대 지침 때문에 점거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그날 노동청 점거 투쟁은 양대 지침 반대와 연관이 없었다. 자격 없는 근로감독관 퇴출을 요구한 것이었다.
노동계의 노동 개악 양대 지침 저지 투쟁과 거리를 두는 것 같다
양대 지침 반대 투쟁은 알바 노동자들과 직접적 관계가 없다. 10인 이상 사업장만 취업 규칙 의무 작성 사업장에 해당된다. 쉬운 해고도 마찬가지다. 원래부터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쉬운 해고가 가능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부당 해고 구제 신청도 안 된다. 그래서 ‘노동 개악 반대’는 아쉬운 구호다. 알바 노동자들은 이미 쉬운 해고를 당하고 있었고, 최저임금이라 더 깎일 임금도 없다.
기성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많을 것 같다. 평가를 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가장 잘하는 조직이 민주노총이다. 비정규직 단위들이 민주노총 테두리에 있다.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밑밥을 너무 까는 것 아니냐
예전에 현대자동차 3차 부품 공장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민주노총과 현대차노조 욕만 한다. 입사하려면 몇천만 원을 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젊은 비정규직 청년들이 대다수다. 이직률이 높지만 결국 3차 하청 공장에서 맴돈다. 노조가 필요한 사람들이고 비정규직운동의 주체가 돼야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운동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의 고용 세습 같은 문제를 통제하지 못하면 민주노총은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매장을 멈추는 알바 총파업”
개인적인 질문을 하겠다. 병역 거부로 징역형을 살았다. 왜 그랬나
그동안 용산, 밀양, 장애인,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같은 편에 서서 싸웠다. 언제나 그들을 진압하는 것은 국가의 명령을 받은 공권력이었다. 내가 계속 싸우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그 반대편에서 그들을 향해 총을 드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감옥에서 1년 6개월을 살았다.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나
생각만 해도 힘들다. 이번에 연행됐을 때 두 번의 집행 유예가 있어서 구속이 확실하다는 얘기가 있었다. 영장 실질 심사 후 밤 12시 전에 전화가 오면 대개 석방된다. 유치장에서 전화벨 소리만 기다렸다. 그런데 12시가 지나도 전화가 안 오는 거다. ‘아, 또 가는구나’ 하며 회한이 밀려왔다. 서울구치소 간수들 얼굴이 떠올랐다. 감옥에서 사귄 친구도 있다. 만약 가게 되면 그 친구 옆방으로 넣어 달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옥에서는 주로 뭘 했나
감방도 바꿔야 할 것들 천지다. ‘불을 끄지 못하게 하는 건 고문이다, 안대라도 판매하라’고 싸웠다. 온수 목욕은 1주일에 한 번밖에 안 된다. ‘그럼 노약자는 어떻게 하나, 두 번은 하게 해야 한다’고 싸웠다. 가혹 행위 사건을 공론화한 적도 있었다. 징벌방에도 100일 정도 있었다.
원래 그렇게 앞뒤 재지 않는 스타일인가
앞뒤 재는 스타일이다. 감옥도 사회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나 혼자 판단해야 한다. 고립되는 것, 그리고 보복당하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매번 밤을 새우면서 고민을 했다. 문제를 제기할까 말까 그러면서. 그런데 고민하는 시간이 너무 괴롭더라. 그래서 매번 지르게 된다. 그러고 나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2대 알바노조 위원장으로서 목표가 뭔가
조직 사업이 가장 중요하다. 싸우다 해고될 경우를 대비해 해고 기금을 만들어 조합원들의 신뢰를 획득하겠다. 또 다른 목표는 여성주의 노동운동이다. 조직 내에 여성들이 권력을 잡고 주체가 되는 노동운동을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는 ‘알바들의 총파업’을 꼭 해 보고 싶다. 내년쯤에는 수십 개 매장이 동시에 멈추는 알바 총파업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