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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젊은 파견 노동자의 빛을 빼앗았는가

2016년 3월 28일Leave a comment2호By workers

사진/ 홍진훤

시평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 집행위원으로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노력하고 있다.

올해 1월과 2월 인천·부평 인근 지역 전자 업체에서 일하던 20대 파견 노동자 5명이 메틸알코올 급성 중독 증세를 보였고 그중 네 명이 실명했다. 이 사실을 발견한 것은 회사나 고용노동부가 아니다. 시력을 잃은 노동자가 찾아간 대학 병원에 근로자 건강 센터 직업 환경 의학 전문가가 있었기 때문에 메틸알코올 중독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노동자들이 일했던 업체는 삼성전자의 하청 업체였다. 삼성이 지난 1월에 공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은 전년 대비 2.69% 줄었는데 영업 이익은 5.55%가 늘었다. 매출이 줄었는데도 영업 이익이 늘어날 수 있는 것은 원청의 갑질, 즉 하청 업체에 대한 단가 인하 압력 등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의 3차 하청 업체인 이 기업은, 안전하지만 비싼 에틸알코올 대신 싸고 위험한 메틸알코올을 사용했다. 돈이 없다는 이유였다. 노동자의 건강보다 돈을 더 생각한 삼성전자와 하청 업체 모두가 노동자 실명의 책임자이다. 그런데 원청인 삼성은 하청 업체의 안전 보건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사내 하청에 대해서는 원청이 안전 보건에 대한 공동 책임을 지도록 했으나 사외 협력 업체의 경우 원청의 책임을 강제할 아무런 방법이 없다.

또한 이 노동자들은 협력 업체의 파견 노동자였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20대 젊은 노동자들은 파견 업체를 통해 일을 구했다. 제조업에는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나 ‘일시 간헐적 업무의 경우 3개월 파견이 가능하고 3개월 연장’을 허용한 파견법을 편법 활용한 것이었다. 6개월 동안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파견 노동자들은 이 공장 저 공장을 떠돌아야 했다. 기업은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에 안전장치를 설치하거나 안전 장구를 지급하는 대신 이렇게 떠도는 노동자들을 활용했다. 건강 검진 대상에서도 제외해 버렸다. 잠시 일하고 떠날 테니, 설령 문제가 생겨도 책임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권리가 없는 파견 노동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안전하게 일하는지, 불법 파견을 하지는 않는지 점검해야 할 고용노동부는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심지어 첫 번째 환자가 발생한 이후 메틸알코올 사용 업체를

전수 조사 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결국 수박 겉핥기였다. 고용노동부가 조사를 한 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던 사업장에서 또 다른 노동자가 메틸알코올 중독으로 실명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업체가 에틸알코올로 바꿨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적발할 수 없었다”고 변명했지만 결국 현장 조사 없이 회사 말만 듣고 말았다는 것을 실토한 셈이다.

이 참사는 이 사회에서 젊은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준다. 살인적인 취업 경쟁을 벌이다가 그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없어 불안정한 파견직 일자리로 내몰린다. 정부는 비정규직법을 만들고 개악하면서 불안정 노동을 양산하고 기업들은 더 이상 정규직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다. 원청 업체들은 하청 업체를 더 쥐어짜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하청 업체들은 이 노동자들을 위험한 작업에 내몬다. 고용노동부는 단속할 생각도 없고, 혹시라도 운이 나빠서 이 노동자들이 아프거나 다치게 되면 노동자 책임이라고 떼민다. 원청 업체는 돈을 벌고, 고용노동부는 생색내고, 하청 업체는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는다. 오로지 노동자들만이 고통을 당하고 책임을 끌어안은 채 버려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은 이것으로도 모자라 이런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자고 말한다. 소위 ‘뿌리 산업’이라고 하는, 가장 노동 조건이 나쁘고 영세한 제조업에 파견을 허용하자고 한다. 지금까지 편법과 불법으로 활용되어 왔던 파견을 정당화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인 일자리에도 파견을 허용하자고 말한다. 심지어 노사정위원회의 소위 ‘전문가 위원’이라고 하는 이들은 사용자 단체가 파견 업체를 차리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할 때부터 기업에 종속되도록 만들고, 블랙리스트를 합법화하려는 속셈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이 하찮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는 기업의 이윤 논리 앞에 무너지고 있다. 이 노동자들은 어쩌다 운이 없어서 빛을 잃게 된 것이 아니다. 원청 업체와 하청 업체, 고용노동부 중 누구라도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겼다면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참극인데, 기업과 정부의 견고한 카르텔은 지금도 노동자들의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첩첩이 쌓인 왜곡된 구조,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생명과 삶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us l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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