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성지훈 기자
‘불법 파견’ 같은 말이 뉴스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지만 파견 업체는 날이 갈수록 늘고만 있다. 2014년 말 고용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파견 업체는 2468개, 여기서 파견한 노동자는 13만 2148명에 달한다. 1998년 〈파견법〉이 처음 제정된 당시 780여 개였던 파견 업체가 15년 만에 세 배로 늘어난 셈이다. 집계에 잡히지 않은 불법 무허가 파견 업체까지 추정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진다. 이제 파견 업체를 통하지 않고는 노동자를 조달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견 노동자’는 노동 시장의 핵심이 됐다. 그러나 정작 파견 노동자의 근무 조건과 고용 불안은 개선의 기미가 없다.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면서 훨씬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 부당함은 예사다. 사용 업체가 제공한 4대 보험 비용을 가로채려고 노동자에게 4대 보험 미가입을 종용하는 일도 빈번하다. 직접 임금을 착복하는 불법 행위도 부지기수. 제조업 등 파견이 허용되지 않는 업종으로의 불법 파견도 성행한다. 고용노동부는 파견업을 건전하게 운영하면서, 파견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겠다며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근로자 파견 우수 기업 인증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우수 기업’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첫 화면에 보이는 채용 정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루 9시간 노동에 격주로 주말 노동까지 해야 하면서 한 달에 115만 원을 주겠다는 공고가 허다하다. 이 정도가 ‘파견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개선해 건전하게 운영되는 파견업’이라면 도대체 평범한 수준으로 운영되는 파견 노동자들은 어떤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 ‘위클리매드코리아’에서 던질 질문은 ‘파견 노동으로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다. 민주노총이 제시한 2016년 표준 생계비 산출에 따르면 1인 가구의 표준 생계비는 2,572,381원, 2인 가구는 4,647,361원이다. 표준 생계비의 의미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문화 생활을 하면서 건강하게 사는 데 드는 비용’이라면 표준 생계비를 그대로 받으면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표준 생계비 해설 자료에서도 현재 실질 임금은 표준 생계비의 66.4%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힌 현실을 고려해 ‘파견 업체에서 표준 생계비의 66.4%를 받을 수 있는가’로 질문을 조금 수정할 수 있겠다. 1인 가구 표준 생계비 257만 원의 66.4%는 170만 8천 원쯤 된다. 이 숫자는 실수령액이니 세금과 업체 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200만 원 정도의 임금을 확약받아야 한다. 이제 파견 업체에 200만 원 받으러 가자.
# “저희가 결혼 정보 회사도 아니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2010년에 근로자 파견 우수 기업으로 선정된 ㄱ 파견 업체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주로 백화점 캐셔와 카드 회사 전화 상담원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올라와 있다. 캐셔는 100만 원, 전화 상담원은 130만 원 선의 임금이 공지돼 있었다. ㄱ 업체 홈페이지에서는 아무리 뒤져도 200만 원을 주겠다는 회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희망 급여 200만 원이 적힌 이력서를 들고 파견 업체를 찾아갔다. 이력서의 경력 사항은 비워 뒀다. ‘대학 졸업 후 줄곧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다 끝내 낙방한 서른두 살 백수’가 콘셉트다. 을지로 한가운데 위치한 회사는 생각만큼 으리번쩍하진 않았다. 약속 없이 찾아온 손님(구직자)은 처음인지 접객도 어색했다. “이력서를 내기 위해 찾아왔다”고 먼저 밝히자 회의실 한 구석으로 안내됐고 잠시 후 담당자가 나타났다. “보통 인터넷으로 이력서와 지원서를 접수하거든요.” “원하는 조건의 회사가 마땅히 없더라고요.” 월급 200만 원 이상인 업체에서 일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정규직 전환의 기회도 주어지면 좋겠다는 조건을 말하며 이력서를 건넸다. 그는 이력서를 보는 둥 마는 둥 받아 들더니 우선 홈페이지에 공고된 채용 정보에서 원하는 회사를 찾아서 지원해 달라고 했다. “말씀드린 것처럼 200만 원 이상의 수입이 필요한데 공고된 채용 정보엔 200만 원 이상의 임금을 주는 일자리가 없다”고 했더니 그는 “저희가 결혼 정보 회사도 아니고 조건에 딱 맞는 회사를 직접 찾아서 매칭해 드리는 건 아니”라고 한다. 회사의 모토가 “고객의 성공이 회사의 성공”이라더니.
ㄴ 업체는 강남에 있다. 이 회사 역시 2010년에 고용노동부의 파견 우수 기업에 선정됐다. 회사 앞에 있는 카페에 앉아 채용 정보를 들여다보니 여기도 주로 카드 회사의 전화 상담원을 뽑고 있다. 공고된 채용 정보의 카드 회사들은 보통 130만 원의 기본급을 명시했다. 그러나 대부분 여성 우대. 중저음의 둔탁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30대 남성은 애초에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가 별로 없었다. “이력서를 내러 왔습니다.” 여긴 나 같은 막무가내 구직자들이 종종 오는지 접객실에 안내해서 커피도 줬다. 이력서를 받으러 온 담당자도 꼼꼼히 이력서를 훑어본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일단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회사에 지원해 주세요.” 그래도 설명은 친절했다. “우리 회사는 우리 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하기 때문에 파견 업체에서 정규직 전환이 안 되도 고용 불안은 없다”는 설명. 경력이 없는 30대 남자가 200만 원 이상의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업체는 별로 없다는 설명도.
# ‘그럼 어쩌자는 거냐’
우수 기업 인증을 받은 번듯한 회사에서는 주로 전화 상담이나 마트 판매 사원, 건물 청소 등의 일자리를 주선했다. 그런 일자리에선 월 200만 원은 아무래도 힘들다. 업계의 평균 임금이라는 게 있으니까. 불법이지만 제조업 파견이 월 2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겠다. 공단이 몰려 있는 지역의 파견 업체에서는 제조업 공장으로의 파견이 성행한다고 했다.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에 있는 ㄷ 파견 업체를 찾았다. 강남과 을지로에 있는 파견 업체들과는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남/녀 생산직 모집, 반도체 라인 업무, 미싱 시다 모집 등의 전단지가 입구에 잔뜩 붙어 있다. 사무실 안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력서를 내러 왔다고 하자 대뜸 나이와 경력을 묻는다. “서른두 살이고 경력은 딱히 없어요”라고 말하자 ‘그럼 어쩌자는 거냐’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 되돌아온다. 어쩐지 200만 원 받고 싶다는 말을 하면 혼날 것 같은 분위기다. 쭈뼛거리고 있는 틈에 파견 업체 직원은 “힘은 좋게 생겼다”는 말과 함께 빵 공장의 출하 파트에서 일하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얼만데요?” “270.” 일단 임금 수준은 통과다.
빵 공장은 기숙사에 들어가서 일을 해야 하고 주야 맞교대라고 했다. “일단 내일 오후에 공장으로 가서 면접 보시면 됩니다.”
원래 직접 일을 할 계획은 아니었다. 면접에서 200만 원에 정규직 전환이라는 조건을 얘기했을 때 파견 업체나 원청이 보이는 반응을 확인하고 싶은 거였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모자와 마스크를 지급받고 있었다. 면접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대충 훑어보더니 몸에 맞을 것 같은 옷을 내주는 게 면접이었을까. 그나마 맞지도 않는다. 20킬로그램 밀가루 포대를 옮기는데 포대를 들지 못하자 욕지거리가 날아든다. 일 못하고 덩칫값 못 하게 힘 없는 걸로 유명하지만 욕 먹으면 힘이 번쩍 나는 법이다. 포대를 나르기 시작했다. 2시간 동안 포대를 나르고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담배를 피울 수는 없다. 담배를 피우러 가려면 옷도 벗어야 하고 신발도 갈아 신어야 하는데 그럴 만큼 쉬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작업복을 받으면서 듣기론 12시간 근무가 기본인데 2시간 특근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반장에게 말도 못 하고 도망쳤다.
공장에서 나오니 삭신이 쑤신다. 한 달에 270만 원이나 주는 이유가 있었다. 전화를 걸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가기 전까지 온갖 알바를 다 해 봤다던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걔가 예전에 빵 공장에서도 알바를 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10년 전에도 200만 원은 줬다”는 말로 시작한 얘기를 듣다 보니 도망치길 잘했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었다. “너한테 욕했다던 반장 아저씨는 정규직이야. 그밖에도 몇 명은 정규직이고 너처럼 파견 업체에서 온 사람들도 있고, 알바 하러 온 대학생 애들도 많고.” 친구가 빵 공장에서 일할 때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본 2시간의 공정은 너무 사소했다. 쉴 틈 없이 흘러나오는 식빵 사이에 치즈를 올리는 샌드위치 공정이 최악이라고 했다. 눌어붙어 있는 치즈를 한 장씩 떼어 내는 게 가장 힘들다고. 이 공정은 보통 전날 야간 특근을 빼먹은 사람들에게 벌칙으로 주어진다고 했다.
빵 공장에서 파견 업체를 통해 인력을 공급받는 건 불법이다.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에는 파견이 금지돼 있다. 더구나 친구의 설명처럼 반장이나 일부 직원들이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것이라면 ‘도급’이라고 우길 수도 없다. 이런 얘기를 서러운 듯 잔뜩 쏟아 냈더니 친구는 “그런 거 다 따지면 요즘 일할 데가 있는 줄 아느냐”고 말했다. 파견 업체 직원이 날 보며 보낸 눈빛과 비슷한 표정으로. ‘그럼 어쩌자는 거냐’. 세상은 내가 모르는 새 훨씬 더 잔혹해진 모양이다. 200만 원을 벌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 “그런 건 별로 안 중요해”
친구는 지금 반도체 테스트 소켓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다. 꽤 오랜 경력의 관리직이고 정규직이다. “너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파견이야 직접 고용이야?” “거의 파견이야. 외국인들이 태반이고.” 그 이주 노동자들은 안산의 한 이주 노동자 소개 단체에서 파견 업체를 알선해 주고 다시 파견 업체를 통해 고용되는 형태라고 했다. 한국인 파견 노동자들도 이주 노동자들에 비해 수는 적지만 꽤 있다고 했다. 이들은 사주의 친구가 운영하는 파견 업체의 직원이라고 한다. 전문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 대부분 이 업계의 경력자들인데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계약으로 일한다고 했다. 애초에 정규직 경력 사원으로 입사하지 않는 이상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일은 없다고 한다. 굳이 캐묻진 않지만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 (친구는 불법 체류자를 줄여 ‘불체’라고 표현했다)도 상당수일 거라고 했다. 정규직 관리자인 자신과 파견 노동자들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임금 수준도 상당히 낮다는 귀띔도 해 줬다. “6개월, 1년씩 일하면 숙련자가 되기 어렵지 않아? 새로 누가 오면 일도 다시 가르쳐야 하니까 불편하고”라고 물었더니 “글쎄, 워낙 다들 뜨내기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왜 뜨내기가 됐겠냐고.
친구는 제조 공장의 파견 노동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쓰면 공장 돌리기 어렵다는 말도 했다. 공장에 근로 감독관의 단속이 나온 적도 없고 파견이든 도급이든 일단 일 시켜 달라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말도 전했다. 불법이든 아니든 그들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고. 빵 공장에서 고작 2시간 본 걸로 마치 공장 노동자들의 실태를 다 본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듯했다.
# 더 잔혹하고 그래서 명확한
마감을 하기 전, 한 파견 업체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ㄴ 업체에 이력서를 내고 나오는 길에 들렀던 파견 업체였다. “월수 300만 원을 줄 수 있는 사무직”이라는 설명에 혹했으나 듣다 보니 다단계 회사였다. 심지어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네 회사 서버에서 용량을 사고 그 용량만큼 광고를 파는 방식이라고.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가는 데다 빵 공장의 피로도 채 풀리지 않아 됐다고 했다. 다단계 아니냐 물었더니 “그런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는 대답이 왠지 더 사기 같았다.
결국 파견 업체를 통해 제대로 된 삶을 살기는 요원한 일이라는 게 밝혀졌다. 제대로 된 삶을 표준 생계비를 웃도는 임금과 등치시킬 수 없다. 세상은 표준 생계비의 66%밖에 안되는 200만 원의 월급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더 많은 노동, 더 고된 노동, 더 비참한 처우. 이런 것도 견디지 못하면서 이 미친 세상을 살겠다는 것이냐고 묻는 것 같은 파견 업체 직원과 친구의 표정. 그리고 그 혼란의 와중에 걸려 온 다단계 회사의 전화. 마치 고단함의 틈바구니와 그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허망함의 상징 같았다.
정규직 채용, 노조 설립, 4대 보험, 생활 임금. 이런 말들을 꺼내기에 파견 업체와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너무 분주하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는 법과 당위보다 명확하다.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문화 생활을 하면서 건강하게 사는 데 드는 비용’ 같은 말은 마치 세상 모르는 백수 룸펜의 관념어처럼 보일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