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만 편집장
자본주의 경제에서 구조조정은 필연이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경기 변동이며, 시장 경쟁이 격화되면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기업이 망하기 때문에 사양 산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산업 부문으로 진출하거나 과잉 투자된 부분을 조정해야 그나마 숨 쉴 구멍이라도 찾게 된다. 그러나 이런 구조조정은 말이 좋아 구조조정이지 노동자에겐 실업과 같은 의미다. 대규모 산업 재편이나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닥치면 수많은 노동자가 임금이 깎이거나 실업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결국 노동자들은 경기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할 때마다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한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과 야당은 제각각 경제 문제를 거론하며 구조조정 거들기에 나섰다. 기업의 상시 구조조정 체제와 지원을 명시한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은 총선 전에 이미 여야 합의로 통과됐고, 일반 해고와 취업 규칙 변경 완화를 담은 2대 지침은 법률 개정 없이 강행되고 있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 직후 파견업 확대를 담은 노동 4법의 국회 처리를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이에 김종인 더민주당 대표는 “근본적 구조조정이면 정부와 협력할 수 있다”며 실업 대책 마련과 노동자 교육 훈련 강화 등을 주문하고 나섰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또한 “미시적 구조조정이 아니라 거시적 관점에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똑같은 말이다. 한두 달 실업 급여를 더 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실업 대책에는 엄청나게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불황 속에서 되지도 않을 법인세 인상이나, 제도가 시행되기도 전에 자금을 빼돌릴 부유세 도입 같은 세금 타령을 하면서 시간만 보낼 셈인가? 또한, 기업 구조조정에도 (오직 대주주를 살리기 위해!) 많게는 기업당 수십조 원의 자금을 쏟아부어야 할 판이다. 그래서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에 돈을 찍어 주는 양적 완화 얘기까지 나오게 됐다. 어찌 됐든 이런 구조조정 자금은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나와 어디로 가는가?
박 대통령이 총선 직후인 18일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구조 개혁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안철수 대표의 구조 개혁은 큰 차원에서 다르지 않다. ‘공정 성장’이나 ‘이윤 나누기’ 정도로 재벌 지배 체제를 용인하면서 떡고물 나누는 수준을 구조 개혁이라고 말한다면 말장난에 가깝다. 이처럼 정작 중요한 얘기는 입을 닫거나 미뤄 둔 채 저마다 구조조정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꼴이다.
불황의 시대에 이윤은 대자본 즉, 재벌로 집중되고 있다. 재벌 기업만 돈을 벌고 돈을 쌓아 놓고 있다.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에 따르면, 국내 10대 재벌 93개 상장사의 사내 유보금은 549조 6326억 원, 30대 재벌(비상장 계열사 포함 269개 기업)은 753조 6004억 원에 이른다. 사내 유보금이야말로 미래의 상황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유보한 자금이다. 현금이 아니라서 유동화를 못 한다면 그들이 잘하는 대로 증권(ABS, 자산유동화증권)을 만들어서 유통하면 된다. 재벌의 이윤은 재벌 기업 대주주만의 것이 아니다. 상시적인 정부 지원과 국가 자원을 독점해서 얻은 것이다. 이 사내 유보금을 사회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실업 등 구조조정 대책을 현실화하는 유일한 방안이다.
(워커스 7호 2016.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