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첫 노동자 국회의원 윤종오 당선자
김용욱 기자
공안 당국이 애절해 보일 만큼 황당한 행보다. 조선 산업 구조조정이 걸린 울산에서 윤종오 울산 북구 당선자를 집요하게 겨냥했다.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출신인 윤종오 후보와 옆 지역 울산 동구 김종훈 후보는 선거 내내 종북 공세에 시달렸다. 보수 언론은 4.13 선거 도중 구조조정에 내몰린 강성 노조가 두 후보를 지지해 당선이 유력하다고 했다. 특히 검찰은 선거 중 이례적 압수 수색, 선거 직후 다시 두 차례 압수 수색으로 윤 당선자를 탈탈 털었다. 당선자 개인 휴대 전화까지 압수했다. 윤 당선자는 이런 검찰을 두고 “(선거법 위반 사실이) 없는 데도 과도하게 만들려고 하니까 검찰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여유 있게 말했다.
이렇다 보니 윤 당선자의 이후 행보가 관심사다. 윤 당선자는 민중연합당이나 정의당 입당엔 선을 그었다. 윤 당선자는 ‘노동 중심 진보 대통합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4월 21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면회에서도 김종훈 당선자와 함께 이 같은 뜻을 전했다. 한 위원장은 노동법 개악 문제를 당부했다. 이날 오후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회의 끝에 참여해 “이번 선거는 노동자가 똘똘 뭉쳐 제대로 된 진보 정당을 만들어 대응해야 노동법 개악도 막아 내고 노동자 권익도 지킬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다”고 했다.
윤 당선자는 노동자 밀집 지역 울산에서 첫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이 됐다. 1986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겪으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정치에 발 들인 것은 1998년 현대자동차 구조조정(정리 해고) 저지 투쟁을 겪고 난 후다. 현장 투쟁뿐 아니라 노동자 대표를 지방의회나 국회에 보내 정치 세력화를 해야 한다는 노동계 절실함이 발단이었다. 정리 해고 반대 투쟁 당시 윤 당선자는 노조 조직 쟁의 실장을 맡아 늘 집회 사회를 봤고,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 주변 권유로 기초 의원에 나가 얼떨결에 당선됐다. 그렇게 시작한 정치 행보는 이후 울산광역시의원, 울산광역시 북구청장, 국회의원으로 이어졌다. 노동 현장 지지를 넘어 친환경 무상 급식 센터를 추진하고 주부 교실을 여는 등 끊임없이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신망을 얻어 이룬 결과다. 구청장 때는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해 창고형 대형 할인점 코스트코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다가 검찰 고발과 민사 소송을 당해 3억 6천7백만 원 손해 배상 판결을 받기도 했다. 당시 5만여 시민과 국회의원 116명이 윤 구청장 구명 운동에 서명한 일은 유명하다.
윤 당선자는 20대 국회 상임위로 환경노동위원회를 지원할 예정이다. 최우선 목표는 노동법 개악 저지다. 무소속이라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원내에서 정의당과 진보적 의제를 공조하고 노동법 개악 대응 수위를 고민할 예정이다. 다만 정의당 의석 6석에 진보 무소속 2석을 더해도 8석. 윤 당선자는 국회 밖에서 노동계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계를 돌파할 생각이다.
윤종오 당선자의 노동운동 시절부터 지자체장, 이후 의정 활동 계획을 들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공안 탄압에도 61% 득표라는 압도적 지지로 이겼다. 핵심 승리 배경이 있다면
북구 주민과 노동자의 압도적 지지 덕분이다. 정부의 노동법 개악을 막으라는 민중 후보 단일화부터, 민주노총과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지역 노동자들이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여기에 새누리당의 울산 정치 독점을 멈추라는 야권 단일화까지 무사히 성사되는 과정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것 같다. 또 색깔론과 이념 공세가, 더는 지역 주민에게 통하지 않는 것을 넘어 역풍을 불러오지 않았나 싶다.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유권자들의 진정한 판결이 이번 선거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부정 세력은 진보당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임을 주민들이 표로 직접 판결해 준 것이다. 구의원으로 시작한 진보 정치 외길이 시의원, 구청장을 거치면서 충분히 검증받아 온 것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통합진보당에 유권자의 진정한 판결이 내려졌다고 했는데 그 문제가 쟁점이 됐나
상대 후보가 (저를 두고) “통진당의 부활이다. 부활을 막아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종북 색깔론에도 3분의 2 가까운 주민이 저를 선택한 것은 정당 해산 판단이 국민의 몫이지 헌법재판소를 동원해 강제 해산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동의한 것으로 본다. 평가의 기초는 아니지만 평가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모 언론 인터뷰에서 특전사 출신이라고 스스로 소개하던데
특전사 출신이고, 보훈 가족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 때 안보 서포터즈도 띄웠다. 민방위 훈련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구청장 시절) 을지 포커스 훈련도 잘했고, 중앙 정부에서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라는 부분에 최선을 다했다.
검찰 수사가 이벤트로 끝나는 것 같지 않다. 지난 주엔 휴대 전화도 압수됐다
(선거법 위반이) 없는 걸 만들려고 하니까 검찰이 얼마나 힘들겠나. 떳떳하고 당당하다. (검찰이 불법 선거 사무소로 지목한) ‘동행’이란 사무실은 제가 대표로 있을 뿐 누구나 카페처럼 와서 차 마시는 공간이다. 운동원들이 잠깐 쉬었다는 것으로 과도하게 없는 걸 만들려고 하니 검찰이 힘들어 하는 듯하다.
<조선일보>가 울산이 전투적 노동운동의 본산인 데다, 현대중공업 등 경영 악화로 강성 노조가 들어서 노사 대치가 심해지는 상황을 올라타는 모양새(“통진당 먹히는 울산, 안 먹히는 거제”, 2016.4.11.)라고 썼다
완전히 틀린 분석은 아니다. 그러나 표현과 그 원인을 축소하는 보도 방향에 문제가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동안 반노동, 친기업 정책으로 비정규직은 수를 모를 만큼 확산했고, 청년 실업은 사상 최대치인데도 법인세 삭감 등 대기업을 위한 정책은 계속됐다. 노동자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 더 강하게 모이고, 반노동 정책을 심판하기 위한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 강성노조를 탓하기 전에 경제 위기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재벌 총수와 현 정권에 책임을 묻는 것이 우선이다.
민중연합당과 선을 긋고 있는데, 당선자께서는 통합진보당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 통합진보당에 있던 분들이 많이 결합한 민중연합당으로 갈 만도 한데 무소속으로 출마한 배경은
전제를 다소 잘못 들었다. 특정 정당(민중연합당이나 정의당)이 민주노동당에서 통합진보당까지의 진보 정치 역사를 계승한다는 인식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특정 정당 입당보다 현재 분열된 진보 진영을 노동이 중심인 하나의 대통합당으로 모으는 과정이 우선이다. 입당으로 한쪽에 힘을 실어 줄 순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선거 전부터 계속 주장해 왔지만, 확실한 ‘노동 중심 진보 대통합당’을 건설하는 것이 제 입장이다.
구청장 시절 활동은 정의당과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정의당에 참가할 가능성은
앞서도 밝혔지만 특정 정당 참가는 하지 않는다. 코스트코 건축 허가 반려를 비롯한 구청장 시절 다양한 진보 의제들은 어느 정당과 유사하다는 관점이 아니라 진보 정치, 진보 행정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진보 정치인으로는 처음 무소속 당선인데, 김종훈 당선자와 보조를 많이 맞출 것 같다. 혹시 두 분이 당을 만들 계획은 없나
‘노동 중심 진보 대통합당’ 건설에 힘을 모으겠다는 의견은 김종훈 당선자도 다를 바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 형태와 방향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 단체들과 진보적 시민 사회와 함께 고민해 나갈 계획이다.
향후 진보 정치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면
분열된 진보 정치로는 시민에게 희망을 줄 수도, 실현할 힘도 갖기 어렵다. 진보 진영이 다 함께 모여 통합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2014년 북구청장 재선에 실패하고 현대차 공장으로 다시 복귀했다는 이력이 흥미롭다. 16년 동안 정치에 몸담다 다시 공장에 돌아갈 생각을 하면 상당히 갑갑했을 것 같다. 어떤 부서로 갔나
의장 1부로 갔다. 엑센트 같은 차량을 만드는 조립 라인이다. 현장을 떠나 있었지만 컨베이어 노동자라는 생각을 버린 적은 없다. 정치인이 대부분 다시 돌아갈 데가 없는데 있는 게 어딘가?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회사라 해도 공무원 조직을 거느린 한 지역 수장이었던 사람이 현장에 가서 조립 일을 한다는 게 인간적으로 마음이 고될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 자체가 스스로 되돌아보며 담금질하는 시간이었다.
2014년 구청장 패배와 이번 당선에 차이가 있다면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야권 분열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야권 후보가 난립했고, 견해차로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다. 1.8% 차이로 석패했다. 이 경험이 20대 총선에선 단일화로 민의를 모으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생각한다.
현장에서 일할 당시 현대차 노동조합은 노동법 개악 총파업 등에 참가하지 않는 등 적극적이진 않았다. 현장에서 직접 느낀 노동법 개악에 대한 체감은 어땠나
현장에 온도 차는 있지만 노동법 개악을 저지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 한목소리였다. 다만, 지도부가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이 다소 아쉬웠다. 그 결과가 다음 지도부 선거에서 표출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구체 계획이 있다면
민주노총 전략 후보였던 만큼 노동계의 절대적 지지가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여소야대 총선 결과는 노동법 개악을 반대하는 국민의 명확한 의사가 반영된 것이다. 민중 단일화와 야권 단일화에서 확인되듯 뜻을 같이하는 야당과 노동법 개악을 반드시 저지할 것이다.
어떤 상임위를 생각하고 어떤 활동을 계획 중인가
노동자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환경노동위가 첫 번째다. 보좌진 구성은 논의 중이지만, 현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명예 보좌관 같은 제도를 구상해 보기도 했다. 현장 목소리가 국회에 바로 반영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해 볼 예정이다.
쉬운 해고를 막기 위한 입법 활동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 노동법 개악 저지를 넘어 현 노동법이 허용하는 정리 해고까지도 요건을 엄격히 제한해 최소화하도록 할 것이다. 비정규직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특별법을 제정하고 파견법 폐지 추진 등 관련 법 정비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조선소 구조조정 문제가 정치권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 당장 울산 지역 현안인데
백형록 현대중공업 노조 위원장이 일방적 구조조정은 안 된다고 했다. 제가 공감하는 입장은 이런 논의 과정에 노동조합 대표를 참여시켜 논의해야 한다는 거다.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통보하는 방식은 저항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만 가지고 백형록 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와 협의해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나눠 할 생각이다.
여소야대를 만들어 줬더니 야당이 가장 먼저 들고 나온 게 구조조정과 노동법 일부 통과다. 수순대로 가고 있다
국민의당이 매우 우려스럽다. 노동법 개정 문제는 이미 노사정위에서 한국노총마저 탈퇴할 정도다. 전혀 타협점이 없는 상태에서 야당이 먼저 선도한다는 것은 정치 주도권을 잡으려는 목적 말고는 없어 보인다. 야당이 노동계의 목소리를 좀 더 경청해서 대응해야 한다.
마지막 한마디
울산 첫 노동자 국회의원이고, 현장 노동조합 간부를 거쳐 구의원, 시의원, 구청장, 국회의원까지 한 유일한 진보 정치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 중반부터 주목받고 있는데 그만큼 어깨의 짐도 무겁고 무한 책임감도 느낀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사회적 약자 편에서 제대로 대변하는 의원이 되겠다.(워커스 8호 2016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