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파괴 혐의로 구속된 삼성전자서비스 최평석 전무의 선처 탄원서를 써 준 노조 간부 J씨가, 지난 4월 17일 노사 직접고용 합의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J씨는 그간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 블라인드 교섭 이후, 노사 교섭에서 손을 뗐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4월 17일 노사 직접고용 합의 직전까지 J씨는 최 전무와 만난 물밑 협상을 벌였다.
J씨, 4월 둘째 주 최평석 만나 ‘탄원서’로 직접고용 제안
삼성전자서비스지회 “J씨와 무관, 노사 조율로 직접고용 합의”
J씨가 지난 21일 금속노조 경기지부 운영위 회의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지난 4월 둘째 주 최 전무가 J씨에게 만남을 요청해 검찰의 삼성 노조파괴 수사에 대한 대책을 물어왔다. 이 만남에서 삼성이 J씨에게 자회사를 통한 고용 방식을 제안했고, J씨는 ‘직고용 발표’와 ‘삼성 무노조 전략 폐기’ 두 가지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워커스≫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J씨는 “(최 전무가) 직고용은 무노조경영이 사실상 무너지게 되는 것이어서 굉장히 어려운 결정이라고 해서, (최 전무에게) 직고용을 지금 당장 발표한다면 당신이 나하고 (2014년) 교섭라인에 있었다는 사실을 법원에 증명해주겠다, 그러면 당신 죄가 경감되지 않겠냐(고 했다)”고 증언했다.
만남 이후 J씨는 이 사실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J씨는 진술에서 “(최 전무와) 만난 사실을 지회에 얘기했고, ‘흔들리지 말고 직고용 일관되게 밀고 가라’, ‘그러면 가능할 수 있다’라는 의견을 지회한테 줬다”며 “4월 주말쯤 지회로부터 ‘직고용에 대한 합의문을 곧 발표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안 되기 때문에 금속노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긴급하게 보고해야 한다, 그런 주문을 하고 금속과 민주노총에 보고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5월 초, 최 전무는 다시 J씨에게 법원에 사실 증명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J씨는 직고용 후속 교섭에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해 탄원서를 전달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J씨는 탄원서 논란 이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의 요청으로 이와 같은 사실을 함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J씨는 “탄원서 문제가 생겼을 때도 본질은 직고용 쟁취이고 후속사업을 해야 하니, 이상한 논쟁으로 가지 않도록 지회나 다른 데에서 당분간 침묵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침묵을 지키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J씨는 2014년 논란을 일으켰던 ‘블라인드’ 교섭을 주도해 왔던 인물이다. 당시 노동계 내부에서 교섭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을 때도 그는 침묵을 유지한 바 있다. J씨의 진술에 따르면, 2014년 교섭에서 원청 교섭라인이 생겼고 이후 그는 원청과 노조 사이에서 의견을 전달하고 중개하는 역할을 간간이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의 ‘블라인드’ 관행이, 물밑에서 ‘합의’와 ‘탄원서’를 맞바꾸는 ‘딜’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반면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J씨와 무관하게 4월 14일 사측 실무자를 직접 만나 의견을 조율했고, 지회 통합운영위를 거쳐 직접고용 합의에 이른 것이라고 밝혔다. 나두식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은 ≪워커스≫와의 통화에서 “그 문제(직고용에 관한 사측 과의 의견 조율)가 정리되고 난 다음에 J씨가 (지회)사무실에 들러 ‘삼성에서 직접고용과 관련된 논의가 있다’라고 말했다”며 “(당시 J씨는) 우리가 (직접고용) 합의된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인데, 그게(J씨가 지회 측에 직고용 논의 사실을 알린 것) 조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그는 J씨가 탄원서를 작성키로 한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최 전무라는 사람을 통해 조합원들이 지난 5년간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그걸(탄원서를) 받겠느냐”며 “(J씨가) 이걸 (지회에) 얘기했다면 (조합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회가 J씨에게 침묵을 요청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런 부분을 논의한 것 자체가 이상한 것 아니냐”며 이를 부인했다. 그는 현재 금속노조 측에 J씨와 관련한 진상조사를 요청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삼성, 노조 간부 ‘매수’ 과거에도 있었다
현장 노동자들 “강력 처벌” 성명
한편 JTBC는 22일, 삼성이 J씨를 통해 노조가 협력업체별 협약에 ‘날인’을 찍도록 독려하고, J씨의 아내가 운영하는 업체와 계약을 맺기로 문건에 명시한 것을 검찰이 파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이 J씨 뿐만 아니라, 금속노조 중앙간부를 상대로도 포섭을 시도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유순 전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은 2013년 최종범 열사 사망 후, 지회가 삼성 서초 사옥 앞에서 노숙 농성에 들어가기 전 삼성그룹 관계자가 자신에게 ‘상품권이 든 두꺼운 봉투’를 전달하려 했다고 밝혔다.
박 전 국장은 “문성현(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씨가 시골에 있을 때, 삼성 쪽 관계자를 만날 수 있게 다리를 놔달라고 했다. 얼마 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상임고문을 맡고 있던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출신 L씨가 연락해 저녁 식사를 함께했고, 나는 이 자리에서 그룹 차원에서 교섭이 열릴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하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려는 데 (L씨가) 상품권이 든 두꺼운 봉투를 주려고 했다. (봉투를) 받지 않으니까 회사에서 준 거니 계속 받으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J씨의 경우 더 자주 만났으니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내가 L씨를 만났을 땐 교섭이 시작되기도 전이었는데, 교섭 막바지엔 금액이 많이 왔다 갔다 하므로 그런 식으로 (매수)할 가능성이 높다”라고도 말했다. 박 씨는 “결국 삼성이 P(J씨의 부인)씨하고 계약을 한 건데, P씨가 거절을 안 한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삼성이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겠나”라며 “금속노조 역시 크게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금속노조 현장 노동자들의 규탄 성명도 이어졌다. 현대‧기아차비정규직지회,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 등 노조 대표자들은 “삼성노조파괴를 총괄 지시하고 최종범, 염호석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자의 불구속을 주장한 탄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노조탄압에 맞서 가장 앞장서고, 살인자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지 않도록 투쟁해야 할 금속노조 간부가 자행한 반노동자적 행위를 결코 묵과해서는 안 된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제명 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노사 ‘대화 라인’으로 활동해 온 J씨를 상대로 ‘마녀사냥’을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임원들은 지난 21일, 금속노조 측에 J씨에 대한 ‘낙인찍기’을 중단하라는 제안서를 제출했다. J씨의 탄원서가 ‘교섭 전술’이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제안서를 통해 “일각에서는 J집행위원이 개인 욕심으로 삼성의 지원을 받아 탄원서를 쓴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라며 “우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는 ‘직고용’을 이끌어 내기 위한 교섭전술로 탄원서를 활용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금속노조에 J씨가 탄원서를 제출한 경과와 내용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금속노조는 규약규정에 따라 오는 29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J씨의 징계를 논의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