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연 기자 / 사진 김용욱
국가나 자본 등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것은 바로 돈. 시도 때도 없이 덮쳐 오는 벌금과 손해 배상 폭탄 앞에서 투쟁은 위축되고 싸움은 무뎌지기만 한다. 국가나 자본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이란 일반적으로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 가뜩이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벌금 폭탄은 진짜 폭탄보다 더 큰 위협이 된다. 벌금 낼 여력이 있어도 부아가 치미는 건 어쩔 수 없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항의한 것뿐인데 오히려 벌금 폭탄으로 삶을 쪼들리게 하다니. 이보다 더 잔인하고 치졸한 탄압은 없다.
그래서 가진 것 없고 억울한 사람들은 간간이 ‘노역’ 행을 택한다. 〈형법〉 제69조에는 벌금 또는 과료를 납입하지 않은 자는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조항이 있다. 일당을 쳐서 노역장에 갇힌 일수만큼 벌금을 공제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몸빵’이다.
물론 노역을 택하는 이유는 벌금형에 불복한다는 저항의 의미가 담기기도 한다. 2011년 1차 희망버스에 참가했다 벌금 100만 원을 맞은 A 씨. 그녀는 벌금 납부 대신 지난 가을 노역 행을 택했다. “희망버스 참가자 중 첫 번째로 대법 판결을 받았어요. 아직까지 참가자들이 재판을 받고 있어서 판결을 수용하면 안 되겠다 싶었죠. 벌금을 내는 것도 아깝고, 우리 억울함을 항의하기 위해 노역을 살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노역 일당 5만 원. 총 20일을 구치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변 지인이 벌금을 대납했고, 그녀는 3일 만에 석방됐다.
이런저런 집회 참석으로 무려 700만 원의 벌금이 쌓인 B 씨. 그는 지난해 말, 두 번의 노역을 갔다 왔다. 노역을 결심한 건 아니었지만 수배 중에 체포되는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노역을 살게 된 셈이었다. 당시 그는 대학생. 그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대학 친구들이 돈을 모아 벌금을 대납했다. 기말고사 시험은 치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B 씨는 여전히 벌금보다는 노역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하고 있다. “저처럼 마땅한 수입도 없고, 저축도 없는 상황이라면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죠. 최저임금이 6,030원밖에 안 되는데, 언제 돈 벌어서 벌금을 낼 수 있겠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일당 10만 원 받는 일자리 찾기 힘들걸요.”
지난달 29일, 유흥희 기륭전자 분회장이 14일간의 항의 노역에 들어갔다. 유 분회장은 체불 임금을 떼먹고 야반도주한 회사 대표를 만나기 위해 현관 벨을 눌렀다는 이유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노역에 돌입하며 벌금을 대납하지 말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노역의 목적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현실에 항의하기 위해서니까.
그렇다고 노역이 벌금보다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때때로 갖은 수치심에 맞서 싸워야 할 때도 있다. 유 분회장의 경우 서울구치소에서 강제로 속옷 탈의 검신을 당해야 했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에게는 인권조차 허락되지 않는 세상이다.
(워커스10호 2016.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