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기본소득 국민 투표를 놓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77%가 반대한 국민 투표 결과 한쪽에서 ‘포퓰리즘에 맞선 77%의 위대한 승리’라고 자화자찬하는 가운데, 다른 한쪽은 ‘23%의 가능성을 확인한 일대 사건’이라며 극찬을 늘어놓고 있다.
한국 언론의 가장 큰 거짓말은 이 국민 투표 안건이 ‘매월 300만 원을 주는 기본소득’이라는 보도다. 이번 스위스 국민 투표는 헌법 개정안이다. 이 개헌안은 첫째, 조건 없는 기본소득 도입 둘째, 기본소득으로 인간적인 삶과 공적 생활 참여 보장 셋째, 기본소득의 재원과 액수는 법률로 정한다는 내용이다. 개헌안 어디에도 모든 성인에게 2,500프랑(300만 원)을 준다는 구절은 없다(정은희 기자, “스위스 ‘기본소득’ 발의… 진보 진영 내에서도 논란”, <참세상> 2013.10.7).
그러면 ‘매월 300만 원’ 얘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개헌안을 발의한 단체에서 최저임금 등을 고려해 성인은 2,500프랑, 어린이는 625프랑(75만 원)이 좋겠다고 설명했다. 이 비용의 총액은 스위스 국내 총생산(GDP)의 약 3분의 1인 2000억 프랑에 달한다. 이들은 국민 투표에서 기본소득의 규모와 재원 조달 방식 등이 논란되지 않게 일부러 개헌안에 기본소득 액수와 방식을 적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겨레>를 필두로 대부분 국내 언론은 스위스 국민 투표가 매월 300만 원을 받는 기본소득이라며 무턱대고 받아썼다.
만약 발의 단체가 300만 원을 제안했다고 보도한다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도 말해야 했다. 이 단체는 2000억 프랑 중 스위스 국민연금(AHV)과 같은 사회 보장비에서 약 700억 프랑, 소비세(부가 가치세) 인상 등으로 나머지 1300억 프랑을 충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국민연금 등을 없애 기본소득으로 일원화하고, 대표적인 간접세이며 노동자와 서민이 더 많은 부담을 지는 소비세를 인상해서 충당하자는 제안이다.
한편 보수 언론과 대다수 경제지는 77%에 달하는 국민이 반대표를 던졌다며, ‘복지 대신 경제 선택’, ‘복지 포퓰리즘에 맞선 스위스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는 식으로 더 말이 안 되는 주장을 일삼았다. 이 국민 투표를 두고 ‘덤 앤 더머’식 비판과 논쟁이 이루어진 것이다. 스위스 국민이 기본소득을 부결한 것은 기존 복지 제도의 유지가 기본소득보다 더 좋다고 판단한 것이지, 경제를 우려하거나 과도한 복지라서 반대한 것이 아니다. 2014년 말 현재 스위스 1인당 GDP는 8만 4,344달러로, GDP 대비 공적 사회 복지비 지출 비중은 19.4%다. 무리하게 소비세를 인상하지 않고도 1년에 1인당 평균 1만 6,500달러(2000만 원) 이상 지원받고 있는 상황이다.
스위스 노총(SGB)도 “(기본소득에 대한) 가치 있는 대답은 최저임금과 강한 사회 보장이다”라고 답해 기본소득에 반대했다.
기본소득은 좌우 양날의 검과 같다. 국민연금, 노령연금, 건강 보험, 장애인 지원, 빈곤층 기초 생활 보장, 보육비 지원도 그대로 하고 여기에 기본소득으로 매월 300만 원이 아니라 30만 원, 3만 원을 준다면 도대체 누가 반대할까? 하지만 기본소득은 어떤 형태든 기존 복지 제도를 없애고 흡수하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즉, 기존 복지 제도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기본소득이 자리 잡힌다. 좌파보다 우파 일각에서 기본소득에 더 열광하는 이유도 바로 기본소득으로 기존 복지 제도를 일원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의 기본소득론자들도 유난히 낮은 한국의 조세 부담률을 근거로 조세 부담률을 10%만 높이면 30만 원의 기본소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만약 어떤 형식이든 조세 부담률을 10% 더 높일 수 있다면 왜 그 재원을 기본소득 형태로 나눠줘야 하는가? 65세 이상 노인 인구에게 분배하면 현재 20만 원인 기초노령연금보다도 훨씬 더 많이 줄 수 있고, 최악의 노인 빈곤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노인 빈곤이 사라져 노후가 안정될 수 있다. 재원이 있다면 기본소득보다 더 좋은 곳에 쓸 수 있다. 기본소득을 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
게다가 기본소득은 공적 부문을 약화하고 시장 지배를 강화한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공적으로 직접 지원하는 사회 보장 서비스 대신 현금으로 주고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국가가 지원하는 국민연금이 없어졌으니, 기본소득을 아껴서 저축하거나 민영 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다소 극단적인 형태로 건강 보험이 기본소득과 통합된다면, 국가의 건강 보험 지원은 없어지고 기본소득으로 의료비 전액을 병원에 직접 지급하거나 삼성생명과 같은 민영 의료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기본소득 논의는 임금 투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임금 외에 다른 방식이 있다는 사고를 열어 줬다. 그리고 누구나 보편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기본적인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상기시켰다. 자본주의 장기 불황과, 알파고로 대표되는 기술 혁신에 줄어드는 일자리 대책으로 국가의 소득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일깨웠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후기 자본주의의 특징을 ‘소비 자본주의’라고 했던가. 결국 기본소득도 ‘소비’를 유지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소득이 우리의 제한된 상상력을 풀어 줬다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워커스14호 2016.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