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과 ‘착한 소비’는 무엇이 내 몸을 망치는지 모르는 화학 물질 자본주의 시대에 대안적 삶을 연결하는 키워드다. 스타벅스는 최고의 품질 기준과 윤리적 거래, 친환경 방식에 의해 재배되는 커피라며 착한 소비 공정 무역을 내세워 대량 소비 시스템 속 고가의 틈새시장을 키웠다. 착한 소비는 새로운 소비 시장을 창출하고, 친환경은 어느 경계부터 친환경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상황에 놓였다. 친환경, 착한 소비란 이름의 높은 가격은 가난한 소비자를 고민에 빠져들게 한다.
지난해 인터넷이나 여러 매체 등에서 흥미롭게 등장했던 ‘노푸(‘No 샴푸’의 줄임말)’ 머리 감기 사례를 보면 높은 가격 친환경과 착한 소비의 모순을 이해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화학 물질의 위험성은 여러 생활 제품에 의심의 촉각을 드리웠고, 인터넷을 뒤져 보면 샴푸나 화장품 등의 문제점이 널려 있다.
화학 샴푸와 화장품의 문제점은 주로 천연 화장품, 유기농 화장품 등을 파는 생협과 중소 업체에서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별생각 없이 미용에 좋다고 사용한 비누, 샴푸, 로션, 치약, 화장품, 자외선 차단제 등에 함유된 독성 물질을 읽다 보면 곧 암에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좋은 향기를 품고, 피부나 머릿결을 촉촉하게 할 것 같은 제품에 담긴 두려움은 노푸를 이끌었고, 많은 블로거가 이에 대한 경험담을 썼다. 포털 사이트에서 ‘노푸’를 검색하면 샴푸를 얼마간 사용하지 않아 비듬도 줄고 머릿결도 나아졌으며 머리가 빠지지 않는다는 경험담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단점은 머리 감을 때 기름기가 잘 제거되지 않는다는 정도? 하지만 노푸 역시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블로거의 글을 읽고 A 씨는 7개월여를 노푸로 살았지만 매일 비듬과 붉은 딱지가 일어나고 부스럼이 생겨 고생했다. 부스럼이 가라앉지 않자 그는 화학 샴푸보다 두 배 이상 비싼 친환경 샴푸나 비누를 찾았다. 비싼 가격 때문에 주저했던 친환경 상품 소비의 계기가 된 것이다.
친환경 제품은 화학제품보다 상대적으로 비싸다 보니 주변에서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정보 얻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인터넷에 정보를 의존하다 생협 홈페이지를 찾게 된다. 생협에 들어가면 무농약, 유기농, 무항생제 등 각종 안전 먹거리를 접하게 된다. 생협은 친환경 농산물 외에도 소비재 전반을 판매한다. 친환경 아이스크림부터 친환경 샴푸와 비누, 베개까지 품목이 다양하다. 친환경 제품 중엔 첨가물이 있는 것도 많다.
A 씨는 “천연 재료에서 뽑아냈을 것 같고, 유명한 생협에서 친환경이라고 하니 신뢰가 갔다”며 “친환경 앞에선 돈이 문제가 아니다. 몸에 좋다면 생협이 인증한 친환경 제품을 사고 싶어진다”고 덧붙였다. 또 “농약도 없고, 화학 물질도 없는 제품을 쓰는 데다 소규모 생산자에게 적절한 가격을 지불한다 하니 비싸도 주머니를 열 만했다”고 말했다.
친환경 착시 효과, 가난한 사람을 노리다
이렇게 친환경과 착한 소비가 무조건 좋게 인식되면서 친환경 제품은 신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A 씨가 구입한 샴푸는 ‘무 파라벤, 무 실리콘, 무 인공 색소’라고 적혀 있지만, 성분 표기에는 하이드록시에칠셀룰로오스, 디소듐코크암포디아세테이트, 라우라미도프로필베타인, 다소듐라우레스설포석시네이트 등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10여 가지 화학 성분이 포함돼 있었다. 생협에서 파는 친환경 제품이라 믿고 비싸게 샀는데 막상 받고 보니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파는, 진짜 친환경인지 알 수 없는 제품과 뭐가 다른가 싶었다. 식품 대기업들이 커피나 소세지에 논란이 되는 화학 첨가물을 빼고 다른 첨가물로 대체해 안전한 것처럼 홍보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문제는 옥시 사태처럼 국가의 태만 속에 자본과 결합한 거짓말을 소비자는 감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더 안전하다며 대체한 첨가물이나 식물 추출물을 믿을 수 없는 건, 과학이 검증이 아닌 ‘착시 효과’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각종 첨가물이 안전하다는 입증도, 인체에 유해하다는 입증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지만, 과학의 이름으로 먹어도 문제없다는 태도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 피해자가 나올 때야 유해성을 알 수 있다.
식량 증산 기술과 유전 공학의 시대를 찬미했던 1980년대에는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았다. ‘라이거’라는 동물을 만들 수 있고, 쌀나무에 토마토가 열리게 된다는 유전 공학 신화는 풍족한 미래를 여는 듯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 시대가 열렸다. GMO 역시 유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해마다 우리나라 유전자 변형 농산물 수입량은 1000만 톤에 이른다. 식용 GMO는 220만 톤 규모다.
친환경 착시 효과는 GMO 식품에서도 발휘된다. 대표적인 수입 유전자 변형 농산물인 콩은 두부와 콩나물, 식용유 등의 재료다. 시중 마트에서 수입콩 두부와 국산콩 두부 가격은 두세 배 정도 차이 난다. 아직 GMO의 위험성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싼 수입콩 두부에 손이 간다. 혹시나 하는 불안도 응고제나 소포제를 쓰지 않는다는 표시로 잠재웠다. 콩나물도 수입콩과 국산콩 가격 차이가 크다. 몇몇 식용유는 ‘콩 100%로 국내에서 직접 만든 콩기름’이라 홍보한다. 성분 표기를 보면 100% 수입산 콩을 사와 국내에서 기름을 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용유는 가격이 싼 데다 ‘국내’라는 착시 효과로 대형 마트에서 잘 팔린다. 가난하지만 친환경 필요성을 느끼는 소비자에게 착시 효과를 이용한 마케팅이다. 설령 GMO가 안 좋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착시 효과 덕에 ‘국가가 허가했는데 먹어도 괜찮겠지’ 한다. WHO(세계보건기구)가 화학 첨가물 소시지류를 1급 발암 물질로 지정한 것처럼 GMO의 위험성도 언제 문제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눈감고 먹는다. 국가와 자본을 믿고 ‘콩은 우리 몸에 좋은 거니까’ 위안하며.
기술이 만든 기능성 착시 효과, 아웃도어 시장
“지난주 어버이날이었잖아. 글쎄 큰애가 블랙야크 등산복을 풀 세트로 사 줬어. 100만 원은 될 텐데, 이거 봐.”
“나는 메이커도 없는 등산복을 사 주던데. 차라리 돈이나 주지.”
어버이날이 지난 어느 주말, 서울 은평구의 한 근린 생활 시설 운동 기구 앞에 모인 노인들 대화다. 한동안 중고생 사이에서 부모 등골 브레이커로 노스페이스 아웃도어가 유행했다면 최근 몇 년간 노인들 사이에선 자식 등골 브레이커로 블랙야크나 코오롱 아웃도어가 유행했다.
해외 여행 중 형형색색 아웃도어를 입고 돌아다니는 동양인을 보면 대부분 한국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은 아웃도어의 나라가 됐다. 방수와 투습성 기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어텍스 원단에 수증기를 내뿜는 광고의 한 장면은 아웃도어 환상을 이끌었다. 아웃도어 업계는 기능성 의류에 방수, 속건성, 가벼움 등의 신화를 덧칠하고 건강 이미지를 더해 고가 정책을 이어 갔다. 고어텍스 같은 기능성 의류만 입으면 가볍고 땀도 안 차고 산을 날아다닐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착한 소비나 친환경이 소비자의 건강과 몸을 생각하는 마케팅으로 소비 심리를 자극하듯 스포츠-아웃도어 기능성 의류도 비슷한 마케팅으로 자리 잡았다.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르고, 강가를 뛰다 보니 더 편하고 가볍고 탁월한 기능성에 목말라 간다. 수년 전 고어텍스 재킷은 남극 바다에 빠진 한국 연구원의 목숨을 살린 의류로 소개되고, 투습성과 방수 기능 광고가 판을 치면서 꿈의 의류가 됐다. 고어텍스는 여름 산행에도 필수 의류처럼 소개되고 있지만 사실 아무리 얇은 고가의 고어텍스라도 여름에는 더워서 입을 수 없다. 폭우가 쏟아질 땐 1,000원짜리 얇은 우비가 방수에 더 훌륭하다. 등산이 취미인 B 씨는 “고어텍스 한 장만 있으면 위급할 때 생명 유지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구입했지만, 친구들 만날 때 평상복으로 더 입고 다닌다”고 했다.
이런 기능성 아웃도어가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국제 환경 단체 그린피스는 지난 2월 블랙야크와 노스페이스 일부 방수 재킷 등에서 독성 화학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C)이 검출됐다며 사용 중단을 요구했다. PFC는 아웃도어 제품의 방수와 발수 기능에 사용하는 물질이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PFC는 발명된 지 반세기가 지나서야 유해성이 알려졌고, 분해되지 않은 채 체내에 축적돼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기술 신화의 새로운 부작용이다.
빈부 격차의 상징 된 고가 아웃도어와 고가 친환경
고어텍스 거품이 꺼져 갈 때 기능성 의류는 냉감 소재라는 이름으로 또 출렁거렸다. 냉감 소재 기술 역시 착시 효과가 크다. 한여름 불볕더위에 유용하다고 광고하지만, 뜨거운 여름에 운동하거나 산에 입고 가도 광고처럼 시원함을 느끼기 어렵다. 면 100%보다는 빨리 마르지만 땀이 많은 사람에겐 너무 착 달라붙어 더 불편하다.
등산복 중심의 기능성 신화가 아웃도어 성장을 이끌지 못해서인지 2015년 여름엔 갑자기 래시가드 열풍이 불었다. 각종 쇼핑몰과 대형 마트, 백화점 매대에 쏟아진 래시가드 열풍은 레저 업계와 언론이 만든 상술이었지만, 여름 바다에 래시가드 한 장 없이 가면 창피할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포털에서 래시가드를 검색하면 “자외선 차단과 체온을 보호하는 기능을 동시에 갖춘 수상 스포츠용 의류로 스판덱스와 나일론 혹은 폴리에스터로 만든 스포츠 의류의 종류”라고 돼 있다. 2015년 7월 12일 자 <아시아투데이>에 실린 “‘비키니는 옛말’ 휴가철 필수 아이템 래시가드 관리법”이란 래시가드 광고 기사는 “올해 긴 소매 상의, 무릎까지 오는 팬츠 타입 하의로 이뤄진 스윔 웨어 ‘래시가드’의 인기가 거세다. 비키니 등 과감한 노출을 통해 휴가지에서 몸매를 과시하던 과거와는 대조적이다”라고 소개했다. 또 “특히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계곡이나 바닷가 바위, 산호초, 모래 등에 긁혀 상처를 입는 것을 방지해 준다”고도 썼다. 원래 전문 해양 스포츠 웨어인데 자외선도 차단하고 물속에서 체온도 보호해 주고, 비키니와 달리 살을 감추면서 몸매 곡선도 돋보이게 하고, 상처 보호 기능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지구 방위대 어벤저스 유니폼이다.
래시가드는 저가 쇼핑몰에선 2~3만 원대다. 아웃도어나 스포츠 의류 전문 업체 제품은 7~10만 원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대부분 착 달라붙는 두꺼운 폴리에스터와 폴리우레탄 등이 주 원단인데 싼 편이 아니다.
래시가드의 기술적 신화도 과장돼 있다. 물속에서 체온을 보호한다는 것은 그저 물에 잘 마르는 긴 팔을 입어서이지 그 자체로 발열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상처 보호 기능이란 것도 모래에 쓸리는 것 정도를 방지할 뿐, 바위에 심하게 부딪혀도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맨몸이 아니니 당연히 자외선은 차단하고, 신축성이 좋고 달라붙어 물에 휘감기지 않아 편한 정도다. 1년에 딱 하루나 이틀 입기 위해 래시가드를 굳이 사지 않고, 잘 마르고 잘 늘어나는 가벼운 긴팔 운동복을 입어도 물놀이를 즐기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자본과 언론은 마치 래시가드가 신소재인 양 착시 효과를 만들어 여름 바닷가를 래시가드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 시장이나 기능성 의류 시장은 내 몸을 위한 투자에 아끼지 말자며 소비자 주머니를 노린다. 전국 430여 개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1,500여 가지 상품을 판매하는 친환경 유기농 브랜드 초록마을이 대표적이다. 1999년 <한겨레>가 설립해 대상그룹이 인수해 운영하면서 고가의 고급 친환경 이미지를 만들었다. 초록마을은 자사 홈페이지에 “우수한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산지와 농가를 발굴하고, 판로 지원을 통해 농가의 안정적 소득 확보와 안전한 농산물의 생산량 증대 및 생산 수준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착한 소비를 강조했다. 초록마을 두부는 4,200원으로 일반 두부보다 네 배 정도 비싸다. 그나마 생협은 협동과 연대를 지향하며 덜 자본주의적인 방식을 찾으려 하지만 친환경 제품 앞에서 느끼는 빈부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노스 패딩이 빈부 격차의 상징이었듯 화학 자본을 통제하지 못한 채 여유가 되는 사람만 먹는 친환경 먹거리는 새로운 빈부 격차의 상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