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인 2006년. 연세대학교 학생 2명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포럼에 참석해 대학 청소 노동자의 노동 조건 전수 조사를 했다. <근로기준법> 위반이 허다했고, 최저임금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늘 가까이에서 봤던 어머니, 아버지들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학생들을 모아 머리를 맞댔다. 10~15 명이 모였다. 건물을 나누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어머니들을 만나 인사하고 커피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몰래 만나기도 했고, 학생회에 제안해 명절 때 쌀을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 대동제가 한창이던 교정에서 노조가 결성되어 있던 고려대 청소 노동자를 초대해 어머니들과 같이 만나기도 했다.
건물마다 주체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 일이 터졌다. 아주머니들 사이에 신처럼 군림하던 하청 업체 ‘김부장’이 있었다. 그는 청소 노동자들에게 감자탕 한 그릇을 사 주며 자기가 다니는 교회 청소까지 시켰다. 백양관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리가 아파 교회 청소를 빠졌더니, 김부장이 노동 강도가 센 건물로 인사이동을 시킨다고 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모였다. 학교 본관에 가서 관리 감독 책임을 물었고, 용역 업체 사무실을 찾아가 강제 인사 발령 중단과 휴게실마다 김부장 이름의 사과문을 게시할 것을 요구했다. 자신들 위에 신처럼 군림하던 김부장의 사과문이 나붙은 걸 본 청소 노동자들의 마음에 자신감이 솟아났다. 김부장 편에서 고자질하던 노동자들도 정리됐다.
교회 청소까지 시킨 하청 관리자
그날 이후 급물살을 탔다. 2008년 초 노조 가입 원서를 들고 학생회관 4층으로 모여든 노동자들이 30명이 넘었다. 일주일 뒤 300명으로 불어났다. 연세대 학생들과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가 1년 넘게 준비했던 청소 노동자와의 만남은 이렇게 멋진 결말을 맺었다. 노조 설립 이후 다시 학생들이 머리를 맞댔다. 한글을 모르는 어머니들이 계셨다. 한글 학교, 컴퓨터 교실을 열었다. 근로 계약서를 읽고, <근로기준법>을 알고, 사용자들과 직접 부딪힐 수 있도록 지원했다. 풍물패 소모임도 만들어졌다. 청소 노동자와 학생 풍물패가 함께 노동절 집회에 참가했고, 2008년 5월 2일부터 시작한 광우병 촛불 집회에도 함께 참여했다. 어느 날, 청소 노동자들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광주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 2009년 5월 청소 노동자와 학생을 태운 관광버스는 망월동 묘역을 찾아 참배했고, 전남대 교정에서 술잔을 들며 살맛 나는 세상을 노래했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와 연세대 학생들의 모범적인 공동 활동은 지역으로 급속히 확대됐다. 이화여대, 서강대, 홍익대 등 서부 지역에서 조직화 사업의 주체를 발굴했다.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를 통해 세종대에서 청소 노동자 연대 사업하는 학생들과도 만났다. 차례로 노조가 만들어졌다.
서울여대 학보 백지 발행 사건
지난해 5월 27일 서울여자대학교 본관. 학교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지키던 노동자들이 한 달 넘게 일손을 멈추고 있었다. 이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다른 학교에서는 이미 폐지된 토요 근무에 시달려야 했고, 새 하청 업체는 월급을 또 깎았다. 1년 전에는 경비 노동자 40%를 해고했다. 다른 대학들처럼 해 달라고 했지만, 학교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서울여대 계약직으로 일하며 120만 원밖에 못 받는다”고 말했다.
파업 36일 차. 서울여대를 찾은 노동 사회 단체는 “교정을 아름답게 만드는 청소 노동자의 두 발을 응원한다” 며 이들의 발에 양말을 신겨 드렸다. 기자 회견을 열어 “세상에는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일과 필요하지 않은 일이 있을 뿐”이라며 “서울여대를 쓸고 닦고 지키는 일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못지않게 필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간식 400여 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전달하며,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노동의 소중함을 알렸다. 서울여대 총학생회가 축제를 앞두고 학교 미관을 해친다며 노동자들이 걸어 놓은 현수막과 소원지를 철거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졸업생 성명서를 게재하려던 서울여대 학보사가 학교 측의 반대에 부딪히자 학보사는 이에 대한 항의로 신문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2015년 5월 26일 자, 606호). 이는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이틀 뒤인 5월 28일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서울여대분회는 △시급 6,550원(350원 인상) △식대 1만 원 인상 △토요 근무 격주 시행 등에 합의했다.
청소 노동자 노조 설립 바람 10년
서경지부는 올해 열 살이 됐다. 대학 직원이었던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외환 위기 이후 용역 업체로 팔려나갔고, 최저임금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 2000년 서울대와 2004년 고려대에서 청소노동자들의 노조가 만들어지고 2007년 산별 노조로 전환하면서 노동조합의 바람이 불었다. 연세대에서 학생들의 적극적인 연대와 지원으로 분회가 만들어진 후 2009년부터는 공공운수노조가 진행한 ‘따뜻한 밥 한 끼의 캠페인’을 통해 많은 청소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뭉쳤다. 유령 취급을 받았던 이들이 당당한 대학 구성원으로 태어났다. 나아가 서울시립대는 서울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처음으로 용역 업체 소속이 아닌 대학 정규직 직원이 됐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서울 17개 대학을 비롯해 40개 분회 3,000명의 조합원이 있다. 지난 3월 30일 소수 노조인 중앙대를 제외하고 17개 분회 23개 용역 업체를 대상으로 집단 교섭을 벌여 청소 노동자 시급 6,950원, 경비 노동자 6,060원, 식대 10만 원, 명절 상여금 각 25만 원 등에 합의했다. 최저임금보다 920원 높은 임금을 합의해 최저임금을 견인하고, 통일 단체 협약으로 학교 내 비조합원들 노동 조건까지 끌어올리는, 산별 노조 본연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본격적인 산별 노조 운동이 전개된 지 15년이 넘었다. 현대차를 비롯해 대기업이 산별 노조로 전환한 지 꼭 10년이 됐다. 그러나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는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속노조는 현대차를 비롯해 대기업을 산별 교섭으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공장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부품사의 격차는 더욱더 커져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산별 노조의 원칙은 멀어진 지 오래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고용 안정의 방패막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서경지부는 서울 지역 비정규직 운동의 모범으로 성장했다. 학교와 용역 회사가 친기업 노조를 육성해 교섭권을 가져간 중앙대의 사례가 확산할 수도 있다. 앞으로 민간 빌딩의 청소·경비·시설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원청의 사용자성을 쟁취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구권서 전 서경지부장은 “자본가들도 부단히 자기 변화를 시도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정체하는 순간 바로 퇴보한다”며 “노동운동은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서울 지역 학생들과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연대는 서로를 성장시켰다. 학생들에게 배운 노동자들은 자신의 학교를 살맛 나는 일터로 변화시키고 있고, 노동자들에게 배운 학생들은 또 다른 일터로 나가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힘을 쏟고 있다.(워커스 18호. 2016.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