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사이신을 왜 사람 얼굴에 쏘는 거예요?” “방패를 들고 있으면 안 됩니다. 방패는 공격 장비가 아니니 내리세요!”
경찰 폭력이 예상되는 큰 집회에 가면 형광색 조끼를 입고 경찰에게 목소리를 높여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쏟아지는 물대포 앞에 서 있기도 하는 그들은 경찰의 폭력을 감시하는 ‘인권 침해 감시단’이다.
인권 단체들이 인권 침해 감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반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집회다. 당시 정부는 아펙반대부시반대부산시민행동(부산시민행동)이 낸 237곳의 집회 신고를 모두 ‘불허’하고, 테러 예방이라는 명분으로 지하철역에 있는 사물함을 일방적으로 폐쇄하고 현역 군인을 배치할 정도였다. 이에 인권 단체들은 처음으로 파란색 조끼를 입고 경찰 폭력을 감시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경찰의 인권 침해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하면서도 대중적으로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방법, 대중 운동과 결합할 수 있는 방식에 관해 고민하면서 ‘경찰 폭력 대응 팀’을 만들었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2004년 인권운동사랑방, 다산인권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인권연대 등 37개 인권 단체들이 모인 연대 모임이다.
이후에도 인권단체연석회의는 경찰의 인권 침해 감시 활동을 지속했다. 2006년 평택 대추리 미군 기지 확장 반대 투쟁, 포항 건설노조 하중근 열사 사건, 2007년 FTA 저지 집회, 뉴코아 이랜드 비정규 노동자 투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려는 경찰을 감시했다. 감시 활동은 경찰이 <경찰관직무집행법>이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등을 잘 지키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시위대 앞에서 경찰들에게 불법적인 행동과 인권 침해적 행동을 지적하고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시위대에게 <인권을 지키는 시위대를 위한 안내서>라는 인권 침해 감시/권리 카드를 나눠 준다. 그 외에도 2005년 고(故) 전용철, 홍덕표 농민 열사와 관련한 진상조사단 결합, 경찰기동대 해체 기자 회견 등의 활발한 활동도 했다. 초기 경찰 폭력 감시 활동을 벌였던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이렇게 말한다.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이 폭력을 휘둘러도 힘 대 힘의 관계에서 힘이 밀리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인권 활동가들이 경찰 폭력을 감시하고 경찰이 지켜야 할 수칙을 알려 주면서 집회 참가자들도 스스로 권리를 알게 됐다. 경찰에게 조목조목 따지고 싸우는 것을 보던 집회 참가자들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고민하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앞에 싸우던 인권 활동가들의 인권 침해 감시 활동은 비폭력 저항 활동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시민들은 어떻게 비폭력적으로 싸울 수 있는지 알게 된 거 같다.”
인권 침해 감시 활동에 공신력이 생기기까지
감시 활동을 지속해서 하다 보니 경찰이나 시민에게 인권 침해 감시 활동에 대한 공신력이 생겼다. 2008년 촛불 집회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하는 인권 지킴이와 헷갈리기도 했다. 매번 인권 침해 감시단 조끼가 부족해져 여러 번 제작하다 보니 조끼의 색과 모양이 바뀌어 ‘짝퉁 인권 침해 감시단 판별’이라는 글이 인터넷에 돌면서 오해를 사기도 했다. 2008년 인권단체연석회의는 ‘공권력 감시 대응팀’을 구성해 집회 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 감시만이 아니라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개정, 경찰 장비 감시 등도 안정적으로 한다. 인권 활동가뿐 아니라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학자들, 민변 변호사들도 함께하고 있다.
감시단은 2008년 촛불 집회처럼 경찰 폭력이 극심하거나 심각할 것으로 보이는 집회를 앞두고 구성한다.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나 2014년 세월호 추모 집회, 2015년 민중 총궐기 집회 등에서 인권 침해 감시단을 구성해 활동했다. 지금은 경찰 폭력이 예상되는 집회를 앞두고 인권 침해 감시 활동을 해 달라는 요청이 오기도 한다. 2008년부터 공권력 감시 대응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여전히 감시 활동 중 인권 활동가들이 연행되거나 사진 채증으로 소환장을 받는다고 했다. 나아진 점은 인권 침해 감시 활동에 관한 사회 인식이라고 짚었다.
“지속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인권 침해 감시 활동의 공적 성격이 인정받은 것 같다. 게다가 조끼를 입고 하니까 잘 드러났다. 집회가 끝난 후 보고서를 쓰고 국회에서 인권 침해 보고 대회 등을 하면서 사회적 인식이 바뀐 것 같다. 여전히 인권 활동가들이 재판정에 가면 판사는 ‘너희들이 누군데 공권력을 감시하냐’ 그러지만 인권 침해 감시단으로서 재판에서 증언도 하고 국제 사회에 보고도 하다 보니 공신력이 생겼다.”
최근에는 법원에서도 인권 침해 감시 활동을 인정하는 판결이 줄을 잇고 있다. 2014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1년 반값 등록금 집회에서 감시 활동을 하다 <일반교통방해죄> 혐의로 기소된 최은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시종일관 외관상 명백히 눈에 띄는 형광 연두색 조끼를 착용하고 있는 점, 거기에는 전후면 모두 ‘인권 침해 감시단’ 또는 ‘인권단체연석회의’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는 점, 시위대와 경찰 양쪽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등 시위와 집회의 현장에서 경찰력 행사를 감시하는 모습으로 발견할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집회 시위 참가자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집회 시위의 권리 확보를 위한 과제
대규모 집회를 전체 감시하기에는 감시단 인원이 적어 시민들의 제보나 기자들의 협조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인권 침해 감시 활동은 어려움이 많다. 랑희 활동가는 사람들이 집회 시위의 권리를 충분히 누리기에는 남은 과제가 많다고 전했다.
“집회 시위의 권리는 집회 참여자들의 힘과 그것을 막으려는 경찰들의 힘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2008년 촛불 집회의 힘으로 야간 집회 금지 조항이 삭제된 것처럼. 그런데 경찰은 폴리스 라인이나 소음 규제 등 더 세세한 부분에서 집회 권리를 조여 온다. 지금도 경찰은 야간 집회 금지 등 법 개정안을 국회에 계속 들이민다. 20대 국회에 경찰 출신이 8명이다. 그만큼 경찰의 입김으로 집시법 후퇴 등이 쉬워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