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파견 제도가 얼마나 불합리한지 알고 있으면서도, ‘<파견법>을 폐지하자’는 말이 선뜻 나오질 않는다. 왠지 너무 대책 없고 과격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혹은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비칠까 봐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왜 우리는 명백한 문제가 있는 법 제도를 굳이 껴안고 살아야만 하는 걸까. 혹시 정부와 자본이 끊임없이 주장해온 파견의 정당성이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이식돼 있는 건 아닐까? 《워커스》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파견법> 폐지’의 목소리를 가로막는 소소한 오해들을 해소해 보고자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우리 사회에서 ‘<파견법> 폐지’는 정말 불가능한 걸까? 이 질문에 김철식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전문연구원,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 등 4명의 전문가들이 답했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대에 고소득, 고용안정 모두 충족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잖아요. 그런 면에서 정부의 고소득(근로소득 25%이내, 연봉 5천 600만원) 전문직 파견 확대처럼 고용불안을 임금으로 보전하는 것이 차라리 합리적이지 않나요?
김철식 연구원 질문자님의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파견 일자리가 정규직 일자리보다 고임금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올해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파견, 용역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이 150만 원입니다. 정규직 311만원의 48.2%에 불과한 거죠. 즉 파견 일자리는 고용도 불안하고 임금도 적은 좋지 못한 일자리입니다. 결과적으로 파견 노동의 확대는 임금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간접고용 일자리가 확산하면, 기업은 정규직, 직접고용 일자리를 간접고용 일자리로 대체하려는 유인을 갖게 되겠지요. 결국 노동자들은 과거보다 질이 낮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할 수밖에 없고, 사회 전체적인 임금 수준은 하락하게 되는 겁니다.
정부의 파견법 개정안은 대기업 완성차의 불법파견 문제를 은폐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개정안에는 교사나 기자, 간호사 같은 직업도 파견을 허용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어요. 무슨 의도인지 잘 모르겠어요.
김철식 연구원 개정안에는 파견과 도급의 구별 기준을 축소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요. 현재 법 기준으로는 현대차 등 제조업 사내하도급이 불법파견의 지위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파견과 도급의 기준을 축소해 불법파견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하려는 거지요. 파견법의 역사를 보면 1998년에는 파견허용 업종을 26개로 규제했어요. 이후 법개정으로 파견 허용 업종이 32개로 늘었고요. 2012년에는 새누리당이 <사내하도급법안>을 발의해 제조업 생산직 파견을 허용하려 했어요. 이번 개정안에는 뿌리산업과 고령자를 포함해 교사, 기자, 간호사 등 파견 허용 업종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이후에는 더욱 많은 업종에서 파견을 허용하려는 개정안이 발의되겠지요. 이렇게 되면 사실상 모든 일자리에서 파견이 전면화 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고령자를 경력과 무관한 곳에서 정규직으로 고용할 리는 만무하지 않나요? 요즘은 은퇴 후 경비 일자리 찾기도 힘들다고 해요. 고령자들에게 ‘고용 형태’보다 시급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인 ‘일자리 확대’가 아닌가요?
김철식 연구원 파견 노동을 확대하는 것이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파견은 일자리 중개일 뿐이잖아요. 파견업체가 중개하는 일자리가 확대된다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요. 파견이 확대되면 양호한 일자리들이 저렴하고, 통제가 쉽고, 사업주가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파견 일자리로 전환 될 겁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자리가 확대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양호한 일자리가 열악한 파견 일자리로 대체되는 것 뿐 이예요.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오늘날 고용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개수만 놓고 보면 한국 사회도 일자리 자체는 많아요. 그럼에도 일자리 부족 문제가 나오는 것은 열악한 일자리가 많다는 것이지요. 파견 노동의 확대는 양질의 일자리를 없앰으로써 오히려 고용 문제를 심화시킬 겁니다.
마트에서 일하는 분들 말씀을 우연히 들었는데 이렇게 큰 대기업에서 시식코너까지 챙기기 어려우니 파견 회사를 활용하는 게 효율적인 것 아니냐고요. 일견 타당한 주장 아닌가요?
박주영 노무사 근로계약상 사용자는 ‘파견업체’지만, ‘원청사용자’가 노동자 관리감독과 업무 지시를 직접 하는 것을 ‘파견’이라 일컫습니다. 즉 대기업이 시식코너를 챙길 여력이 없어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지요. 일일이 업무지시를 하지만 정규직과 같은 근로조건이나 임금을 보장해주지 않아도 되니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는 거예요. 대형마트 시식코너는 제품 판매를 촉진해 영업이익을 높이는 가장 직관적인 영업활동으로, 대형마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아요. 실제 대형마트들이 거래 업체에 근로조건, 업무내용, 근무시간 등을 구체적으로 특정해 파견 노동자 배치를 요구했던 사실도 있어요. 시식코너 노동자들이 대형마트가 정한 근로조건에 맞춰, 이들의 영업이익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면 대형마트가 사용자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현재 파견을 허용하고 있는 32개 업종은 파견을 허용할 만한 정당성이나 근거가 있는 업종들인가요?
조경배 교수 전문 지식, 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가 파견 허용 대상 업무가 될 수 있다는 전제는 성립할 수 없어요. 파견근로는 ‘temporary work’라는 명칭처럼 일시적인 인력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도입된 거예요. 전문성이나 경험이 요구되는 업무가 기업의 일상적 업무로 필요하다면 정규직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지요. 전문 지식 등의 이유를 제시한 것은 파견 노동을 합법화하기 위한 빌미로 이용된 측면이 강합니다.
파견법 개정안은 ‘뿌리산업’ 파견 허용 내용을 담고 있잖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장으로 파견이 확대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박주영 노무사 뿌리산업이란 ‘뿌리기술을 활용해 사업을 영위하는 업종이나 뿌리기술에 활용되는 장비 제조업종’을 말해요. 여기서 뿌리기술이란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등 제조업 전반에 걸쳐 활용되는 공정기술’을 의미하고요. 결과적으로 제조업 생산 공정의 기초 기술을 전반적으로 아우른다고 할 수 있지요. 현행 파견법에는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은 파견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 개정안은 제조업 파견 금지라는 원칙 자체를 폐지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전국 2만 6,000여 개 뿌리기업과 42만 명의 종사자 리스트를 밝혔어요. 이는 파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대상 사업주들이 종사자들을 파견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블랙리스트와 같아요.
결혼 소개업이나 부동산 중개업도 있는데, 왜 유독 파견업의 중간착취만 문제가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직업 소개나 알선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중간업체의 수수료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나요?
권두섭 변호사 직업소개나 알선은 노예, 인신매매, 중간착취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직업안정법상 여러 규제가 있는 겁니다. 때문에 직업소개나 알선을 민간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공적 고용 알선 서비스로 해결해야 하는 거지요. 역대 정부가 파견 제도를 합법화 하면서 내세운 명분이 ‘전문직의 고용 알선을 원활하게 하여 기업의 모집 채용 비용을 줄인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이미 고용노동부에는 고용 알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요. 이를 강화해 해결하면 될 문제지요. 정부의 주장은 그저 파견을 합법화하기 위한 핑계거리에 불과한 겁니다.
파견 노동을 규제하면 할수록 용역, 도급 등 질 낮은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주장을 본 적이 있어요. 차라리 파견을 합법화하고 불법파견 유인을 차단시키면 용역이나 도급같이 훨씬 어려운 환경에 놓인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나아지지 않을까요?
권두섭 변호사 노동부가 파견대상 업무 확대를 시도할 때마다 내세운 주장이네요. 사기범죄가 늘어나니, 사기죄를 폐지해 합법화 하자는 것과 같은 황당한 논리잖아요. 그렇다면 지금 파견 노동자들은 <파견법>에 따라 보호를 받고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용역, 도급을 사용하는 것은 합법적으로 파견을 사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용역, 도급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파견보다 완벽하게 사용자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운이 없어 불법파견으로 적발되면 어떻게 되나요. 오너가 구속이 되나요? 아니면 기업이 휘청거릴 만큼 경제적 제재를 당하나요? 고작 벌금 몇 백만 원에 대법원 판결까지 버티다가, 결과가 나오면 그때 소송을 한 사람만 직접고용하면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프랑스나 독일은 파견근로에 대해 정규직과 동일한 대우 및 차별금지 규정을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도 차별금지가 선행된다면 파견노동도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요?
조경배 교수 차별시정 제도는 정부 주장과 달리 차별 해소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네요. 우선 노동위원회 차별시정 절차에서 당사자 적격이 부인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도급과 파견간의 기준이 모호해 도급을 파견으로 위장할 경우 파견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거지요. 특히 지노위부터 대법원에 이르는 5심제 절차가 통상 4~5년이나 걸립니다. 원청의 계약해지 및 갱신거절의 위험을 무릅쓰고 법적절차를 이용할 가능성도 낮고요. 그리고 파견법은 모든 차별에 금지하는 것이 아닌, 비교대상 노동자와의 불합리한 차별적 처우만을 금지하잖아요. 그래서 동종, 유사업무에 정규직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차별금지효과의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될 우려가 있어요.
공통질문/ 간접고용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파견법> 폐지’라는 주장이 크게 와 닿지 않아요. 간접고용 종류가 파견, 도급, 용역 등 다양한데 <파견법>만 폐지한다고 간접고용 문제가 해결 될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또 다른 불법적인 간접고용 형태가 나타나게 될 것도 같고요. <파견법>을 폐지한다면 간접고용을 어떻게 규율할 수 있나요?
박주영 노무사 <파견법> 폐지 주장은 <파견법>만의 폐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파견법> 폐지’는 마침표가 아닌, 새로운 느낌표가 돼야지죠. 간접고용 일반에 대한 금지, 상시업무에 대한 직접고용 원칙을 포함해 비정규직 스스로 질 낮은 일자리를 없앨 수 있는 힘을 갖도록 노동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합니다.
권두섭 변호사 <파견법>을 폐지한다고 현대차나 포스코가 사내하청을 멈추지는 않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직접고용 원칙을 입법화하고 간접고용을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지요. 원청사업주의 사용자 책임도 명확히 해야 하고요. 현재 상시업무를 직접고용토록 하는 법안이 제출 돼 있습니다. 나아가 불법파견을 엄격히 규제하는 기준 등도 만들어져야 하겠지요.
조경배 교수 우리 사회에 불법파견이 넘쳐나게 된 배경은 서구와는 달리 직업소개 기능의 공공성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합니다. 따라서 일차적인 과제는 직업소개 시스템의 확충과 그 기능의 공공성이 강화돼야 하겠지요. 아울러 직접고용 원칙을 법률로 명기하고, 근로관계를 파견 또는 도급으로 위장할 경우 형사 처벌하는 조항을 <근로기준법>에 신설할 필요가 있어요.
김철식 연구원 <파견법>은 불법파견을 규제한다기보다 오히려 간접고용을 더욱 양산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어요. 간접고용을 규율하는 것은 <파견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파견법>을 폐지하는 것이 간접고용의 축소와 폐지를 위한 조치지요. 아울러 일자리 알선이라는 중요한 공적기능을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사용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해 간접고용을 규율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획연재 순서
- 문제는 ‘불법파견’이 아니라 ‘파견’입니다.
- <파견법>, 정말 폐지해도 될까요?
- 파견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
-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 ‘파견’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