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대선’이 끝났다. 청와대에는 새 주인이 들어섰다. 《워커스》는 15일 전문가들과 함께 촛불시위부터 이번 대선까지 정치적 쟁점과 향후 전망을 짚어 봤다.
토론 | 김석(민주노총 기획실장), 김태연(퇴진행동 재벌특위 위원장), 이광일(성공회대 정치학과 교수), 홍석만(참세상연구소)
사회 | 정은희(워커스 편집장)
우선, 이번 대선을 한 마디로 평한다면?
김태연 : 이번 대선은 역대 가장 바람직한(?) 선거였다.
가장 바람직하다?
김태연 : 과거에는 지역이나 인물 중심의 선거였지만, 이번엔 부족하더라도 몇몇 노선과 정책이 논쟁됐다. 촛불항쟁에 이은 대선이라서 그랬다. 하지만 촛불항쟁과 대선을 하나의 과정이라고 본다면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존재한다. 긍정적인 것은 한국현대사에서 직접 정권퇴진을 요구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으로 정권을 퇴진시키고 21명을 구속시켰다는 점이다.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촛불항쟁 초기 광장의 대중은 기존 야당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았다. 야당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도 없었다. 시작은 그랬는데, 결과는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로 마무리됐다. 촛불투쟁은 최대공약수로 했지만, 최대공배수가 있는데도 최소공배수를 정치적으로 얻었다.
이광일 : 정치에서는 자임하는 것이 중요한데, 더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촛불항쟁의 하반기부터 선거가 끝날 때까지 촛불의 적자를 자임했고 그 정신을 계승해 정치적으로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밝혔다. ‘촛불봉기’는 표층적이고도 구조적인 문제들과 연결돼 있는데, 더민주당이야말로 신자유주의를 불러들인 원조로서의 책임이 있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적폐가 쌓이는데 일조한 야당들도 그 책임이 가볍지 않은데, 더 민주당 등이 적자를 자임하면서 그 문제들이 다 덮여 버렸고 더민주당의 집권으로 일단락됐다. 촛불을 규정하는 ‘수구-보수독점 정당정치’의 구조적 효과라 할 수 있다.
김석 : 결과적으로 박근혜 퇴진이 탄핵으로 갔기 때문이다. 애초 야당은 박근혜 하야의 압박 수단으로 탄핵을 꺼낸 것인데, 광장 촛불의 힘도 박근혜를 물리적으로 끌어내리지 못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파면 결정권이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넘어갔고 제도적 해결과정을 밟게 됐다. 당시 광장엔 주말마다 100만 명 넘게 나왔는데, 박근혜는 꿈쩍도 안하고 버텼다. 이때 투쟁 양상이 달라져야 했다. 200만, 300만 씩 양적으로 확대되든지, 평일까지 주말집회의 규모로 확대되든지, 비폭력 평화시위에서 질적으로 변하든지 해야 했지만 거기까지는 못 갔다. 촛불이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뛰어 넘을 수 없게 되면서 기존 야당과의 타협지점이 나타났고, 그러면서 탄핵이 된 것이다. 그렇게 타협되다보니 초반에 별 영향이 없던 야당이 촛불의 성과를 가져가는 기회를 가졌다. 문재인 후보만이 아니라 심상정, 안철수는 물론이고 유승민 후보도 촛불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문재인 후보가 정치적 수혜를 독차지할 수 있었을까?
홍석만 : 이번 대선에서 주요 후보 5명간의 스펙트럼이 사실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홍준표 후보를 제외하고는 크게 부각되지도 않았고, 대동소이했다. 주요 다섯 후보의 노선상의 스펙트럼을 보면 오른쪽에 자유한국당이라는 반공발전주의세력에서부터 왼쪽에 사민주의 우파 정도로 볼 수 있는 정의당까지 있었는데, 정치적 스펙트럼의 폭이 좁다. 이번 촛불항쟁은 박근혜 퇴진을 내걸었지만 한편에서는 이 스펙트럼을 넘을 수 없는 투쟁이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한계이기도 하고, 한국사회 정치지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간도 매우 급박하게 대선이 다가왔고 이런 상황에서 대선을 치르면서 결국 현실적으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쏠림이 일어났다고 본다.
대선 결과를 보면, 촛불항쟁 초기부터 결합했던 민중운동, 계급운동진영의 책임도 있지 않나?
김석 : 촛불항쟁의 초기엔 이전 촛불과는 달리 민주노총이라는 조직대오에 호의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자신감도 있었다. 민중총궐기까지는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잘해 왔다. 하지만 촛불집회의 확대에도 박근혜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 상황을 뛰어 넘는 게 조직대오의 역할인데, 그걸 못했다. 민주노총이 실력을 더 보이지 못했다. 작년 11월 30일 총파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면서 민주노총이 뭐하냐는 평가도 있었다.
이광일 : 이번 촛불은 언론이 시작해서 언론으로 끝났다는 얘기가 있었다. 특히 탄핵과 하야(즉각 퇴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대부분의 언론이 탄핵으로 몰고 간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탄핵이 되면 박근혜가 전직대통령으로서 예우를 못 받지만, 하야가 되면 받게 된다는 식의 보도들을 쏟아내 박근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4.19때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해서 해외망명길에 오르지 않았는가. 결국 탄핵은 대중의 열기를 기존의 국회, 정당구조로 가져가는 것으로 언론이 그 역할을 선도했다. 당시에 퇴진행동, 특히 민중진영의 단체들이 대중의 하야, 퇴진 요구를 더 끌고 가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태연 : 한국은 사실 비폭력의 전통이 그렇게 강한 것도 아닌데, 수십, 수백만이 비폭력 평화시위를 무려 5개월 동안 사건사고 없이 진행했다.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 있던 것은 지배세력도 박근혜를 버렸기 때문이다. 경찰이 광화문 광장을 내주지 않고 그 앞에서 촛불이 경찰과 몇 주 정도 계속 붙었으면 진행양상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법원은 가처분 형식으로 대중이 청와대에 점점 다가서게 만들었고 상황이 계속 호전되면서 큰 불만도 없었다. 이런 것은 우리 법원이 개과천선했거나 촛불의 위력에 눌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박근혜를 이미 포기했기 때문에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탄핵도 그런 구도로 잡혔고 안타깝게도 촛불은 그것을 넘지 못했다.
홍석만 : 그럼에도 민중운동진영의 대응도 한계가 있다. 대통령을 끌어 내리려면 평화집회로는 안되고 경찰의 차벽을 넘어야 한다는 당위만 존재한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폭력이냐 비폭력이냐라는 구도를 넘어서서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어마어마한 대중이 들고 일어났는데, 대중의 분노와 상상력을 충분히 표출시켜 낼 수 있는 방법과 기회들을 잘 잡지 못했다.
김태연 : 노동자 농민 등 계급대중조직이 정치적으로 결집하는 데 두 번의 결정적 실기가 있었다고 본다. 농민의 경우, 백남기 열사 장례가 급하게 치러지면서 이후 농민 내부의 동력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노동진영은 11월 30일 민주노총 총파업이 위력적으로 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다. 또한 총파업이 잘 안됐다고 못 할 일도 없었는데, 이후에 재벌문제에 대한 싸움을 제대로 못한 것은 더 뼈아픈 일이다. 노동자가 재벌의 가장 큰 피해자인데, 재벌에 대한 싸움을 민주노총이 더 대차게 했다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촛불투쟁이 계급적인 요구로 전개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하면서 노동 쪽의 요구들은 우선 순위에서 다 뒤로 밀렸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는데, 어떻게 전망을 하나?
김태연 : 문재인 정부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를 못하면 미래가 없다. 재벌을 넘느냐, 못 넘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 본다. 그런 점에서 노동정책은 모두 쟁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를 처음부터 얘기하고 있다. 일자리위원회, 노동회의소 얘기도 나온다. 그런데 국정교과서 문제와 같이 정치적 고려 없이도 할 수 있는 것은 빨리 빨리 하겠지만, 재벌 문제와 노동 문제는 그렇게 해결할 수 없다. 제도적인 것과 관련 없는 게 없다. 지금의 정치구도로 보면 정권이 사활을 걸어야 그나마 약간의 변화라도 있을 텐데, 그럴 의지가 있는지 확인이 안 된다. 최저임금도 6월이 가면 결정해야 하는데, 노동부장관 바뀌고 공익위원들 바뀌어서 약간 높게 결정될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라는 것이지, 최저임금 제도를 바꾸는 데까지 갈 수 있느냐, 그건 아닐 것이다.
홍석만 : 한겨레신문이 선거 이후 진행한(5.12~13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삶이 어떻게 될 것으로 기대하는가’라는 질문에 눈길이 갔다. 삶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54% 정도였다. 문재인과 심상정, 두 후보를 찍은 사람 가운데도 ‘별다른 차이가 없거나, 나빠질 것’이라고 답한 사람이 각각 24.2%, 36.2%였다. 자신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8%, 중도는 47%가 별 차이가 없거나 나빠질 것이라 전망했다. 진보적이거나 중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중 상당수가 지금의 문제가 구조적이고 더민주당도 해결할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젊은 층 특히 여성들에서 가장 높았다. 이런 기대감에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진보진영이 문재인 정부를 뛰어넘는 대안으로 나서지 못하면, 오히려 젊은 층이 더 보수적으로 변할 가능성도 있다.
이광일 :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정권이 초기에 채택했으나 실현되지 못한 독일식 질서자유주의를 기조로 꺼내들 것이다. 즉 국가가 제도와 정책을 통해 시장에서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 질서를 만들겠다는 거다. 촛불 봉기의 영향으로 집권하였기에 법-제도적인 측면에서 일정 정도 진전이 있겠지만, 비정규직 문제, 다포세대로 상징되는 청년문제 등은 구조적인 문제라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문제들이 이후 진보좌파 정치활동의 고리가 돼야 한다. 향후 개혁이 실패하더라도 급격한 파쇼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국은 파쇼화의 기반이 적잖이 내재해 있지만, 유럽에서 파쇼가 등장할 때 중요한 것이 좌파의 실질적인 정치적 위협이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더라도 파쇼화와 같은 급격한 우경화보다는 기존의 수구세력이 다시 집권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에 그러한 흐름들에 대해 진보정당이나 좌파정치세력이 제도권 안팎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김태연 : 대중들, 특히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들은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이 분출할 시점이다. 가령, 노동자들을 옥죄는 손배가압류 해제에 대한 요구가 더 거세게 일어날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생긴 건데도 지금까지도 해결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제부터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과 노동자들은 지금부터가 열린 국면으로 생각한다. 지난 5개월의 촛불항쟁이 대선으로 끝났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87년에도 6월 항쟁 이후 7월부터 노동자 투쟁이 터져 나왔듯 비슷한 흐름이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 ‘태블릿 피씨’의 역할을 이제 전혀 다른 어떤 것이 할 수도 있다. 크게 보고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니냐.
김석 : 민주노총의 11월 30일 총파업은 비록 촛불항쟁의 과정에서 기대만큼의 역할을 못해 실패했다는 얘기를 듣지만, 다시 보면 역대 최대의 ‘정치 총파업’이었다. 민주노총이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투쟁으로 여러 한계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지만,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고민들 속에서 바로 6월 30일 ‘사회적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반드시 성사되리라 본다.[워커스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