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자본도 잠식한다
로봇, 자동화, 디지털화 등 생산과정에서 노동절약적 기술의 도입은 문자 그대로 노동을 절약한다.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노동시간을 줄인다. 그런데 이런 로봇, 자동화, 디지털화는 생산수단인 자본재 가격도 저렴하게 만든다. 로봇 등은 그 자체로 노동절약적인 기술임과 동시에 기술발달에 따른 생산수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기술의 도입(비용)은 노동비용을 줄이거나 생산성을 높여 로봇의 도입비용을 상쇄시킬 수 있을 때 들어온다. 노동뿐 아니라 자본을 절약할 수 있을 때에도 로봇과 자동화 등이 도입된다. 다른 말로 풀어보면 이전보다 더 적은 투자로,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생산을 이룰 수 있게 된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산업(ICT)의 단위당 투하자본은 다른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가령 같은 초국적 기업이라 해도 애플과 삼성의 고정자본 투자비용과 구글과 페이스북의 투자비용은 서로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제조업의 이익률이 10%를 넘기 힘든 상황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30% 내외의 영업이익률을 보이고 있다. 같은 규모의 수익 혹은 더 적은 수익이 났더라도 훨씬 적은 투자로 남긴 것이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기계설비나 시설투자가 애플이나 삼성과 같은 제조업보다 크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 작다.
이처럼 로봇경제는 노동비용도 줄이고 자본투자도 절약하기 때문에 생산과정에 투입된 자본의 구성 비율인 자본의 유기적 구성(V+C/V, V는 가변자본(임금) C는 불변자본)을 단순히 증가시킨다고만 볼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 노동보다 더 자본절약적인 기술이 도입되면 유기적 구성이 낮아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로봇이나 자동화와 같은 기술의 도입은 자본 절약적인 기술보다는 노동절약적인 기술을 더 많이 선택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기술 발달 과정에서 더 높아 진다.
과잉저축? 과잉자본!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남아도는 자본, 이른바 과잉자본이 형성된다. 과거에 100단위의 자본을 투입해야 가능했던 생산이 이제는 70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30만큼 자본이 남게 된다. 이 남아도는 자본이 다른 생산에 투여되지 못하면 부동산이나 주식, 채권 등 이자 낳는 자본으로 기능하여 잉여가치 생산이 아니라 단지 분배받는 데 참여할 뿐이다. 이런 과잉자본이 더 많이 형성되면 투자는 축소되고 경제 성장은 멈추고 자본주의 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지게 된다.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를 설파하는 미국 전 재무장관 출신 래리 서머스는 새로운 산업(new industry)에서 낮아지는 자본 집약도와 자본재의 상대가격 감소를 투자부진의 주요한 이유로 꼽는다. 바로 로봇과 디지털 기술로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자본을 절약하기 때문에 투자가 이전 산업처럼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①
이 상황은 실증적으로도 확인되는데, 아래의 자료를 살펴보면 1990년대 이후 생산에 투하된 자본 증가율은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그런데 첨단산업인 IT자본의 증가율은 비IT산업에 비해 3배 이상 빨리 줄어들고 있다. 새로운 산업일 경우 투하자본량이 초기에 상당수 이뤄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 산업에 비해 훨씬 빨리 줄어든다. 특히 ICT부문에서 더 두드러진다.②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인 벤 버냉키는 ‘글로벌 과잉저축’으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한다. 특히 중국과 아시아 신흥국에서 외환보유의 형태로 달러화를 집중시켰고 중동의 산유국도 마찬가지로 국부펀드 등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면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과잉저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연준을 비롯한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같은 통화정책이 원인이 아니라) 이런 과잉저축이 현재의 침체와 소비부족의 원인이라고 한다.③
여기서도 문제는 과잉저축을 해소하는 방식인데, 결국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해 소비를 유도(총수요 증진)하고 기술혁신을 통한 투자와 성장률의 증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되지 않고 저축된 돈이 투자되지 못하면 이것은 과잉자본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어디 뜻대로 잘 될지는 모를 일이다. 2008년 금융위기 전부터 글로벌 과잉저축이 진행됐다고 하는데, 벌써 10년이 훨씬 넘게 과잉저축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피케티의 법칙과 로봇경제
로봇 경제의 확산(과 신자유주의 금융화)으로 인한 과잉자본과 투자부진을 확인했다면 다음으로는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피케티의 1법칙은 α=r×β (α는 국민소득 중 자본소득의 비율, r은 자본수익률, β는 자본/소득비율)이다. α는 자본소득분배율과 같고, β는 자본총량이 국민소득의 몇 배인가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자본수익률이 올라가거나 자본/소득비율이 커지면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이율은 따라서 커지게 돼 있다.
피케티의 제2법칙은 β=s/g (s는 저축률, g는 경제성장률)이다. 한 경제의 자본/소득비율은 저축률을 경제성장률로 나눈 값과 같다. 예를 들어 매년 소득의 10%를 저축하는 국가에서 경제 성장률이 2%라면 자본 총량은 국민소득의 5배가 된다. 이 법칙은 저축률이 높고 경제성장률이 낮으면 자본이 빠른 속도로 축적되어 자본/소득 비율이 뛰어오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2법칙인 β=s/g를 1법칙에 대입하면 α=r×s/g=s×r/g이 된다. 국민소득 중 자본의 비율 즉, 자본소득분배율(α)은 저축율(s)과 r/g인 자본수익률 및 성장률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서 (저축률이 일정하고) r>g,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으면,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더 커지게 되고 더욱 불평등해진다. 피케티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과 신흥국의 비약적인 경제발전 시기를 제외하고는 r>g가 깨진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특히 자본수익률인 r은 역사적으로 4~5%를 유지했고 2~3%로 내려간 적이 없다고 한다.④ 결국 (일정하지만) 높은 저축률과 낮은 경제성장률이 자본소득분배를 뻥튀기해 왔다는 것이다.
저축이란 소비되지 않고 남은 모든 부분인데 피케티의 높은 저축률은 버냉키의 과잉저축과 유비된다.⑤ 앞서 본대로, 과잉저축은 곧 과소투자의 문제로 전환되는데, 투자할 곳이 없는 자본이 과잉저축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로버트 고든이 공급측면에서 해석한 ‘미국의 경제성장은 끝났다’는 결론⑥과 래리 서머스의 구조적 장기침체론까지 결합하면 낮은 경제성장은 앞으로 지속될 것이다. 그러면 피케티가 주장한 높은 저축률과 낮은 경제성장률이 쌍끌이로 결합돼 자본소득분배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국민소득분배율은 자본소득 아니면 노동소득 외엔 없기 때문에, 노동소득분배율이 선진국이나 신흥국을 가리지 않고 모두 하락하게 된 것과 같은 현상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⑦
최근의 경제성장 둔화도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특히 노동생산성 저하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과잉자본으로)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사실상 0에 가까운 상황이고 총요소생산성(TFP)은 크게 둔화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생산성 하락이 경제성장 둔화와 하락의 원인이다. 로봇경제의 심화로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하락한다는 사실은 지난 연재에서도 확인한 사실이다.⑧ 로봇경제는 이 같은 과잉저축, 과잉자본, 투자부진, 장기침체 상황을 더 심화,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노동절약적 기술의 도입과 노동유연화와 양극화의 확산, 그리고 자본절약적 기술의 도입과 그에 따른 과잉자본화야말로 피케티의 결론대로 높은 저축률과 낮은 성장률을 더욱 구조화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이는 자본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고 과잉자본 상황에서 자본수익률을 맞추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본소득분배를 강제하기 때문에 ‘구조적’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모순과 확대
이 상황을 탈피하는 방법은 과잉자본을 청산 또는 축소시키는 것 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피케티 식으로 얘기하면 첫째, 엄청난 기술혁신을 통한 급속한 경제성장(r<g로 만드는 상황) 둘째, 80% 소득세와 같은 엄청난 조세제도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r을 잘라 먹어 r<g로 만드는 분배정책 셋째, 이도저도 안되면 생산수단과 자본이 파괴되는 ‘전쟁’뿐이다. 첫 번째는 과잉자본이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 자본으로 투자되는 가장 좋은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조세제도를 통해 과잉자본을 흡수하여 축소시키는 것, 세 번째는 무력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다.
첫 번째를 가정한 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 이데올로기’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미증유의 생산력 증진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이 전망은 여전히 논쟁 중이긴 하지만(특히 한국에서) 지금 현재 자본주의의 장기침체를 벗어날 대안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현실을 돌아보면 얼마나 한가한 얘기인지 알 수 있다. 로봇과 AI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철이가 기계인간이 되기를 꿈꾼 ‘은하철도999’ 만큼이나 공상과학에 가까운 얘기다. 로봇경제가 확산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생산성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아무런 보장도 없다. 오히려 위에서 언급한대로 낮은 성장과 과잉자본의 양산에 더욱 기여할 뿐이라 기대에 역행하는 과정이 바로 로봇 경제다.
과잉자본과 낮은 경제성장은 불평등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자본간 무수한 경쟁을 촉발시킨다. 자본주의 기업은 이윤추구가 기본 목적이다. 사회적 필요에 따라 재화를 생산하는 것은 자본주의 기업이 아니고 자본주의 생산관계도 아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기업 간 경쟁은 승리를 위해 어떤 출혈도 감수하며, 이윤율을 맞추기 위해서 목숨을 건 투쟁을 하게 된다. 과잉자본 상태에서 자본수익률을 맞추기 위한 경쟁은 착취율을 강화해 노동을 더욱 압박하고 로봇대체를 통한 비용 삭감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수익을 맞추지 못한 기업은 경쟁에서 밀려 도산하게 된다. 결국 독점은 더욱 심화되고 가치법칙은 저성장과 장기침체 속에서 지속적으로 교란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로봇경제의 확산은 이 같은 자본주의 기업의 생산양식과 모순을 일으키며 충돌한다. 생산력은 그 자체로 발전하고 있는데, 시장경쟁을 통한 이윤의 확보라는 생산관계의 모순과 불안정성이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노동비용의 절감, 자본투자의 절감, 저렴한 생산과 그에 따른 이윤율의 하락, 경쟁의 가속과 독점의 심화, 더욱 가팔라진 주기적 공황과 장기침체, 불평등의 심화 등 이윤을 중심에 둔 생산양식은 로봇경제 확산에 따른 대형 충돌을 예견하고 있다. 경제의 불안정성을 국가의 개입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조차 기존의 생산양식을 그대로 둔 채 이뤄진다면 ‘노 답’인 상황이다. 로봇경제가 더 적은 자본, 더 적은 노동으로도 경쟁에 뛰어들게 해 충돌과 모순을 확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① Coen Teulings외, 2014, 『Secular Stagnation: Facts, Causes and Cures』, CEPR Press
② 이에 대해서는 이 연재의 첫 번째 글, <4차 산업혁명은 어디에?>를 참조.
③ 버냉키, ‘why are interest rates so low? part3 the global savings glut’, brookings연구소, 2015.4.1. 참조. 이 같은 과잉저축론에 대해서는 지극히 미국 입장이라 비판할 점이 많다. 이유야 어찌됐든 과잉저축 상태라는 점만 강조하고 넘어가자.
④ 자본수익률(ROIC)은 마르크스의 이윤율과는 개념적으로 다르다. 기본적으로 이익과 잉여가치는 추상수준이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하자본 대비 이익과 잉여가치의 차이라는 점에서 근사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피케티 본인도 말하고 있지만, 그런 점에서 피케티는 마르크스의 이윤율 경향적 저하와는 상반되는 얘기를 하면서 불평등 심화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자본수익률 r이 경제성장률 g보다 높았다고 주장하듯이 마찬가지로 이윤율 또한 경제성장률보다 높았다. 반면 자본수익률은 일정하게 4~5%를 유지했다지만 이윤율은 저하경향을 가졌다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분석한다.
⑤ 피케티는 주로 부의 세습과 분배 측면에서 높은 저축률을 고찰했지만 생산 영역에서 높은 저축률은 곧 과잉 저축, 과잉 자본과 같다.
⑥ http://www.imf.org/external/pubs/ft/fandd/2016/06/gordon.htm
⑦ 연재5 <로봇, 독점이윤 그리고 소유> 참조.
⑧ 연재3 <로봇 경제, 자본주의의 종말적 형태> 참조.
⑨ 하지만 피케티와 버냉키, 래리 서머스 같은 케인지언들은 어찌됐건 총수요를 진작시키면 경제는 다시 활력을 되찾고 안정될 것이라는 종교적 교리에 가까운 믿음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다룬다.
⑩ 결국 소득의 80%를 세금으로 걷어가는 것과 같은 강력한 조세제도를 시행하지 않고서는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는 래리 서머스가 주장하듯이 케인스가 제안했던 공공투자를 확대하고 뉴딜 같은 것도 하면서 재정정책을 통해 과잉자본을 공공투자로 돌려 막는 방법도 있다. 어느 것이든 과잉자본을 청산하는데 전쟁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상황 말고는 치킨게임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 자본의 본성이고 보면, 조세제도나 뉴딜과 같은 국가의 재정정책으로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대공황도 뉴딜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경제성장 조건을 마련했다. 지금 현재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많은 부채가 양산된 가운데, 과잉자본 청산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가장 큰 시한폭탄으로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