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서울시가 지난해 4월 뉴딜일자리의 하나로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지킴이’(이하 지킴이) 62명을 뽑아 지난달까지 20개월 동안 스스로의 노동인권을 지키는 사업을 벌였다. 이들은 지역의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에서 일하며 청년 알바들이 일하는 중소사업장 노동실태조사와 거리 캠페인, 온오프라인 노동상담 활동을 펼쳤다.
지킴이 62명이 20개월 자신의 활동을 묶은 책 〈알리고 바꾸고 함께 만드는 세상〉(‘알바만세’)을 냈다. 책을 기획한 지킴이 매니저 박미경(50) 씨는 오랜 방송작가 경험을 살려 솜씨 좋게 목차를 잡았다. 이 책엔 꼰대 노동자와 서울시와 교육부, 고용노동부 관료들이 새겨 들을 말이 주옥 같이 녹아 있다.
알바 실태조사하면서 겪은 일
62명의 지킴이는 서울전역의 중소사업장에서 일하는 알바청년을 만나 2016년엔 1,502부, 2017년엔 1,220부의 노동실태조사 설문을 받았다. 2017년엔 온오프라인 노동상담만 1,064건에 달했다. 알바 권리지킴이 유정(27) 씨가 쓴 아래의 수기는 서울시와 고용노동부 공무원이 새겨 들어야 할 내용이다.
“여기까지 하면 안 돼요?”라고 묻는 갓 스물을 넘긴 여성 알바에게 나는 “설문 작성 안 해주시면, 설문조사 거부 사업장 리스트에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설문지 세 페이지 중 한 페이지를 작성 중이었고, 자기보다 높은 직원이 올 것이라며 설문을 중단하고 싶어 했다.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는 내가 설명하겠다고 설득했다. ‘높은 사람’이 왔지만 그는 내가 내민 안내장을 열심히 읽었다. 심지어 그는 나를 붙잡고 “주휴수당 조건이 주 소정근로 15시간 ‘이상’이라면, 15시간도 해당 되느냐”고 물었다.
그날 오후 그 카페 점장에게 전화가 왔다. 점장은 주15시간은 주휴수당이 없는 줄 알고 모든 알바를 15시간씩 고용했다. 점장은 5인 이상 사업장 사용주가 줘야 하는 가산임금, 연차휴가 등을 물었다. 나는 ‘몰라서 못 준 것이니, 이제 제대로 주겠다’는 말을 예상했다. 그런데 그는 내게 “14시간 계약하고 5명 이상을 쓰는 게 유리한지, 15시간 이상 계약하고 노동자 수를 5인 이하로 줄이는 게 유리한지” 물었다.
누구에게 유리하단 걸까? 당황스러웠다. 뭔가가 잘못되고 있었다. 몇 시간 뒤 다시 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내게 “현재 상시 5인 사업장인데, 이제 4인으로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혼잣말 하듯 통보했다. 내가 점장에게 겨우 한 말은 “노동자도 배려해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 달라”는 게 전부였다. 나는 무능했다.
물론 그 카페는 5인 이상 사업장이라 ‘부당해고 구제절차’도 가능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그 알바생이 구제절차를 밟는 길은 구만리다.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해 위반을 확인하고, 동료들을 설득해 증인이나 참고인을 구한다. 각하되지 않도록 착실히 구제신청서를 작성한다. 노동위원회에 접수한다. 출석조사에 응하거나 추가 서면과 입증자료를 낸다. 피신청인의 답변서를 놓고 서면공방을 벌인다. 주 15시간 짜리 일자리를 지키려고 어린 노동자는 길 위 에서 60일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15시간짜리 일자리의 무게는 어떨까. 주휴수당을 뺀 그녀의 한 달 임금은 40만 원 가량이다. 그 돈이면 나는 일곱 달 통신비를 해결하고, 두 달 점심을 해결한다. 지하상가에서 만 원짜리 원피스를 살까말까 고민하는 내게도 적지 않은 돈이다. 그녀는 또 다른 40만 원을 위해 컴퓨터 앞에서 알바천국을 헤매야 한다. 카페 수익성 제고를 위해 그녀는 해고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나도, 세상도, 법도 그녀를 지켜줄 수 없었다. 그녀가 설문 중단을 원할 때 강요하지 말았어야 할까. 잠이 오지 않았다.
미안함과 자괴감에 다시 카페를 찾았다. 혹시, 아주 혹시 내가 도울 게 있을까 해서. 원망의 눈초리를 각오하고 카페에 들어섰다. 그런데 그녀와, 그녀보다 ‘높은’ 그는 웃으며 나를 반겼다. 그녀보다 높은 그가 말하길, 점주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에 당황했을 뿐,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와 통화하던 점주는 노동자 생활을 오래했고 직원을 인건비로만 생각하진 않았다. 가맹비와 임대료에 치여 그 역시 많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물셔틀, 과자셔틀의 ‘거대한 아기’
스무 살 루루가 쓴 ‘물 셔틀에 과자 셔틀… 퇴사를 축하해 주세요’는 가슴 아픈 청년 노동자의 일상이다. 루루의 눈에 비친 수많은 꼰대들이 한번쯤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19살 특성화고 3학년때 담임의 바람대로 제약회사에 취업했다. 근로계약서엔 8:30~17:30분으로 돼 있지만 늘 출근은 8시였고 퇴근은 정말 아주 가끔 18:30분이었다. 보통 19:30분에 퇴근했다. 밤 12시를 넘겨 다음날 퇴근하기도 했다.
우리 사무실엔 14개의 화분이 있다. 화분 속 식물 살리느라 내가 죽을 맛이다. 3개는 작지만, 11개는 큰 화분이라 들지도 못한다. 업무 틈틈이 막내인 내가 모든 화분에 물을 줘야 한다. 상무는 어떤 땐 “자주 주라”고 하고 어떤 땐 “왜 이렇게 자주 주냐”고 한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상무는 화분 가지치기를 하고서 가지와 잎을 바닥에 그냥 버리고, 나는 그걸 주우러 따라 다닌다. 대망의 나뭇잎 닦기가 있다. 한 잎 한 잎 다 닦으라고 한다. 화분 2개만 닦아도 1시간이 훌쩍 간다. 그 시간 상무는 제 자리에서 잠을 잔다.
하루는 상무가 저를 불러 자기 방 스프링 달력을 뜯고 나서 바닥에 떨어진 종이조각을 치워달라고 했다. 뜯고 나서 그대로 두면 스프링에 붙어 있을텐데 굳이 바닥에 종이 조각을 다 떨어뜨려놓고 치워달래요. 심지어 샤프심도 못 갈아 끼워 저를 불러 끼워 달래요. 혼자선 복사도 못하는 ‘거대한 아기’다. 최근 들어 과자가 먹고 싶은지 과자를 사오라고 해 과자보관용 바구니를 만들어 과자를 늘 꽉 채워 두란다. 화분 물 셔틀에 과자 셔틀까지. 이젠 무슨 셔틀을 더 시킬지 두렵다.
불만을 얘기했지만 하나도 안 바뀌고 반성의 기미도 안 보인다. 이 망할 제약회사를 10월 10일 퇴사한다. 제약회사는 절대 안 갈 거란 다짐도 한다. 퇴사를 같이 기뻐해 주시고 응원 부탁드려요.
일 시킬 땐 직장인, 돈 줄 땐 학생
관악구에 사는 스무 살 지민 씨의 글은 교육부 관료들이 꼭 읽어야 한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교육관료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현장실습’이 진짜 현장에선 어떤 꼬라지로 비틀어져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3 8월 세무사 사무실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계약서 쓸 때 하루 7시간에 돈은 8시간 근무 최저임금 125만원 맞춰주겠다며 그 대신 월급에서 식대는 회사로 반납하라고 했다. 법인카드로 점심 사먹고 영수증 가져와 세무사 본인통장에 입금하라고 했다. 식대반납 안하고 도시락 싸 다니겠다고 했더니 그냥 식대 주고 깔끔하게 115만원 받고 일하라고 했다. 결국 7시간 근무에 세전 115만원으로 계약했다. 하루 8시간 근무는 기본이고 밤 새우기도 했는데 수당은 없다. 세무사님께 말씀 드리니 “돈 받으면서 학원 다닌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일 시킬 땐 직장인이고 돈 줄 땐 학생이었다.
대학 가고 싶었던 세 친구는 취업률의 노예가 된 담임의 성화에 보험회사로 현장 실습 갔다가 못 다니겠다며 대학 간다고 하니 담임은 페북에 이름까지 공개해 “누구누구는 배신한다는 얘기가 들리는데 너는 잘 다닐 거냐?”고 물었다. 얼마 전 학교에 갔다가 담임과 마주쳤다. 담임은 팔을 꼬집으며 “왜 그만뒀냐?”고 물었다. 나는 친절히 답해 드렸다. 담임에게 115만원 받는다고 얘기하니 담임은 “교육청 보고에 115만원은 너무 적으니까 최저임금 받는다고 보고한다”고 했다. 그런 담임에게 무슨 말을 할까.
현장실습 간 친구들이 힘든 점을 학교에 얘기해도 학교와 담임은 모두 무시했다. 그래놓고 학생이 그만두면 취업률만 따진다. 대학가는 학생을 ‘배신자’라는 담임은 “원대로 대학 갔으면 학교 취업률과 후배들 위해 알바라도 해서 4대 보험 들어라”고 한다. 1월까지 4대보험에 들어 있으면 대학진학해도 취업으로 통계에 잡힌다.
실습 간 친구들은 모두 퇴사했다. 그들이 상고 출신이라 참을성이 없는 양아치, 날라리라서? 현장실습은 취업률이 아닌 원래 취지 대로 재구성돼야 한다. 더 이상 후배들이 현장 실습 갔다가 상처만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정한 ‘월급도둑’들과 함께 보낸 3년
20대 여성 혜성 씨의 글은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이 땅의 공공부문 정규직들이 가슴 깊이 새겨 들어야 하는 金言(금언)이다. 혜성 씬 ‘화장 좀 하라’는 정규직 부서장 아래에서 계약직으로 3년을 일하며 한 달에 144시간씩 연장근로를 해야 했다.
나는 첫 일터를 떠났다. 인턴부터 시작해 3년을 버틴 일터다. 내게 남은 건 짤랑거리는 퇴직금과 공허, 소모된 감정뿐이었다. 청년의 패기와 열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동료와 상사로 인한 스트레스와 1년마다 재계약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내가 일한 곳은 대학 내 기관이었다.
정규직 상사는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는 진정한 ‘월급도둑’이었다. 나는 상사 찾는 전화오면 둘러대는 법부터 배웠다. 저렇게 필요없는 사람이 일찍 사라졌다면 나와 동료들은 계약직 신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2년 먼저 들어온 선배는 태만한 상사의 표본이었다. 나의 성과는 그 선배의 성과로 둔갑했다. 연차 쓰는 것도 사유를 적어 평가 받아야 했다. 정규직 선배는 씻다가 넘어져 발목을 다쳐 병가를 냈지만 다음날 하이힐을 신고 출근해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도망친 곳에서도 낙원은 없다. 월급은 줄고 여전히 계약직이다. 공공기관 계약직인데 부서장은 동기 여직원에게 “화장 좀 해라” “옷 좀 사 입어라”고 막말을 한다. 한 달 144시간 연장근로를 하는데도 48시간치 수당만 나온다.[워커스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