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순
-언니, 적당한 집 나왔어.
-그래?
-이층이라 공간 분리도 되고 괜찮아.
-근데… 너, 진짜 괜찮겠어?
-우리 애들이 아직 어리잖아.
노인한텐 애들이 최고래. 시골이라 공기 좋고, 기분 전환에도 그만이고. 이러려고 귀농했지 뭐.
‘괜찮아.’ 이 한마디면 족했다. 그런데 나는 말을 보태어 또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시부모님 제사에서 손을 떼면 끝날 줄 알았다. 친정과 시댁의 경계를 분명히 하면 만사 오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종신단역배우를 내면화한 세월은 생각 보다 힘이 셌다.
이번엔 단기기억장애를 앓고 있는 엄마와 우울증 병력이 있는 아빠에게 손을 뻗쳤다. 귀농 후 한 번도 꿈꿔 본 적 없는 큰 집을 부모님 돈으로 샀고 그 해 여름, 서울에 사는 부모님을 모셔왔다.
엄마를 부정하는 것으로 자신의 서사를 완성해가는 수많은 딸들 중 하나가 나였으므로, 마흔 중반이 넘어 시작된 엄마와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상대가 엄마라는 사실은 이미 그것 자체로 엄중함을 뜻했다. 그러나 엄마가 환자라는 사실은 매순간 휘발됐다.
엄마는 설거지를 마친 그릇에 행주질 치기를 즐겼고, 나는 자연스레 물기가 마르는 쪽을 원했다. 엄마는 옷걸이에 옷을 걸어 두길 좋아했지만 나는 바르게 개어 서랍에 넣어두길 바랐다. 으르렁대다 돌아서면 그제야 엄마가 아픈 사람이라는 게 생각났다. 언성을 높이다보면 그제야 나를 보고 있는 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늙고 병든 부모와 살아간다는 건 고통스런 일이었다. 아름다운 순간은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때뿐이었다.
세 번의 여름을 여든 넘은 부모와 함께 보냈다. 5개월간의 어색한 동거가 끝나면 나는 득달같이 짐을 꾸려 여행을 떠났다. 수은주가 높이 올라 갈수록, 엄마가 있지도 않은 가방을 찾아 헤매는 날이 많아질수록, 노트북 앞에 앉아 최적의 여행지를 찾아 헤매는 시간도 길어졌다. 봄부터 여름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어 준 아이들에게 여행이라는 선물을 선사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는, 그저 떠나고 싶었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었다.*
둘째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낸 날이었을 것이다. 혼자 집을 나서는데, 늘 옆에 있던 아이가 없으니 단출하면서도 한편으론 허전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아이를 안 듯 배낭을 앞으로 멨다. 그게 화근이었다. 그렇게 배낭을 한 번 앞으로 메니, 그 후론 무엇이든 붙잡고 놔주질 못했다.
간절히 셋째를 원했으나 뱃속의 셋째는 붉은 핏자국을 남긴 채 사라졌다. 홈스쿨링을 하자며 일 년 동안 큰애를 붙잡았으나, 일 년 후 큰애는 학교에 가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암 선고를 받으신 아버님을 모셔왔다.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자 이번엔 우울증과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님 차례였다. 두려웠다.
여전히 글을 쓰고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동창들을 보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결혼 전보다 글을 못쓸까봐, 아이 낳기 전보다 무대에 설 기회가 없을까봐 무서웠다. 한편으론 엄마로 최적화된 내가 쓸모없는 존재가 될까봐, 10년간 연마한 돌봄의 기술을 써먹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걸 썩히면 나도 사라질까봐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다 세월을 보냈다.
그만둬야 했다. 기꺼이 챙겨 입은 적 없는 ‘모성’이라는, ‘돌봄’이라는 옷을 이제 그만 벗어던져야 했다.
내년부턴 엄마 아빠와 여름을 보내지 않겠다고 형제들에게 말했을 때 아무도 나를 질책하지 않았다. 새 집 장만하느라 들어간 엄마 아빠 돈은 어쩔 거냐고 추궁하지 않았다. 언니와 오빠는 내게 ‘애썼다’고 했고, 요양보호사와 요양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삼 주 전에 나는 또 한 번 이사를 했다. 엄마 아빠가 쓰던 방으로 아이들 짐을 옮기고 아이들의 공간이었던 이층에 내 책과 책상과 옷가지를 옮겨 놓았다. 둘러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을 놓고, 수다 틈틈이 목을 축일 차와 찻잔도 준비해 두었다. 그리곤 ‘자매의 전당’이라 이름 붙이며, 이곳이 ‘모성과 돌봄’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벗어던진 이들의 공유 공간이 될 것임을 선포했다.
영화 ‘러브픽션’에서 희진은 말했다. ‘사람들은 평생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다가 죽어간다’고. 나는 어쩌면 또 다른 해명 작업에 돌입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느낌이 좋다. 위선적이지도 위악적이지도 호혜적이지도 않은 내 액면가라서 좋다. 그러니 나는 기억할 것이다. 나는 이미 나로서 충분하다는 걸.[워커스 39호]
*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중 ‘내 청춘의 영원한’ 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