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문화기획달)
부모님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나를 금이야 옥이야 키우셨다. 학교 급식이 시작되기 전 도시락을 싸간 몇 년 동안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을 먹여야 한다며 매일 점심시간마다 자전거로 학교에 도시락 배달을 오실 정도였다. 미안하지만 나는 부친의 사랑에 질려버렸다. 아마 매일 내 점심시간에 맞추어 밥을 지어야 했던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엄마는 아빠가 없는 날이면 나를 몰래 밖으로 불러 외식을 시켜주며 ‘밥 안 해도 되는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엄마와 같이 밖에서 밥을 먹다가 물어보았다.
“엄마는 나 뱄을 때 태교 어떻게 했어?”
“응, 딴 건 몰라도 쌍꺼풀은 꼭 있게 해달라고 빌었지. 너 수술 안 해도 되는 거 다 이 엄마 때문이다. 고마운 줄 알아.”
당연히 착하거나 건강하길 빌었을 줄 알았던 나는 엄마의 특이한 소원에 빵 터지고 말았다. ‘무쌍(쌍꺼풀 없는 눈)’으로 보이는 ‘옅은 속쌍(속쌍꺼풀)’인 엄마는 그게 평생 콤플렉스였다. 내가 아는 엄마는 타고난 현모양처가 전혀 아니었다. 다만 아버지의 요구에 부응하며 그런 척 살았을 뿐이다. 두 분의 인연이 30년쯤 지나고 자식들이 모두 독립하자 엄마는 한동안 가사노동 파업을 하더니 결국 아버지를 떠나기로 선택했다. 그 후 혼자 된 아버지를 위로방문 했더니 아버지는 세탁기 조작법을 몰라 한동안 빨래도 못하고 살았다며 엄마를 향해 원망과 한탄, 비참함이 섞인 투로 말씀하셨다.
“이 나이에 나한테 빨래를 시키다니!”
나는 너무나 놀라웠다. 자전거, 보일러를 비롯해 온갖 기계 수리에 능하고 3층 집도 손수 지었던 분이 고작 세탁기를 돌릴 줄 모르다니! 그리고 자기 빨래를 하는 것에 이렇게 분노하다니! 이 모든 것은 가사노동, 살림에 대해 평생 ‘내 일이 아니’라는 강한 의지와 ‘그 일은 천한 것’이라는 멸시에서 출발한 것 아닐까?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퇴근하고 종종거리며 저녁식사를 준비하다가 옆에서 멀뚱한 h를 발견하고 문득 속이 뒤집어져 버럭 화를 낸 적이 있다.
“누군 날 때부터 밥하는 거 배운 줄 알아? 당신도 모르면 배워!”
“나도 집안일 하잖아. 마당 관리도 하고 쓰레기도 내가 치우고….”
“그건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 번 하는 거잖아! 밥은 매일 먹고 치워야 된다고!”
농촌의 단독주택은 도시의 아파트처럼 편리하지 않아 손 가는 일이 많다. 거기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노동을 h가 맡았는데, 그는 ‘바깥일’과 ‘집안일’을 딱 잘라 나누어 각자 자기 영역을 맡는 게 적당히 공평하다 믿은 모양이다. 농촌의 부부관계, 노동구조는 대부분 그렇게 전통적인 성역할의 수행으로 이루어진다. 그게 각 성별에 맞고 더구나 효율적이라는 믿음이 아직도 지배적이다. 심지어 잠깐 힘을 쓰는 바깥일이 매일 살림을 관리하고 가족을 돌보는 집안일보다 훨씬 힘들고 중하다고들 여긴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의 노동력에 위계적인 값을 매기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농촌에 와서 결혼 하자마자 정해진 그 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부장제는 마을 문화와 이웃집과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무섭도록 생생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특히 결혼한 다른 여자들을 보면 대부분 뭐든 뚝딱 해내는 것만 같다. 농촌에 살거나 아이가 있으면 거의 만렙(최고의 수준)이다. 나이 들수록 할 줄 아는 일과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진다. 가족 중 가장 먼저 일어나 가장 늦게까지 일하며 가족 한 명 한 명을 돌보고 정기휴일도 없는 일상의 그림자 노동을 ‘살림’이나 ‘엄마’란 이름으로 퉁친다. 그걸 기꺼이 하면 착한 아내 좋은 엄마, 불평하거나 제대로 못 해내면 나쁜 아내 이기적인 엄마가 된다.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관계 안에서 의무와 역할로 존재하니 여성들 스스로도 자신을 외부의 기준에 맞추어 평가한다. 애초에 거부할 권한이 없다고 여기니 요구는 끝이 없고 그걸 해내지 못했을 때 자책도 자신의 몫이 된다. 결혼제도 속 여성을 둘러싼 억압의 장치는 들여다볼수록 우울하고 답답하다.
h의 첫 반응은 우리가 농사를 지었을 때와 다를 바가 없었으나(지난 호 참조) 난 더 이상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차는 시키지 않아도 꼬박꼬박 하면서 자기 빨래는 바구니에 던져놓는 것에 그치는 그의 행동양식과 그 저변에 깔린 사고방식을 ‘뜯어 고쳐’야 계속 같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언쟁이 오가고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알아본 그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세탁기를 돌리면 와서 빨래를 널었고 주말마다 청소를 도맡아 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접근하기 어려워했던 공간, ‘부엌’에 서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몇 번 이런저런 요리를 시도하더니 스스로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요즘은 그가, 내가 노는 꼴을 못 본다. 본인이 집안일을 할 때는 같이 도우라며 성화를 하기에 “나는 몇 년 치의 내 몫을 해놨으니 이제 당신 차례”라고 심드렁하게 답했다.
나도 살림을 잘 하지 못 한다. 아니 솔직히 가능하다면 안 하고 싶다. 그런데 일상을 유지하려면 안 하고 살 순 없지 않은가. 나의 부모님 이야기에서 보듯 남성과 여성의 살림 능력과 경험의 편차는 서로의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호 첫 글 제목 ‘오늘은 또 뭐 해먹지’라는 질문은 오늘도 나에게 유효하다. 다행히 숨은 옵션으로 붙어 있던 ‘또 뭐 해먹(이)지’에서 한 사람 분의 몫을 많이 덜어낸 상태다. 오늘 뭘 해먹을지는 나뿐 아니라 현재 숨이 붙어 있는 모든 이의 과제여야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착취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날 때부터 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날 때부터 해야 하는 사람만 있을 뿐. 그 코르셋을, 과감히 찢어버리자.[워커스 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