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후(사회운동에 관심이 많다)
지난 2월 13일 국내 3위 자동차업체 한국지엠이 구조조정을 통보하면서 엄청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한국지엠이 국내에서 운영하는 3개 완성차공장(인천 부평공장, 전북 군산공장, 경남 창원공장) 가운데 군산공장은 아예 폐쇄하고, 나머지 공장들도 추가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는 건데요. 한국지엠은 구조조정을 발표한 13일 당일 전 공장에 걸쳐 2천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단행한다고 공고하고 곧바로 접수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14일에 사측은 폐쇄를 선언한 군산공장의 모든 직원에게 특급우편으로 사직원과 희망퇴직원을 발송했습니다. 한국지엠 사장 카허 카젬 명의로 보낸 편지에는 “그동안 군산공장에서 열심히 일해 오신 많은 선량한 임직원들을 생각하면 매우 안타깝”다며 “여러분이 여러분의 미래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죠. 얄궂게도 이 특급우편에는 희망퇴직원과 함께 “전직 지원 프로그램” 안내문을 동봉해서 보냈습니다. 그야말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겁니다.
한편 한국지엠 구조조정이 현실로 들이닥치자 정부책임론이 거세게 대두하고 있습니다. 이 꼴이 나도록 정부는 무얼 했느냐는 건데요. 한국지엠의 모회사인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본사가 한국정부와 지속적으로 비공개 접촉하며 각종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국지엠 문제에서 국가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지요. 사실 내막을 살펴보면 한국정부는 17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이 문제의 핵심 당사자이자 책임자입니다. 지금 한국지엠을 둘러싸고 각 세력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국가개입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지난 회 연재에서 자본주의와 국가개입의 문제를 잠깐 다룬 바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국가개입과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현대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자본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요구한다는 맥락이었죠. 특히 구조조정은 자본주의의 수호자로서 국가의 문제가 첨예하게 드러나는 장입니다. 이번에는 지난 회에 이어 당면한 한국지엠 구조조정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와 국가의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국지엠에 대체 무슨 일이?
먼저 한국지엠에서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대개 기업이 파산하거나 위기상태에 빠지면 언제나 등장하는 래퍼토리가 ‘귀족노조와 고임금’ 탓하기죠. 이번에도 이 구도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양상이 조금 다릅니다. 여전히 노동자들의 고임금이 문제라면서도 GM의 경영실패가 부실을 야기했다는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죠. 보수언론과 정치권조차 사측의 책임을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GM의 경영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는 겁니다.
# 네 빚은 네 빚, 내 빚도 네 빚
현재 한국지엠 부실경영의 핵심은 엄청난 부채규모입니다. 한국지엠은 총자산이 7조 원이 넘는 대기업이지만 자산의 대부분이 부채이고 자기자본은 이제 87억 원에 불과하죠.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무려 85,000%를 넘습니다. 국내 대기업들이 IMF 위기 후 부채비율을 100~200% 수준으로 관리한 것과 비교해 명백히 비정상적인 상태죠.
하지만 한국지엠의 이런 부실은 불과 최근 몇 년간 벌어진 일입니다. 2012년만 해도 270%이던 부채비율은 2014년 400%를 돌파하더니 2015년 1,000%, 2016년 85,000%로 급격히 상승했죠. 이렇게 갑자기 막대한 부채를 쌓은 배경은 GM본사의 고리대금업입니다. GM본사는 2012년부터 약 3조 원의 돈을 높은 이자까지 매겨 한국지엠에 빌려주었습니다. 이는 고스란히 한국지엠의 부채가 되었고, GM본사는 매년 이자만 천억 원 이상을 받아갑니다. 본사가 자회사를 상대로 투자도 아니고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부실을 조장하고 현금도 뽑아간 것이죠.
그렇다면 왜 한국지엠은 GM본사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돈을 고리대로 빌렸을까요? 사실 이 돈은 한국지엠이 빌릴 필요조차 없었고, 오히려 GM본사가 갚아야 했던 부채였습니다. 잠깐 과거로 돌아가 봅시다. 2002년 GM은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자동차를 인수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회사명을 ‘GM대우’라고 했다가 2011년 지금의 ‘한국지엠’으로 바꾸었지요. 아무튼 이 때 GM은 산업은행에서 저리로 인수자금을 빌렸는데, 당시 산업은행과의 협약에 따라 2013년부터는 갚아야 할 이자율이 높아졌습니다. 그러자 GM본사는 이 돈을 한국지엠이 대신 갚게 하고, 그 자금을 본사로부터 고리대로 대출받아 지불하게 한 것이죠. 결국 한국지엠의 막대한 부실은 GM본사의 부채 떠넘기기로 인해 자초한 것입니다.
# 적자는 정해져 있고 너는 빚이나 지면 돼
부채와 함께 한국지엠의 적자구조도 부실경영의 핵심 문제입니다. 한국지엠은 2~3조 원대의 누적적자를 기록했는데 그 원인으로 판매부진을 지목하고 있죠. 한국지엠 전체 물량의 80% 이상이 수출인데, 2012년부터 수출물량이 지속적으로 급감해 2016년에는 반토막이 났습니다.
생산한 상품을 판매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흔하지만, 여기에도 GM본사가 등장합니다. GM본사는 2009년 경제위기로 한 차례 파산했는데, 당시 미국 오바마 정부가 전격 국유화하고 가혹한 구조조정을 거쳐 다시 민영화했죠. 이후 GM은 세계 각지의 자회사 구조조정에 착수합니다. 2013년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고 2015년 러시아에서 철수했으며, 2017년에는 유럽의 자회사 오펠/복스홀을 매각했죠. 해외시장 철수로 한국지엠 수출길이 막혔고, 생산물량 역시 급감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GM본사는 유럽과 러시아 철수비용 약 5천억 원을 한국지엠에 떠넘겨 적자를 더욱 부풀리죠.
GM 사측과 언론들은 노동자들의 고임금이 문제라고 공격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죠.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을 보면 한국지엠은 국내 완성차업체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매출액 중 매출원가로 지출하는 비중(매출원가율)은 압도적으로 높죠. 현대‧기아‧쌍용차 매출원가율이 70% 중후반~80% 초반인데 한국지엠은 90%를 초과합니다. 인건비 말고 다른 곳으로 돈이 빠져나간다는 건데요. 이에 대해 GM본사가 한국지엠에 부품은 비싸게 공급하고, 생산한 제품은 싸게 가져간다는 ‘이전가격’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지엠이 “경영상 기밀”이라며 회계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면서 이 합리적 의혹은 규명하지 못하고 있죠.
구조조정과 자본의 국가
그렇다면 민간기업의 부실경영에 왜 국가책임론이 불거지는 걸까요? 이미 여러 언론이 보도했듯 국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한국지엠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오늘의 사태에 이르도록 방조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한국지엠 문제에서 국가의 책임은 비단 최근 몇 년 동안이 아니라 17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우차 구조조정의 원죄와 두 개의 비공개 합의
구조조정 발표로 뒤숭숭하던 지난 2월 19일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집회가 열렸습니다. ‘2001년 정리해고 17주기 규탄대회’였지요. 17년 전인 2001년 2월 16일 대우자동차는 1,750명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분노한 노동자들이 즉각 공장점거파업에 돌입하자 김대중 정부는 이틀 만에 대규모 공권력을 투입해 폭력적으로 진압했습니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난 날이 2001년 2월 19일이었죠. 노동자들은 17년 만에 또다시 구조조정 통보를 받아든 것입니다.
2001년 대우차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고 GM에 매각한 것이 바로 정부와 산업은행이었습니다. IMF 위기로 대우그룹이 붕괴하자 산업은행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대우차의 주채권은행이 되었죠. 그리고 정부는 대우차 구조조정과 해외매각 방침을 결정해 밀어붙인 것입니다.
2002년 산업은행과 GM은 주주 간 협약을 체결해 매각을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이 협약내용은 지금까지도 비공개죠. 산업은행이 한국지엠 지분을 보유하고 이사를 파견하며, 15년간 이사회 거부권을 확보해 사업철수를 막을 수 있다는 것 정도 외에는 딱히 알려진 게 없었습니다. 2010년 산업은행은 또 한 번 GM과 비공개 합의를 맺습니다. GM이 철수하더라도 한국지엠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는 것만 홍보했죠. 그러나 지난해 10월, 협약이 규정한 15년이 지나 산업은행이 거부권을 상실하자 GM은 곧바로 철수위협과 구조조정에 나섰습니다.
2천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체결한 비밀협약. 그리고 이제 한국지엠 1만6천 명, 관련업체를 포함해 30만 명의 목숨줄을 위협할지도 모를 의문의 협약. GM이 공장폐쇄까지 선언한 지금, 정부는 ‘GM과 비공개를 약속했다’며 여전히 이 협약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는 공범이었다
앞서 GM이 부실경영을 초래한 여러 정황들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거부권까지 쥐고 이사들을 파견했음에도 부실경영에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죠. 심지어 회계정보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그리고 GM은 이제 추가 구조조정 카드를 내밀며 정부의 자금지원과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죠. 이 마당에도 정부는 GM이 요구한 지원내역이 무엇인지조차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1조 원의 자금지원, 산업은행의 유상증자를 통한 5천억~7천억 원 지원, 미국산 자동차의 수입규제 완화, 세금 감면 등 여러 얘기들이 언론을 통해 나오는 가운데, GM본사 임원들이 청와대, 기획재정부, 산업부, 산업은행 등 정부기관과 직접 만나 비공개 협상중이라는 사실만 ‘공개’된 상황입니다.
기업의 자유를 신성불가침으로 주장하던 자본과 언론, 정치권은 구조조정만 다가오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국가를 찾죠. 소리 높여 ‘뼈를 깎는 자구책’을 외치지만 실제로 뼈가 깎이는 건 노동자들이고 자본은 자금지원과 회생의 수혜를 가져갑니다. GM은 전세계에 걸쳐 이 분야의 선수죠. 유럽과 호주에서 GM은 정부지원을 털어먹으면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더 이상 지원이 없을 때는 가차 없이 철수했습니다. 현재 한국정부는 GM과의 협상을 비공개로 일관하면서 GM에 대한 지원과 그 조건을 재고 있습니다.
지난 17년간의 과정에서 국가는 GM과 함께 구조조정과 부실경영의 공범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정부가 GM을 일방적으로 지원하기에 곤란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GM의 회계내역과 영업비밀 공개’ 같은, 기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요구를 보수정치권마저도 주장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이들이 갑자기 사회주의자가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가혹한 ‘자구책’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 하겠지요. 자본을 위한 국가개입을 반복할 때 노동자들에겐 17년 전의 악몽이 또다시 현실로 덮칠 겁니다. 한국지엠 구조조정 앞에서, 노동자들이 GM과 함께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 할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자본주의가 극복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워커스 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