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행의 장소는 동두천 기지촌, 네온빛이 많은 곳에 위치한 짙은 어둠의 지대다. 한국전쟁 후 미군기지가 한국 땅에 들어선 후 만들어진 기지촌은 미군을 위한 성매매, 성산업의 공간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미군범죄가 상존하는 장소다. 한미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맴도는 2018년. 동두천 기지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번 길잡이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두레방’의 조이스 활동가다. 1986년에 설립된 두레방은 경기도 의정부 고산동에 위치한 캠프 스탠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지촌 뺏벌(예부터 배나무가 많아 배벌로 불리다 뺏벌이 됨)에 본 사무실이 있다. 두레방은 동두천 보산동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아웃리치 활동을 꾸준히 했는데, 2015년에는 아예 동두천에 작은 사무실도 마련했다. 미국 교포인 그가 한국에서 두레방 활동을 한 지 벌써 5년째다. 그는 주로 이주여성 지원활동을 한다.
우리가 동두천 기지촌이 있는 보산역에 도착했을 때 오락가락하던 비가 그쳤다. 걷기 좋은 날씨다. 보산역은 서울에서 지하철 1호선 소요산행을 타면 올 수 있다. 역을 나오자 클럽들이 눈에 띈다. 우리는 보산역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 위로 걸었다. 아직 낮이라 조명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클럽들이 영업을 하는 것을 알려주는 듯 단정하다.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와 몇 개의 공예점들. 동두천시가 이미지 개선을 위해 마련한 공방 등의 문화공간이다.
[출처: 김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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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업 중인 클럽
군산 아메리카타운이나 이태원의 쇠퇴해가는 기지촌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여전히 성업 중인 클럽 간판이 많았고 미군들을 위한 상점들도 많았다. 국적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아시아음식점, 햄버거 가게, 양복점, 70년대 한국 물건들을 파는 상점들이다. 어떤 기지촌을 가도 볼 수 있는 비슷한 거리 풍경이다. 조이스는 5년 전 두레방에 방문한 연구자도 그리 말했다고 했다.
“그분이 의정부 기지촌을 한번 돌더니 오키나와랑 똑같이 생겼다고 하더라구요. 금이나 물건 바꾸는 곳, 환전소, 양복점, 야구용품 파는 곳 등이요. 한국엔 밍크 이불이나 호랑이 그린 거 파는 가게가 거의 없잖아요. 기지촌은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는 곳이니까요. 미군을 위한 곳이거나 아니면 미군에게 서비스하는 사람들, 즉 장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인 거죠.”
50m도 안 되는 거리를 걷는데 양복점을 다섯 곳이나 마주쳤다. 얼마 전 갔던 이태원에도 서울 시내에서는 보기 힘든 양복점이 있었고, 이는 생경하게 느껴졌었다. 그에게 왜 기지촌에는 양복점이 많으냐고 물으니 “미국은 양복 맞추는 비용이 어마어마해 여기서 맞추고 가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현재 동두천 기지촌에 있는 클럽은 몇 년 전만 해도 60개 정도였는데, 현재는 대략 40개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2~3년 전부터 캠프 케이시 운영이 바뀌어서 클럽들이 더 줄어드는 추세란다. 그는 “옛날에는 군인들이 2~3년 동안 여기에 있었는데 요즘에는 로테이션하는 걸로 바뀌었어요. 9개월 정도 여기서 근무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마치 훈련소처럼 쓰여 단골을 잡기 어렵지요”라며 미군 정책의 변화를 알려줬다.
한미혈맹 강화? 성별화된 한미군사관계
계속 골목을 걷다 보니 철조망이 쳐져있는 벽이 나온다. 바로 동두천시 전체 면적의 42%를 차지하는 캠프 케이시다. 군사기지임을 알려주듯 도로 위에 ‘탱크 출입금지’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아 미군기지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 앞은 미군범죄 규탄 시위를 많이 했던 곳이다. 특히 1992년 10월 윤금이 씨가 미군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후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2천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집회를 하고 부대 앞 상징물 석상에 달걀을 던지며 항의했다. 택시노조는 ‘미군 승차거부 운동’을 하고, 상인들은 ‘미군 손님 안 받기 운동’을 할 정도로 분노가 컸다. 피멍이 든 윤금이 씨의 몸에 우산과 콜라병, 맥주병을 꽂아 넣을 정도로 너무나도 잔인하게 시신을 훼손한 미군 범죄였다.
범인으로 밝혀진 케네스 마클 이병은 살인죄로 기소돼 1994년 15년 형을 확정판결 받고 천안소년교도소 외국인용 감방에 수감됐다. 미군 부대 내에서 불구속 상태나 다름없이 재판을 받던 케네스 마클이 뻔뻔하게 미국에 신병인도를 요청했으나 미국 대법원이 이를 기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6년 8월 형기를 1년 앞두고 정부는 그를 조용히 가석방했다.
당시에는 불합리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tatus Of Forces Agreement: SOFA)’ 때문에 미군 피의자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 기소 및 재판 과정에서도 형사 관할권 행사를 하기 어려웠다. 이태원에서 미군의 여성 살해가 재발한 후인 2001년 4월에야 미군 범죄 피의자를 ‘기소 시점에 한국 정부로 신병 인도한다’는 내용으로 SOFA가 개정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피의 흔적이 희미해지듯, 미군 범죄의 흔적도 잊히나 보다. 미군기지 정문 앞에는 ‘한미혈맹 강화’라는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있다. 기지촌에서 돈 버는 사람들이 걸어놓은 것이다. 군사주의를 이식하는 미군기지는 언제나 여성에 대한 (성)착취를 동반한다. 동두천만이 아니라 미군기지가 있는 세계 곳곳이 그렇다. 한미관계의 젠더화된 성격을 깡그리 무시하는 글귀에 소름이 확 돋는다.
2007년부터 북쪽(의정부, 동두천)에 있던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고 있다. 의정부에 있던 미군기지 여덟 개 중 다섯 부대가 2007년에 반환됐고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는 2020년에 이전할 계획이다. 다행히 미군기지 이전으로 기지촌이 쇠퇴하면 지역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던 사람들의 막연한 걱정은, 동두천 중앙역 상권이 살아나면서 차츰 바뀌고 있다.
[출처: 김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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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국적만 바뀐 기지촌
캠프 케이시 정문을 지나 다시 보산역 2번 출구 쪽으로 걸어오다 보면 광장이 보인다. ‘한미우호의 광장’이다. 많은 기지촌이 외국인관광특구로 지정됐듯이 이곳도 관광특구다. 기지촌이 성산업관광특구인 셈이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울어서인지 아까보다 광장에 사람들이 늘어났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나 이주노동자들이다. 이제는 한국인보다 필리핀이나 러시아에서 온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한국여성에서 외국인여성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성 착취는 여전히 그대로다.
“대부분 필리핀 여성들이 연예인비자(E6)로 들어오고 있어요. 여성들이 한국에 올 때 가수가 아니라 업소에서 일하는 걸 예상하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최근 정부의 인신매매 방지 방침으로 E6비자 여성들이 줄기는 했어요. 하지만 업주들은 여성이 필요하니까 필리핀 미등록 여성이나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러시아 여성, 카자흐스트탄 여성들이 늘고 있지요. 20~30% 국적이 바뀌고 있는 추세예요. 한국과 러시아 간 무비자협정이 체결된 결과예요. 이주여성들은 주로 건강이나 임금문제에 시달려요. 기본적으로 근로조건이 이중계약으로 이뤄지거든요. 현지에서는 꽤 괜찮은 조건으로 계약하는데 실제 그렇지 않은 거죠. 미등록 이주여성 같은 경우에는 월급도 못 받는 경우가 많죠. 성추행이나 성폭력도 신고하기 어렵고.”
클럽 건물 위층은 대부분 클럽에서 일하는 이주여성들의 숙소다. 2층에는 업주가 살기 때문에 3층에 사는 여성들의 동태를 금방 알 수 있다. 24시간 감시 시스템인 셈이다. 조이스는 나쁜 업주들의 경우, 자신들이 안심할 때까지 출입을 아예 막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공식적인 성매매가 없는 클럽도 ‘강요제 주스’라고 손님들한테 술 사달라고 하는 게 있어요. 할당된 걸 채워야 여성들이 돈을 받아요.” 술이나 주스를 마시는 동안 여성과 신체적 접촉을 한다.
그런데 이곳 클럽 이용자들은 미군만이 아니다. 근방인 포천이나 양주 쪽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도 많다고 했다. “미군들은 12시까지 집에 가야하니까 그 후인 새벽 1시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와요. 그 사람들이 집에 갈 때까지 여성들은 일해야 하니까 아침 6시까지 12시간, 15시간 일하는 거죠.”
아메리칸 엘리
우리는 클럽들이 있는 기지촌을 둘러본 후 건너편 군부대 뒷마을로 갔다. ‘아메리칸 엘리American Alley’라고 불리는 이곳은 외국인들이 많이 산다. 예전에는 미군들이 필리핀 여성들과 동거하면서 사는 게 흔한 일이었단다. 아직까지도 필리핀 여성들은 미군과 결혼하는 것을 성공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주여성들이 임신을 하는 경우도 많단다. 아이들은 근처 초등학교에 다닌다. 법적으로 비자가 없어도 이주아동의 교육은 보장되지만, 필리핀 여성들의 경우 애들이 어느 정도 크면 본국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마을에는 새로 지은 빌라도 조금 있지만 주로 오래된 단층집이 많았다. 영어로 쓴 방 임대 쪽지가 붙은 집들이 종종 보였다.
조이스는 이곳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글교실이나 공예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공동식사도 같이하고 있다. 그는 “자원이 없는 이주여성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면 좋겠다”며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E6비자는 한국에서 일하는 기간이 최대 2년이라 그런 신뢰관계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성산업의 발달로 기지촌은 다른 유흥가와 큰 차이가 없어 보여 기지촌 문제를 드러내기 쉽지 않다. 조이스는 보산역에 와서 “와, 반짝반짝 화려하네. 여기는 뭐하는 데야”라며 사진을 찍는 사람도 본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기지촌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많다. 군사주의와 젠더, 이주와 성산업이 착종된 기지촌 문제가 주한미군철수 문제에서 언급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동두천에서 보이듯, 미군기지의 이전이나 미군의 정책에 따라 기치촌은 모습과 규모, 장소만 이전할 뿐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흐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