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운동국장)
7월 11일 아침, ICE(미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세관단속국) 샌프란시스코지부 앞에 텐트를 치고 유자철선을 두른 상태로 농성을 이어가던 샌프란시스코 오큐파이(Occupy San Francisco) 멤버 39명이 연행됐다. 농성 중 파이크(Faiq)라고 이름을 밝힌 한 시위 참가자는 지역신문에 시위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이민세관단속국 폐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이 기관이 지금의 미국이 어떤 기반 위에 세워졌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미국은 토지 침략, 노예제도, 그리고 인권이나 그 어떤 다른 무엇보다도 재산의 소유권만을 신성시하는 물신주의의 토대 위에 설립된 나라입니다. 이민세관단속국은 그것의 집약체에 불과합니다.”
그보다 일주일 전인 7월 4일, 미국의 근간이자 또 하나의 기치인 ‘자유’에 대한 호소도 이어졌다. 흑인 여성 한 명이 스태튼 아일랜드의 자유의 여신상에 몰래 올랐다. 푸르른 절벽 같은 동상 발치에 세 시간 가량 앉아 16명의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이다 연행된 그녀의 이름은 테레제 파트리샤 오코무이다. 그녀는 “미국 국경에서 부모와 격리수용 된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할 수 있을 때까지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자유의 여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라며 울먹였다. 그녀의 요구사항은 그날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집회를 주관하던 ‘라이즈 앤 리지스트 (Rise And Resist – 일어나 저항하라)’ 단체의 요구사항과도 같았고, 샌프란시스코 오큐파이의 요구사항과도 유사했다.
이렇듯 미국의 자유주의적 물신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이들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미 건국 신화에 호소하는 이들이 ‘반정부’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6월 말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트럼프 정부와 이민세관단속국에 맞선 강경한 저항의 흐름이 각계각층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미 공화당이 ‘부도덕한 좌파’를 매도하기 위해 ‘가족의 가치’를 내걸고 종교적, 도덕적으로 설파해 온 모든 내용이 기만적인 여론통제를 위한 거짓말이었음이 이로써 방증됐기 때문일까. ‘가족을 생이별시키고 아이들을 고아로 만드는, 너희가 말하는 ‘가족’은 거짓이었다’라며 공화당을 탈퇴하고 거리로 나서는 보수층까지 속출할 정도다. 워싱턴의 한 시위참가자는 “나는 올해로 칠순이다. 최근까지도 공화당원이었다. 평생 살며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에도, 민권운동에도 참여한 적 없지만 오늘만큼은 나올 수밖에 없었다”라며 카메라를 향해 울부짖기도 했다.
6월 30일 토요일, 미국 각지에서 수십만 명이 흰 옷을 입고 행진하기 시작했다. 이민자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보수 텃밭인 와이오밍 등지에서부터 미국 이민 역사의 고향격인 뉴욕에 이르기까지. 적게는 천명에서 많게는 십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 780개가 넘는 대규모 행진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가족을 갈라놓지 마라”, “트럼프는 물러나라”, “우리도 모두 난민이었다” 등의 표어를 들고, 이민세관단속국의 멕시코 국경 단속 강화 및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에 대한 입국 제제에 저항했다. ACLU(미국시민자유연맹), MoveOn.org(무브온), NDWA(전미가사노동자연맹)이 주관한 이 행진은 수백 개의 단체들이 결합하며 급속히 확산됐다. 이 같은 저항의 불씨는 하루아침에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7월 28일에는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Families Belong Together)’라는 이름의 전국 집회가 예정돼 있다.
2018년 4월 6일, 미 법무장관 제프 세션스는 ‘불법 이민’을 저지하기 위한 ‘무관용 정책’의 일환으로 미 남부 멕시코 국경을 사증 없이 넘는 가족들을 강제로 떼어놓고 무기한 격리 수용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비록 강력한 비판에 부딪힌 트럼프가 불법 입국자와 미성년 자녀를 격리 수용하는 ‘아동격리수용’ 정책을 마지못해 철회하는 쇼를 했지만, 이는 보여주기용에 불과했다. ‘무관용 정책’은 여전히 실행 중이며, 심지어 이제 불법 입국한 이들은 가족 단위로 무기한 수용소에 갇히게 될 처지에 놓였다. 결정적으로 지금까지 격리수용 된 2천 명의 미성년자들은 부모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십 년에 걸친 조사를 받고 입국과정을 거치는 동안 거대한 동물 우리처럼 생긴 수용소에서 은박 이불을 덮고 감독관들의 부당처우에 노출돼야 한다.
영국 가디언지의 기자가 찾은 텍사스의 ‘보호자 미동반 외국인 미성년자 수용소’는 창문 없는 인공불빛, 쇠창살 여닫는 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는 아수라장이었다. 기자는 네 살 쯤 되어 보이는 한 아이에게 스페인어로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 아이는 답변을 울음으로 끝맺었다. “과테말라요. 아빠가 보고 싶어요….” 단순히 다른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도 예멘 난민 수용 찬반 논란으로 뜨겁다. 지금과 같은 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국민국가의 인구통제정책과 국경봉쇄정책이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멕시코에서는 왜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국경을 넘으려 하는가? 1982년 석유수출국기구(OPEC)발 유가급등과 1992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체결을 거치며 멕시코의 경제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질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정치경제적 혼란 속에서 마약 카르텔과 극심한 빈곤과 폭력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멘에서는 왜 5만 명이 넘는 난민이 속출했는가? 2011년의 예멘 혁명 이후, 부패한 옛 예멘 독재정권을 비호하던 미 정부가 알카에다를 핑계 대며 사우디 주도 연합군과 함께 예멘 폭격과 봉쇄에 가세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도 180억 원 상당의 탄약을 보조했다. 국민국가라는 허울을 쓰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나라를 만들어 놓고서, 그럴싸한 말들로 혐오와 공포를 부추기는 이들의 술책은 언제나 인권을 위협해 왔다. 미국 민중은 벌써 그 기만을 꿰뚫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는 혐오와 공포를 부추기는 기득권의 책동을 넘어설 수 있을까.[워커스 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