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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증강현실’이라는 새로운 기술과 귀여운 캐릭터들로 우리를 사로잡았던 ‘포켓몬 고’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증강현실’ 게임은 그즈음 이세돌의 바둑을 이긴 ‘알파고’와 한 쌍을 이뤄, ‘4차 산업혁명’이라는 희대의 유행어가 만들어지는 데 일조했다. 유저 수가 계속 줄어들긴 했지만 포켓몬 고 게임은 나름대로 계속 진화하고, 새로운 캐릭터들도 생겨났던 모양이다. 그해 여름 속초 해수욕장에서 막내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잡았던 이상해씨나 서울 시내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어렵게 잡았던 잠만보가 아직 게임 속에 있어서인지, 나에게 포켓몬 고는 스마트폰에서 여전히 지울 수 없는 게임이다. 새로운 기술을 입은 오래된 캐릭터들과 더불어 아이들은 자라나고 우리는 점점 나이 들어갈 것이다.
너무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던 걸까. ‘포켓몬 고’의 후속작으로 내년 즈음에 ‘포켓몬 슬립’이 나온다는 뉴스를 접했다. “걸어 다니면서 증강 현실 기술이 적용된 포켓몬을 잡는 포켓몬 고와 달리 포켓몬 슬립은 게이머가 자고 일어나는 시간과 수면상태 등을 기록해 게임에 반영한다”는 기사를 읽고 혼란에 빠졌다. 아직 출시되지 않아 정확한 게임의 룰은 알 수 없지만, 잠자고 깨어나는 시간과 수면의 상태를 게임에 적용한다니. 새로운 종류의 게임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우선 들었다. 잠은 인간이 노동과 놀이, 혹은 일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미지의 시간이자 해방된 영역일 텐데, 이것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상상은 실로 놀랍다. 이것은 마치 꿈으로 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과 유사한 기발함처럼 보인다. 그렇다. 걷기가 하나의 게임이 될 수 있었듯이, 잠자기(혹은 잠깨기)가 게임이 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어떻게 플레이가 된다는 것인지 궁금증이 생겼지만 사실 더 다급한 질문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인간이 깨어있는 시간의 플레이만으로는 게임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인간의 고유한 시간을 게임의 시간으로 사용한다면 인간의 자유롭고 순수한 휴식과 충전의 시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현대인의 잠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거나 도둑맞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한때 웨어러블 기기들과 스마트폰의 수면 앱을 이용해 좀 더 나은 잠을 이루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다. 수면 앱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수면의 패턴을 파악해서 어떻게 하면 잠의 질을 높게 유지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혹은 밤중에 깊은 잠에 빠졌다가 새벽에 얕은 잠에 이르게 되면 아예 알람을 울려서 깨워주는 앱도 있다. 잠자는 동안 몸에 부착한 웨어러블 기기나 스마트폰의 움직임과 주변 소리를 기록해 깊은 잠의 시간은 연장하고 얕은 잠의 시간은 축소해 잠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이 수면 앱들의 요체다. 이러한 수면 앱의 기능을 게임에 활용하겠다는 발상은 수면 앱이 감추고 있던 일종의 게이미피케이션의 원리를 역으로 끄집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스마트폰의 수면 앱이나 웨어러블 기기를 사용해 수면 상태를 추적하고 기록하던 것을 이제 게임에 활용하겠다는 역발상은 게임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해주는 재미가 분명 있을 것이다. 웨어러블 기기나 스마트폰으로 걸음 수나 거리를 측정해 기록하는 일의 재미, 그렇게 오랫동안 기록하고 거기서 나름의 패턴을 발견하는 재미, 그리고 어느새 걸은 거리만큼 건강해진 신체에 대한 감각, 각자 걸은 길과 걸어서 도달한 장소의 차이가 낳은 다른 결과,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출된 경쟁심 같은 것들이 포켓몬 고 게임을 낳았다. 그러나 잠의 영역은 걷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깨어있는 시간에 그치지 않고 잠든 시간까지, 플레이어의 살아있는 모든 시간을 게임으로, 혹은 게임을 위한 데이터로 변환시켜 낸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인간의 생물학적 능력들을 착취하는 결과를 낳는다. 잠자는 동안 플레이어가 의식적으로 게임을 위해 수행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착취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웨어러블 기기와 스마트폰을 사용해 수면 패턴 측정을 연구하고 경험해본 판단에 따르면, 수면 측정과 기록을 하다 보면 수면에 대한 일종의 인지적 각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요컨대 수면 시간과 패턴이 나의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각을 시작하면 실제로 잠을 자는 동안에도 스스로 잠에 대해 의식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흔히 긴장하고 잠을 자면 다음 날 아침 알람시계가 울리기 직전에 잠이 깨는 경험을 하듯이.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는 수면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수면 앱을 사용했지만, 나중에는 그 기록이나 패턴에 대해 의식하게 돼 수면의 질이 도리어 떨어지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늘 수면 시간 측정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잠을 덜 잔 것 같은 피로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니 “수면 데이터를 스마트폰으로 보내면 게이머들이 자고 일어났을 때 재미있는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포켓몬 슬립 게임 제작사 사장의 말은 아마도 사실로 드러날 것이다. ‘잠이 오락’이 된다는 것은 즐거운 상상을 넘어 잠을 경쟁하기도 하고 잠으로 싸우기도 한다는 의미다. 자고 일어났을 때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을 재미를 얻기 위해, 뛰어난 플레이어는 또한 열악한 슬리퍼(sleeper)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누군가는 잠이 게임의 재료가 되는 것을 ‘혁신’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잠이란 산업의 원료로 포섭되지 않고 그대로 남을 때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포켓몬을 잡으러 부지런히 여기저기 다닐 수 있어서 행복했기에, 이 모든 것이 기우라면 좋으련만. 포켓몬 슬립이라는 게임은 깨어있는 인간에 주목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삶의 모든 인지 능력을 디지털 경제의 플랫폼 속으로 기입하려는 지금의 인지/플랫폼 자본주의 일반성의 한 사례다. 우리는 흔히 농담처럼 “사람을 갈아 넣는 노동”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지금의 모든 플랫폼 활동은 그야말로 사람의 삶 전체를 재료로 혹은 원료로 삼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의 꿈꾸는 시간마저 증강시키는 현실로부터 즐거움을 생산해내고 행복하기를 기대하는 삶이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