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오후 6시 30분. 울산 경동도시가스에서 일하는 가스안전점검 여성노동자 세 명이 울산시의회 옥상에 올랐다. 단단히 각오를 한 터라 옷과 텐트, 플래카드까지 한 짐을 싸들고 시의회로 향했건만, 옥상에 오르기도 전에 시청 직원들에게 모두 빼앗겼다. 혈혈단신으로 도망치듯 오른 시의회 옥상은 생각보다 높고 바람이 찼다.
한 숨 돌릴 틈도 없이 시청 직원과 경찰들이 모여들었다. 울산시청은 그들에게 퇴거명령을 내렸다. 옥상 밑에서는 경찰과 싸우던 사람들이 연행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농성하는 언니들한테 옷을 주라며 악을 쓰는 조합원의 목소리도 들렸다. 아비규환의 소동이 한 차례 지나자, 어느새 하늘이 깜깜해졌다. 춥고 불안한 밤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고공농성에 오른 김정희, 권미순, 이신자 조합원은 노조에서 가장 고참인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성폭력 대책을 요구하는 파업이 121일째 장기화되고 있었지만, 회사는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날 교섭에서도 경동도시가스 사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무 권한도 없는 센터 사장이 참석해, 노조에 A4용지 한 장을 달랑 전달한 뒤 자신의 결정사항이 아니라며 어딘가에 전화만 해댔다. 추석 지나고 합의를 보자던 회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무성의하기만 했다. 더 이상 기약 없는 시간만 붙들고 있을 순 없었다. 십여 년 간 그들을 괴롭혔던 온갖 성폭력 문제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후배가 성폭력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하는 일 따위는 이제 없어져야 했다.
9월 18일 아침. 날이 밝기가 무섭게 울산시의회 건물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경찰이 진압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경찰 기동대 3개 중대와 여경 1개 제대 등 300여 명의 경력이 시의회를 둘러쌌다. 오전 8시가 지나자 경찰이 1차 해산을 명령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2차 해산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곤 눈 깜짝할 사이에 진압 작전이 시작됐다. 수십 명의 경찰이 여성노동자 세 명을 덮쳤다. 몸에 밧줄이 감겼고,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몸을 버둥거릴 때마다 밧줄과 수갑이 살에 파고들었다. 점퍼가 찢겨져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밧줄에 매달려 연행되는 동안, 그들은 울컥 치미는 수치심을 몇 번이나 삼켰다.
여장부 같은 씩씩함 때문에 노조 여성부장을 맡은 김정희 씨는 수치심을 털어내지 못해 하루 종일 울고 또 울었다. 이틀이 지나도록, 그들의 몸에 새겨진 푸르스름한 멍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래된 성폭력의 기억
권미순 씨의 허벅지에도 밧줄에 눌린 멍 자국이 남았다. 억울하고 고통스러웠지만 예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나았다. 자신과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후배들을 생각하면 그랬다.
권 씨는 올해로 11년차를 맞은 가스점검노동자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손에 꼽히는 고참 노동자지만, 그는 여전히 남의 집 벨을 누르는 것이 어렵다. 4년 전 사건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아 그를 움츠러들게 했다.
2015년 어느 날, 권 씨는 여느 때처럼 고객의 집을 방문했다. 벨을 누르자 잠깐 기다리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객이 준비하는 동안 옆집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옆집 안전점검을 끝내고 다시 돌아와 벨을 눌렀다. 이번에는 문이 열렸다.
문을 연 남자는 벌거벗은 몸에 빨간 앞치마만 걸치고 있었다. 당황했지만 그래도 설마 하의는 챙겨 입었겠지 싶었다. 권 씨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가 몸을 돌렸다. 순간 남자의 나체가 드러났다. 그 찰나의 순간, 여러 고민들이 머릿속에 가지를 쳤다. 그냥 도망쳐야 하는데, 들어가지 않는 것이 맞는데, 그러면 할당량을 못 채우게 될 테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월급이 깎이는데, 그래도 과연 도망치는 게 맞을까.
결국 권 씨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일을 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을 마치고 서둘러 집을 나서자마자, 권 씨의 자존감은 무너져 내렸다.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를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할머니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도대체 나를 얼마나 업신여겼으면, 여성노동자를 얼마나 무시했으면 저런 행동을 할까. 수치심은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래도 네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남자는 은연중에 권 씨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권 씨는 결국 그 폭력적인 시간을 버티고 견뎠다. 그놈의 할당량 때문이었다.
그 뒤로도 종종 다른 듯 비슷한 경험을 했다. 슬그머니 다가와 어깨를 치는 고객도 있었고, 술을 마시곤 집적대는 고객도 있었다. 거울 앞에서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있는 남자를 보고 까무러칠 듯 놀라 도망쳐 나오기도 했다. 팬티만 입은 채 문을 열어주는 고객을 봐도 이젠 대수롭지 않았다. 재수가 없어서 그러려니, 하며 시간과 함께 흘려보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가 피해자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지난 4월 16일, 입사 2년이 채 되지 않은 후배가 노조 조합원 모임에서 성폭력 피해사실을 털어놨다. 11일 전 한 원룸에서 감금 돼 추행당할 뻔 했다는 이야기였다.
이튿날 노조가 피해자와 함께 경찰에 신고를 했다. 정신과 의사는 피해자에게 장기 치료를 권했지만 회사는 2주간의 짧은 치료기간마저 공상으로 처리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노조는 성폭력 피해 사실들을 취합했다.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은, 피해자가 그동안 무려 세 번의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는 것과, 조합원 대다수도 비슷한 피해를 겪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피해자가 업무에 복귀한 지 2주도 채 되지 않은 5월 15일. 안전점검에 나갔던 피해자가 또 다시 팬티만 입은 남성과 마주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틀 뒤, 피해자는 조합원 단체 대화방에 ‘언니들 나 정말 힘들었어요’라는 메시지와, ‘언니들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통화를 남기고 연락을 끊었다. 한참을 수소문한 끝에, 조합원들은 동생 집에서 착화탄 연기에 휩싸여 의식을 잃은 그녀를 발견했다.
“우리가 너무 무뎌졌던 거예요” 권 씨가 말했다. 그녀뿐 아니라 다른 조합원들도 비슷한 자책감을 느꼈다. 무뎌지고 태연해진다고 폭력을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또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을 할 수는 없었다. 피해자는 나의 과거이자 미래였고, 모든 동료의 모습이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우리 모두가 피해자, 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리고 이틀의 주말을 보낸 뒤, 파업에 돌입했다. 요구사항은 2인1조 운영과 개인할당제 폐지 등이었다.
그놈의 97% 때문에
그 와중에도 사건은 계속 터졌다. 피해자를 대체해 업무에 투입됐던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방문 업무 중 나체의 남자와 마주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회사는 온전한 2인1조 도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울산과 경남 양산의 도시가스 공급을 독점하며 연간 340억 원의 순이익을 내면서도, 2인1조 도입 예산 26억 원은 선뜻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지금껏 숱한 성폭력에 시달려 온 여성노동자들은 그들을 피해자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회사와 긴 싸움을 시작했다. 다행히 의식을 되찾은 피해노동자는 조합원들의 파업 투쟁을 보며 미안해했다. “미안해서 울더라고요. 자기 때문에 4~5개월 월급도 못 받고 싸우는 걸 보면서.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이니까. 할당량 97%를 채우겠다고 그런 문제에 무뎌졌던 건 우리였으니까요.” 김정희 씨가 말했다.
김 씨는 노동자들이 성폭력을 당해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던 까닭은 ‘개인 할당제’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가스점검노동자 1인당 한 달에 1200가구를 배정했다. 그리고 실 점검률 97% 달성을 강요했다. 달성률을 채우지 못하면 1%당 5만 원 씩 임금이 삭감됐다. 노동자들은 부재중인 고객을 만나기 위해 몇 번이고 같은 집을 찾아 다녔고, 고객이 가능한 시간이면 언제든 달려가야 했다. 남자가 팬티만 걸치고 나와도, 은근 슬쩍 몸을 만져도, 점검률 97%를 채우기 위해 참고 견뎠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때 마다 수모를 당해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김 씨는 한 달에 한 번, 회사가 빔 프로젝트 화면에 실 점검률 미달인 노동자의 이름을 띄울 때 마다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최저임금 수준인 기본급 174만5150원을 벗어나려면 업무량을 늘려야 했고, 저녁이고 휴일이고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노조는 지난 4월 한 달 동안 하루 8시간의 정상근무를 해 보기로 했다. 그 결과 기본급 10%와 교통비, 야근수당, 휴일수당 등이 모조리 삭감됐다. 정상근무 후 통장에 찍힌 월급 명세서에는 지난달 보다 많게는 60~70만 원이 줄어 있었다.
[출처: 윤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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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 불평등
그렇다고 성폭력 발생 시 대처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근무한 지 10년이 넘은 김정희 씨도, 권미순 씨도, 이신자 씨도, 누구 하나 업무 매뉴얼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들이 회사의 업무매뉴얼을 보게 된 건 엉뚱하게도 언론 보도를 통해서였다. ‘성적 수치심 및 성희롱’ 시 행동지침으로 적힌 매뉴얼을 보며 그들은 혀를 찼다. 고객이 차 한 잔 하자고 할 때는 “고객님의 마음을 담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음담패설을 할 때는 못들은 척 하거나 “고객님 안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라는 행동지침이었다.
“형사님들도 2인1조 하잖아요. 우리도 그거 해달라는 거예요.” 고공농성 중 강제 진압을 당해 경찰서로 연행된 김정희 씨는 경찰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어떠한 안전장치 하나 없이 낯선 집들을 돌아다녀야 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2인1조 근무는 죽고 사는 생존의 문제와 다름없었다. “내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한 사람만이라도 알고 있다면 너무 큰 위안이 될 것 같아요.” 김정희 씨가 작은 바람을 내비쳤다.
사실 대다수가 여성인 안전점검노동자들은 안전에 있어서도, 노동조건에 있어서도 늘 차별을 경험한다. 이장우 공공운수노조 울산지역본부장은 경동도시가스에서 배관검사를 하는 남성 노동자들은 모두 2인1조로 작업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한 명은 배관검사를 하고, 또 한 명을 안전을 점검하는 역할이다. “사실 배관검사보다 집안 가스안전점검이 더 위험하죠. 밀폐된 공간에서 가스가 새는 것이 훨씬 위험하니까요. 여성 혼자 집 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바깥에서 일하는 것보다 위험부담이 더 하고요.”
경동도시가스 자회사인 서비스센터에 고용되다 보니, 본사 정규직과 임금 및 노동조건에서 차별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고공농성까지도 차별을 한 것 아니냐는 농반진반의 얘기도 나온다. 이 본부장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100일 넘게 울산시의회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할 때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하루도 안 돼 무리하게 강제진압을 했다”며 “인권변호사를 자칭하는 송철호 시장이 왜 유독 강경 자세로 나온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뎌지지 않는 법을 배운 124일 간의 파업
지난 9월 20일. 울산 경동도시가스 안전점검원 노사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 합의서에는 ‘탄력적 2인1조’ 운영과, ‘건수 성과제 폐기’, ‘감정노동자 보호 매뉴얼 마련’ 등의 문구가 담겼다. 회사가 이번 성폭력 사건으로 인한 조합원들의 치료비용을 책임진다는 부속합의도 이뤄졌다. 가스안전점검 여성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지 124일 만의 성과였다.
조합원들은 이번 합의가 가진 의미도, 그리고 한계도 명확히 알고 있다. 온전한 2인1조 근무가 아니기 때문에 업무량이 많을 때는 운영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도, 실점검률은 폐지됐지만 업무량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가스안전점검 노동 현장에서 최초로 2인1조를 도입하는 초석을 마련했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국의 가스안전점검 노동자들과, 수많은 가구방문 노동자들에게는 희망이 될 터였다.
고공에 올랐던 이신자 부분회장, 김정희 여성부장, 권미순 조합원은 요즘 ‘여성노동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124일간의 파업 기간 동안 그들은 무뎌지지 않는 법을 배웠다. “파업 기간에 국회에서 열린 가구 방문 노동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 때 가구방문 노동자가 굉장히 많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우리보다 더 열악하게 일하는 여성노동자들도 많고요. 아직도 사회는 여성의 노동을 너무 하찮게 여기는 것 같아요. 비록 지금은 우리 조합원에개만 2인1조 근무가 적용 될 테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여성노동자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해요.”[워커스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