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nation)이란 말은 그 말이 놓인 맥락에 따라서 긍정과 부정의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말에서 어떤 이는 억압을, 어떤 이는 해방을 느낀다. 민족주의(nationalism)도 마찬가지다. 민족주의는 어떤 곳에서는 국가주의적 폭력성을 상징하는 단어지만, 어떤 곳에서는 자치와 독립을 상징한다. 민족 개념에 대한 상이한 이해는 최근의 한·일 갈등 국면과 반일 민족주의 논쟁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계급에 따라, 젠더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서구 제국의 침략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가들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다르고, 식민지 시대의 민족주의와 세계화 시대의 민족주의가 다르며,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의 민족, 여성과 남성에게서의 민족의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개인들도 각자의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민족의식과 민족 감정을 갖게 될 것이다. 국가의 지배층이라면 민족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볼까. 인구, 생산력, 조세, 교육 수준과 발전 수준을 생각할 것이다. 노동자와 여성은 국민(nation)을 구성하며 노동력과 국방, 조세의 원천이며 출산과 육아, 가사로 인구와 노동력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민족 자원으로 인식된다. 자신을 민족의 지도자라 여기는 지배 엘리트에게 민족은 계몽과 통합의 대상이다. 그것은 다른 민족에게 뺏길 수 없는 공적 소유물이며 공동의 재산이다. 이런 것들이 관제 민족주의가 수호하고자 하는 민족의 기본 개념들일 것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징병 노동자나 위안부로 동원됐던 노동자와 여성들에게 ‘민족’이란 무엇일까. 지배층이 생각한 것과 똑같은 의미에서 ‘빼앗긴’ 것일까. 조국을 ‘되찾은’ 이후에도 외화벌이 노동력으로, 미군 ‘접대부’로 팔려나갔던 노동자와 여성들에게 ‘민족’은 무엇을 되찾아주었을까. “노동계급에겐 조국이 없다”는 말이나 “여성에겐 조국이 없다”는 말은 바로 그 결핍을 표현한다.
그런데 “노동계급에겐 민족이 없다”는 좌파의 슬로건은 국가 간 갈등이나 민족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좌파와 노동계급을 비난하는 근거가 된다. 한·일 갈등 국면에서도, 일본 혐오를 부추기는 관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선동을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서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를 경전처럼 외우는 ‘관념 좌파’이며, 민족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거부하는 개인주의-코스모폴리탄이라는 딱지가 여지없이 붙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들의 국제주의를 부르주아적 세계주의와 동일시하는 오류다. 좌파와 노동계급은 운명공동체로서의 민족의 실체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부정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전쟁 국가의 자원으로 동원하는 관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그런 민족주의는 항상 파시즘, 군국주의, 국수주의, 애국주의로 전환됐다.
민족의 실체가 있냐 없냐는 쟁점이 아니다. ‘상상된 공동체’는 민족이 ‘상상의 산물’이며 그래서 허구적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이전까지 ‘하나’라고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다른 신분, 다른 지역, 다른 종교, 다른 언어와 문화권의 사람들이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념을 갖기 위해선 정신적 문화적 차원에서의 작업이 필수적이며, 여기에는 ‘국토’에 대한 지리적 상상력과 ‘모국어’와 ‘민족문학(국문학)’이라는 문학적 상상력, 건국신화를 포함하는 역사적 상상력과, 그 외에도 표준어로서의 국어 교육, 국기와 국가 같은 다양한 상징체계가 동원된다는 의미다.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프랑스인은 프랑스인이 되고, 영국인은 영국인이 되고 독일인은 독일인이 된다. 알자스로렌 지방의 농민들과 브르타뉴나 랑그도크 지방의 농민들이 ‘같은 프랑스인’이 되고, 산악지대 알프스의 목동들과 금융도시 제노바의 은행가가 ‘같은 스위스인’이, 시칠리아의 염소치기와 피렌체의 무역상이 ‘같은 이탈리아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민족을 통합하는 이 상상력은 부단히 재창조돼야 한다. 국민 국가의 내부에는 중앙 권력의 구심력이 약해지면 언제든 해체되려고 하는 작은 공동체들의 원심력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족을 규합하는 초기에는 강압적 수단인 전쟁과 폭력이 그런 원심력을 억제했다면, 문명화 과정은 그것이 점차 문화적 양식으로 대체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스포츠 게임을 국가 간 경쟁으로 하는 것이라든가, 음악 콩쿠르나 빌보드 차트 순위, 국제영화제 수상을 ‘국가적 위상 제고’, ‘세계 제패’ 등으로 표현하는 문화 전쟁이 대표적인 경우다. 경제규모나 성장률 대결, ‘한·일 경제전쟁’, ‘중·미 무역전쟁’ 등에서 보듯이 경제를 전쟁처럼 수행하는 것도 민족 감정을 지속적으로 창조하는 상상적 통합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하나’가 된 ‘우리’는 ‘우리가 아닌 자들’을 통해 구분되며, 지배자들은 외부의 적들을 통해 내부의 민족적 결속을 강화한다. ‘우리가 아닌 자들’은 민족의 내부에서도 출현한다. 역사적으로 좌파와 노동계급은 종종 민족의 반역자로 규정되는데 그 이유는 노동계급의 연대를 우리 밖의 적들과 내통하며 민족의 반대편에서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차 대전 이후 독일에서 벌어졌던 ‘단검 논쟁’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패전과 함께 독일에 부과된 엄청난 전쟁 배상금으로 생활고가 심해지고 민중의 불만이 고조되자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전쟁을 일으킨 군부와 정치인들은 패전의 책임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앞에서 싸운 군인들이 아니라 처음부터 참전을 반대하며 협력하지 않은 자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등 뒤에서 단검을 꽂은 자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책임을 전가했다. 뒤에서 단검을 꽂은 민족의 배신자는 공산당과 사회주의 좌파와 노동조합 운동가들이었다. 그들은 민족의 승리를 위해 전 국민이 희생할 때, 자본가의 싸움에 동원되지 말자고 선동하며 노동자들을 전선에서 이탈시켜 내부에서 적을 이롭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적국’의 내부에서 ‘우리’와 내통하여 우리 민족을 돕는 이들은 누구인가? 역사는 ‘피지배 민족’을 돕는 지배 국가 내부의 동지들이 주로 노동계급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베 정권이 경제보복 조치를 단행하고 한국에서 반일반아베 시위가 확산되자 일본 내에서 이를 지지하고 성명서를 내며 연대한 곳은 일본 치바현 철도노조 산하의 도로치바 국제연대위원회와 일본 민중연대였다. 이에 앞서 오사카 교사노조는 1995년부터 ILO에 끈질기게 편지와 증거자료 등을 보내 일본 정부가 성노예와 강제노동을 강요하고 제대로 된 배보상을 하지 않고 있음을 알려 국제사회의 이슈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것을 ‘일본 내의 깨어있는 시민’, ‘양심 있는 지식인’ 등으로 표현하면서 연대의 계급성을 희석시키고, 명확한 연대의 주체를 애매한 ‘한·일 시민 연대’로 바꿔 버리는 것은 리버럴 지식인들의 언어 습관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들의 국제주의(internationalism) 연대를, 국가보다 개인을 우선하고 사(私)를 공(公)에 앞세우는 세계주의(globalism)-코즈모폴리터니즘(cosmopolitanism)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면 좌파적 관점에서 또 노동자와 민중에게 민족이란 무엇일까? 영어로 ‘네이션’이라고 할 때와 달리 우리말의 ‘민족’에는 그것을 국가주의 개념으로 쉽게 환원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민족(民族)의 ‘민(民)’에는 민중(民衆)의 민, 농민(農民)의 민의 의미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후 지식인 오다 마코토는 1960년대 미국 유학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중동 지역과 인도 등 남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민족 개념을 깨닫는다.
그것은 자신이 일본에서 경험했던 ‘군국주의 냄새’가 나는 민족의 개념과도 다르고, 미국 대학의 강의실에서 비판적으로 다루었던 이론적인 내셔널리즘과도 다른 어떤 것이었다. 압제로부터의 해방 연설을 듣는 시리아 민중들이나 인도산 자동차에 자부심을 느끼는 인도의 노동자들에게 보이는 민족의 이념은 일본인으로서, 엘리트로서 자신에게 남아있는 민족 경험과 다른 종류의 것임을 자각한다.
그런 점에서 침략적 민족주의는 저항적 민족주의와 구별돼야 하며, 지배층의 관제 민족주의와 노동자 민중의 민족 감정, 여성과 소수자들의 민족 경험은 구별돼야 한다. 1946년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젠에이>에서 발디스키(N. Baltiyski)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노동계급의 민족주의를 이렇게 구분한다. 부르주아 민족주의란 “자기민족의 사이비 우월성”을 주장하며 “노골적인 민족적 편견”이나 “제국주의적 욕망”으로 이어진다. 반면 노동계급의 민족주의는 “자기 민족의 자유를 위해 싸운다는 결의”이며, “타민족의 평등한 권리”를 존중한다. 그에 따르면 코즈모폴리턴이란 “국제적 재벌의 대표자, 국제적 카르텔, 대(大)부르주아 주식 투기자, 세계적 무기 판매상과 그 앞잡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경을 넘어서 ‘맛있는 것이 있는 곳, 그곳이 조국이다’라는 라틴어 속담대로 행동한다.(1)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각 나라의 상류층은 점점 더 유사한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며 민족의 경계를 쉽게 뛰어넘는다. 그들은 같은 언어(영어)를 사용하고, 음식, 패션, 취미, 라이프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비슷한 소비 수준과 문화적 취향을 공유한다. 시간성과 장소성 위에 쌓여진 민중 세계의 토착문화와 민족의 정서적 공통 기반은 점점 사라지는 대신, 세계화된 취향과 소비의 공동체가 ‘하나의 부르주아적 종족(ethnos)’을 탄생시킨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자 민중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지배층 엘리트는 적국의 엘리트라 해도 망명지에서조차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대접받는다. 귀족은 어디서든 귀족으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상류사회의 불문율이다. 아테네의 장군이었던 알키비아데스는 적국인 페르시아에서도 귀족으로 살았고, 역시 아테네의 장군이었던 크세노폰도 여생을 적국인 스파르타에서 지배계급의 친구들과 편히 보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이 망한 다음에도 서구 국가들로부터 엄청난 강연료 수입을 올리며 자본주의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편히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해도 안락한 망명의 길이 열려있는 지배층과 달리 국민은 망명할 곳이 없다. 민족이 사라져도 자본가는 어디서든 자본가로 살 수 있고, 지식인 부르주아는 찾아갈 외국의 친구라도 있지만, 노동자들은 계급화 될 수조차 없는 존재가 되어, ‘아무것도 아닌 자’로 흩어진다. 그것이 ‘여기서’ 좋은 나라를 만들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는 민중이, 언제나 최후의 시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화 시대에도 이주와 이민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수준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간(2009~2018) 한국 땅에서 자살한 네팔 노동자는 43명에 이르지만, 한국 정부도 네팔 정부도 이 노동자들의 죽음에는 무관심했다. 결혼이주여성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런 죽음의 무국적화 또는 비공식화는 국내의 노동자, 여성, 소수와 약자에게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들의 조국은 어디라고 할 것인가. 노동계급이, 민족의 경계를 넘어 난민화·유민화되는 노동자들을, 계급의 친구로서 환대하고 의지하며 서로의 고향이 되어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노동자의 민족은 노동계급이고, 여성의 조국은 여성이다.[워커스 59호]
[각주]
(1) 오구마 에이지 지음, 조성은 옮김, 『민주와 애국 –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공공성』, 돌베개, 2019. 233-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