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주 윤지연 은혜진 기자
지난 10월 12일 오후 4시 서초역. 집회 두 시간 전인데도 서초역 사거리가 북새통이다. 검찰청 사거리 차도는 네 방향 모두 사람들로 가득하다. 진짜 100만 명인지, 아니면 300만 명인지 가늠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집회 사전 행사인데도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떼창을 하고 구호를 외친다. 도로에 자리를 잡지 못해 멀찍이 인도로 밀려난 사람들 역시 스피커에 귀를 기울인다.
단일한 목적과 지향을 가진 단체가 아닌, 다양한 개인과 단체, 모임들이 모여 ‘조국 수호’라는 피켓을 들었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가 한동안 한국 사회를 들썩였다. 《워커스》는 궁금했다. 그들은 왜 일면식도 없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수호하기 위해 귀한 주말까지 반납하며 광장으로 나왔을까.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에도 어째서 ‘내가 조국이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걸까. 도대체 그들이 원하는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10월 12일, 《워커스》는 현재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부터 노동, 재벌 등과 관련한 문항이 담긴 설문지를 집회 장소에 배포했다. 이후 회수된 설문지 중 유효 응답 표본수 109명의 설문지를 분석했다. 집회 참여자를 상대로 대면 인터뷰도 진행했다. 광장에 모인 그들은 문재인 정부와 조국 전 장관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걸까.
가장 먼저 조국 장관 사태로 불거진 ‘공정성’에 대해 물었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소득수준이 자녀의 교육이나 사회 진출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다. 72.5%의 다수가 ‘부당하다’고 답했다. 19.3%는 ‘용인할 수 있다’고 했고, 6.4%는 잘 모르겠다 혹은 기타 답변을 했다. ‘기타’ 응답 중 상당수는 ‘어쩔 수 없다’고 했고, ‘수용은 가능하지만 공정한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사회 부유층에게 ‘부유세’를 도입하는 것에는 89.9%의 압도적인 사람들이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 앞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유세 도입에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2012년 대선 후보 당시 부유세 도입에 반대한 바 있다. 부유세는 일정액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부유층을 상대로 과세를 부담하는 제도로, 북유럽 등의 국가를 중심으로 시행돼 왔다.
한국의 대기업 집단에 대해서는 사회적 책임이나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우선 ‘대기업 집단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다’는 긍정적 평가는 3.7%에 불과했다. 과반 수 이상인 60.6%가 ‘대기업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고, 24.8%는 ‘대기업의 시장 독과점을 규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대기업을 국유화하고, 사회적 통제를 확보해야 한다’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최저임금’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 역시 과반 수 이상인 69.7%가 내년에는 최저임금 1만 원을 실현해야 한다고 답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시기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내세웠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의 공약 파기와 관련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7월, “경제에서 누군가의 소득은 다른 누군가의 비용”이며 “어느 일방에 과도한 부담이 되면 악순환이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상인 등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설문조사 결과,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아 중소영세상인이 받는 피해가 크다’고 응답한 비율은 14.7%에 불과했다.
‘노동’과 관련된 질문도 던졌다. 기업의 ‘경영권’과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충돌할 경우, 어떤 권리가 우선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역시 과반 이상인 74.3%가 ‘경영권에 속하는 사안도 노동조건 개선의 목적이 있으면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경영권은 경제주체의 고유한 권리이며 단체교섭이 될 수 없다’고 응답한 이는 18.3%였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관련해서도 긍정적인 답변이 주를 이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에 대해 과반 이상인 53.2%가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응답자는 33.9%였다.
여권 성향 ‘키보드 워리어’들의 표적 대상인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물었다. 가장 높은 비율인 33.9%가 ‘노조는 필요하지만 민주노총은 불법·폭력을 일삼고 있어 불만’이라고 답했다. 30.3%는 ‘기타’ 문항을 선택했다. 기타 의견으로는 민주노총의 쇄신 및 개선이 필요하다는 답변부터, ‘민주노총은 필요하지만 자기 밥그릇 챙기기가 심하다’, ‘투쟁 방식이 세련돼 질 필요가 있다’, ‘유연해져야 한다’는 응답이 주를 이뤘다. 28.4%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이익집단’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7.3%에 그쳤다.
민주노총에 대한 질문만큼 첨예했던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묻는 문항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위 ‘경쟁 채용’의 과정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과반수에 약간 미달하는 49.5%가 ‘부당하다’고 답했다. 비정규직 또한 경쟁을 거쳐 정규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 채용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용인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0.3%였다. 20.2%는 기타 의견을 냈는데, 우선적으로 차별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반면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한 질문에서는 ‘성과가 없다고 퇴출하는 것은 차별 행위’라고 응답한 비율이 49.5%였다. 반면 30.3%는 ‘경쟁 사회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같은 듯 다른 거리의 ‘조국 수호’ 시민들
사람들이 거리에 나온 이유는 서로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검찰 적폐를 없애야 한다는 공식적인 구호부터,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공정성’ 논란을 언론과 보수야당 등에 대한 비판으로 상쇄시키려는 목소리도 있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없애야 한다는 개인적 바람들도 있었다. 조국 전 장관의 ‘공정성’ 논란에 분노해 집회에 참여했다는 김정민(가명, 52세) 씨는 “검찰과 내가 큰 관계는 없지만, 조국 장관 가족이 두 달 가까이 탈탈 털리는 것을 보면서 국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불공정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김 씨는 “지금은 노동자에게는 압력을 가하고 고위직 자녀에게는 약한 불공정한 사회다. 공정한 사회가 돼야 한다”면서도 “조국 입시부정 문제를 건드린 것처럼 황교안이나 나경원, 김성태 등의 정치인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주요한 집회 구호 중 하나는 ‘언론 개혁’이었다. 보수 언론을 향한 집회 참가자들의 분노는 상당했다. 집회에 나온 최동혁(38) 씨는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언론, 검찰, 국회 모두 공정하지 않다”며 “특히 조선일보의 공정성을 묻고 싶다. 언론이 정치 성향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적어도 어떤 쟁점이든, 사회 문제든 다양한 계층을 모두 다뤄야 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퇴진 촛불의 경험을 토대로, 또 한 번 사회를 바꾸겠다는 바람으로 집회에 참여한 이들도 있었다. 30대 초반의 한 집회 참가자는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를 통해 박근혜가 탄핵 되는 것을 보고, 이 집회도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7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검찰과 판사의 권력이 막강해졌다. 검찰개혁을 통한 적폐 청산으로 사회의 많은 것들이 변화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검찰개혁의 목소리에 힘을 싣기 위해 집회를 찾은 페미니즘 단체도 있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단체인 ‘박하여행’은 박근혜 하야 퇴진 운동 당시, 운동 과정에서 벌어졌던 여성 혐오 문제를 드러내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검찰개혁이라는 이슈가 페미니스트의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박하여행에서 활동하는 정영은(34) 씨는 “내부적으로 조국에 대한 입장은 다르다. 조국이라는 인물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며 “하지만 ‘장학썬’으로 이어지는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한 검찰의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껴왔고, 검찰개혁 이슈 안에 여성의 목소리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 촛불을 들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정 씨는 “조국 장관의 공정성 문제는 사실 계급의 문제이기도 해서, 교육개혁 하나만으로 바뀌기는 힘들다”며 “이는 노동의 문제, 교육의 문제, 여성의 문제 등이 중첩돼 있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조국의 공정성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자녀 특혜 및 사모펀드 의혹에 휩싸이면서, 한국사회가 한동안 ‘공정성’ 논란으로 들썩였다. 이에 조 전 장관은 10월 14일, 장관직을 사퇴하며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번 사태로 존재감을 알리며 차기 대권 잠룡으로 거론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정성’ 논란의 반대편에는 검찰개혁의 불쏘시개이자, 거대한 검찰 권력과 맞선 양심적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았다. 사실 조 전 장관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정권 비판에 앞장섰던 진보, 개혁적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사회 기득권층의 특혜와 공정성 문제를 비롯해 노동과 인권, 소수자, 재벌 등의 문제에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조국 전 장관이 생각해 왔던 ‘공정성’은 무엇이었을까? 과거 그가 밝혀온 소신을 들여다봤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 도둑은 ‘사회적 특수 계급’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들은 지연, 혼인, 학연 등으로 얽혀 있으며, 재산과 인맥을 자식에게 대물림한다…(중략)…‘공정한 사회’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환영할 방향이다. 집권 세력이 이 구호를 진정 실현하려면 가장 먼저 내부의 적, 자신의 지지 기반과 싸워야 할 것이다.”
–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p66~69
“…필자 같은 경험을 공유한 486세대, 또는 자신이 진보를 지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실생활에서는 진보의 가치에 완전히 부합하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중략)…자식 문제로 가면 더 어려워진다. 제도 개선은 멀고 자식의 패배는 가까우니 흔들린다.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 던져져 있는 자식에게 더 공부하라고 윽박지르지는 못하지만 공부하지 말라고 하지도 못한다. 학원을 보냈다가 끊었다가를 반복한다. “특목고 가라, 명문대 가라”고 윽박지르지는 못하지만 자식이 공부를 잘해 진보적 의식이 있는 명문대생이 되기를 바란다…(중략)…필자의 경우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이가 한국 학교의 경쟁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며 힘들어 하다가 외국어고등학교 국제반에 입학했기에 자식을 외국에 보내는 사람들의 결정을 쉽게 비난하지 못한다.”
–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p151~152
“…그러면 진보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겉과 속 모두에서 진보의 가치를 싹 없애고 ‘백색화’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다. 그 선택은 ‘정글의 법칙’에 대한 자발적 굴종이다.”
–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p154
조국에 대해서는 이 땅의 부르주아들이 이렇게 개혁을 외쳐대고 해도
역시 부르주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하라! -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