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상관 없잖아
‘디자인 액트’는 《워커스》 디자인에 참여하는 디자이너들의 작업과 생각을 공유하는 지면으로 구성된다. 《워커스》 디자인에 관련된 이야기, 디자이너들의 개인 작업, 작업 과정의 에피소드 등을 네 팀의 디자이너의 목소리를 통해 전할 예정이다.
권준호
영국왕립예술대학교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현재 일상의실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디자이너는 한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가치관에 근거하여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그 결과물로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입니다. 디자이너가 사회의 ‘시대정신’을 이해하고 그것을 재료 삼아 표현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은 ‘소통’이라는 막연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때문에 디자이너는 수동적인 태도 —클라이언트의 욕망을 비판 의식 없이 예쁘게 포장해 주는 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내용물을 생산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발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수의 암묵적 동조를 거스를 수도 있는 ‘조금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생각과 언어를 텍스트를 통해 구체화하는 타이포그래피는 그 어려움을 덜어 줄 수 있는 디자이너가 가진 가장 효율적인 표현 도구입니다. 그러한 지점에서 ‘발언으로서의 타이포그래피’는 ‘사회성을 담은 예술 작업’과 구분됩니다. ‘발언으로서의 타이포그래피’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상반되는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시각 예술’의 한 분야이기보다는, 명확한 관점을 시각화하는 ‘전달자’로서 기능해야 합니다.
그러나 ‘발언으로서의 타이포그래피’가 특정 정치 세력의 편향된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파간다’적인 선전물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프로파간다’의 목적이 ‘선동’에 있다면, ‘발언으로서의 타이포그래피’의 목적은 디자이너이기 전에 한 명의 사회 구성원이 가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에 있습니다.
나랑 상관 없잖아는 우리를 툴러싼 주변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일어나는 소통의 단절을 주제로 진행된 작업입니다. 710x950mm의 판화지에 일상의실천 세 명의 디자이너가 각각의 성격을 담은 서체와 소재를 기반으로 수작업을 통해 작업을 완성했습니다. 나랑 상관 없잖아는 일상의실천이 진행한 첫 번째 자체 프로젝트로서 이후 진행될 ‘발언으로서의 작업’의 첫 시작점이 되었던 작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