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 사업, 취업 안 되는 인문 줄이고 공대 늘려
신나리 기자
한 대학의 정문 앞에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 곁에는 이 대학의 명복을 비는 문구가 적혀 있다. 대학 장례식이다. 예술 장례식을 연 곳도 있다. ‘예술’이라고 쓰인 영정 사진을 들고 상여를 멘 상주가 대학을 거닌다. 장례식 상주는 이 대학 예술체육학부 학생이다.
‘대학과 예술’의 죽음. 이화여대와 인하대 학생들이 각각 대학과 예술의 죽음을 추모했다. 대학은 다르지만 이유는 같다. 학사 구조조정 때문이다. 이들 대학은 현재 교육부가 추진 중인 프라임(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 사업을 신청했다. 프라임 사업은 산업 수요에 맞게 대학 학사 구조를 개편하고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교육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교육부는 기존 인문·사회·예체능 계열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 정원을 늘리는 쪽으로 학사 구조조정을 유도했다.
“돈 풀어 드립니다”
구조조정의 대가는 적지 않다. 교육부는 3년간 총 600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약 19개 대학에 학교당 연 50억 원에서 최대 300억 원을 지원한다. 역대 교육부의 재정 지원 사업 중 최대 규모다. 등록금 동결 등으로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대학이 ‘돈 푸는 교육부’의 재정 지원 사업을 마다할 리 없다. ‘선정만 되면 로또’라는 수식어가 붙는 프라임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대학은 앞다퉈 구조조정 개편안을 마련했다.
인하대는 기존 10개 단과 대학 2개 학부를 8개 단과 대학 1개 학부로 개편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경상대와 경영대, 아태물류학부를 한 단과 대학으로 통합하는 안이다. 문과대와 예술체육학부 역시 ‘인문예술대학’으로 합치고, 사범대는 정원을 감축한다. 상명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상명대는 어문·디자인·예술 대학 일부 학과 정원을 줄이거나 유사 학과를 하나로 묶는다. 이화여대는 ‘친여성적 공학 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모든 전공 정원의 10%를 유동 정원제로 대학 본부에서 학년도마다 변동을 주면서 관리하고, 이 중 일부를 공대로 돌린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대학이 자랑해 온 역사와 전통을 무너뜨렸다. 상명대가 대표적이다. 상명대 천안캠퍼스는 지난 20년간 ‘예술대 & 디자인대 특성화 캠퍼스’를 내걸고 학생들을 모집했지만, 이번 구조조정으로 이들 학과는 통폐합 위기에 몰렸다. 상명대는 취업자 수가 적은 연극학과, 영화학과, 문화예술경영학과를 통폐합하는 대신 취업률이 안정적인 공대를 신설할 계획을 밝혔다. 연극과 영화의 매체가 다르기에 ‘교육의 방식도 달라야 한다’고 강조해 온 대학이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꿨다.
“학생은 가만히 있어”
학내 구성원과 소통 없는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기존 학과나 단과대를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 당사자인 학생, 교수들과 충분한 합의를 이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화여대의 12개 단과 대학 학생회와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으로 구성된 이화여대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는 대학 본부가 프라임 사업을 제출하는 과정에서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이 수 개월간 ‘프라임 사업 계획 공개’와 ‘프라임 사업에 학생 의견 반영’을 요구했지만, 학교는 명목뿐인 간담회만 열었다는 것이다. 학교가 사업 제출 당일까지 ‘외부 유출 우려’, ‘계획 변동 가능성’을 이유로 학생들에게 어떤 정보도 알려 주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하대 학생들도 프라임 사업 반대 의견을 묵살한 학교를 비판했다. 이번 구조조정 대상인 예술체육학부 학생회는 지난 5일과 6일 ‘프라임 사업’에 대해 찬반을 묻는 총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84.2%의 학생들이 사업을 반대했다. 학생들은 압도적인 반대 의견을 냈지만 대학이 이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인하대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는 20일 현재 교육부에 제출한 프라임 사업 계획 공개를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캠퍼스의 불통에 목이 멘 학생들은 교육부로 향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 서강대 총학생회, 경기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를 비롯한 8개 대학 총학생회는 20일 프라임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교육부 장관과 면담을 요구했다. 이들은 “프라임 사업은 취업률을 잣대로 학과를 쪼개고, 합치고, 없애는 사업이다. 학문을 오로지 취업률, 기업의 수요로만 재단하겠다는 것”이라며 기초 학문, 예체능 학문이 말살될 것을 우려했다. 이어 “프라임 사업으로 인한 구조조정이 가져올 피해는 모두 학생들의 몫이지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학생들의 의견은 배제돼 있다”며 “프라임 사업을 기획하고, 주관하는 교육부가 직접 학생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은 상복과 상여, 근조 화환과 침묵 농성으로 가득 찬 4월의 캠퍼스가 교육부에 ‘대학의 죽음’을 전했다. 이제 교육부가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