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희 법률사무소 새날 노무사
윤지연 기자
세상에는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과학이 발전하고 먹을 것이 넘쳐나도 참사와 재해는 지겹도록 이어진다. 산업 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인 4월 28일. 해를 거듭할수록 추모해야 할 노동자는 늘어만 간다. 하나뿐인 노동자의 목숨 줄은 늘 허술하기 짝이 없다. 자칫 썩은 동아줄을 잡았다가는 재해라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요구하고 주장해 왔다. 안전하게 살게 해 달라고, 안전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소귀에 경 읽기 같지만, 언젠가 소도 경전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으로 10년 넘게 노동자들 옆에서 산재 전문 노무사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의 권동희 노무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산재 전문 노무사로 산 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산재의 발생 유형이나 빈도에 변화가 있었나
특별히 변한 건 없다. 재해 유형도 변화가 없고, 사망 건수도 많이 줄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통계상 재해율이 감소한 것처럼 나타나기도 하지만 믿지 않는다. 산재 승인 건수 역시 유의미한 증가는 없었다. 외국인 노동자 산재 사건에서는 나름의 변화가 있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가 제조업을 비롯해 한국의 기초 산업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까닭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신청 건수는 통계상 10만 건이라고 하지만, 이는 실제 산재 사고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본다.
산재 전문 노무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나
민주노총에 들어가고 싶어서 노무사 공부를 했다. 2002년 민주노총 경기본부 수원지구협의회에 법규부장으로 처음 들어갔다. 당시 상근비가 75만 원이었다. 거기서 2년 반 정도 활동했고, 이후 민주노총 법률원에 들어가 산재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에 올라오면서 산재를 담당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초반에는 혼자 공부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관심 분야였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매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즈음에 ‘최악의 살인 기업 선정식’이 열린다. 개인적으로 최악의 살인 기업을 뽑는다면
최악의 기업은 현대중공업이다. 최근에도 계속 사망 사고가 일어나고 있지 않나. 몇 년 전에 산재를 자살로 은폐한 사건을 보면 굉장히 질이 안 좋다. 재해 건수로는 현대차, 기아차 같은 자동차 공장도 상당하다. 최악의 살인 기업을 뽑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를 방조한 주범이 누구인지 주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산재 전문 노무사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모든 사건마다 다 사연이 있다. 너무 많은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활동할 때 고등학교 여성 국어 교사가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과로를 심하게 해서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 거였다. 1심에서 이겼는데, 결국 대법원에서 졌다. 이 병은 너무 무서운 질병이어서 보통은 사망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큰 장애가 남는다. 치료비가 어마어마하게 드는 병이기도 하다. 피해자가 투병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 두 분과 결혼한 언니 두 명이 모두 신용 불량자가 됐다. 병원비로 약 3억 정도가 나왔다. 산재 승인이 났으면 경제적 어려움이 회복될 수 있었다.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후회가 남는다. 피해자는 치료를 받다가 고등법원 재판 과정에서 사망했다.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
산재가 승인되는 것과 불승인되는 것. 이것이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평생의 굴레로 남는다. 돈이 많지 않으면 하층민으로 몰락할 수도 있다. 1년에 사망 사고가 2천 건이다. 가족들로서는 평생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야 한다. 산재를 당한 사람들이 산재 승인을 받는다 해도 금전적인 부분만 해결되는 것일 뿐 재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죽지 않더라도 장애가 심하게 남게 되면 본인과 가족들의 삶도 완전히 달라진다. 두 팔을 잃으면 평생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산재 노동자 가족의 삶도 달라지고, 본인의 주변 관계도 달라진다. 그런 삶이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거다.
사고 발생 시, 회사는 산재보다 공상 처리를 유도한다. 산재 보상과 관련해 노동자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지 않나
현재는 산재 신청주의다. 입증 책임도 노동자에게 과도하게 전가된다. 하지만 사고성 재해의 90% 이상은 대부분 산재로 인정받는다. 산재 신청이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 간략한 사고 경위를 기재해 신청서를 내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그런 교육을 받아 보지 못해 재해 당시 혼동과 부담을 겪는 것이다. 사실 삼성 반도체 노동자 산재 사건을 들여다보면 너무 어렵다. 하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사건으로 전체의 0.0003%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가끔 반올림이 산재를 너무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 놨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산재 입증 과정에서 노동자와 유족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 산재 처리 과정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나
간헐적으로 그런 취지의 판결이 나온다. 하지만 판결이 나오는 것과 현장의 실무가 바뀌는 것은 다르다. 과거에 이미경 의원실과 민주노총, 반올림 등과 함께 입증 책임 전환에 대한 법안을 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막혔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여기서 뭘 더 완화해 주느냐는 논리였다. 지금도 근로복지공단이 상당 부분 입증 책임을 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근로자의 입증 책임을 명확히 하면 오히려 근로자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논리를 못 뛰어넘었다.
최근 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보상보호법〉(산재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도 업무상 질병으로 포함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법령이 일부라도 개정되면 많은 수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쇼에 불과하다. 이제까지도 서비스 직군 감정 노동자들은 재해 경위가 증명되면 우울증도 산재로 인정받았다. 차이가 있다면 이를 시행령에 명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령 개정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산재 승인율을 높이지는 못한다. 감정 노동자 직업병 문제는 법 개정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 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하는 노동자 수는 1년에 50명 전후다. 산재로 승인된 사람은 더욱 적다. 업무상 스트레스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되나. 감정 노동에 따른 우울증을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을지가 급선무다. 노동부의 시행령 개정안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우울증 산재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
철도노조 조합원 중 대구 지역 기관사 정신 질환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옛날에는 철도 운행 중 사상 사고가 발생하면 기관사가 자기 손으로 수습해야 했다. 그분은 그런 사고를 두 번 겪었고, 탈선 사고도 한 번 경험했다. 많이 괴로워했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굿도 해 보고 약도 먹었다. 하지만 병원에는 가질 못했다. 회사에 찍히니까. 결국 부모님 손에 이끌려 병원에 외래 등록을 해 놓고 병원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 식물인간이 됐다. 산재 불승인이 나서 소송을 했다. 1심과 2심에서 패소를 했지만, 대법원에서 2년 반 동안 사건이 계류돼 있었다. 일말의 희망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졌다.
노동계에서는 개별 실적 요율제(산재 발생이 많은 사업장에 산재 보험료 부담을 높이는 페널티 제도)가 산재 은폐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산재 발생이 많은 사업장에 일정 부분 페널티를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산재 사고가 많이 발생한 사업장에 대한 원인 조사를 하고, 사업주의 과실이 많을 경우 페널티를 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 노동부는 그런 과정 없이 무조건 산재가 많이 발생한 곳을 조지자는 거다. 그럴 경우 노동자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산재 처리를 많이 할수록 우리만 조임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산재 처리를 꺼리게 되고 산재를 은폐한다. 회사 보건 관리자들은 “우리는 열심히 산재 처리를 해 줬는데 조임만 당한다. 산재 처리할 맛이 나겠느냐”고 토로한다. 사실 재해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재해 내용을 조사해 그 내용을 가지고 사업주를 처벌하는 방식이 정착돼야 한다는 거다.
〈산재법〉 중 가장 시급히 바뀌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법을 운용하는 기관의 문제다. 법원에서 긍정적인 판결이 나와도 공단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 수십 개의 판결이 누적돼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법 개정 하면 뭐든 쉽게 풀릴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1천 명의 직원이 있는 근로복지공단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탄탄한지 부딪혀 보면 안다. 작은 사건이라도 집요하게 보고 싸움을 만들어야지, 의원실 몇 번 오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더 이상 법 개정 투쟁은 안 하기로 했다. 대신 나 나름대로 작은 전투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