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희 기자
“우리는 여기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어요. 여기 천막에선 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운영하는 시설로 이동할 수도 없어요. 그러면 우리를 터키로 강제 송환 할 것입니다. 터키로 추방하지 말아 주세요. 그곳에 가면 우리는 죽을 겁니다.”
시리아 출신의 한 남성이 마케도니아 국경을 마주한 그리스 북부 이도메니에서 <알자지라>에 말했다. EU-터키 ‘난민 송환 협약’이 체결된 지 한 달. 4월 4일부터 송환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340명이 터키로 강제 송환됐다. 하지만 그리스 난민 캠프가 위치한 레스보스 섬과 키오스 섬, 이도메니에서는 저항이 고조되고 있다. 이곳에는 시리아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전쟁과 박해를 피해 온 5만 명 이상이 국경 개방을 요구하며 체류 중이다.
이도메니 난민 어린이들은 마케도니아 국경에 꽃을 던지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다수의 시위는 난민과 경찰 간 거센 충돌로 이어진다. 4월 1일 약 800명의 난민이 그리스 키오스 섬에 있는 억류 시설을 부수고 나왔다. 이들은 “자유, 자유”를 외치며 도심을 행진했고 키오스 섬 항구를 점거한 뒤 터키 송환을 거부하며 국경 개방을 호소했다. 그리스 정부는 1개월 만에 3만 5000개의 임시 숙소를 만들고 텐트에 기거하고 있는 난민들을 이동시키려고 한다. 향후 2만 개가 추가될 계획이며 난민 심사를 위해선 이 숙소로 옮겨 와야 한다. 하지만 난민들은 터키로의 송환이 두려워 이동을 거부하고 있다. 난민들은 대신 시위로 저항하고 있다. 어린이를 포함해 1만 2000명이 체류 중인 이도메니에서는 수주일 간 마케도니아로 향하는 철로를 점거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테살로니키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점거했다. 그리스 경찰의 폭력 진압에 항의하며 경찰차를 부수기도 했다. 27일에는 레스보스 섬 난민들이 물병과 돌을 던지고 쓰레기통을 태우며 시설 이동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서 17명이 부상당했다. 현지 언론은 폭발적이었다고 전했다.
난민 루트를 관할하는 당국이 이들을 폭력적으로 통제하면서 갈등이 증폭했다. 지난 4월 10일 마케도니아 국경 지역 그리스 이도메니에서 시위한 난민들은 마케도니아 경찰이 쏜 최루탄과 고무탄에 맞아 중경상을 입었다. 어린이를 포함한 난민 500여 명은 국경 개방 요구를 거절당하자 철책을 기어 올라갔고 마케도니아 경찰은 가차 없이 최루탄과 고무탄을 쐈다. 국경없는의사들(MSF)에 따르면 이날 난민 200여 명이 최루가스로 호흡 문제를 겪었고 30여 명이 고무탄에 부상당했다. 최소 10명은 구타당했다.
터키 측에서 그리스로 탈출하려는 난민도 희생되고 있다. 시리아 인권 관측소에 따르면, 터키 군대는 지난 4개월간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국경을 가로지르려는 최소 16명의 난민을 사살했다.
당국은 난민 캠프 현장에서 활동하는 유럽 각국 인권 활동가들도 옥죄고 있다. 이들은 난민 지원을 위해 활동하고 있지만 당국은 이들이 난민 시위를 선동한다며 비난한다. 4월 중순 그리스 이도메니의 한 활동가는 차에 칼을 두고 있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난민 숙소에도 등록된 활동가만 들어갈 수 있다.
난민 인권 없는 EU-터키 난민 송환 협정… 늘어나는 비판
EU-터키 ‘난민 송환 협약’은 지난 3월 20일을 기준으로 그리스에 불법으로 들어온 난민을 터키로 강제 송환 하기로 한 협약이다. 다만 EU 회원국에 망명 신청을 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난민은, 그리스에 체류할 수 있다. 하지만 망명 신청을 하지 않거나 심사에서 탈락하면 터키로 강제 송환된다. 시리아 난민에 한해 일대일 교환 방식으로 터키가 유럽 불법 체류 난민 1명을 받아들이면, 유럽은 터키 난민 캠프에 있는 시리아 난민 1명을 수용한다. EU는 재정착을 위한 1차 수용 인원을 7만 2000명으로 제한했다. 터키는 대신 40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고, 자국 적자일 경우 유럽을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솅겐 지역이 혜택을 받았다.
EU 입장에선 지난해 난민 100만 명 이상이 유럽에 도착했고 이 중 80%는 터키를 통해 그리스로 들어온 상황이어서 주요 난민 루트를 차단하고 관리하겠다는 목적으로 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협약은 유엔난민기구(UNHCR)가 유엔 인권 규약을 위반한다고 비판할 만큼 인권 침해 논란이 크다. 우선 EU는 난민 협약을 맺기 위한 근거로 터키를 난민에게 안전한 ‘제3국’이라고 승인했지만 사실 터키는 안전한 제3국이 아니다. 난민에 발포한 문제 외에도 터키는 이라크와 아프간 출신자에 대한 난민 인정을 법으로 금하고 있어 유럽에 도착한 이들이 터키로 송환될 경우 다시 본국으로 송환될 위험이 있다. 또 유엔 인권 규약은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을 통해 난민을 대량으로 추방해선 안 된다고 정하지만 EU-터키 난민 협약은 집단 추방을 허용한다. EU가 수용하는 재정착 난민의 수도 턱없이 적다. 국제난민협회는 지난달 “7만 2000명은 그리스에 매달 도착하는 수와 동일하며 시리아의 이웃에 있는 약 5백만 명의 난민 수와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밝혔다. 터키에 지원하는 40억 달러 보조금도 난민 신청자에 대한 지원보다는 구금과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데 쓰일 것으로 우려된다. 상황이 이러니 더 위험한 난민 경로를 선택할 가능성도 크다. 독일로 향하는 난민의 수는 줄었지만 이탈리아나 다른 경로로 향하는 난민의 수는 늘었다. 올해 이탈리아로 진입한 난민은 2만 5000명에 달하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에 달한다.
“모든 국경을 개방하라. 그것도 당장!”
유럽 사회 단체들은 국경 봉쇄와 강제 송환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지난 3월 21일 런던, 베를린, 바르셀로나 등 유럽 전역에서는 EU 이주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 EU 난민 정책에 항의했다. 일부 활동가들은 난민들의 봉쇄 시위를 모델로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다. 4월 중순 유럽 활동가들은 독일-스위스 국경을 통과하는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국경 개방을 요구했다. 이 행동에 참가한 리제로테 레치히는 독일 진보 언론 <프라이탁>에 “고속도로는 상품 수송을 위한 것이며 이를 차단하는 것은 독일 주류의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이 난민의 이동을 제한한다면, 우리는 당신들의 이동을 제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또 “이른바 서구는 확실한 민족 국가를 지향하면서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지역 밖에 두고자 한다. 우리는 이것을 공격하고자 한다. 주요 문제는 국경이다. 국경 방어에 수천 명이 자신의 존엄과 삶을 희생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모든 국경을 개방하라. 그것도 당장!’이라고. 이 행동은 또 우리 모두의 각성을 위한 행동이다. 서구에서 사는 것은 특권이며 우리는 난민들의 행동을 따라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난민 협약에 따라 EU 가입국은 매달 1100명의 난민 신청자를 받을 예정이다. 매달 독일은 100명, 노르웨이는 218명, 프랑스는 148명, 이탈리아는 118명을 받는다.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체코는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