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한국의 미래다?
경제 무식자 1, 2, 3, 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사진 홍진훤
경제 무식자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엄청나다고 하잖아요. 뇌관이 막 터질 것 같다고요. 터져서 일본처럼 폭삭 주저앉는 건 아닐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돼요.
김성구 일본은 1980년대 말 3~4년 사이에 집값, 주식값이 세 배씩 뛰니까 기업, 개인 가리지 않고 차입해서 투자를 정말 많이 했어요. 은행들이 돈을 막 빌려주고, 토지 담보로 또 빌려주고 그랬죠. 그래도 은행은 이자 수입이 생기니까 좋고 개인도 투자해서 집값이 올라가니까 좋다고 했죠. 그래서 마구 투자를 했는데 버블이 엄청나게 생겼다 터지면서 은행도 막대하게 물린 거죠. 주식 가격,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니까 대출 회수가 안 되는 겁니다. 담보 가치 아래로 집값이 떨어진 거죠. 그러면서 부실 채권이 엄청나게 쌓였어요. 은행들이 손실 처리해야 하는 채권들이 쌓이고, 은행이 위기에 빠지자 일본 정부가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합니다. 그런데 공적 자금 투입으로 부실 채권 처리가 지체되고 오히려 일본의 국가부채만 급등하게 됩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까지 겹쳐 일본의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00%가 넘게 되죠. 결국 부실 채권과 과잉 자본 처리 실패와 대규모 공적 자금 투입의 악순환 속에서 일본이 20년 동안 장기 불황에 빠진 거죠. 물론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라는 인구학적 요소도 장기 불황의 한 요인입니다만.
우리나라는 장기 불황이라 해도 아직 일본 같은 상태는 아닙니다. 금융 기관들이 가계 대출 담보 비율을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해 놨어요. 또 지금 가계 부채가 1200조 원이라고 얘기하는데, 부채의 양면이 있어요. 개인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부채 이면에는 자산이 있는 거거든요. 대출을 받으면 부채가 생기면서 현금 자산이 생겨요. 그러니까 1200조 원 가계 부채가 문제가 아니라 받은 대출 자금을 운용해서 유지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거죠.
일본에서 문제가 된 건 집값, 주식 가격이 폭락하면서 대출받아 투자한 자산으로 부채 상환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채무 상환 불능이나 이자 지불 연체 등 부실 채권의 문제죠. 일본같이 버블이 터지면 부실 채권의 비중이 확 높아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부동산 담보 대출 연체 비율이 아직 특별히 높지는 않은 거 같더라고요. 은행들이 대출 관리를 어느 정도 하고 있다는 거죠. 은행들은 또 부실 채권에 대해 충당금을 쌓아 놓고 있어서 어느 정도 대응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자산도 같이 가지고 있어서 자산으로 부채 청산이 되면 금융 기관은 손실이 나는 게 아니에요. 그럴 경우 금융 위기로 발전하지는 않는 거죠. 문제가 되는 건 그게 금융 기관의 큰 손실로 귀결되는 경우죠. 금융 기관은 자본주의 경제의 혈관을 관리하는 기관인데 은행 위기로 혈관이 막혀 버리면 경제가 마비되는 거죠. 관리가 된다면 가계 부채가 절대액으로 1200조 원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에요.
경제 무식자 가계 부채와 부동산 값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아니라는 건가요?
김성구 아니죠. 연관이 있죠. 가계 대출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 담보 대출이니까 부동산 값이 폭락하면 대출받은 자산이 없어지는 거고, 그래서 대출 상환이 안 되면 문제가 되는 거죠. 근데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 버블이 1980년대 말 일본처럼 그렇게 심해서 버블 붕괴로 금융 기관이 대규모 손실 처리로 몰릴 상황은 아닌 거 같다는 얘기예요.
경제 무식자 그럼 부동산 값이 버블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뭐예요?
김성구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투자금에 대한 수익 비율로 판단할 수 있죠. 이자율이라든지 물가 상승률이라든지 이런 것과 비교해서요. 또는 실물 자산 대비 주식 시가 총액이나 주택 건축 비용 대비 주택 가격을 통해서도 볼 수 있죠. 주식은 투자한 기업이 이윤 내는 것을 이자율로 환산해서 적정 가격을 계산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어떤 기업에 내가 1억 원을 투자해요. 그런데 그 기업에서 연말에 배당 이윤으로 100만 원을 받아요. 그런데 내가 100만 원을 현행 이자율 2%에서 받으려면 얼마가 있어야 하나요? 5천만 원이죠. 100만 원을 받으려면 은행에 5천만 원을 예금하면 된다고요. 그런데 이 주식에는 1억 원을 넣어서 100만 원을 받는 거예요. 그럼 이 주식 가격은 버블이죠. 사실 5천만 원이 적정 가격인데 1억 원에 주식 가격이 형성되어 있으니까요. 주식 가격은 자기가 받는 배당 이윤에 적응해야 하니까 이런 가격은 조만간 폭락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주식 가격 변동에서 어려운 건, 투자자에게 이 배당 이윤이라는 게 1년 뒤에 결산하고 나서 받는 수익이 아니라 투자할 때의 예상 이윤이라는 점이에요. ‘얼마 받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투자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정말 버블인지 아닌지는 연말에 가야 안다고요. 그런데 연말에 가서 투자 수익이 안 나도 가격이 폭락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때 가서도 과거의 배당 이윤에 의해서 주식 가격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미래에 예상하는 배당 이윤에 근거해서 가격이 형성되잖아요. 그러니까 연말에 배당 이윤이 적게 났어도 투자자들이 내년에는 배당 이윤이 더 높을 거라고 기대하면 그 가격이 그냥 유지되죠. 아니면 더 오를 수도 있죠. 그러면 버블이 유지되는 겁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배당 이윤에 의해서 주식 가격이 조정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미래 배당 이윤에 대한 기대도 현재 배당 이윤에 영향을 받거든요.
부동산 같은 경우는 자신이 받는 임대료와 부동산 가격 대비로 계산하는 거예요. 이자율에 물가 상승률까지 감안해서 실질적인 수익을 계산해 역산하면 부동산의 적정 가격이 나오죠. 그 가격과 현재 부동산 가격을 비교해 보면 이게 버블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어요. 또는 주택 건설 비용과 주택 가격을 비교해서도 버블 정도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서울 강남 쪽은 버블이 심할 거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덜할 거고요. 그런데 신자유주의에서 계급, 계층별로 양극화와 차별이 심해졌을 뿐 아니라 지역별로도 심해져서 부동산 가격에서도 일종의 강남 프리미엄이나 수도권 프리미엄이 형성되었거든요. 그 프리미엄만큼 이들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 거라서 이게 버블 형성을 조장한 거라 할 수 있죠. 그렇지만 신자유주의하에서 지역별 차별이 고착되면 이 프리미엄이 가격의 고정적인 일 요소가 되기 때문에 그 부분만큼은 버블이 아니라고 해야겠죠. 노령 인구 증가라는 인구학적 구성 변화 때문에 주택 가격이 장차 하향적 추세를 보이더라도 서울과 강남의 주택 가격은 그렇게 하락하지 않을 거라는 주장은 이 때문에 나오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현재 우리나라는 1980년대 말의 일본 같은 버블 상황은 아닙니다.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도 일본처럼 되지는 않을 겁니다.
경제 무식자 그런데 요즘 한창 저성장 이야기가 나오니까 장기적 저성장을 겪고 있는 일본처럼 가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되게 많던데요.
김성구 우리나라도 고성장이 꺾인 건 확실해요. 1997년 외환 위기 때 성장의 정점을 찍고 신자유주의 전환이 이루어졌잖아요. 신자유주의라는 게 반인플레 긴축하에서 성장을 포기하고 자본가들의 이익, 특히 금융 자본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정책이거든요. 그 이래 저성장, 저고용, 금융 투기 구조가 정착돼서 우리나라도 고성장이 꺾였는데, 성장률이 둔화하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어요. 장기 불황이라고는 하나 아직은 일본보다 성장률이 높죠. 일본 같은 장기 불황은 아닙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해외 경제에 많이 의존하는데, 세계 경제가 전부 장기 불황에 빠져 있는 상태잖아요. 미국, 유럽, 일본, 이제 마지막 남은 게 중국인데 중국도 이제 고도성장이 꺾일 전환점을 보이니까 한국 경제도 지금보다 성장세가 더 위축될 거라는 우려를 하는 거죠. 우리나라 주력 수출 산업들도 세계 장기 불황 여파 속에서 중국 기업들에게 격심한 경쟁 압박을 받고 있고요.
역사적으로 봐도 우리나라는 일본과 비교할 수 있는 경제가 아닙니다. 장기 불황의 현재 상황도 일본과 다르고, 장기 불황으로 빠졌던 일본의 경험, 역사도 우리와 달라요. 근본적으로 일본 경제와 한국 경제는 재생산 구조가 아주 달라요. 그래서 비교할 수 없죠. 일본은 장기 불황에 빠져 있음에도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아주 높아요. 한때 세계 수출 1, 2위를 다투던 나라고 그 경쟁력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무역 수지가 계속 흑자 기조를 기록했지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전력, 에너지 부문이 큰 타격을 받아서 석유 수입이 급증하고 그래서 무역 수지가 적자로 바뀌었지만, 경상 수지는 여전히 흑자고, 수출 시장 경쟁력이 뛰어납니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장기 불황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요. 왜냐면 일본 경제의 중심은 수출 부문이 아니라 내수 부문이거든요. 해외 부문, 즉 수출과 수입은 GDP 대비 30%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진 건 내수 부문이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버블 후유증으로 만들어진 막대한 불량 채권들의 처리가 미진해서 투자와 소비가 부진한 거죠.
한국 경제는 전혀 달라요. 한국은 GDP에서 차지하는 해외 부문의 비중이 압도적입니다. 우리나라는 내수 부문을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게 아니에요. 근데 세계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니까 우리나라가 받는 압박이 크죠. 일본도 물론 마찬가지지만 일본 경제는 해외 부문에 그렇게 의존하는 경제가 아니거든요. 한국 경제가 더 문제죠.
경제 무식자 내수 중심인 경제가 더 좋은 거 아니에요?
김성구 그게 정상적인 경제죠. 선진국 경제는 내수 경제가 기반인 자립 경제예요. 언론 등에서 우리나라가 일본 경제를 따라 공업화를 수행한 것처럼 말하는데, 객관적인 관계를 보면 터무니없는 주장이죠. 일본의 공업화는 선진 자본주의의 자립 경제의 길이고 한국의 공업화는 개발 도상국의 해외 종속적인 길이에요.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는 해외 경제에 받는 타격이 일본보다 훨씬 더 크고 세계적인 장기 불황에 더 취약해요. 일본은 내수 경제가 죽어서 경제 회복이 안 되는 문제고, 한국은 세계 경제의 침체 경향 속에서 해외 경제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가 부딪히는 어려움이에요.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난국의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장기 불황의 전사인 일본 버블의 경험도 우리와 다릅니다. 일본하고 비교하는 건 근거 없는 것이죠.
경제 무식자 일본은 내수 경제가 중심인데 어쩌다 세 배나 되는 버블이 막 생긴 거예요?
김성구 그 역사는 전사가 있죠. 1970년대 중반 세계 경제가 공황을 극심하게 겪을 때, 미국과 유럽 경제가 장기 침체로 빠졌거든요. 근데 일본 자본주의는 1970년대 공황 속에서 빠르게 적응하고 회복을 해요. 극소전자 혁신을 선도적으로 주도해서 산업 구조조정을 하고 다시 고도성장을 기록하거든요. 근데 미국은 침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특히 1980년대 초 레이건 정부에 들어서서 고금리 고달러 정책을 추진하다가 경제가 죽을 쑵니다. 금리를 높이면 이자 부담이 높아져서 많은 부채를 안고 있는 국가도 재정 부담이 높아지거든요. 또 고금리 정책으로 달러가 높아지니까 미국 제조업들이 엄청난 타격을 받죠. 그래서 1980년대 초 이래 미국은 쌍둥이 적자, 즉 재정 적자와 경상 수지 적자에 시달리게 되지요.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일본에 환율 압박을 가해요. 세계 시장에서 미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달러 정책을 접고 일본에 대해서 엔고를 요구한다고요. 그러면서 미국은 저달러 정책으로 전환하는 게 ‘플라자 합의’입니다.
경제 무식자 오, ‘플라자 합의’ 들어 봤어요!
김성구 1985년 플라자 합의에서 독일의 마르크화와 일본의 엔화를 평가 절상하고 달러는 평가 절하해요. 플라자 합의를 할 때 달러와 엔화의 환율이 1달러당 260엔이었어요. 근데 플라자 합의를 하고 나서 2~3년 사이에 1달러당 120엔으로, 달러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져요. 엔화 가치가 두 배 올라간 거죠. 이 추세가 1995년까지 가요. 그때가 되면 1달러당 80엔대까지 내린다고요. 그러니까 1985년에 플라자 합의를 하고 1995년까지 10년간 달러가 엔화 가치보다 3분의 1로 떨어진 거예요.
이 정도 환율 변화면 세계 시장의 가격 경쟁력에 미친 영향이 엄청난 거예요. 일본 제품 가격이 두세 배 높아지는 거잖아요. 세계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이 버텨 낼 수 없죠. 그러니까 일본 정부가 일본 기업의 해외 경쟁력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저금리 지원을 해 줍니다. 이때가 1980년대 중반인데 세계 경제가 경기 순환적으로 막 호황으로 가는 시기거든요. 호황 때는 점차 이자율이 오르는 게 정상적이고 그러다 호황 막판에 공황으로 떨어지면서 이자율이 급등하죠. 근데 일본 정부가 호황기에 정책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하니까 이때 버블이 조장된 겁니다.
호황이 돼서 주식 가격이 막 오르고 물가도 오르고 땅값도 오르기 시작하는데 금리를 아주 낮게 유지해 주니까 사람들이 너도나도 대출받아서 투자를 하는 거예요. 앉아서 돈 번다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개인, 기업 할 것 없이 은행에서 대출받아다 투자를 하고, 투자하면 투자 수요 때문에 가격은 더 뛰고, 그래서 차액은 더 생기고, 그렇게 막 덤비다가 엄청난 버블이 형성되었고, 결국 그게 터진 거라고요.
결론적으로 말해 지금 장기 불황이라 해도 한국과 일본 양국의 경제 상황도 다른 데다 근본적으로는 양국의 재생산 구조는 전혀 다른 유형이어서 비교할 수 없는 거죠. 고령 사회로의 진입이라는 요소는 앞으로 우리도 일본처럼 안고 갈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에서 한국 경제의 미래를 볼 순 없어요.
오늘의 경제 무식자 요약
우리나라도 가계 부채가 터져서 일본 경제처럼 폭삭 주저앉는 건 아닐까?
우리나라는 장기 불황이라 해도 아직 1980년대 일본 같은 상태는 아님. 금융 기관들이 가계 대출 담보 비율을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
부동산 값이 버블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투자금에 대한 수익 비율로 판단할 수 있음. 이자율이나 물가 상승률 또는 실물 자산 대비 주식 시가 총액이나 주택 건축 비용 대비 주택 가격을 통해서 볼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