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19세 비정규직 청년이 홀로 스크린 도어를 정비하다가 구의역에서 죽었다. 그런가 하면, 내달 생리대 가격을 인상한다는 발표가 나자 저소득 청소년들은 “생리대 살 돈이 없어요”라는 사연과 고백을 SNS에 올렸다. 세월호,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 등까지 묶어 생각해 본다면, 죽은 자는 죽은 게 아니고 산 자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노란 리본과 포스트잇으로 애도와 추모를 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
약간 물러서서 현실을 바라본다면 당장 큰 문제는 정부의 ‘사람 자르는’ 구조조정이다. 지금 거제도에서는 최대 2만 명이 해고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또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대 100조 원이라는 말도 떠돌고 있다.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대해서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소위 ‘조선소 상용직 노동자들의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총고용’ 대상에서 조선소 하청 노동자 중 약 50%를 차지하는 소위 ‘물량팀’(집단 외주 인원) 노동자는 제외된다. 조선업종노조연대 소속 사업장, 다시 말해 노동조합이 있는 대형 및 중형 조선소에는 사내 하청 업체 ‘본공’(하청 업체 직접 고용)과 물량팀 노동자의 비율이 엇비슷하다. 하지만 나머지 조선소의 경우 생산직은 거의 100% 하청 노동자이며 그중 80% 이상이 물량팀이다. 이런 구조에서 ‘총고용 보장’은 큰 의미가 없다. 노동자의 고용 조건이 정규직, 사내 하청 본공, 물량팀 등으로 분할된 현실에서 물량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물량팀 고용을 폐지하고 모든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실현이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실질적인 해결책이 있을까? 얼마 전 민주노총 구조조정 기획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온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 조선소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 활동가에 의하면,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런데, 이 노동 시간 단축이 잔업 줄이고 특근 안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즉, 조선 산업 전체 차원에서 현재의 주 40시간 노동을 주 24시간으로 전환하는, 임시적이고 특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 시간 시스템 자체를 바꿔서 정규직이든, 사내 하청 본공이든, 물량팀 노동자든 간에 동일하게 주 24시간으로 단축해서 일하자는 주장이다. 이러면 모든 노동자가 주 3일을 일하게 된다.
물론, 이렇게 산업 및 제도 차원에서 노동 시간을 줄이더라도 줄어든 임금은 국가에서 보전해 줘야 한다. 현재 법정 근로 시간이 주 40시간이라 해도 실제로는 주 50시간 이상 노동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주 24시간으로 노동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현재 임금 총액의 50% 이상이 보전되어야 한다. 사회 전체의 일반적인 노동 시간 단축이라면 당연히 자본 측이 그것을 부담해야 하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국가가 임금 보전을 해야 한다는 것. 나는 이김춘택 활동가의 제안이 올바르고 적실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 토론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좀 의아했다. 다수 참가자는 현재 한국 경제가 위기가 아니며, 또 한국의 조선업이 일정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경제 정세 판단은 결국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현실을 보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우려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거제도에서만 2만 명을 해고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어찌 한국 경제가 위기가 아니란 말인가? 위기란 반드시 패닉 형태로 돌출하는 것이 아니다. 구의역에서 죽은 19세 비정규직 청년은 가방에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을 유품으로 남겼다.
재벌의 사내 유보금 환수 운동도 단지 그것에 멈춰서는 안 된다. 현재의 논리와 요구는 사내 유보금 환수 및 경영진의 책임 지우기를 통해 마련한 기금으로 노동자의 고용과 하청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좀 더 나아가 사내 유보금 환수 운동이 노동 시간 단축 및 일자리 나누기 요구와 단단히 결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사내 유보금 문제에만 매달리면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내 유보금은 자본가들 이윤의 전부가 아니다. 주식 배당, 금융 이자, 임대료, 법인세, 임원들의 터무니없이 높은 보수 등도 노동에 대한 착취의 결과인 이윤이 분배되는 형태다.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 고령화, 모든 세대에 걸친 높은 실업률, 기업 및 가계의 엄청난 부채, 자영업자 파산의 만연 등을 특징으로 하는 구조적 위기에 빠졌다. 노동 시간 단축 및 일자리 나누기를 사회 전체에서 수행하는 것 이외에는 원리적인 해결책이 없다. 여기에 덧붙여서, 한편으로 국민 연기금 등의 활용을 포함한 엄격한 산업, 금융, 조세 감시와 통제로부터 출발해서 점차 질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를 때까지 삼성 등의 독점 자본을 사회화해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재현
문화 평론가로서 중요한 모든 세상사에 끼어들려 한다. 운전면허, 신용 카드, TV가 없다.
사진 김용욱
(워커스13호 201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