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대기업의 세상이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살기 어려워 발버둥 치는데, 남양유업 등 원청 업체들은 갑질을 일삼는다. 노동자들의 작은 소망은 늘 무시당하는데,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은 비행기마저 되돌리는 권력을 휘두른다. 회사 관리자와 어깨 한번 부딪 힌 노동자들은 폭행죄로 고발당하는데, 최철원 SK M&M 회장은 천만 원짜리 수표 몇 장 던지고 노동자를 폭행하고도 집행 유예로 풀려난다. 해운과 조선업종의 구조조정으로 하청 업체 노동자들은 쫓겨나 길거리를 헤매는데,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보유 지분을 사전에 팔아 치워 큰돈을 챙긴다. 최저임금은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재벌 대기업은 700조 원이 넘는 사내 유보금을 움켜쥐고 경영권 승계 싸움을 한다.
재벌 대기업은 전경련, 경총, 대한상의 등 집단을 이루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이윤이 사회의 최고 가치라는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고, 정부와 카르텔을 형성해 권력을 휘두른다. 경총은 5월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표한 서울시 산하 기관의 노동 이사 제도에 대해 성명을 발표했다. “방만한 경영으로 매년 적자를 거듭하는 공기업의 개혁을 방해하고 생존마저 위협”한다면서 “노동 이사제는 우리나라의 시장 경제 질서와 맞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방만한 경영으로 조선과 해운, 철강 등의 위기를 만들어 낸 기업은 누가 통제할 것인가? 편법 증여 등으로 2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재벌 대기업의 형태는 그들이 주장하는 소위 ‘시장 경제 질서’와 맞는 것인가. 이들은 이대로 두어도 좋은가?
경제 단체들은 때로는 법도 자신들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경총은 2015년 11월 15일 논평을 내서 그 전날의 ‘민중 총궐기’ 집회를 비판했다. 그들은 “도심 폭동은 법치 국가 근간을 뒤흔드는 시도로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나아가 한국 사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면서 “경영계는 불법 시위를 조장·선동한 자와 불법 행위 가담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경영계가 공권력까지 좌지우지하게 되었는가. 2012년 국정 감사 시기 경총은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불러서 기업이 국감 준비에 몰두하는 것이 경제 전체에 손실을 끼칠 것”이라고 하고, 대한상공회의소는 2015년 광복절 특사 관련해 “경영인들을 제외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비리와 폭력을 저지른 경제인들이 ‘경제 살리기’를 이유로 법의 심판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공권력에 빙의되어 민중 총궐기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하고, 자신들은 법에서 예외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시각이 끔찍하다.
경제 단체들은 법도 마음대로 뜯어고쳤다. 그들은 19대 국회에 제출된 여러 법에 대해서 대한상의, 전경련, 경총 등의 명의로 찬반 입장을 전달했다. 대다수 국회의원에게 기업가들은 최대의 정치 자금 후원자들이다. 경제 단체는 학교 주변에 호텔을 건립하도록 하는 <관광진흥법>, 외국인 합작 투자 규제를 완화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을 개정했고, 기업 구조조정 시에 일방적으로 지원을 받도록 하는 <기업활력제고를위한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의료 민영화의 기반이 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파견법> 등을 통과시키려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법안은 하나도 다뤄지지 않은 채, 경제계가 요구하는 법은 통과되었거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20대 국회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는 ‘규제 완화’도 재벌 대기업의 뜻대로 밀어붙였다. 정부 기관인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의 민간 위원장은 재벌 대기업의 하수인과도 같은 로펌 김앤장 상임 고문이 맡고 있다. 국회 법률이나 중앙 행정 기관의 규제 신설 강화는 모두 규개위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규개위의 권고에 따르도록 되어 있을 만큼 막강한 기관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총리실이 함께 운영하는 ‘규제 개선 추진단’도 구성되어 있다. 규제 개선 추진단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화학물질의등록및평가등에관한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을 약화시켰다. 전경련은 2013년 ‘화학 물질을 취급하는 기업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보고서도 냈다. 그들은 ‘돈’을 위해 시민들의 안전과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조치들을 무력화했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를 만들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낳았다.
기업과 정치권의 카르텔은 법안이나 규제 완화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우익 세력을 동원해 정부와 기업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맞불을 놓고 여론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노조 파괴 전문 업체인 창조컨설팅을 통해서 용역 깡패들을 동원했던 기업들의 전력이 사회의 여러 사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3년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 운영 실태 및 대응 방향’과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 공세 차단’이라는 문서는 국정원이 작성한 문서로 추정되는데 여기에는 ‘경총과 전경련 등 경제 단체를 통한 비난 여론 조성’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2016년 현재 세월호 집회, 국정 교과서 반대 집회, 한일 협정 반대 집회 등에 나타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반대 집회를 한 어버이연합에 전경련이 자금을 지원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파탄 나며, 불안정 노동으로 고통스럽고, 경제 위기로 많은 이들이 쫓겨나고 있다. 규제 완화로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혐오와 약자들에 대한 폭력도 넘쳐 난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 재벌 대기업의 책임이 크다. 재벌 대기업 단체는 ‘돈’이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하며 사회의 시스템을 약육강식으로 몰아세운다. 우리는 경총, 전경련과 같은 기형적인 재벌 대기업 집단이 그대로 존재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이윤’만을 최고 가치로 하는 기업들을 사회적으로 통제하지 않고도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권리와 시민들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당연히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공동체의 삶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재벌 대기업의 권력을 통제하는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 활동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