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난민기구 한국 사무소 앞의 집회
지난 9월 24일,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미얀마 사람 약 700여 명이 서울 을지로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를 주도한 사람들은 한국시민사회와 함께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이주노동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싸워왔던 이들이다. 오랜 시간동안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타국에서 싸우는 이들을 위해 한국시민사회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왔다. 그런 이들이 유엔난민기구를 표적으로 하여 집회를 열고 다음을 외쳤다. “로힝야는 미얀마의 소수민족이 아니다” “ARSA(로힝야군사조직) 테러행위 중단하라” “ARSA테러리스트 꺼져라” 등, 이들의 구호는 미얀마 정부의 입장과 똑같이 닮아 있었다.
어렵게 정권을 잡은 아웅산 수치 정권이 로힝야 문제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도 있겠다고 애써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로힝야가 미얀마의 소수민족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유엔난민기구 앞에서 외치는 모습이었다. 이것은 로힝야인들이 ‘법적으로’ 미얀마의 시민권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권 침해와 난민 문제에 대해 미얀마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이 문제에 대해 유엔이 미얀마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한국 활동가들은 이들의 구호에 큰 충격을 받았다. 수십 년 동안 누적된 탄압과 차별은 물론이고 최근 몇 년간 인종청소 수준으로 자행된 미얀마 정부군과 아라칸 불교도 민병대들의 살인과 강간 및 방화에 저항하기 위해 고작 수십 명의 무장조직이 군경초소를 공격한 것을 두고 테러리스트라고 낙인찍으며 미얀마 정부군의 대량학살을 정당화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미얀마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던 미얀마 활동가들은 군부독재정권입장에선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이들은 여전히 무장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다른 미얀마 소수민족들은 왜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지 않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난민으로,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로 탄압을 정당화하는 구호를 외치는 광경은 정말 믿기 힘들었다. 이들이 외친 논리에 따르면 미얀마 이주노동자들 자신들도 겪고 있는 한국 출입국사무소의 이른바 ‘불법체류자’에 대한 인간사냥도 정당해진다.
난민의 권리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유엔난민기구 앞에서 집회를 연 것도 의문이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고 살아가는 미얀마 활동가들에게 묻고 싶었다. 만약 로힝야인이 한국에 난민신청을 하면 당신은 어떤 입장인가? 만약 이들이 난민인정을 받게 되면 미얀마 정부의 탄압이 있다는 걸 한국정부가 인정한다는 의미인데 그러면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항의시위를 조직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왜 함께 연대하고 싸웠나?
미얀마 민주화 활동가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여전히 군부가 군통수권을 가지고 있고, 아웅산 수치 정권은 군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이제 막 걸음을 떼었기 때문에 아웅산 수치 정권을 이해해야 한다고. 하지만 미얀마의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가 로힝야 사태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이런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한때 아시아 민주주의 상징이었던 사람이었다고 믿기 힘든 수준이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11월 20일에 있었던 연설①에서도 로힝야들을 “불법이민자”로 호칭하고 있다. 아웅산 수치뿐 아니다. 2009년 광주인권상 수상자인 민꼬나잉 씨가 최근 한국 언론②을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해 피력한 의견도 놀랍다. 그는 유럽연합이 이 문제를 부각하는 이유가 “무슬림 편에 서서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며, 이 지역의 지하자원 매설에 따른 경제적 이익과 여기에 중국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 사태를 유럽연합의 이미지 메이킹과 경제적 이익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그의 인식은 이 문제를 주목하고 있는 전 세계의 수많은 시민들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동떨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국제사회가 염원했던 미얀마 민주주의 미래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이 집단적인 국가폭력에 희생되는 사태가 발생했다면, 집단적인 국가폭력을 경험했기 때문에 적어도 이들을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모욕하지 않는 정부가 들어설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친 사람들이 정권을 잡게 되면 아무리 군부의 영향력이 막대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보여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로힝야 사태가 발발한 이후 지금까지, 함께 싸워왔던 사람들에게서 로힝야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유감과 위로의 말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함께 싸워왔던 것일까?
연대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로힝야 사태를 다루는 한국 온라인 기사 댓을 보면 로힝야인들이 국의 미얀마 식민지 통치에 부역했기 때문에 당해도 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만주국 장교와 그의 딸을 통치자로 받아들인 국가의 국민들이 주장하기에는 설득력이 없는 논리지만, 설사 로힝야인들이 국제국주의에 부역했더라도 이들을 향해 자행되고 있는 폭력들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국제 인권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 군인들은 한 살 짜리 아기를 불구덩이에 집어 던지는 폭력을 비롯해 소녀들을 집단 강간하는 등의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③. 이에 대해 그 피해자와 연대하고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어떤 논리를 들이대더라도 국제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되겠다는 것이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미력하나마 함께 싸워왔던 단체의 활동가로서, 한국 시민사회가 로힝야들의 아픔에 연대하려는 것은 이들이 무슬림이어서가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미얀마 활동가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미얀마 활동가들에게 로힝야 문제에 대해서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은 로힝야 사람들의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라는 사실을 미얀마 활동가들이 이해해주기를 기대한다. “모든 사람은 인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연대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실제로 지키기 쉽지 않은 원칙이더라도, 이 원칙에 한국과 미얀마 활동가들이 서로 동의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싸우고 있음을 재확인하고 싶다.
①http://time.com/5031310/aung-sansuu-kyi-myanmar-rohingya/
②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44327.html
③http://www.savethechildren.org/site/c.8rKLIXMGIpI4E/b.9536117/k.9DB4/ Rohingya_Crisis.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