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는 운동이다. 운동엔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성폭력 폭로에 대한 백래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한 번 더 가해하는 그 말들은 이젠 제법 식상하다. 문제는 그 고루한 백래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백래시는 언제나 가해자와 기득권 집단에 그럴 듯한 논리를 제공했다. 이들은 이를 통해 유리한 사법체계를 전적으로 활용하고, 권력을 이용해 은폐를 시도하고, 피해자를 사회에서 축출해 왔다. 미투 운동이 한창인 요즘. 피해자들의 격렬한 목소리와 백래시가 힘 대결을 벌이고 있다.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에게 백래시를 부술 수 있는 우리의 대응 논리를 물었다.
(1) 미투공작정치예언가형: ‘누군가 미투를 이용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이 잇따라 미투 대상에 오르자, 김어준 씨는 미투가 ‘공작 정치’에 이용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내놨다. ‘반문재인’ 위기를 강조해 지지자를 결집시키고, 미투 대상이 된 이들의 설 자리를 남겨 놓기 위한 기가 막힌 밑밥이었다. 김 씨는 2월 24일 팟캐스트 ‘다스뵈이다’에서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미투 운동은) 첫째 섹스(라는) 좋은 소재, 높은 주목도, 둘째 진보적 가치가 있다”라며 “예언하자면 누군가 나타날 것이고 그 타깃은 결국 문재인 정부와 청와대, 진보적 지지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 남성들이 강간문화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또 한 번 공작설을 설파했다. 3월 11일 같은 팟캐스트에서 그는 “제가 공작을 경고했는데 그 이유는 미투를 공작으로 이용하고 싶은 자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라며 “안희정에 이어 봉도사(정봉주 전 의원)까지… 이명박 각하가 (관심에서) 사라지고 있다.”
‘공작 정치의 희생자’로 소개된 정봉주 전 의원은 자신의 몸에 스스로 진흙탕을 끼얹은 사례다. 그는 자신의 성폭력 사실을 처음 보도한 언론에 전쟁을 선포하며 고소까지 불사했는데, 최근 이를 취하했다. 당시 호텔에서 그가 카드를 사용한 내역이 드러난 까닭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도 “기억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애초 정 전 의원은 그를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한 피해호소인과 이를 처음 보도한 매체를 향해 집요하게 공작설을 제기했다. 사건 폭로 후 5일 뒤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과 언론을 속게 한 기획된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제가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는 기자회견 날 오전에 맞추어 보도를 한 것은 시기가 매우 의도적”이라고 주장했다. 피해호소인이 새로운 증거를 내놓자 “BBK 사건 재심청구하는 날 기자회견을 연다는 건 정치적 저격이 아닌가 싶다”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피해호소인의 기자회견이)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는 “그들은 자신들이 비판했던 거악과 닮아있다. 위기 때마다 북한을 소환하던 정부를 비판하던 그들은 성추행 사실 폭로에 대해 공작설을 제기하며 물타기를 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특히 김어준은 <블랙하우스>라는 프로그램에서 본인에게 주어진 언론 권력을 사유화해 정봉주를 옹호하는 데 이용했다”라며 “여기에 대한 반성과 충분한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이번 사태를 남성의 말과 여성의 말 사이에 설정된 위계의 문제로 해석했다. 손 씨는 한 칼럼에서 “그의 ‘예언’에서 피해 여성은 ‘다른 목적을 위해 준비되어 이용당하는 자’의 자리로 떠밀리고, 그렇게 다시 한 번 여성들의 증언은 ‘가치 없는 것’ 혹은 ‘대의를 망치는 문제적인 것’으로 전락한다”고 설명했다.
(2) 미투판관형: “이건 미투고, 저건 미투가 아니다!”
자신의 협소한 판단력을 쥐어짜 성폭력 사건에 판관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다. 남들도 다 아는 정보를 기반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진짜 미투’와 ‘가짜 미투’를 판별한다. 이들이 즐겨 쓰는 말은 ‘딱 보니 주작(조작)’이다. 피해자가 건조하고 초췌한 얼굴을 들이댈 때에만 가해자는 ‘죽일 놈’이 된다. 이들은 미투 개념을 협소하게 만드는 데도 일등공신이다.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권력형 성범죄에만 ‘미투’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의 평범남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보통의 피해자들은 그저 ‘아닥 하라’는 말일까? 성 범죄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 발언이었다.
2월 26일 진행된 ‘#MeToo 운동 긴급토론회’에서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젠더 자체가 권력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성별 권력관계와 무관한 권력형 성폭력이란 개념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성별(gender) 자체가 위계적 관계로 구성돼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효과이자 새로운 권력관계의 원인”이라며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남성은 특정인의 잘못으로 개별화 되지만, 여성의 경우 ‘여성 집단’ ‘여성성’의 문제로 과잉일반화 된다”고 지적했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은 “성폭력 진위를 판별하려고 하는 시도들은 언제나 있어 왔다. 성폭력 사건은 강력범죄 중 유일하게 피해자 책임론이 대두된다. ‘네 번이나 당했으면 원한 거 아니냐’ ‘사귀는 사이였는데 어떻게 성폭력이 되냐’ 등이 남성 중심성에 기반한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모든 사람이 꽃뱀 판독기 역할을 하려는 공론화된 사안일수록 한 마디씩 보태며 판단을 이야기하는데 그건 2차 가해이고, 피해자를 위축시키고 검열하게 만드는 문화적 요소”라고 꼬집었다.
최근 가해자들이 ‘꽃뱀’만큼이나 많이 이용해 먹는 무기는 바로 ‘연애 감정’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의 달래 활동가는 “가해자, 피해자의 나이가 30세 이상 차이가 나는데 연애 감정이라는 가해자의 말로 사건을 해석하는 일도 있었다”라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공간 분리가 매우 중요한데 순수한 마음을 앞세워 계속 찾아오고, 연락을 해 피해자가 더 큰 위협을 느끼는 사례들도 있다”고 증언했다.
(3) 2차가해모른다형: “떳떳하면 얼굴 까라!”
피해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싶거나, 피해자 신상이 밝혀진 후 생길 수 있는 2차 피해에 대해 전혀 무지한 경우다. 2차 피해란 1차 피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비롯한 일련의 피해들을 통칭한다. 피해자가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하거나 필요한 설명을 듣지 못하는 것, 언론이 사건을 잘못 재현해 피해자가 꽃뱀 취급을 받게 하거나 선정적인 표현으로 사건 자체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것 역시 2차 피해에 해당한다. 2차 피해는 1차 피해를 해결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를 지속시켜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어렵게 한다.
이들은 신상을 밝힌 피해자만 믿어주겠다며 시혜적이면서도 관음적인 태도를 보인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김지은 씨를 예로 들며, 정봉주 사건 피해자 역시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고 얼굴을 붉힌다. 이후의 삶을 포기할 각오가 없으면 입도 벙긋 하지 말라는 협박과도 같다. 이들은 “거대한 권력에 의한 신변의 두려움 때문에 방송 출연을 결심했다”는 피해자의 고백보다 얼굴에 더 집착한다. 최근 김지은 씨는 2차 피해에 따른 괴로운 상황을 자필편지로 전하기도 했다. 악의적인 신상털기가 시작되고 가족에 대한 허위 사실들이 떠돌고
있다며 거짓 소문이 퍼지지 않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위은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위원장은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당사자를 의심하고 왜곡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여성들의 말하기를 방해한다”고 우려했다. 위 변호사는 “피해자는 신변 노출 대상을 대중으로 할지, 친구 그룹으로 할지 결정할 수 있으며, 누구도 이름이나 얼굴 공개를 강요할 수 없다. 언론 역시 이를 유념해, 가십성으로 미투를 다루기보다, 더 중요한 성차별적 권력구조에 집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4) 상찌질형: “여자랑 어디 무서워서 얘기 하겠나”
평소 여성들도 별로 말 섞고 싶지 않아 할 유형이다. 최근 ‘펜스룰’이라는 단어를 주워듣고 매우 신이 난 이들은 아무데서나 ‘펜스룰!’을 외친다.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아내 없이 다른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겠다’는 발언에서 유래한 ‘펜스룰’은 최근 ‘한국판 펜스룰’로 재탄생했다. SNS에서 화제가 된 ‘한국판 펜스룰’이라는 글에는 ‘여자와는 가급적 대화를 하지 않는다. 여자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악수하지 않는다. 여자가 먼저 사귀자고 해도 문서로 받고 허락한다’ 등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공적인 영역에서 ‘말을 하는 여자’에 대한 거부감 또한 남성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제재의 예”라면서 “여성들이 정확하고 강력한 언어를 사용하면 곧 ‘남혐’이나 메갈로 정의되는데 남성들이 자신의 언어 없음과 의식 없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쓰는 말이 ‘여자는 빠져’다”라고 설명했다.*
‘펜스룰’은 최근 기업 차원에서도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다. 노래방 회식, 야유회 등 업무상 불필요한 자리들이 줄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회식을 남녀로 나눠한다거나 아예 여성을 배제하며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IT 대기업에 다니는 C씨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업무를 시키거나, 남자 직원들보다 퇴근을 빨리 하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차별이라 생각해 스트레스 받는다”라며 “여성 직원들이 하는 일을 축소하고, 빛나는 성과가 있는 일은 남자들끼리만 나누는 문화가 더 공고해질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5) 현실감각제로무사안일형: “법대로 해!”
사실이면 증거를 모아 법적으로 대응하라고 요구한다. 대부분 ‘성폭력은 곧 강간’이라는 고릿적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이들이다. 송란희 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을 아우르는 ‘성폭력’이란 개념은 둘만 있는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많아 증거를 딱히 가질 수 없는 게 엄연한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송 사무처장은 “이 같은 조건을 무시하고 증거를 달라는 건 성폭력이 아니라는 주장과 똑같은 이야기다. 성폭력 범죄를 수사할 때 피해자의 진술이 증거로 채택되는 건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구제해야 할 법은 현저히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피해자가 ‘오후’에서 ‘늦은 오후’로 진술만 변경해도 ‘진술을 번복했다’며 신빙성을 의심한다. 피해자는 모든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역고소는 가해자의 무기다. 김보화 울림 책임연구원은 “무고나 명예훼손의 역고소가 체계화 되고 있다. 대부분 피해자들보다 권력을 가진 가해자는 법의 남성 중심적 기준을 악용해 피해자를 곤경에 빠뜨린다”고 설명했다.
일련의 통계는 피해자에게 불리한 사법체계의 지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 2,190건 중 노동부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9건에 불과하다. 조사 과정에서 근로감독관이 2차 가해를 하기도 했다. 김명숙 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국장은 “고용노동부뿐 아니라 인권위, 경찰, 검찰 조사 과정에 참여하는 각 담당자들이 낮은 성 인지 감수성으로 사건을 처리해 이 과정에서 심각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보화 연구원은 “정부가 최근 권력형 성폭력 종합대책을 내놓고 위법성의 조각을 확대해 해석하겠다고 밝혔지만 계획은 없고, 급하게 만든 공약처럼 느껴진다”라며 “검찰, 법무부에서 내부 젠더 감수성 향상을 위한 수칙을 만드는 등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6) 미투저주형: “너희는 폭로성 운동의 한계를 맞이할 것이다!”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자, 이 틈을 타 ‘폭로성 운동의 한계’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이들은 미투 운동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며 ‘미투가 살생부가 됐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페미몬스터즈 선아 활동가는 “왜 지금, 이런 방식으로 미투가 터져 나오는지 성찰하지 않고 운동의 한계라고 이야기하는 건 또 다시 가해자 중심적인 사고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조직 내에서도 해결하기 힘들고, 법에도 기대할 수 없는 피해자들은 공론화를 선택해 성폭력 피해 경험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이 저주하는 ‘운동의 한계’는 아직 오지 않은 듯하다. 최근 337개 여성단체들은 미투에 연대하기 위해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을 띄웠다. 이들은 미투 운동에 가해지는 백래시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확성기가 되겠다고 했다. 지난 3월 22일에는 2018분 동안 피해자 이어 말하기가 진행돼 큰 화제를 일으켰다. 이어 말하기에 동참한 피해자들은 미투 이전과 이후의 사회는 다를 것이라고, 구조는 느리게 변할지언정 개인들에겐 분기점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말할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냉소하며 남성 권력적 세계에 머물고자 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당신의 세계는 끝났다.”[워커스 41호]
[각주]
* 한국여성민우회 30주년 기념토론회 <2017 성차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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