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 김한주 ≪워커스≫ 기자
패널 | 예원(페미당당),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최현희(전교조 조합원), 반다[조한진희](다른몸들)
우리의 #미투들
정은희 :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미투 이후 두 달이 지났다. 미투 운동은 다양한 페미니즘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미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현희 : 성별이분법이 학생의 잠재력을 억압하고 있다고 깨달으면서 페미니즘 교육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자아를 탐색하기 전에 학교가 ‘여자’와 ‘남자’라는 성별이분법에 가둔다. 그러다 강남역 여혐살인사건을 통해 이게 단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비탈길 이론’이라고들 하는데 일상의 성편견과 사소한 성차별이 결국 강간과 여성살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양극단은 연결돼 있다. 교사로서 위계적인 성별이분법의 교육적 측면을 많이 고민해왔는데,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 고민의 전제는 ‘여성의 안전’ 확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터져야 할 게 먼저 터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원 : 나는 미투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전부터 십여 년간 피해 사실을 말해 왔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았다. 최근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유명인의 성폭력 사건이 가시화됐지만, 이미 더 많은 사람들이 유명하지 않은 누군가로부터 젠더 폭력을 당해왔다.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방관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미투의 과정 자체가 지금껏 발언해 온 사람에게는 또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미투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소외감과 자괴감을 느꼈다.
나영 : 얼마 전 ‘이주여성들의 미투’ 기자회견에서 이제까지 미투 운동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유명인, 권력자들이지만 우리 가해자는 다 농장 사장, 감독관, 공장사장, 마사지 업체 사장 같은 평범한 한국 남자들이라고 했다. 실제 증언을 보면 시부모, 남편, 남편의 형제 등 관계를 불문하고 성폭력이 벌어졌다. 이들이 우리 얘기도 주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예전에도 우리는 계속 얘기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 미투가 이토록 폭발력을 갖게 된 ‘다른 감각’이 무엇인지 고민이 되더라. 아무래도 서지현 검사의 고발이 그 계기가 됐을텐데, 과거 피해자의 모습이 단지 ‘나약한 사람’이거나 ‘꽃뱀’ 중 하나였다면, 그는 권력 집단에 속해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의 문제제기는 공적 영역의 문제,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여진 경향이 있다. 그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이제 성폭력을 단지 ‘나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적인 영역으로 생각되지 않는 개인들의 목소리는 다시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이 든다.
반다 : 어째서 진보진영에 미투 폭로가 많냐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진보진영 내 여성이 성폭력에 대해 해석하거나 발화할 힘이 더 있기 때문이다. 과거 진보진영의 미투가 우리사회 반성폭력 운동에서 일정한 좌표를 찍어왔다. 90년대 운동사회 내 반성폭력 운동이 있었고, 그 위에서 100인위가 생기고, 운동사회 내 대책위 구성 문화와 규칙이 현재까지 이어진 면이 있다. 그 당시도 가해자가 일종의 운동사회 ‘셀럽’인 학생회장이거나 권력을 가진 위치에 놓여있을 때 사건이 더 부각됐다. 그런 경향이 여전히 타개되지 못한 게 안타깝다. 평범한 사람들의 미투를 사회적으로 발화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모든 성폭력은 권력형 성폭력’
일부 언론과 인터넷 등에서는 미투를 희롱하는 방식으로 백래시를 부추기고 있다. 또 권력형 성폭력 대 일상적인 해프닝으로 따로 묶어 규정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일상에서의 성폭력은 지워지는 느낌이다.
최현희 : 미투를 대놓고 반대하고 조롱하기는 힘든 분위기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는 있지만 그런 생각들은 명백하게 비난받고 제지당할 수 있다. 그러나 김어준 부류의 백래시가 교묘하고 악질적이라고 본다. 미투의 의미가 무엇인지 미투를 통해 사회의 구조를 성찰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자신이 그 구조 속에서 어떻게 복무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나영 : 모든 성폭력은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이야기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안희정 등 유명인을 중심으로 가해자는 특정한 위치와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상상하게 되는 것 같다. 가해자의 위치가 다층적으로 이야기되고, 가해할 수 있는 다양한 조건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 연결지어야 한다. 권력과 위계는 물리적, 사회적 관계뿐 아니라 내 선택을 불가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다. 스스로 선택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뭔지 앞으로 논의돼야 한다.
예원 : 사건 이후 정부는 대책을 내놓으며 움직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마치 이 사건이 해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는 ‘권력형 성폭력’과 ‘일반 성폭력’을 따로 신고 받기도 하면서 구분 짓기를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왜 이런 경험들이 발생했는지를 지워버리고, 자신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축소하고 있는 점이 걱정스럽다.
반다 : 여전히 성폭력을 도덕적 일탈의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여러 방식이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성폭력을 ‘성욕’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으면 성폭력에 대한 이해는 빈곤해진다.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과 남성성이 다양하게 작동하면서 성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을 상정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발생 구조는 성폭력을 하면 안 된다는 교육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여성성, 남성성에 대한 논의를 이제는 본격화해야 한다.
진보 운동이 진보하지 못한 젠더의식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을 운동진영 대표 격으로 취급하고 진보집단을 비난한다. 운동진영 역사를 살펴봤을 때 진보도 마찬가지라는 건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반다 : 2005년경 시민의 신문 이 모 대표의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이후 이례적으로 운동사회가 대단위의 대책위를 꾸렸다. 동시에 가해자 비호가 운동사회 내에서 강고했다. 그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진보도 똑같다고만 말할 수 없는 건, 진보진영 내에는 언제나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금의 미투 운동을 포함해 여성의 역사 진전에 분명히 기여해 왔다. 또 운동사회 일상을 보면 활동가 상당수가 여성이고, 집회에서 절반 혹은 그 이상이 여성인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조직 대표 같은 주요 지위는 여전히 대부분 남성이다. 운동사회에서도 젠더 문제는 기존 사회를 답습하고 성찰하지 않는 문제가 크다.
최현희 : 전교조도 마찬가지다. 교직이 여초임에도 보직을 가진 활동가 대부분은 남성이다. 활동가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 보통 남편은 활동가로서의 경력을 이어가지만 아내는 사라진다. 남성활동가들이 아내의 그림자노동을 착취해 조직이 굴러가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성활동가들이 이를 젠더의 관점에서 성찰하지 못한다. 그저 남성들이 보다 공적이고 사명감이 있어 조직에 헌신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 전 열린 ‘페미니스트 교사캠프’에서 교사들이 전교조에 가입하고 싶었으나 어차피 거기도 ‘진보한남’들이 있을테니 가입을 망설였다는 고백을 했는데 그런 젊은 페미니스트 교사들의 정서를 전교조가 의미있게 바라봐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 내용이 전교조새내기활동집에 실리자, ‘진보한남’이라는 말 때문에 한차례 논란이 됐다. 성찰하기보다 진보한남이라는 말에 버튼이 눌리는 정도의 감수성을 가진 조직이라는 것이 답답했다. 예전에는 전교조의 한 지부장이 나를 쫓아와 여성주의 얘기가 불편하다고 굳이 말하더라. 한때 치열하게 노동운동을 했던 활동가들이기에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과 실천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감과 확신이 페미니즘적인 성찰에는 큰 장벽이 되는 것 같다. 이런 헤게모니를 전복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전교조는 내 사건(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마타도어)을 조직의 이슈로 삼지 못했다. 이념이 치열한 이슈를 놓친 셈이다. 페미니즘 이슈는 지금 노동 현장의 문제이다. 노동운동이 이 이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운동의 새바람이 불 것이다.
나영 : 최근 340여 개의 여성, 시민사회, 노동 등 각계 단체들이 모여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을 발족했다. 대중적인 발언의 장을 만들며 정부 정책과 사회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나아가 반성폭력 운동이 여성의 문제로만 인식되는 걸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노동조합이 이 문제를 의제로 받아 이어간다면, 특정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거나 예방하는 차원의 역할 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의제와 노동 구조를 바꿔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여성 조합원의 가사노동까지 고려하는 노동 시간, 성별화 된 노동의 공간, 임금 격차 같은 교차점까지 인식을 확대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여성단체, 여성 정책만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영역에서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들의 미투도 존재한다. 현재 이들의 미투는 어떠한가?
나영 : 성폭력에 대해 이성 관계를 전제하거나, 권력의 문제가 아닌 성욕이나 성애의 문제로 보는 인식이 있다. 반성폭력 담론, 규율, 제도적 해결방안 또한 대부분 이성 관계를 전제한다. 그래서 동성 관계에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성적지향에 대해 입증해야 하는 부당한 압력을 받게 되고, 피해를 당했을 때조차 ‘피해자도 동성애자니 원했을 것’이라는 인식이 작용한다. 군형법 92조의 6 적용 사례처럼 동성애자인 피해자와 동성애자가 아닌 가해자가 있을 때 피해자가 더 불리한 입장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트랜스젠더인 걸 알고 성추행하는 악의적인 경우도 있다. 성소수자에게 권력 관계는 남성성, 여성성의 문제만이 아닌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성소수자 사회 안에서도 성폭력을 인지하고 문제를 제기할 언어를 가져야 하는데 그런 언어가 부족하다. 게다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동성 간 성폭력을 공론화하기 더 어렵게 만든다. 최근 성소수자 단체, 커뮤니티에서도 미투가 제기되면서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성찰하며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성소수자 운동도 미투를 계기로 성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바꿔나갈 수 있는 언어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혁명의 순간, 불 지펴야”
페미니스트로서 마지막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나영 : 미투는 촛불처럼 타올랐다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구라도 미투를 타인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나의 일로 받아들이는 건 큰 사회적 변화다.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 식당에서 아주머니들도 미투를 얘기한다. 인식이 그만큼 퍼졌다. 하지만 항상 제도적 방식으로 이슈가 마무리될 때 더 큰 백래시가 닥친다. 6월 지방선거 전후로 정부가 이런저런 정책을 제시할텐데, 이걸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단지 ‘가해자를 어떻게 조치할까’,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할까’가 아닌 사회 근간을 바꿀 수 있는 흐름으로 갔으면 좋겠다.
반다 : 혁명의 순간을 목격하고 있자니 복잡한 감정이 든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자신을 섣불리 판관의 위치에 세우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폭로와 사건 중심으로 보도가 쏟아지는데, 기사를 읽으며 ‘이건 성폭력, 저건 연애’, ‘이건 피해자 잘못, 저건 가해자 잘못’이라고 손쉽게 분류하는 이들을 본다. 자신이 사건을 보면서 누구한테 어떤 순간에 감정이입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면 좋겠다. 미투를 연예 이슈처럼 소비하지 않고 자기 삶의 의제로 사유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폭로하는 분들이 뜨겁게 발화하고 사라지는 투사가 아닌,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세상을 바꾸는 전사로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
최현희 : 관여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교직원 회의 때 ‘우리가 흔히 쓰는 여자아이, 남자아이라는 성별이분법적 말들이 바로 범죄의 토양이라고, 작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밑바탕이 돼 결국 극단적 범죄로 연결되는 거라고, 우리 모두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고, 그래서 페미니즘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 성교육은 성별 개념부터 시작해 치열한 이념의 전쟁터다. 전교조가 이를 선점했으면 좋겠다. 지금 미투 운동에 중립지대는 없다. 어디에 설지 결정해야 한다.
예원 : 우리 모두 적극적 혹은 소극적 방관자였다. 지난번 페미퍼레이드 때 미섭 활동가가 ‘우린 아무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끌어내릴 수도 없는 위치에서 성폭력을 당했다. 이런 사건들을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사회에서 잊지 말아야 할 건 내 지지기반인 페미니스트들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번에도 살아나갈 것’이라고 한 얘기를 전하고 싶다. 내 얘기를 들어줄 페미니스트가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살아남자.[워커스 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