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석(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지난 2월말부터 중국 관련 뉴스는 중국 공산당의 개헌안, 즉 국가주석 3연임 제한 철폐가 화두였다. 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이 개헌안은 반대 2표, 기권 3표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됐고 이는 시진핑 장기집권의 길을 연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중국의 시도는 많은 서구 언론에서 러시아 푸틴의 장기집권과 맞물려 독재 강화의 신호로 받아들여져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무엇보다 박정희 유신 헌법에 대한 트라우마가 존재하고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인 민주주의를 ‘대통령 직선제’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에서도 이러한 중국 상황을 보며 비판 여론이 매우 높았다.
중국 인민들은 집권 연장 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렇다면 중국 인민들은 이러한 개헌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일단 자유로운 여론 조사가 가능하지 않고 온라인 검열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중국의 여론을 정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공개적인 반대 목소리들도 존재했지만, 이는 중국 국내의 여론이라기보다 대부분 해외에 거주하는 자유주의 지식인들이나 유학생 일부의 성명이었다. 이들은 기존에도 중국 공산당의 일당 통치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해왔기에 이번 개헌안에 대한 비판 성명이 유독 특별하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빛의 속도로 검열돼 삭제되긴 하지만 간헐적으로 중국 SNS에 올라오는 풍자의 목소리들도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중국 인민 다수의 의지를 반영한다고 보기 힘들다.
다만 중화권 매체를 비롯한 외신 보도와 현지 체류 중인 사람들의 소식을 종합해보자면, 이번 개헌안에 대한 반대 여론은 존재하지만, 일부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들과 도시 중산층에 국한되며, 적극적인 반대 목소리라기보다는 집권 연장 시도는 지금 시대에 맞지 않고 촌스럽다는 정도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기층 인민들은 안정성의 차원에서 현재의 흐름이 지속되는 것에 커다란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 편이며, 일부는 중국 관방 언론의 보도처럼 지지 의사를 표명하기도 한다. 우리의 예상과 다른 이러한 여론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일단 정권의 정당성(legitimacy)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감각이 우리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나 신군부 정권에 대한 우리의 민주화 투쟁은 기본적으로 집권층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반(反)정부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중국 현대사 속에서의 민중 저항은 중국 공산당의 지배적 통치를 반대하는 반(反)권력의 성격보다는 청원의 형태를 띤 적이 많았다. 주로 저항의 대상은 부패한 관료나 지도부들을 향한 경우가 많았으며, 오히려 강력한 중앙이 존재하여 전횡을 부리는 하급 지방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심리도 강했다. 이러한 중국 인민들 심리를 탐관오리에게만 반대하지 황제에게는 반대하지 않는다고(只反貪官, 不反皇帝)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대대적인 반부패 사정 작업으로 관료들을 처벌하고 친민 정책을 실시해 인기를 얻어온 시진핑에게, 그리고 강력한 중앙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일정한 대중의 지지가 있는 것은 중국적 맥락에서는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인민’이라는 다모클레스의 칼
하지만 대중들의 일정한 지지가 바로 시진핑 집권 연장의 시도를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원하는 대중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의 현대사 속에서 사회주의 안에서의 민주를 요구하는 대대적인 대중 운동은 단속적으로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멀게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당 관료들의 특권을 강하게 비판하며 대민주(大民主)를 주장했던 조반파들의 저항이 있었고, 1980년의 민주의 벽 운동과 1989년 천안문 사건처럼 인민들의 폭넓은 정치 참여와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대중 운동이 존재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인민주권과 정치 참여, 경제적 평등의 권리가 내재돼 있는데, 왜 이러한 사회의 공정을 담보하는 민주적 사회주의가 실현되지 않느냐는 반문이었다.
21세기 들어서도 중국 각지에서는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 보장을 주장하는 파업이나 권리 보호 투쟁이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하지만 후진타오 시기 일정하게 보장됐던 이러한 대중 조직의 움직임이나 지식인들의 논쟁은 시진핑 시기 들어 위로부터의 강력한 압박에 직면했다. 한동안 당의 지배적 통치만 반대하지 않는다면 온라인이나 지면을 통해 중국이 가야할 길에 대한 활발한 논쟁이 벌어졌었고, 여러 노동NGO들의 활동도 조금씩 활기를 찾던 중이었지만, 시진핑 시기 들어서는 이 모든 것이 통제됐다. 위기의 시기에 당으로 모든 것을 일원화해서 돌파하겠다는 의도였지만 강제로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들을 억압해온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중국의 상황은 오래된 ‘다모클레스의 칼’이라는 우화를 떠오르게 한다. 권력자의 자리 위에는 얇은 말총 한 가닥으로 매달아 놓은 큰 칼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중국에서는 시진핑이 2015년 항일승전 70주년 열병식에서 “세계는 평화롭지 않고 전쟁의 ‘다모클레스의 검’이 인류의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다”고 언급해 유명해진 표현이다. 시진핑은 주로 대외적 위협을 ‘다모클레스의 칼’이라고 표현했지만, ‘인민’이라는 또 다른 ‘다모클레스의 칼’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이번 전인대 폐막 연설에서 여러 차례 인민을 강조하고 탈빈곤과 사회보장 강화 등 친민정책을 얘기했지만, 여전히 당의 억압적인 통제는 계속되고 있다. 권력 집중과 임기 연장 시도는 한편으로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담보할지는 몰라도 정책 실패의 책임 또한 막중해진다. 시진핑의 정책적 시도가 연착륙하며 좋은 성과를 계속해서 내지 않는다면,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지속적인 제도적 통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인민들의 여론이 단순히 풍자에만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다.[워커스 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