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민(문화연구자)
염려하고 경고하던 일이 결국 크게 터졌다. 물론 그동안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났지만 그때마다 사태는 늘 그럭저럭 봉합돼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대충 무마하고 넘어갈 수는 없겠다. 지난 3월 중순 한 내부고발자에 의해 영국의 데이터 분석 회사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가 5,000만 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불법적으로 추출하여 사용했다는 것이 언론에 알려졌다. 문제는 이 회사가 지난 미 대선에서 트럼프 선거운동에 이 불법적으로 추출한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더욱 큰 문제는 페이스북이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허락을 했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페이스북 탈퇴, 계정 삭제 운동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사용자 정보 유출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니 이 사태 또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페이스북이든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든 그들이 사용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몰랐던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수 사용자의 데이터를 특정 정치 활동, 그것도 대통령 선거운동에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이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이 방식은 국가정보기관과 군대, 나아가 경찰까지 온라인 여론조작을 위해 수많은 악성 댓글을 달면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해 온 우리나라의 선례보다 훨씬 세련되고 비밀스럽게 진행됐다. 사용자들의 서비스에 대한 믿음을 철저하게 뒤집고 배반하여 뒤통수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말하듯 도둑에게 집 열쇠를 맡겨놓은 셈이고, 믿고 사용하던 백신프로그램의 제작자가 알고 보니 악성 해커인 꼴이다.
페이스북과 같은 SNS는 근본적으로 더 많은 사용자, 더 광범위한 데이터, 더 세밀한 정보를 원한다. 당연히 사용자로 하여금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도록 부추긴다. 누군가와 페이스북 친구 관계를 맺은 다음 벌어지는 일은 지속적인 친구 관계의 확장이다. 그 친구의 친구 혹은 그 친구가 ‘좋아요’를 누른 친구, 나아가 그 친구의 친구가 관심을 가진 친구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관계의 사슬을 따라가며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이 SNS의 목적처럼 보인다. 페이스북은 계속해서 새로운 친구를 추천하며 친구맺기를 장려하고 심지어 오랫동안 잊힌 친구들마저 지금 여기로 소환하면서 관계를 확장하도록 만든다.
더 많은 사용자가 더 많은 관계를 맺으면 자연스럽게 페이스북의 네트워크가 확장된다. 또한 그 관계의 수가 확장될수록 그들 사이에 가능한 상호작용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업데이트 하는 나의 상태, 기분, 사진, 장소, 메시지, 좋아하는 모든 것들, 그리고 친구들에 관련된 데이터를 모두 긁어모아 특수하게 개발된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하면 사용자의 문화적 취향에서부터 정치적 성향에 이르기까지 매우 세밀한 개인 프로파일을 작성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작성된 프로파일은 만능열쇠처럼 쓰일 수 있다. 수천만 명의 개인 프로파일을 손에 쥔 광고업자는 개개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의 페이스북 창에 특정 상품의 광고를 띄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선거 캠페인에서는 개인의 정치 성향을 고려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도록 작용할 페이스북 포스팅(이것이 가짜 뉴스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이 더 눈에 잘 띄도록 만들 수 있다. 유독 특정 상품의 광고가 자신의 타임라인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그 상품을 원하는 것으로 (혹은 원할 것으로) 자신의 데이터가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용자 데이터를 공공연히 탈취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바로 온라인 플랫폼, 특히 SNS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본 원리다. 사용자들의 온라인 활동은 모조리 데이터화되고 프로파일로 만들어져 데이터 중개상에 팔려나간다. 그런데 팔려나가는 것은 단순히 개인정보만이 아니라 어쩌면 개개인의 삶 전체다. 데이터 분석 혹은 마케팅 업체는 값싸게 팔린 개인의 데이터 조각들을 여기저기서 구매하여 그로부터 개인의 취향과 성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다시 그 개인에게 맞춤된 상품을 팔거나 정치적 지향을 주입하기를 원하는 업체들에 되파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이 과정에서 개인은 또 다시 기업과 정치권력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번 사태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부분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탈취하기 위한 도구로 삼은 것이 다름 아닌 심심풀이 성격검사 앱이었다는 점이다. 사용자들은 게임처럼 그 앱을 사용하면서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모든 페이스북 데이터와 친구들의 계정 정보까지 넘겨주었다. 마치 트로이 목마처럼 우리의 활동 범위 안에 미끼처럼 던져 놓고 우리와 친구들의 상태, 올린 사진,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이루는 관계를 마구잡이로 뽑아갔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쩌면 페이스북과 그 주변을 둘러싼 데이터 브로커들이 우리의 감정(나아가 인간성 전체)을 착취한다는 점이다. 훔쳐간 우리의 데이터 속에서 우리의 본질적 속성을 파악하고 그 결과를 이용해 결국 다시 우리의 욕망과 지향을 조작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이 악순환의 고리.
많은 비판적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 늘 힘주어 SNS, 특히 페이스북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해왔다. 앞으로도 이 사실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강조해서 말하게 될지 모르겠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서비스가 무료라면, 우리가 바로 상품이다.[워커스 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