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있는 택시를 탔다. 중년의 택시운전사는 반가운 인사로 나를 태웠다. 요즘 택시 운전하기 괜찮냐는 물음에 그는 옛 기억을 꺼냈다.
“제가 전주에서만 택시를 35년 했어요. 옛날에는 참 재밌었죠. 수익도 높았고, 일할 맛도 났어요. 옛날엔 오늘 같은 더운 날 어떻게 운전했는지 알아요? 차에 에어컨이 없으니까 창문을 다 열고 다녀요. 그런데 그땐 택시도 없으니까 손님들이 합승하자고 얼마나 조르던지.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이 사람 가득 채우고 달리는 거예요. 그러면 시내 손님 내려주고 돈 받고, 장거리 뛰러 나가는 거죠. 지금은 뭐…. 사람 부대끼는 맛도 안 나고. 뭣보다 돈이 제일 걱정이지. 15~16시간 일해야 먹고 살아요. 그래야 사납금 채우고 몇 푼 가져가니까. 그러니까 저기(전주시청 앞)서 월급제 해달라고 그렇게 데모하죠. 손님은 거기 가봤어요?”
즐겁게 일하던 추억도 사납금이 앗아간 걸까. 이전에도 사납금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고 했다. 납부액도 기사 자율이었다. 하지만 현재 전주 지역 사납금은 1일 12만 원이 넘는다. 하루 12시간은 운전해야 채울 수 있는 금액이다. 12시간 이상 일해야 비로소 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전근대적 제도인 사납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액관리제가 법으로 제정된 현재. 전주시청 앞 조명탑 위에는 택시노동자 김재주 씨(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전북지회)가 전액관리제에 따른 월급제 시행을 요구하며 1년 가까이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노송 위 둥지 혹은 고공농성
8월 17일 전주시청 앞 고공농성장. 농성장은 25m 하늘 위에 있다. 고공 위에 검은 그늘막이 보인다. ‘안전한 택시 만들어요’ ‘약속 지키지 않는 김승수(전주시장)는 퇴진하라’는 현수막도 보인다. 전주시청 앞 도로명은 ‘노송광장로’. 보기 좋은 노송 몇 그루가 농성장을 감싸 안았다. 노송은 농성 기둥과 기둥에 붙은 현수막 일부를 가렸다. 농성장이 노송 위 둥지처럼 보였다. 둥지 속에서 수염을 길게 기른 택시노동자 김재주 씨가 손을 흔들었다. 건강을 묻자 그가 괜찮다고 전했다.
하지만 괜찮을 리 없었다. 이날도 ‘폭염 재난 문자’는 요란스럽게 울렸다. ‘[전라북도청] 도내 전 지역 폭염특보 발효중. 야외활동 자제….’ 지상 온도는 32도, 고공 온도는 36도를 넘겼다. 한여름에는 50도까지 치솟았다. 농성장이 나무로 둘러싸인 탓에 온갖 벌레가 그를 괴롭혔다. 1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최근 3개월은 복부 팽만으로 극심한 불편을 호소했다. 운동 부족으로 소화가 안 돼 가스를 배출하지 못한 까닭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서 살기를 1년. 그는 문재인 정부 아래 최장기 고공농성이란 기록을 세우고 있다.
“문재인 중앙정부, 민주당 지방정부(김승수 전주시장)에서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죠. 저도 이때까지 농성할 줄 몰랐습니다. 전주시, 노조, 사측이 합의한 임금표준안(전액관리제)을 시행하기만 하면 되는데 지금까지 미적거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납금 폐지는 시민의 안전이 걸린 문제인데도 민주당이 사업주 편만 들고 있는 거예요. 단언컨대 문재인과 지방정부는 노동자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때보다 더 많은 노동자가 길거리에 내몰리고 있어요. 노동자 투쟁도 많아지고 있고요. 성의 있는 정책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택시 투쟁도 길어지는 상황입니다.”
박근혜 정부 때도 전주시를 상대로 싸워왔던 그다. 출근투쟁만 600일, 농성투쟁만 450일을 넘게 했다. 김승수 현 전주시장은 박근혜 정부 때에도 시정을 맡았다. 2014년, 김 시장은 당선 후 택시 노동자들과 면담을 했다. 그 결과로 임금표준안 연구용역을 진행, 2017년 1월부터 시행한다는 확약을 했다. 김재주는 싸움을 멈추고 연구용역을 기다렸다.
그런데 2017년이 되도록 용역안은 나오지 않았다. 택시노동자들이 항의하자 2017년 4월 27일 용역안이 뒤늦게 나왔다. 부경대학교와 전북대학교 연구팀이 단일안으로 만든 전액관리제 임금협정표준안이다. 전주시는 용역안을 발표할 최종보고회를 열었지만, 사업주들이 참여하지 않았다. 월급제에 대한 반발이었다. 전주시는 사업주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용역안을 채택하지 않았다. 노사정 합의는 이렇게 뭉개졌고 김재주 씨는 9월 4일 고공에 올랐다.
고공에 오르니 시청에서 다시 움직였다. 9월 말, 시청은 연구용역을 진행했던 부경대 교수와 택시지부를 불렀다. 시청에 가니 전주시가 서명을 요구했다. 문서 내용은 부경대와 전북대가 따로 연구용역을 내는 데 합의하라는 것이었다. 4월 27일 발표한 전액관리제 단일안에 대한 파기였다. 이미 전북대, 전주시, 어용노조는 이에 합의한 뒤였다. 택시노동자 입장에서 전북대는 사측 의견에 가까운 안을 낼 게 뻔했다. 부경대는 용역안을 다시 내도 4.27안과 다를 것이 없다고 거부했다. 택시지부 또한 전액관리제를 피하려는 시의 꼼수라며 반발했다. 2017년 12월 21일 전주시는 전북대의 별도 용역안을 밀실에서 받았다. 전북대 안은 ‘성과급 배분을 위한 기준금은 노사가 합의한다’. ‘소정근로시간은 노사가 합의한다’가 골자다. 용역 결과가 없는 용역안이었다.
후퇴안도 내봤지만
2018년 3월 31일. 전국에서 김재주를 응원하기 위한 ‘희망버스’가 출발 준비를 마쳤다. 수천 명이 전주 시청 앞으로 모일 예정이었다. 그로부터 10일 전인 3월 21일, 전주시장이 다급했는지 지부를 불렀다. 지부는 이 자리에서 사납금제를 유지하는 사업장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전주시장은 “운수종사자도 전주시민인데 처벌은 힘들다”고 했다. 사납금제에 동의한 어용노조 조합원을 두고 한 얘기였다. 지부는 한발 물러서 “그렇다면 농성 문제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꾸려달라”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부시장을 팀장으로 하는 TF팀이 열렸다. 이 TF팀은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경제지원팀, 시민교통과, 공공운수노조로 구성됐다.
희망버스 5일 전인 3월 26일. TF팀 회의에서 지부는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만이라도 완전월급제를 시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안을 꺼냈다. 더 양보해 파업권도 내려놨다. 사실 모든 노동자를 위해 존재해야 할 민주노조에서 꺼내기 힘든 안이었다. 지부는 그만큼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자 TF팀원 다수는 지금까지 노조의 요구 중 가장 좋은 안이라며 호응했다. 그렇게 사측에 제시할 확약서가 작성됐다. 주요 내용은 ‘최초 도래할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기간에 개별교섭권을 인정한다’, ‘교섭 결렬 시 노동위원회 중재신청에 동의한다’였다. 사업자가 이 확약서에 서명만 하면 끝날 문제였다. 하지만 전주 시내 21개 택시 사업장 중 대림교통 한 곳을 제외하고는 이를 받아들인 곳은 없었다.
김재주 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몇 년을 싸웠는데 항상 새로운 시작이에요. 사업주가 전액관리제하면 망한다는 얘기를 전주시가 매번 받아들여서 진전이 있다가도 처음부터 다시 싸우게 됩니다. 2015년에도 시청에 가서 ‘공무원들이 왜 사업주랑 똑같은 얘기를 하느냐’면서 ‘사업주에게 대체 얼마를 받아먹은 것이냐’고 항의했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로 벌금을 맞은 적도 있어요. 박근혜 때나 지금이나 우리 요구는 같습니다. 법과 원칙대로 하라는 것. 그대로 한다면 시장도 피곤할 일 없어요. 법대로 한다는데 누구한테 욕을 먹습니까.”
[출처: 김용욱]
|
어용노조의 농성장 침탈
지난 8월 8일 새벽 1시. 고공농성장에 괴한이 들이닥쳤다. 한국노총 산하 택시노조 소속 간부 등 6명이 술에 취해 농성장을 습격했다. 이들은 고공농성장 전기선을 끊고, 밑에서 항의하는 택시지부 송민섭 조합원의 목을 졸랐다. 주변에 오가는 시민들에게 들킬까 봐 농성장 안으로 끌고 가 폭행했다. 몇 명은 망을 봤다. 송 조합원이 이를 촬영하려 하자 핸드폰마저 부숴버렸다. 김재주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차가 10대 가까이 출동했다. 경찰이 도착하자 이들은 “그래 내가 끊었다. 왜!”라고 소리쳤다. 현재 경찰은 이들을 폭행 및 재물손괴 혐의로 수사 중이다.
택시지부에 따르면, 전주 A택시법인 대표는 한국노총 간부 출신이다. B택시법인 대표 역시 민주택시노조(2017년 4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으로 가입) 간부 출신이다. 전주에만 두 회사 대표가 과거 노동운동가였다. 전주 지역에서는 한국노총 혹은 기업노조가 다수노조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는 매우 드물다. 어용노조가 택시자본과 결탁하고 있다는 오래된 의심은 지워지지 않는다. 실제로 농성장 주변에는 ‘대책 없는 전액관리제 강행하는 전주시는 각성하라’는 한국노총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전액관리제는 반대하며 정부지원 산업이 먼저’라는 현수막도 ‘택시노동조합 연합회’라는 이름으로 붙어있다. 나무마다 관제 현수막이 도배돼 있다.
“노동운동 좀 했다는 사람들이 전주에서 회사 차리고 현장을 다 망가뜨렸어요. 사납금이 13만 원까지 오르는 데 어용노조 합의가 있던 거죠. 우리 농성장 침탈이든, 관제 플랑(현수막)이든 사업주가 시킨 것으로 볼 수밖에 없어요. 노동운동가이자 자본가인 자들이 지역 토착 세력으로 꽉 잡고 있어요. 어용노조의 배후세력은 분명히 있습니다.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한 가지 놓치고 있는 큰 문제가 있어요. 한국노총, 기업노조 조합원들이 우리에게 전액관리제 언제 시작하느냐고 지금도 문의 전화가 와요. 사납금에 대한 저항은 잠재하고 있어요. 민주노조 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전주시의 행정처분, 믿어달라고?
어용노조의 움직임은 위기에 따른 반작용이기도 했다. 지난 8월 2일. 전주시가 사업주를 상대로 전액관리제 위반 1차 처분을 내렸다. 벌금 500만 원이 나왔다. 2, 3차 처분을 거치면 사용자는 면허를 상실하게 된다. 전주시가 사용자를 압박하자 어용노조가 나서 민주노조를 위협한 셈이었다. 이 상황을 틈타 전주시는 꼼수를 부렸다. 전주시는 지난 13일 ‘고공농성 해결을 위한 대책회의’에서 “1차 처분을 했으니 고공농성을 정리하라”며 “농성을 정리하지 않으면 1차 처분도 취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지부로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과거 전례도 있었다. 2015년 8월 전주시가 사업주를 상대로 전액관리자 위반에 대한 1차 처분을 내리자, 사업주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바 있다. 시의 ‘져주기 소송’이란 비판이 잇따랐다. 때문에 지부는 전주시가 3차 처분에 따른 사업자 면허 취소와, 전액관리제를 시행하기 전까지 고공농성을 정리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주시는 져주기 소송이 아니라며 믿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져주기 소송’이 아니라는 시의 입장을 믿을 수 없어요. 이전에도 전주시는 사업주의 행정처분 무효 소송에 일절 대응하지 않았어요. 그때 우리가 시에다 법적 근거 자료 갖다 줬는데도 가만히 있었죠. 사업주는 어용노조를 통해서 탄원서를 조직하고요. 시는 행정소송에서 패소하고 항소도 안 했습니다. 전형적인 ‘져주기 소송’이었죠. 지금이 그 상황과 똑같아요. 동시에 언론에는 법적 근거 미비를 이유로 전액관리제가 어렵다고 말해요. 형용 모순이죠. 우리가 고작 500만 원 벌금 물리자고 고공농성하는 게 아닙니다.”
노동자가 기댈 법은 어디에
택시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전액관리제가 1997년 입법 시행됐으니, 이를 지키라는 것뿐이다. 법에 따라 미터기에 찍힌 운송수입금 전액을 회사에 내고, 택시운전자의 완전월급제를 시행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주시는 전액관리제 시행에 있어 근로조건 규정이 없으므로 법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원도 마찬가지였다. 전액관리제 시행에도 회사가 운송수익금에서 사납금을 공제하자 군산의 택시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군산지방법원은 2009년 택시최저임금법(택시노동자에게 노동시간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라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근거로 노동자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고등법원은 임금은 단체협약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임금 공제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현재 이 소송은 대법원에 1년 2개월째 계류 중이다. 1997년 고용노동부도 질의회시를 통해 “(사납금 임금공제는) 택시 업계의 특수한 근무형태가 고려된 임금정산 형태이며, 일반적으로 관례화, 개별근로자와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임금전액 지불의 원칙에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법원과 노동부의 판단은 같았다. 전액관리제가 있어도 노동자가 동의했으니 공제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노동자의 삶은 권력기관이 어떤 법 조항을 갖다 쓰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이삼형 택시지부 정책위원장은 “노동부 질의회시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침 이상의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현장 근로감독관도 노동부의 질의회시를 바꾸지 않으면 기소의견으로 남기지 못한다 했고, 검찰도 불기소 처분했다. 노동부와 법원의 판단 때문에 우리는 택시 사업주와 종사자 모두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종사자가 임금 공제에 동의하고 사납금을 내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자가 노동자를 처벌하라는 것도 마뜩 잖은 일이다. 하지만 전액관리제를 정착시키려면 달리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죽음의 택시는 멈춰야 한다
사납금을 폐지하고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는 것만이 ‘죽음의 택시’를 멈출 수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용 차량 교통사고 발생 비율 1위는 법인택시(33.3%)다. 2위인 시내버스(13.3%)에 비해 압도적이다. 택시지부에 따르면 택시 교통사고로 하루 약 3명이 사망한다. 이는 택시 가해 사고로만 집계한 수치다. 피해 사고, 산재사망까지 더한다면 택시로 인한 직‧간접적 사망자는 상상 이상이다. 택시 사업장 소수 노조인 택시지부만 하더라도 최근 조합원 3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지난해 11월 오 모 조합원이 혈액암으로, 지난 12월 윤 모 조합원이 신장암으로, 지난 3월 이 모 조합원이 위암으로 숨을 거뒀다.
김형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위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법인택시 노동자 70%가 하루에 담배 1~2갑을 피운다. 75% 이상은 하루에 커피를 6잔 이상 마신다. 또 41%가 고혈압이 있으며, 55%가 수면장애를 앓고 있다. 12시간씩 운전해 사납금을 채우고, 그 이상을 해야 생계를 꾸릴 수 있는 택시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죽음을 부르는 사납금을 끝내려는 택시노동자의 싸움은 계속된다. 오는 9월 1일, 전국의 노동자, 시민이 전주시청 앞에 모여 대규모 집회를 벌일 예정이다.[워커스 46호]